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5
25화
“I’m done.”
휴, 습관적으로 이마를 손등으로 한 번 훔치고 다시 의자로 돌아왔다.
폴짝 올라타 앉아 심사위원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다섯 심사위원은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중 나는 가운데에 앉은 제사카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런데 제시카는 다른 네 사람과는 다르게 마냥 놀랍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그녀의 얼굴에는 미미한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오히려 예상했던 무언가를 확인한 듯이 후련한 표정이었다.
뭐지?
나는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저 후련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 여기가 만약 오스카 극단이고, 저자가 만일 오스카 피트이거나 셰익스피어였다면 주저 없이 내가 궁금한 걸 물어보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그 표정이 무슨 의미인 거냐고 물어서는 안 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게 되면 꼭 물어봐야지.
까먹지 않도록 머릿속으로 기억해두는데, 심사위원들이 저들끼리 뭐라 쑥덕거렸다.
“······거나, ······이지 않······.”
“······지만, 가능······ 한번 물······.”
나한테는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 쑥덕거리는 터라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앉혀두고 저게 무슨 매너란 말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퉁한 표정이 될뻔했다.
아니, 아니지.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금 자신은 이미 공연에 올라가기로 약속한 배우도 아니고.
‘황금 가면’만큼의 명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은 저들에게 평가받는 입장이므로 조금 더 인내를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다.
“흠흠, 시우?”
이제야 논의가 끝난 것인지 가운데 앉아 있는 제시카가 심사위원을 대표해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방금 그 연기 말이야. 손자 역을 왜 그렇게 표현한 건지 들어볼 수 있을까?”
“흐음, 해석의 이유 말인가요?”
“그래. 그렇게 손자 캐릭터를 해석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들려줬으면 하는데.”
좋아, 좋아.
오디션다운 질문이 튀어나왔군.
거기다가 영어를 쓰면서 말을 하자니 한국어처럼 단어를 뱉는 데 어려움이 적어서 너무 행복했다.
제시카는 내가 해석(Interpretation)이니, 하는 어려운 단어를 쓰자 살짝 놀란 것 같지만 상관없었다.
적어도 우리 가족처럼 도대체 영어를 어떻게 그 수준으로 잘하는 거냐고 따져 물을 것 같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아이는 많이 불안할 거예요. 대사에 나와 있는 대로 무책임한 어른들 손에 이리저리 내돌려졌거든요. 그렇기에 겉으로 밝은 모습을 보이겠죠. 하지만 아직 아이잖아요? 그렇기에 그 불안감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또······.”
한참 동안 해석을 늘어놓았고, 그걸 가만히 다 들은 제시카가 간단하게 한 줄로 요약해줬다.
“그러니까··· 아이가 불안감에 눈치를 보고 있는 걸 표현한 거라 이거지?”
“Absolutely yes.”
다행히 내 연기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었나 보다.
아마 이 대답이 없었더라도 내 연기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어떤 걸 표현하고자 했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제시카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내 대답을 듣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흡족한 미소를 짓는 걸 보면 말이다.
아마 내가 진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연기에 들어간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거겠지.
이해한다. 나 같은 다섯 살이 흔치는 않을 테니.
“그럼······ 세 장면 중에 이 장면을 선택한 이유는?”
오호라.
제시카만 심사위원이 아니라는 건가.
내도록 가만히 있던 한국인 심사위원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의 질문에 입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오디션용 대본이 제시한 장면은 총 세 개.
그중에서 왜 내가 이 장면을 선택했느냐고 묻는다면······.
“손자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가장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한국어로 들어온 질문에도 영어로 대답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국어를 연습했다지만, 영어만큼 유창하게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 이유도 있고, 또 하나는 아무리 봐도 이곳의 보스는 제시카인데.
제시카가 통역된 내 대답을 듣기 원치 않은 탓이 컸다.
어차피 내가 영어로 대답해주어도, 저 제시카 옆에 머리를 뒤로 지끈 맨 남자가 다른 이들에게 한국어로 통역해주니 의사소통에 무리는 없었다.
“양면성? 그런 대답은 처음이군.”
“확실히. 다른 두 장면은 손자가 행복해하거나, 아니면 슬픈 현실을 외면하는···. 감정적으로 명확한 장면이긴 하군요.”
심사위원들은 내 대답에 납득이 갔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됐나?
“잠깐··· 여기 이력을 보니 특이한 점이 있던데요.”
다음 질문.
이번에는 제시카의 바로 옆에 앉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오, 재미있을 것 같은 질문이었다.
“시우 군은 최근까지 비상철또 777이라는 극단에서 무대에 올랐다는데 이때 경험이 어땠나요? 알아보니까 강용휘 연출가의 작품이었던데. 어떻게 무대에 오르게 된 거죠?”
응? 강용휘를 안단 말인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마치 강용휘를 잘 안다는 듯한 그의 뉘앙스에 놀라서 물었다.
“헉, 우리 강 감동님이랑 아세요?!”
아, 이건 극 해석과는 관련 없는 질문이기에 한국말로 대답해주었다.
남자는 내 반응에 귀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해주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이번 극의 조연출 조이수라고 합니다.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긴 했지만, 한국의 강용휘 연출가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답니다. 1년 전쯤 한국에 와서 그의 공연을 보고 직접 만나 이야기한 적도 있고요.”
“우아······.”
이 남자, 조이수도 연출 쪽이었구나.
스타일이 멋들어져 무대 감독 쪽인가 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극단에 돌아가 강용휘에게 이 조이수라는 사람에 관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비상철또 777에서 올린 공연이라면 을 묻는 게 틀림없었다.
“에 영수라눈 어린아이 역이 이써요! 강 감동님이 제 즉흥 연기를 보고 한번 해볼래? 하셔서 제가 조타고 한 거예요.”
다시 생각해도 그때 강용휘의 말은 참 감동적이었다.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생각한 내 속마음을 대체 어떻게 안 것인지.
그 순간에 그렇게 물어올 줄이야.
“총 몇 번이나 무대에 올랐죠?”
“12번이요! 한 달 동안 해써요. 연습은 그 전부터 했고요.”
조이수는 내 이야기를 듣고 제시카에게 통역을 해주느라 질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거 은근 신경 쓰이네.
바로바로 대답을 하고 있는데도 기다리려니 약간 지루했다.
그렇다고 영어로 대답하자니, 그것도 결국 조이수라는 자가 한국어로 통역을 해줘야 하고 말이다.
설마, 연습도 이렇게 번거롭게 하려나?
조이수가 제시카에게 내 대답을 영어로 전해주는 사이, 나는 고뇌에 빠졌다.
한국말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님, 영어를 해야 할 것인가.
아니지, 공연은 한국어로 올릴 거 아냐.
아직 오디션 중이지만, 절대 오디션에서 떨어진다는 선택지는 없는 사람처럼 고민하고 있을 무렵, 조이수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한 달 동안 연습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진행했나요.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았는지, 총 연출가님께서 궁금해하시네요.”
“움, 매일매일 극단으로 나가써요! 근데, 다른 배우들 연습도 구경할 수 있고. 감동님한테 이런저런 얘기도 드를 수 있어서 조아요.”
“아주 튼튼한가 보네요. 시우 군은.”
흐뭇하게 웃는 심사위원들을 보고서 아차 했다.
너무 신나서 다섯 살 어린아이 몸의 체력을 어필하지 못했다.
어쩌지, 어쩐담.
“체력은 문제없어요! 그래도 아직 발성이 부족한 거 가타요.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데 아직 배가 땡기눈데. 발음은 하루하루 좋아지는 게 느껴져서 괜차나요.”
나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덧붙인 말이었다.
휴, 긴 문장도 술술 잘 말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심사위원들의 눈이 커져 있다.
······나 또 뭐 잘못 대답했나?
“······무슨 다섯 살이 자기객관화가······.”
“선배님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아닙니다. 시우 군이 참 똘똘하네요. 하하.”
한국인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멘트를 곱씹었다.
그 사이, 조이수에게서 내 대답을 통역해 들은 제시카는 놀랍다는 듯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오, 대단해. 벌써부터 저렇게 프로다운 생각을 한단 말이야? 더 탐나는걸.”
“제시카. 아직 오디션 중이에요.”
방금 탐난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시카를 바라보았다.
제시카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좀 봐줘. 이수. 저런 애는 진짜 난생처음 봐서 그래. 나도 내 리액션이 고장 났다는 것쯤은 잘 안다고.”
“알면 다행이네요.”
그 옆에 있는 조이수 역시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제 점점 나아지고 있다니까.
괜히 덧붙인 건가.
“그럼 마지막 질문.”
“네.”
휴, 제시카가 입을 열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혹시 말실수를 한 건 아닌가 싶어서 방금 뱉은 한국어 문장을 곰곰이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제시카가 물으니까 그냥 영어로 대답해야지.
“시우, 1차 오디션 영상은 뭐야? RUN의 캐릭터 해석을 염두에 두고 한 거야? 그리고 그 대사 작품, ‘Noname’으로 기재했던데?”
“웅, 제가 쓴 거예요.”
“그래. 나도 그렇게 듣긴 했어. 하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정말이니? 그 정도 대사를 진짜 시우 네가 직접 작성했다고?”
“네. 별거 아니에요.”
대수롭지 않은 내 대답에 심사위윈들은 다시 한번 더 크게 놀랐다.
“이걸 진짜 다섯 살 아이가 썼다고?”
“시우, 너 무슨 인생을 산 거야? 5년이라는 네 인생에 이런 감정을 느껴봤어?”
놀라는 거야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질문 자체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 다섯 살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만 생각하는 걸까.
극 중에서도 손자는 겨우 7살인데도 이런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내가 연기한 것처럼 이런 감정을 느꼈겠지.
나는 놀라기 바쁜 어른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어른들은 쉽게 착각하곤 한다.
아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말로 설명을 잘하지 못할 뿐이지 아이들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내가 과거 노아로 살 때 그랬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충분한 관심을 받았지만, 그건 애정은 아니었다.
나를 돌보는 것은 고용인들의 의무일 뿐이었다.
공사가 다망하신 공작 각하와 공작 부인에게 애를 보는 건 할 일에 포함되지 않았으니까.
내가 우연히 아홉 살 때 처음으로 연극을 보기 전까지는 나는 그 상황에 체념한, 그저 조용하고 반항하지 않는 공작가 막내아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지내던 그 아홉 살 소년도 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잘 안다.
두 번 사는 아이의 생이니.
어른들이 당연히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행하는 그 모든 행동과 말을 어린아이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상처를 받음에도 때로는 순수한 마음으로 어른을 기꺼이 용서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속절없이 어른들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전 다섯 살이니까 다섯 살 맘은 잘 아라요.”
나는 다섯 살인 배우였다.
배우라면 응당 자신이 느낀 바를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그걸 관객들에게 전하는 게 제가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일이에요.”
내 대답에 제시카는 물론 다른 심사위원들도 놀란다.
어린아이의 목소리지만, 웬만한 성인 배우보다 더 단단한 각오가 서려 있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 것이다.
한동안 오디션장에는 침묵만이 감돈다.
잠시 후, 제시카는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딱 한 마디를 던졌다.
“Let’s r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