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나직하게 읊조리는 노백찬의 말에 나는 조용히 시선을 돌려 그를 응시했다.
하지만, 노백찬은 딱히 아쉬워하는 눈치도 한탄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시간이 그만큼 흘렀으니 바뀌는 게 맞는 게지.”
그저 인자한 웃음을 띠며 자신의 다음 세대의 삶을 관찰하는 눈이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기대에 차서 이 얼른 시작했으면 하고 바라는 관객들의 모습.
하나같이 젊은 얼굴이었다.
시간대가 심야이니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서겠지만 확실히 노백찬 세대의 사람들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노백찬의 시선에서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그의 속내가 궁금해서 노백찬의 주름진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시우야.”
“네, 할아버지.”
상영관 안이라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다행히 다른 관객들이 듣기 힘들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될 시대는 공승조, 장진홍, 문희성 같은 사람들이 이끌어나갈 게다.”
“할아버지…….”
현재 한국 영화계를 주름 잡고 있는 감독과 배우의 이름이었다.
벌써부터 자신의 모습을 지우려는 노백찬의 말에 내가 안타까운 소리를 내자, 노백찬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슬플 것도 없다. 그게 맞는 거야.”
“하지만,”
“봐라. 내가 말한 그 사람들은 이미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지만, 윗대의 사람들에 가려져 아직도 진짜 그들이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을 게다. 그럼 안 돼. 좋을 게 하나 없다는 소리지.”
그 소리를 듣자 나는 노백찬이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당장 자신의 영광보다 훨씬 먼 미래를 생각한 것이다.
이제 자신의 역할은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주는 것.
아마 그걸 예감한 선택이지 않았을까.
“내가 있는 세대가 떠나야 진정 그들의 시대가 온다. 이건 당연한 거야. 이미 구불구불한 뿌리가 잔뜩 박힌 자리에 어린 나무들이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야 없지 않겠느냐.”
나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붙잡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여기서 울거나 아니라고 징징거리는 건 하지 않을 것이다.
가슴은 미어졌지만, 에서 노백찬과 함께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오늘은 스크린을 통해 그걸 함께 확인하는 날이다.
그저, 당신이 쌓아온 이 업적을, 이 광경을 눈에 담았으면 해서 온 자리였다.
울먹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노백찬의 인생에 찬란한 기억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그럼 제 세대는 아직 오려면 한참 먼 거네요.”
“허허, 그렇게 되나?”
웃으며 뱉은 말에 노백찬이 웃었다.
“아득하겠지만, 아마 곧일 게다. 네 세대의 시대도 금방 올 테니까. 믿지 못하겠지만, 나도 젊은 시절이 어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으니 말이다.”
“믿어요.”
어찌 의심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도 가끔 노아였을 시절의 기억이 선명할 때가 있는데 말이다.
물론 까마득한 과거라는 질감은 확실하다.
이제는 그 위에 한시우의 생이 덧입혀지고 있었으니.
“그래……. 시간이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더구나.”
각자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던 시끄러운 광고 하나가 끝나자 노백찬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특히나 시우 너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앞으로 할 것도 많을 테니. 그만큼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거다.”
“그건 그래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노백찬의 말에 씨익 웃었다.
아마 앞으로도 쉬지 않고 연기를 하고자 하겠지.
그러기 위해서 다시 살고 있는 생이었으니.
“네가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는 스펙트럼도 더 넓어질 것이고……. 그때부터가 진정한 시작이 될 테지.”
“네? 그때가 시작이라고요? 그럼 전 아직 시작도 안 한 거예요?”
“그렇지. 19금 영화에는 출연해도 보지도 못하지 않느냐.”
시작도 하지 않았다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영화에 캐스팅을 한 사람이 저렇게 말하자 조금 허망한 느낌이 들고 말았다.
그에 되묻자, 아주 단호한 노백찬의 말이 돌아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나이의 벽.
이건 정말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어쩔 수가 없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지만…….”
“성인이 되면 그만큼 할 수 있는 배역도 많을 게다. 즐겁게 기다리면 되지 뭘 그렇게 실망하는 게야.”
“실망 안 했어요. 그냥 기대된다는 거죠.”
“그래, 그래.”
노백찬은 내 퉁명스러운 말에 귀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조용히 덧붙였다.
“……네가 하는 걸 다 못 보고 가는 건 퍽 아쉽구나.”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새롭게 도전할 때마다 노백찬에게 달려가야 하는데, 이제 그런 존재가 사라지다니.
생각이 깊어지려는 찰나, 애써 고개를 흔들고 쾌활하게 물었다.
“저 당장 뭐라도 더 찍을까요?”
“허허, 됐다. 이놈아. 바빠지면 얼굴을 못 볼 거 아니냐.”
그것도 그렇다.
역시 지금은 노백찬 병실에 붙어 있는 게 내 일이었다.
“괜찮다. 미련은 없어.”
이런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노백찬이 말했다.
“무슨 소리세요. 지켜보세요. 앞으로도 계속.”
비록, 바로 옆에는 없을지라도.
어디에서라도 자신을 지켜봐달라는 의미다.
노백찬이 그런 시우의 손을 잡고 스크린을 보며 대답했다.
“이제 시작하는구나.”
그런 노백찬의 말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인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이야기인지.
차마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
예년보다 추운 날씨로 전 국민을 덜덜 떨게 한 2020년이 저물어 가는 시점.
“아쉽게도 이제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벌써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저는 벌써부터 너무너무 아쉬워요.”
7년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2020년 12월 연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 미디어 케이블 채널에서는 각종 올해의 랭킹을 집계해 발표하는 중이었다.
“이번에 살펴본 랭킹은 바로바로 지난 10년을 빛낸 최고의 영화 TOP10입니다!”
“이 말만 듣고서도 바로 떠오르는 영화가 다섯 개는 있는데요. 순위는 짐작이 안 가네요.”
다음 주제를 듣고서 한 MC가 기대가 된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올해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과연 이 영광의 순위에 든 작품이 있을까요?”
“정말 많은 영화가 개봉한 올해인데요. 한국 영화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도 있었죠. 과연 어떤 영화들이 순위에 올랐을지… 함께 확인해보시죠!”
통통 튀는 두 MC의 소개와 함께 랭킹에 해당하는 작품의 자료 VCR이 송출되었다.
‘2020년 뜨거운 별들의 전쟁……! 그 최후의 승자는?’
거창한 부연 설명과 함께 10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순위가 발표되었다.
다들 이름을 들으면 알법한 오락 영화서부터, 배우 한시우가 지난 7년 동안 출연했던 영화 중 하나가 7위에 랭크 되었다.
그 외에도 감성적인 연출이 일품이었던 임수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 5위에 랭크되는 것도 지나갔다.
이제 단 두 개의 랭킹만 남기고서 VCR이 종료되고 다시 MC 두 사람을 비추었다.
“이제 1위와 2위만을 남기고 있습니다.”
“다 예측이 될 것 같으면서도…… 이 영화가 과연 나올까 싶기도 하네요?”
“뭐예요, 기범씨? 기대하시는 영화라도 있는 건가요?”
“네. 제가 이 영화의 진짜진짜 팬이거든요. 그런데 아직 10위 안에 안 나왔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그럽니다.”
“그럼 빠르게 2위부터 확인해보시죠. 과연 기범씨가 팬이라고 말한 그 영화가 남은 순위 중에 있을지! 지금, 공개합니다.”
화면이 바뀌면서 앳된 모습이 살짝 남아 있는 스무 살의 남연수가 등장했다.
어딘가 공허한 눈빛으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는 강렬한 포스터.
그 밑에 흐릿하게 번진 폰트로 쓰인 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 얼굴이 등장하자, MC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멘트를 얹었다.
“으아! 이 영화가 2위에 랭크되네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2위는요. 작년에 엄청난 히트를 쳤던 공승조 감독의 입니다.”
는 남연수가 두 번째로 출연한 공승조 감독의 2019년 개봉작이었다.
“남연수 배우는 공승조 감독과의 두 번째 만남이었죠?”
거침없이 마을 사람들과 육탄전을 벌이는 남연수의 연기 장면이 송출되며 MC들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네. 그렇습니다. 어린 나이에 공승조 감독의 에서 열연을 펼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서 같은 감독님의 주연으로 출연했습니다!”
“에 이어 역시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요.”
의 포스터 속 앳된 남연수의 모습과 포스터 속 훌쩍 큰 남연수가 한 화면에 잡혀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안개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일어나는 흉흉한 스토리를 감각적으로 그려내 국내외로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남연수 배우는 이 작품으로 백룡 영화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수상을 못 한 건 정말 아쉬웠지만요.”
“대신 청산 국제 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잖아요. 국제 영화제에 초청도 받고요!”
짧게 MC들이 해당 영화의 설명을 덧붙였다.
워낙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보니 작년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 영화가 2위라는 건…… 설마 그 영화가 1위라는 걸까요?”
“왜요, 기범씨가 팬이라는 영화가 아직 안 불렸어요?”
“네! 으아, 저 너무 떨려요. 얼른 발표해주세요. 그 영화는 10위 안에 없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장난스러운 MC의 말에 발표를 도맡는 MC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2020년 지난 10년 동안 가장 사랑받은 최고의 영화는 바로……!”
멘트의 끝에 드디어 1위 작품의 VCR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 어디 아파?’
물기 어린 어린아이의 목소리.
바로 8년 전 한시우의 목소리였다.
울먹이며 자신의 아버지의 진단서를 꼭 쥔 유정우를 연기한 한시우의 이 장면은 몇 년이 지나도 한국영화계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었다.
“나왔습니다, 여러분! 드디어 이 영화가 나왔습니다.”
“그렇죠. 이 영화가 10위 안에 안 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대망의 1위는 바로! 햇수로 8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故 노백찬 감독의 작품, 입니다. 사정상 중간에 감독이 장진홍 감독으로 교체되기는 했지만, 각본은 노백찬 거장이 다 쓰신 걸로도 유명하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온 배우 캐스팅도 직접 관여하신 걸로도 유명합니다. 지금 다시 봐도 한시우 배우의 연기는 일품이네요.”
한동안 에 관한 설명을 이어나가던 MC들은 자연스럽게 노백찬 작품에 나온 한시우의 근황에 대해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한시우 배우의 활약이 전혀 없었죠?”
“곧 해가 바뀌어서 2021년이 되는데, 노백찬의 유작에 나왔던 천재 배우, 한시우의 첫 행보는 무엇일지 모든 영화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무엇보다 한시우 배우가 성인이 되는 해라 더욱 뜻깊은 것 같아요. 며칠 뒤, 성인이 될 그의 첫 행보를 기다리며, 저희는 이쯤에서 물러가겠습니다. 안녕~”
“안녕~ 다음에 봐요!”
에 출연한 이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한시우의 갑작스러운 공백기.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한시우는 나름 바쁜 생활을 지내고 있었지만, 그걸 아는 이는 이 극소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