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대본 리딩을 별탈 없이 마치고, 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어느새 나와 남연수도 개학을 하고 학교를 2주쯤 나갔을 무렵이었다.
어쩔 수 없지.
또 개학을 하자마자 줄기차게 조퇴를 반복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촬영 현장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빼꼼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여주인공의 아역 배우인 유혜미.
그 아이는 남연수 등 뒤에 숨어서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안녕.”
“……내가 누난데.”
“같은 초등학생이잖아.”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는 유혜미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요즘 현장에 나와 남연수만 있어서 편했는데 오늘은 저 혹도 있구나.
원래 어린 시절에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만날 일이 없어 남연수와 유혜미는 따로 촬영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래도 주인공이라 스케줄 상 오다가다 얼굴 보는 일이 많다고는 하다만.
오늘 찍을 장면 중에 유혜미와 남연수가 어릴 때 딱 한 번 마주치는 장면이 있던데 그거 때문에 유혜미가 오늘 남연수에게 붙어 있는 모양이다.
“어, 시우야!”
하지만 내가 걸음을 옮기는데 남연수가 가만히 있을 리가 있나.
남연수는 당연히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어디 가게?”
“여, 연수 오빠!”
문제는 유혜미가 남연수를 졸졸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결국에 우리는 줄줄이 소시지인 양 셋이 다니게 됐다.
“물가에. 물수제비 뜨려고. 형도 할래?”
“할래!”
“할 줄 알아?”
“……아, 알아!”
저거 백 퍼센트 모른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맘대로 하라고 했다.
촬영 현장만큼이나 대기 시간이 긴 곳은 없다.
그 긴 대기 시간 내내 대본을 붙들고 긴장하고 있는 건 체력 낭비다.
가끔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릴렉스하는 시간도 필요하단 말이지.
“어떤 돌이 물수제비 잘 나가는데?”
“……너 먼저 골라봐.”
남연수는 끝까지 못 한다는 소리는 하지 않고 내가 고르는 돌을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가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단 말이지.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평평하고 가벼운 돌을 찾아서 모래를 탁탁 털었다.
“이거는 어때?”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다고 할 때는 언제고 또 나에게 다가와서 자기가 고른 돌을 보여준다.
나는 양손에 하나씩 들린 돌을 살펴보다가 왼쪽을 가리켰다.
“이거. 이거는 너무 모났어. 바로 가라앉을 거야. 버려.”
“응!”
남연수는 신나는 얼굴로 물가로 향했다.
그러다가 멈칫 멈춰 선다.
돌을 몇 개 더 고르던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남연수 쪽을 쳐다보았다.
“오빠.”
거기에는 잔뜩 인상을 쓴 유혜미가 남연수의 옷자락을 단단히 그러쥐고 서 있었다.
얼굴 가득 심통 났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유혜미가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말했다.
“저쪽으로 가서 대본 연습이나 하자. 엄마가 그러는데 오빠 요즘 연기할 때 딴청 피우는 것 같대.”
“어……?”
남연수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서 두 눈을 끔뻑거렸다.
따안청?
남연수가?
평소에 남연수가 얼마나 노력을 하고 공부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잘도 나불대는구나 싶었다.
아마 요즘 촬영장에서 나와 티키타카하며 여유롭게 얘기하는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엄마가 그랬다고……?
유혜미의 말을 듣고서 나는 유혜미에게 따라붙는 시선을 따라갔다.
거기에는 딱 봐도 극성스럽게 보이는 유혜미의 모친이 팔짱을 끼고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역 배우들을 쫓아다니는 엄마들 중 더 유난스러운 엄마들이 있는데 그런 부류인가 보다.
RUN 공연할 때 저런 보호자가 몇 명 있었기에 잘 안다.
이제 눈빛만 보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지.
“나랑 가자아- 엄마랑 둘이 하는 거 싫단 말이야. 그런 돌멩이로 뭐 하려고!”
유혜미 입장에선 남연수가 유일하게 자신과 비슷한 부류였을 터였다.
원래 남연수는 촬영 현장에서 항상 대본만 붙들고 달달달 외우는 아이였으니.
이왕 연습벌레로 유명한데다가 실력도 좋은 남연수의 상대 역할이 되었으니.
유혜미도 현장에서 같이 그러는 걸 기대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남연수는 계속 나랑만 붙어 다니며 수다를 떨고 연기 연습과는 거리가 먼 짓만 하고 있으니.
그런 연수를 쫓아다니는 유혜미를 보니 유혜미의 모친은 기분이 언짢은 듯했다.
“혜미야! 이리로 와봐.”
“…….”
움찔 몸을 떤 유혜미는 결국 자신의 모친 앞에 불려가서 시무룩하게 섰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내가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그때까지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했잖아.”
“……엄마가 아까 연수 오빠랑 연습,”
“이게 지금 연습하고 있는 거야? 엄마 눈에는 그냥 생각 없이 놀고 있는 거 같은데?”
유혜미는 뭐라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자신의 모친에게 사정없이 잔소리를 들었다.
잔소리라고 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크게 혼내는 모습이었다.
갑자기 들리는 큰 노성에 스태프들도 이쪽을 힐끔거리지만, 쉽게 끼어들 수 있지 않기에 외면하고 자신들이 하던 일을 계속했다.
하긴, 저기 끼어들었다가 내 애를 자기가 알아서 교육시키겠다는데 왜 참견하냐는 소리만 듣겠지.
RUN 때 많이 보던 광경이라 상황이 쉽게 예상되었다.
그보다 저 사람.
지금 우리 둘 보고 들으라는 듯이 생각 없이 노는 거냐고 하는 거 같은데?
내 인상도 서서히 찌푸러들 때, 유혜미가 미련이 남은 눈으로 우리 쪽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그, 그럼 연수 오빠는…….”
“놀고 있는 애들이랑 뭐하러 말을 섞니! 혜미 너 여기 놀러 온 거야, 아니면 일하러 온 거야.”
보란 듯이 한숨을 쉬며 유혜미에게 닦달하는 투로 묻는 유혜미의 모친.
그 말에 유혜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일하러요…….”
“연기가 그렇게 우스운 거 같으면 지금 당장 때려치워. 엄마도 바쁜데 혜미 너 생각해서 촬영장에도 쫓아다니고 있는 거잖아. 응?”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강한 말에 유혜미는 울먹거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알았어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엄마.”
“…….”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힐끔 남연수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남연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마, 마치 지난날의 자신을 보는 것 같을 것이었다.
엄마에게 실컷 혼난 뒤 혼자 훌쩍거리며 배우 대기석에 가서 앉았다.
이미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남연수의 얼굴을 보고서 내가 그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어, 시우야?”
“형이 가서 위로해줘.”
내가 살며시 등을 밀면서 말하자 남연수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내가 뭐라고 위로를 해.”
같은 처지였으니까 엄청 잘해줄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형은 일류 배우잖아.”
“아, 뭐야…….”
내 말에 피식 웃은 남연수가 다시 슬그머니 유혜미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던 남연수는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유혜미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나는…… 저 사람한테 한마디 해볼까.
내가 시선을 돌려 유혜미의 모친을 찾는데.
뜻밖의 상황을 발견하고 눈이 커다래졌다.
***
“훌쩍…….”
“…….”
배우들의 대기석에 앉아 눈물을 훔치며 대본을 들여다보는 유혜미.
멀리서 그 모습을 남진용이 지켜보고 있었다.
대기 시간 동안 큰 소리가 들리기에 남진용이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았다.
아직 쌀쌀한 날씨 탓에 손에는 종이컵에 탄 믹스 커피 한잔을 들고서.
거기에는 자신의 아이를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유혜미의 모친과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유혜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는 남연수와 한시우도.
유독 자신의 아들, 남연수의 얼굴이 어두워보여 가슴이 쓰렸다.
이렇게 직접 유혜미가 엄마에게 불려가 혼나는 것까지 다 보고 나니… 지난날의 자신이 했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자신 역시 분명 저렇게 했었고, 그게 아이를 위한 길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참회했다고 누굴 가르칠 자격이나 되나, 싶어 끼어들지 않으려 했다.
못 본 척, 발걸음을 돌리려던 찰나 남진용의 눈이 크게 뜨였다.
“괜찮아, 혜미야.”
자신의 아들인 남연수가 유혜미에게 다가가 위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자신의 명령 없이는 움직이지 않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언제 혼자서 저리 훌쩍 컸는지 직접 누군가를 달래고 있지 않나.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끄러워졌다.
아무리 못났던 아빠라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남진용을 돌아가려던 발걸음을 옮겼다.
“혜미 어머님.”
“어, 어머! 감독님! 어쩐 일이세요?”
자리에 앉아 화장을 고치던 유혜미의 모친은 남진용의 부름에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 짓고 있던 무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잠시 저랑 이야기 좀 하시죠.”
“아, 그럼요.”
남진용은 유혜미의 모친을 데리고 사람이 적은 촬영장 구석으로 향했다.
아마 지금의 유혜미의 모친에게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남진용 본인이기에 더욱 잘 안다.
지금 무슨 말을 해도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는 걸.
현실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타협해야 하는 법이다.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을 정리한 남진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드라마는 아역 배우의 자유로운 모습을 많이 담으려 합니다.”
이번 드라마의 취지를 설명하는 걸로 물꼬를 텄다.
이건 갑자기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대본 리딩 때 한시우와 남연수의 자연스러운 대화 느낌을 보고 그때부터 생각한 일이었다.
좋은 그림을 길게 담고 싶은 것이 감독의 욕심 아닌가.
“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혜미에게 그렇게 지도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님.”
유혜미의 모친은 남진용의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남진용이 유혜미 모친이 보여주는 모습에 속으로 쓰게 웃었다.
마치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하여.
“아닙니다. 어머님.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에요.”
“네?”
남진용은 시선을 돌려 세 아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기석을 가리켰다.
남연수가 유혜미의 등을 토닥이고 있고, 한시우가 무뚝뚝한 얼굴로 유혜미에게 티슈를 건네는 중이었다.
눈물을 닦던 유혜미가 남연수가 뭐라고 하는 말에 꺄르륵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시우의 말에 다시 인상을 쓰긴 했지만.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까? 전 저런 걸 담고 싶습니다.”
“저런 거라… 하심은.”
당황한 유혜미의 모친이 감을 잡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후룩, 손에 들려 있던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남진용이 대답했다.
“글쎄요, 우리 같은 어른들이 알려줄 수 없는 것 말입니다.”
쌉쌀함이 입맛 가득 퍼져, 남진용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유혜미의 모친은 잠깐 멈칫하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정말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게 정답인가 싶은 마음에 남진용은 괜한 참견을 했나 싶었다.
뒤를 돌기 전 굳게 닫혀 있던 상대방의 입매를 떠올리며 남진용이 짧은 한숨을 쉬려는 찰나였다.
부스럭.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놀란 남진용이 뒤를 돌아보았다.
“닮았네요.”
“뭐?”
거기에는 상황을 모두 지켜본 듯한 남연수의 매니저, 김성후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