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그렇지. 이제 꽤나 칼질에 익숙해졌네.”
“그쵸? 저 진짜 열심히 연습했어요.”
어린 유정우가 조심조심 애호박을 써는 모양에 유정우가 칭찬을 건넨다.
무사히 애호박을 부채꼴 모양으로 썰어낸 어린 유정우가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든다.
어린 유정우가 유정우의 식당에 와서 요리 수업을 들은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식당에 출석 도장을 찍은 유정우는 이제 곧잘 숙련된 칼 솜씨를 발휘했다.
옹골차게 쥔 왼손을 채소 위에 얹고서 일정한 크기로 썰어내는 게 제법이다.
식당에 와서 칼질만 시킨 것도 아닌데 곧잘 따라 하니 대견한 마음이 큰 유정우다.
그런데 연습을 했다는 제자의 말에 기특해하던 것도 잠시, 유정우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어디서, 집에서? 식칼 위험하니까 식당에서만 만지라고 했을 텐데.”
그 모습을 보고 어린 유정우가 얼른 칼을 내려놓고 두 손을 휘휘 내젓는다.
“카, 칼로 안 했어요! 자로 했어요. 학교에서 쓰는 이렇게 긴 자로 한 거예요.”
이렇게 하면 연습이 된다며, 어린 유정우가 직접 시늉을 해가며 설명한다.
가는 눈으로 어린 유정우가 하는 모습을 보던 유정우가 의뭉스럽게 묻는다.
“진짜지?”
“네. 진짜예요! 저 손 하나도 안 다쳤잖아요.”
혹시나 식당 출입 금지를 당할까 봐 열심히다.
어린 유정우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유정우 얼굴 앞에다가 들이댄다.
“어때요, 멀쩡하죠?!”
“그래. 알았어. 믿어줄게.”
“히히. 다행이다. 저 진짜 아저씨한테 꼭 배워야 한단 말이에요.”
요리를 배우는 데 열의를 보이는 어린 유정우의 말에 유정우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혼자서 칼 다루면 안 된다.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언제든지 와도 좋으니까 식당에서 연습하기야.”
“알았어요!”
힘차게 대답하는 어린 유정우의 머리를 쓰다듬은 유정우가 도마 위를 가리켰다.
“그럼 이제 된장 푼 육수에 재료 넣어보자.”
“네! 뭐부터 넣어요?”
엉거주춤하게 유정우의 지시를 기다리는 어린 유정우의 눈이 빛난다.
오늘따라 그의 열의가 한층 더 대단했다.
“감자부터. 그리고 조금 기다렸다가 다른 채소는 다 넣어도 돼. 두부는 조금 나중에 넣을 거야.”
“네.”
어린 유정우는 신중한 손놀림으로 다듬어 놓은 재료들을 뚝배기 안에 퐁당퐁당 넣는다.
오늘 그가 끓이고 있는 것은 된장찌개다.
특별한 날을 맞이해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 중인 것이다.
오늘은 어린 유정우가 자신의 아버지를 식당으로 직접 초대한 날이다.
‘……래서 아빠를 이곳으로 불러도 될까요?’
직접 한 요리를 아버지에게 대접하고는 싶다는 기특한 어린 유정우의 말에 유정우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막연하게 자신의 어릴 적 꿈이 요리사가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과거의 자신을 만나 보니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보글보글.
잠시 동안 두 사람은 감자가 익는 걸 기다리며 팔팔 끓는 뚝배기를 바라본다.
그러던 중, 어린 유정우가 어른 유정우에게 묻는다.
“아저씨. 아저씨는 아빠한테 이런 거 해줘 봤어요?”
“나?”
“네! 아저씨는 이렇게 식당도 가지고 있잖아요. 요리도 잘하시고 반응이 어떠셨어요?”
해맑은 어린 유정우의 질문에 어른 유정우는 잠시 멈칫했다가 대답한다.
“미안. 안 해드려 봐서 모르겠네.”
“네? 왜요?”
어린 유정우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음. 뭔가를 깨달았을 때, 이미 아버지가 옆에 안 계셨거든. 돌아가셨어.”
어른 유정우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그렇게 대답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으로 아버지를 모셔와도 되겠냐는 어린 유정우의 말에 순간, 안도의 마음이 든 것은.
어떻게 보면, 어린 유정우가 지금 아버지를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건 자신이 아버지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린 유정우에게는 이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들은 어린 유정의 얼굴이 희게 질리고 만다.
“죄송, 죄송해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풀이 확 죽어버린 어린 날의 자신을 보고 유정우가 황급히 손을 내젓는다.
“아냐, 아냐. 몰랐던 거고. …돌아가신 지 꽤 되어서 이제 정말 괜찮단다.”
“그래도…….”
어린 유정우가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어른 유정우가 난처하게 웃는다.
그때, 과거로 통하는 낡은 미닫이문이 드륵, 득, 소리를 내며 열린다.
“실례합니다. 여기 맞나……?”
때마침 어린 유정우의 아버지가 식당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헉, 아직 찌개가 다 안 되었는데! 아저씨, 이거 다 넣어요?”
“어, 어어…….”
“으앗. 얼른 해야겠다.”
어린 유정우가 옆에서 호들갑을 떨며 채소를 다 넣고 다진 마늘을 퍼서 넣는 사이에도 어른 유정우는 굳어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눈앞에, 사진으로만 보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서 있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예, 예에…….”
먼저 꾸벅 고개를 숙여오는 자신의 아버지.
유정우는 제대로 응대도 못 하며 꾸벅거린다.
“아빠! 이쪽으로 오셔요.”
“으응. 그래.”
어린 유정우의 재촉에 사내는 어색하게 카운터 쪽으로 다가온다.
정말, 아버지다.
기억 속의 모습보다 조금 더 야윈 것 같기는 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젊은 날의 아버지.
유정우는 목이 매는 것 같아 급하게 마른침을 삼킨다.
기일에도 사진을 제대로 찾아보지 않아 이렇게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아저씨! 저희 아빠예요. 아빠, 여기는 요즘 저한테 요리 가르쳐 주시는 사장님. 제가 많이 말씀드렸죠?”
“……제가 진작 찾아뵀어야 하는데. 아들한테 요리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정우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아, 네, 네. ……아닙니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
목소리도 그대로다.
아니, 그대로인 게 당연한 거지만 새삼스럽게 신기하기만 했다.
정말 기억 속의 아버지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
더듬거리던 유정우는 두 부자의 멀뚱한 시선을 눈치채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아! 이쪽으로 오시죠. 거의 다 됐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맞다! 아빠 조금만 기다려요. 진짜 다 했어. 진짜.”
어린 유정우가 아버지를 카운터 한쪽 자리로 안내하고 얼른 주방으로 뛰어 들어온다.
팔팔 끓는 된장찌개에 두부를 넣고 고춧가루도 넉넉히 한 스푼 넣는다.
청양고추와 파를 송송 썰어 넣은 된장찌개는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완성되어 간다.
“자, 식사 나왔습니다.”
“아빠 여기 물.”
뚝배기가 무거워서 쟁반에 소담스럽게 담은 음식은 유정우가 옮긴다.
어린 유정우가 질세라 물을 받아 아버지에게 내민다.
주방에서 나와 아버지 옆에 자리 잡고 앉은 어린 유정우는 아버지가 식사하는 걸 지켜보겠다는 요량이다.
“이거 다 제가 한 거예요. 이것도, 이것도!”
어린 유정우는 신나서 현미가 잔뜩 들어간 잡곡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나물 반찬 몇 가지를 가리킨다.
모두 당뇨 환자에게 좋은 음식들로 구성된 풍성한 상이다.
“정말 이걸 네가 다 만들었다고?”
“히히. 응! 물론 아저씨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지만…….”
“저는 별로 안 도왔습니다. 정우가 정말 열심히 했어요.”
“헤헤.”
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상 위를 찬찬히 훑더니 숟가락을 들어 올린다.
조심스럽게 찌개를 떠먹는 아버지의 모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른 유정우는 헛기침을 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돌아간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짤막한 인사를 남긴 어른 유정우가 자리를 비켜주고, 어린 유정우가 신나서 아버지에게 묻는다.
“어때?”
생각이 많은 표정으로 밥을 먹던 아버지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어린 유정우와 눈을 마주친다.
“맛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히히. 그렇죠? 여기 사장님이 요리 진짜 잘하시거든. 나 조금밖에 안 배웠는데 이 정도라고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가 조용히 젓가락질을 한다.
나물과 잡곡밥을 고루 집어 먹는 아버지를 지켜보던 어린 유정우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입을 연다.
그간 아버지에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을 하기 위해.
“사실 저…… 요리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기서 열심히 배우려고.”
“그래.”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라는 듯이 덤덤하게 대꾸한다.
그 모습이 조금 놀라웠지만, 아직 하고픈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 아빠가 아프지 않게 오래오래 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
평소 하루에 한 마디도 잘하지 않을 정도로 어색한 부자관계인 둘이다.
이런 말은 한 적 없던 아이의 말에 아버지의 눈이 커진다.
달그락.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젓가락이 쟁반 위에 놓인다.
그리고는 조금 눈물이 고인 그는 고개를 푹 숙인다.
“……미안하다. 내가, 내가 미안해…….”
“어, 어어? 아, 아빠… 왜 울고 그래요…….”
갑자기 흐느껴 우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린 유정우는 한껏 당황하고 만다.
우왕좌왕하던 유정우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아버지의 야윈 어깨를 토닥, 두드린다.
“흐윽, 흡…….”
차마 입 밖으로 다 나오지는 않지만.
하고픈 말이 입가에 맴돈다.
다정하지 못해서, 부잣집이 아니라서, 아버지가 처음인 서툰 아빠라서 미안한 마음이다.
“아이참…….”
어린 유정우는 놀란 것도 잠시, 얼마 뜨지 못한 식사를 바라보고 말한다.
“아빠가 웃었으면 해서 만든 음식인데 울면 어떡해.”
“하하…….”
그 말에 눈물을 쏟던 아버지가 멋쩍게 웃더니 고개를 든다.
어린 유정우는 얼른 냅킨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손에 건넨다.
이내 아이처럼 눈물을 닦고 어색하게 웃는 아버지.
“얼른 먹어야지.”
“그래 알았다.”
“저거. 저 나물도 먹어봐요. 되게 맛있어.”
“데치는 것도 다 네가 한 거야?”
“응. 씻고 손질하는 것부터 다 내가 한 거야.”
한 차례 울고 난 아버지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어린 유정우에게 물으며 식사를 계속한다.
“…….”
그런 부자를 바라보는 어른 유정우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다.
자신보다 어린 아버지.
……10년 뒤에 세상을 떠날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지금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맛있네.”
“그쵸?”
어린 유정우가 해맑게 웃으면서 쉬지 않고 수저를 놀리는 아버지를 지켜본다.
자신은 과거에 미처 하지 못했던 말.
그 말을 어린 유정우는 했다.
해냈다.
그 덕분일까.
자신이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어린 시절의 자신이 만들어 냈다.
이미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분명, 보잘것없는 빛 한줄기 없는 우중충한 인생이었는데, 자신의 어린 시절은 자신을 동경해주었다.
그 어린 자신이 유정우를 믿어준 결과, 자신이 보지 못했던 과거를 만들었다.
과거 원했던 것은 분명히 저기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행복해하는 아버지의 표정.
어린 자신을 마주 보며 웃는 아버지의 얼굴.
자신이 어릴 때 이루고자 했던 건 지금 어린 시절의 자신이 이루었다.
그런데 지금… 현재 자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렇게 생각하자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딱 두 개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미국에 있는 아이들의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