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이들이 한데 모인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노백찬의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서겠지.
그렇지 않다면 노백찬이 손수 한 명 한 명 내게 소개해줄 연유가 없었다.
하지만 봐도 봐도 믿기지가 않았다.
정말 이 사람들이 다 노백찬의 영화에 참여한다고?
이 사람들과 노백찬의 조합은 앞으로도 한국 영화계에 전설로 남을 것이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 내 복귀를 아는 이들은 여기에 있는 사람이 전부다.”
아, 그래서 이 자리에 다 불러 모은 거구나.
이제 막 해가 떴기에 벌판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 벌판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내 부름에 한달음에 와줘서 고맙네. 이 사람들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일 걸세.”
“영광입니다. 감독님.”
대표로 김화진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하자, 노백찬의 인상이 설핏 구겨졌다.
“이상하게 다른 사람보다 자네가 그런 말을 하면 기분이 안 좋아.”
“그거 편견입니다, 감독님.”
김화진이 약간 상처라는 듯이 말했다.
그것도 장난스러워서 역효과를 내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노백찬은 그의 너스레에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꼬박꼬박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만하게.”
“하지만 이제는 정말 감독으로 복귀하는 거 아니십니까. 그럼 저희가 뭐라고 부를까요. 시우가 하는 것처럼 할아버지, 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뭐야? 나는 네놈들처럼 늙은 손주 둔 적 없네.”
노백찬의 노성에 최대웅과 이현욱이 풋, 웃음을 터트렸다.
“두 분은 1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하십니다. 김 대표님도 그만하시구요.”
최대웅이 피식피식 웃으면서 둘 사이를 중재했다.
익숙하다는 어감에 내가 신기해서 물었다.
“원래 이렇게 대화하세요?”
“그런 편이지. 김화진 대표님이 노 감독님을 절대 안 봐주시거든.”
“일없다! 누가 봐달라고 했나!”
이현욱의 친절한 설명에 노백찬이 버럭 성을 냈다.
아, 맞나보네.
저건 노백찬만의 긍정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또 그의 화법에 관해서는 꿰뚫고 있지.
그 모습을 보고 최대웅와 이현욱이 고개를 절레 저었다.
“항상 저런 식이셔서 김화진 대표님이 더 좋아하시는 걸 몰라.”
“헤에.”
나랑 있을 때도 친근하게 굴으시기에 이런 면이 있는 걸 알긴 알았다.
하지만, 나 외의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조금 신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노백찬의 대화를 들을 때도 이런 느낌인 걸까?
“그럼 세트장은 언제 완공될 예정이에요?”
내 말에 네 사람의 일순 조용해졌다.
그리고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노백찬에게 향했다.
노백찬이 살며시 웃으며 허허벌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월이 무색할 만큼 강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곳에 내 세상을 지을 생각으로 할 테니…… 아마 그리 금방은 아닐 게다.”
“그래요? 바로 들어가는 거죠?”
나는 얼른 연기를 하고 싶어 몸이 단 상태기에 조금 재촉하듯 말했다.
내 말에 최대웅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하, 시우야. 미술팀 아직 기획 회의도 안 끝났다.”
“아, 그래요? 저는 감독님들한테 이미 시나리오가 전해진 줄 알고…….”
“노 감독님이 우리한테 시나리오를 전해주신 지… 한 사흘 됐나? 우리도 이제 일에 착수하는 거야. 컨셉 회의며 관련 업체들 일정도 고려해야 하니 당장은 모르겠다.”
미술감독 최대웅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말에 조금 감동해서 노백찬을 올려다보았다.
난 또, 다른 사람들이랑 협의 다 하고 마지막에 나한테 시나리오를 준 줄 알았지.
완성되자마자 나도 받아본 거구나.
“히힛.”
“왜 그렇게 실없이 웃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세트장이 들어설 벌판을 바라보았다.
오늘 모인 사람들은 이곳에서 구도를 살피기로 했다.
“뭐든 떠오르는 게 있으면 저한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네!”
“그럼 시작해볼까.”
우리는 이미 시나리오를 여러 번 완독한 후였다.
오늘 이 부지를 확인하고 각자의 아이디어로 노백찬의 세상에 보탬이 될 예정이었다.
내가 타박타박 부지 내로 들어서는데 노백찬이 깜빡했다는 듯 덧붙였다.
“아, 그리고 작품의 제목을 지었다.”
“뭔데요?”
그 말에 최대웅, 이현욱 역시 멈춰서서 노백찬을 돌아보았다.
제목이 없었던 시나리오.
아마 나처럼 다들 무슨 제목이 붙을까 설레하며 작품을 읽어내려갔겠지.
“‘소금’.”
“소금…?”
생각보다 단순한 한 단어의 등장에 내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되물었다.
노백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제목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래, 이 영화 속에서도 중요하고, 이 영화가 모든 이들에게 소금처럼 필요한 작품이 되었으면 해서 말이지.”
“좋은 제목이네요.”
소금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니까.
그의 신념과 포부가 모두 들어간 멋진 제목이었다.
나는 입 안으로 소금, 소금…… 하고 읊조리며 새로운 제목을 되뇌었다.
“그렇지? 내가 그걸 최종 후보 중에서 고른 거야.”
그러던 중 불쑥 김화진이 끼어들며 말했다.
“오, 김 대표님이랑 같이 고르셨어요?”
“같이 골랐다기보다는 저놈이 내 서재에 난입한 거에 가깝다.”
노백찬은 김화진의 말이 또 마뜩잖다는 듯 말했다.
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웃으며 말했다.
“하하, 좋은 제목으로 잘 고르셨네요.”
“에잉, 이미 내가 다 지어놓은 건데 저놈이 숟가락을 얹은 거지.”
“제가 그만큼 끝내주는 포스터 만들어 드릴게요. 더 애정을 가지고.”
김화진은 화 풀라는 듯이 노백찬에게 말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림 대표가 저렇게 단언하니까 정말 끝내주는 포스터가 나올 것만 같다.
금칠이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럼 안 그러려고 그랬더냐?”
노백찬은 투덜투덜거리더니 다 흩어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는 웃으면서 부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서 최대웅이 이현욱에게 어딘가를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보였다.
임수호 감독의 작품 역시 판타지 영화라서 그런지 세트장이 어마어마했는데.
이곳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지어질까?
주인공이 내도록 생활할 공간을 상상하고 있는데 멀리서 노백찬이 내게 다가왔다.
“어떠냐. 뭐 좀 떠오르니?”
“으음, 아무래도 저는 연기가 천직인가 봐요. 딱히 뭐가 안 떠올라요.”
“그래. 아니면 저놈들이 뭐라고 의견을 내면 거기에 덧붙여도 좋다. 네가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가 소품 같은 걸 제안해도 좋고.”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나는 노백찬이 준 팁을 떠올리며 어서 빨리 세트장 설계도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 나를 데려와 주신 걸 보면 영화 제작 전반에 나를 참여시켜주실 생각인 것 같으니 말이다.
이 기회에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차분히 둘러볼 예정이었다.
“이곳이 다 지어질 때쯤 내 복귀가 세상에 알려질 게다.”
“하긴 여기 커다란 게 지어지면 감추기 어렵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지. 그러니까, 그때까진 비밀이다.”
“에이, 할아버지. 이렇게 모이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금세 소문이 날 걸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김화진과 노백찬이 그것도 맞는 말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의 소란에 멀리서 서 있던 최대웅과 이현욱도 미소를 지었다.
내 농담에 노백찬과 아저씨들이 웃었다.
아니, 뭐 나에게는 아저씨보다는 할아버지들이지만.
한바탕 웃던 노백찬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곳이 다 지어지기 전까지. 그러니까 소문이 퍼지기 전까지 넌 완벽히 작품 속 ‘유정우’가 되어야 한다.”
“물론이죠.”
그에게 당부를 하며, 나 역시 자신 있게 활짝 웃었다.
***
“자 출발하자!”
오늘은 바다 엔터에서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연탄 봉사를 가는 날이었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연탄을 나눠드려야 한다면 11월 초에 날짜가 잡혔다.
“하겠다고 했는데 말이지…….”
나는 노백찬과 세트장이 지어질 부지에 다녀온 이후 계속 작품 생각에 빠져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 수정 씨가 나한테… 시우야, 듣고 있어?”
“으응.”
“응응, 그래가지고 내가 왁! 하고 놀래켰거든? 그랬더니 순간적으로 놀란 수정 씨가 나한테 주먹을 이렇게 확, 날리는 거야.”
“어어.”
봉사를 가는 벤 안에서 사색에 잠겨서 삼촌이 뭐라 하는 이야기도 하나도 못 들었다.
이번 영화는 나에게 있어 의미가 남달랐다.
그동안의 영화가 의미가 없었다는 게 결코 아니었다.
이번 작품이 내게 주는 의미가 여러 가지로 중첩된다는 거지.
은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
개인적으로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자, 세계적으로는 인정받는 거장인 노백찬의 10년 만의 복귀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영화이지 않은가.
이 두 의미를 다 충족하는 작품이기에 그 부담감의 무게가 남달랐다.
단순히 작품이 좋아서 했던 지난 영화들과는 그 의미와 무게가 확연히 다르니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묘하게 보면 볼수록 과거의 나 자신을 떠오르게 한단 말이지.
은 현실에 지친 중년의 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왜 노백찬이 나를 캐스팅 했는가 하면, 남성이 어린 시절의 ‘나’와 우연한 기회에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이 두 사람의 뜻밖의 만남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타 지역에서 새로운 생활을 꿈꾼 주인공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과거의 주인공이 만나게 된다.
주인공은 아이들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지 몇 년이나 된 기러기 아빠다.
그러던 중 아내가 미국에서 바람이 나 이혼을 하고 만다.
일련의 과정을 겪은 주인공은 심한 회의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자신의 인생이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남자.
모든 걸 잃고 체념한 그는 아등바등 살았던 삶을 후회하며 다 내려놓고 고향으로 간 김에 못 해본 꿈을 이루어 보기로 한다.
그는 고향으로 내려와 어릴 적 꿈을 떠올린다.
요리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로 고향의 추억이 담긴 식당을 매입한다.
요리사에 대한 꿈을 완전히 저버리지 못했기에 그의 취미는 내도록 요리였다.
덕분에 요리가 손에 익었다.
어차피 다른 일을 하기로 한 거, 그나마 자신 있는 요리를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식당을 하기로 한 뒤, 그는 전보다 조금이나마 활기를 되찾는다.
그가 매입한 식당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 자신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었다.
얼마 되지 않아 가게가 폐업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몇십 년이 흘렀기에 이미 그곳은 수십 번은 다른 가게로 변했던 식당이었다.
외관은 바뀌었지만, 위치로 인해 남자는 식당을 알아봤다.
그리고 마침 우연히 매물로 나와 있는 걸 보고 반은 충동적으로 식당을 매입해버리고 만다.
후회도 잠시, 그는 식당 운영을 시작한다.
그런데, 자신이 알기로 10여 년 전에 죽은 연예인의 젊은 시절 모습을 한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이 식당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식당은 30년 전 세상의 손님들이 들어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30년 전 모습을 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
꼭, 하늘이 그에게 과거의 후회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기회를 주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