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바로 다음 날 촬영을 재개하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장진홍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주.
우리는 익숙해진 세트장에 다시 모였다.
“다행히 다들 활기차시네요.”
“응.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장진홍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그 외에도 오랜만에 만나는 스태프들과는 모두 정겹게 인사를 하고 있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오늘 촬영장은 묘한 분위기 속에 부산했다.
영화 에 참여하는 전 스태프에게 감독이 노백찬에서 장진홍으로 바뀐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노백찬의 병세 때문임을 알린 것이다.
다만, 심각한 건 아니라고 전했다.
노백찬의 나이도 나이인 만큼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장진홍이 영화를 이어 찍게 되었다는 설명으로 스태프들은 알고 있다.
실제 노백찬의 심각한 상태가 스태프들에게 퍼지면 혼란과 불안감이 커질까 봐 염려되어 한 결정이었다.
각 파트 수장급들만 온전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외부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켰고 말이다.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다른 불미스러운 일로 이번 작품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길 원치 않았다.
다행히 촬영장은 보스가 있을 때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어이! 조심 좀 해.”
“어, 미안해 강 형. 촬영이 오랜만이라 내가 거리 감각이 무뎌졌나 봐?”
“일평생 이쪽에서 일한 놈이 말은……. 얼른 해. 내가 체크하러 갈 테니까.”
스태프들도 일부러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랜만에 재개한 촬영에 들뜬 기색이 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역시 노백찬이 꾸린 팀의 티가 나는 것 같달까.
이토록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특히 그랬다.
“어어, 거기 조금 이따가 레일 깔릴 겁니다.”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쉬었다 와서 스케줄이 엉켰어. 미안해요, 장 감독.”
“제가 말씀드렸으니 됐죠. 저랑 같이 옮기시죠. 하나둘!”
장진홍도 그간 미리 와서 촬영장의 체크를 다 해놨는지, 이미 다 위치와 동선을 파악한 모양이다.
원래부터 자신의 촬영지였다는 냥 제집처럼 쏘다니는 게 그럴듯했다.
노백찬과는 다르지만, 장진홍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영화감독이었으니 말이다.
“아아, 잠시만요! 그건 마지막에 촬영할 거니까 식당에다 둡시다.”
“네에!”
그 뒤로도 장진홍은 능숙하게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바삐 움직였다.
소품을 놓는 스태프들부터 카메라 구도를 잡는 스태프들까지 하나하나 다 챙기는 게 여간 바빠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감독님. 벌써부터 날아다니십니다?”
“내가 대충 하고 있으면 안 되잖습니까.”
“크크, 저희야 노 감독님보다는 장 감독님이랑 찍는 게 숨통 트이고 좋죠.”
지난 촬영 때는 노백찬의 눈치를 보느라 걷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며 스태프 하나가 너스레를 떨었다.
“어어? 그거 스승님한테 전합니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거참. 누가 제자 아니랄까 봐 팍팍하게 그러신다.”
“우리 감독님이 좀 사람이 좋죠?”
“포장은 잘하시네요, 다들.”
스태프들 사이에서 웃음꽃도 간간이 터지는 게 촬영 현장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촬영장에는 장진홍과 평소 손발을 맞췄던 조연출, 스태프들도 몇 명 섞여 들어가 있었다.
전에 노백찬 팀에는 없던 인물들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행히 그들은 모두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원래 있던 스태프들과도 금방 동화되어서 촬영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감독이 바뀌었으니 장진홍과 영화를 위해서는 그들의 투입이 불가피했다.
아무런 트러블 없이 현장에 융화되어 손발을 맞추는 스태프들이라 참 다행이었다.
오늘 촬영부터는 노백찬 때와는 다르게 바삐 갈 예정이라 갈 길이 멀었다.
머릿속으로 오늘 찍게 될 장면을 정리하면서도 내심 조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 오늘 촬영에는 어린 유정우의 단독씬이 많았다.
혼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는데 멀리서 장진홍이 다가왔다.
“시우야!”
“네, 감독님.”
나도 그의 말에 중심을 잡기 위해 더 밝고 당차게 답한다.
“생각보다 오늘 날씨가 쌀쌀하네, 이제 3월도 거의 갔는데 꽃샘추위가 무섭다. 그치.”
“그러게요. 덕분에 내복을 오늘도 껴입었다고요.”
“실외니까 걱정되셨겠지. 하필 오늘 뛰는 장면이 많다. 괜찮겠어?”
장진홍 감독의 걱정스러운 말에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 저 체력 하나는 끝내주는 거 아시죠?”
더 긍정적인 분위기로 촬영장의 중심을 잡기 위해 씩씩하게 말했다.
“하하, 그래. 잠시 잊고 있었다. 사극 촬영에서도 시우 너 혼자 날아다녔는데 내 체력이나 걱정해야지.”
“그럼요. 감독님은 나이가 있으시잖아요.”
“어어?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오늘 몇 테이크까지 갈지 궁금한데?”
“권력남용 아니에요? 그건?”
소중한 노백찬의 영화 촬영 현장이자, 내가 주연인 작품.
이곳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주연인 내가 무너지면 촬영 분위기 전체가 무너질 테니까.
“그럼 기대한다. 담요 덮고 있어. 몸 식으면 안 되니까.”
“안 그래도 삼촌이 패딩 가지러 갔어요.”
“오, 패딩 좋은 생각이네.”
누구보다 씩씩하게, 촬영에 임할 생각이었다.
장진홍은 그림 제작사 대표실에서 본 내 모습과 지금 촬영장에서의 내 모습이 너무 달라서인지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그러나 곧 내 속내를 알아차린 듯 씨익 웃어주었다.
금세 내 텐션에 맞춰서 장난스럽게 대답해주는 걸 보아하니 확실했다.
“감독님, 이제 다 됐습니다.”
“어, 그래. 곧 갈게요.”
곧 장진홍의 사인에 맞춰 촬영 준비가 완료되었다.
나를 포함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각자의 위치에 섰다.
“스탠바이하시고!”
그리고 이 세트장에, 조금은 낯선 장진홍의 스탠바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타다다다다닥.
힘차게 뛰는 발걸음 소리가 좁은 골목을 울린다.
작은 발이 열심히 골목을 달리고 있다.
카메라가 날랜 발을 따라 얼굴로 올라가면 어린 ‘유정우’가 모습을 보인다.
천원을 쥐고 망설이던 표정을 짓던 아이는 온데간데없다.
전과 다르게 들뜬 표정으로 골목을 내달리던 아이였다.
기대에 차서 상기된 표정으로 식당으로 뛰어가던 아이지만, 오늘은 표정이 굳어 있는 채다.
지난 한 달간, 요리사의 꿈이 있던 어린 유정우는 성인 유정우의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게 되었다.
“아저씨! 저 왔어요!”
“어, 정우야.”
그러던 중, 어린 유정우는 식당에서 우연히 자신의 아버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모든 일을 겪어 알고 있는 유정우가 과거의 후회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어린 유정우에게 알린 것이지만.
어른 유정우가 의도적으로 알린 사실을 모르지만, 지금 그것은 상관없었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정우는 평소와는 반대로 집에 뛰어 들어간다.
“허억, 허억…!”
한달음에 방안으로 들이닥친 어린 유정우는 집을 뒤지기 시작한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아버지가 아픈 게 맞다면……!
이 집안 어딘가에 아버지의 약 봉투, 혹은 진단서 같은 게 있을 것이다.
어린 유정우의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무언가를 만지려 할 때마다 차갑게 낚아채던 아버지의 손길을 기억한다.
마냥 야속하게 느껴지던 아버지의 손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건 분명 자신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부러 거칠게 대한 것일 테다.
“어디 있어, 어딨냐고!”
어린 유정우는 신경질적으로 혼잣말을 외치며 여기저기 뒤진다.
종이, 책상 모서리 같은 곳에 제 손이 베이는 것도 모르고, 거칠게 집안 곳곳의 책장, 서랍을 헤집는 유정우.
드륵-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의 머리맡 서랍장에서 약 봉투와 진단서가 나온다.
두 손에 진단서를 꼭 쥔 유정우의 눈이 크게 뜨인다.
처음에는 눈이 커다래진 유정우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른다.
그때, 집 문이 달칵 열리고 누군가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온다.
야윈 모습의 아버지.
왜 전에는 몰랐을까.
“너… 여기서 뭐 하는…….”
엄격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리자 반사적으로 유정우가 손에 들린 종이를 제 등 뒤로 감춘다.
아버지는 놀란 듯 유정우의 손에 들린 것을 뺏으려는데.
유정우가 순식간에 뒤를 돌아 자신의 등 뒤로 진단서를 꼭꼭 숨긴다.
그리고 눈에 가득 고였던 눈물이 무겁게 툭, 하고 떨어진다.
“아빠… 어디 아파?”
끝내, 두려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어린 유정우의 입을 비집고 새어 나온다.
***
무거운 촬영장의 공기 속에서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시우의 연기가 끝난 후, 장진홍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컷! 오케이!”
장진홍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삼촌과 스태프들이 우르르 시우에게 달려갔다.
“시우야!”
“손 보세요, 손!”
연기 중 손에 상처가 난 것은 실제로 한시우의 손에 상처가 난 것이다.
원래 대본상에는 없던 거친 연기였다.
덕분에 종이에 베였음에도 꽤나 피가 많이 새어 나왔다.
촬영 중 피가 난 걸 보고 스태프들이 놀라 숨을 들이켰지만, 장진홍의 지시가 없기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아랑곳 않고 연기에 집중하는 한시우의 모습을 보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게 더 맞았다.
숨겨진 진실을 알기 위해 정신없이 발버둥 치는 어린 유정우의 연기는 그만큼 압도적이었으니까.
“소독하고 일단 붕대 감아둘게요. 응급실에라도 가야 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깊게 안 베여서 괜찮아요. 이게 오늘 첫씬이잖아요. 밴드 붙이고 마저 할래요.”
“…세상에.”
“시우야, 진짜 괜찮아?”
“응. 제때 소독해서 덧나지도 않을 거야. 안 될까…? 삼촌?”
“으음.”
한시우의 손을 치료해주는 삼촌과 스태프들은 단호한 한시우의 태도에 입을 다물었다.
“허.”
장진홍은 그런 한시우에 또 한 번 놀라 기함을 하고 말았다.
어디서 저 독한 게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하고 배우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니.
게다가 저 배우의 나이가 이 촬영장에서 가장 어리다.
‘며칠 전만 해도 세상을 잃은 것처럼 힘이 없더라니.’
저 모습만 두고 보자면 노백찬의 상태를 전했을 때 기운이 없어졌던 그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감독님. 저 촬영 계속하면 안 돼요? 방금도 원 테이크 만에 오케이 나고 아직 오전인데….”
스태프들이 병원 이야기를 계속하니까 한시우가 최고 결정권자인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장진홍은 순진한 척 눈을 굴리는 한시우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오는 걸 삼켰다.
“정말 깊게 안 베였습니까?”
“진짜라니까요!”
한시우의 말만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았기에 의료팀인 스태프에게 물었다.
그러자 직접 소독약을 부어주었던 스태프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소독하면서 보니까 그렇게 깊게 베인 건 아니긴 합니다만… 워낙 상처 부위가 넓어서요. 정말 괜찮을지.”
“이거 침 바르면 나아요.”
“시우, 너!”
“진짜야!”
씩씩하게 말하는 한시우의 모습에 매니저인 삼촌도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던 장진홍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래, 알았다. 그럼 오늘 촬영 끝나고 무조건 응급실 가는 거다? 내일도 촬영이 있으니까.”
“네!”
결국 이렇게 어린 주연에게 기대고 만다.
하지만 왜일까.
다른 어떤 현장에서보다 이 작은 주연의 어깨가 믿음직스럽다니.
그저 신기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