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시우! 오늘은 저부터 봐줘야 해요.”
“좋아요. 어제 연습이 잘 되었나 보네요? 자신이 넘치는 걸 보니.”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이번 공연에서 꽤나 비중 있는 단역을 맡은 수지가 튀어나와 말했다.
그녀의 어마어마한 기세에 나는 아침 인사도 건너뛰어야 했다.
“두고 보세요. 제가 적어도 톰보다는 훨씬 빠르게 이 장면을 마스터할 테니까.”
호기롭게 외치는 수지의 외침에 나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짐만 두고 와서 바로 시작하죠.”
“네!”
“좋아요!”
프리덤 극장의 신입배우들을 봐주기로 하고 사흘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는 정말 별생각 없었다.
로엘이 키우고 있는 배우들의 면면을 구경할 생각 정도였다.
이미 극단의 선배 배우들이 있으니 너무 나서면 서로 불쾌해질 상황이 있을까 봐여서였다.
그런데 웬걸.
소문이 퍼진 것인지 처음 신입 배우들만 있던 연습실에는 점차 많은 인원의 배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프리덤 극단에 속해 있는 다른 배우들이었다.
“구경만 할게요. 구경만.”
“제가 시우의 광팬이거든요. 숨소리도 내지 않을게요.”
“아뇨. 같이 하셔도 돼요.”
느지막이 일어나 가볍게 연습시간에 들르는 정도였는데 점점 판이 커지고 말았다.
결국에 이번에 프리덤 극장이 올린다는 연극 연습에 나까지 참여한 꼴이 되었다.
연출… 가는 아니고, 코치 정도의 느낌이랄까?
“와, 봤어? 봤어?! 방금 완벽하게 제 생각대로 움직였어요!”
“어어, 맞아. 진짜 완벽한 동선이었어. 어떻게 한 거야?!”
“방금 그 느낌으로 이 장면 한 번 더 해보죠.”
“네!”
알려주는 대로 쏙쏙 잘 빨아먹고 하루하루 성장하는 배우들을 보니 식사 시간을 거르는 것도 잊은 채 연습에 몰두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너무나 적극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로엘하고 배우들과 약속한 일주일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프리덤 극장에 나오기로 한 마지막 날.
연습 시간이 끝나가자 배우들은 어깨가 축 처져서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오늘이 마지막…….”
“아직 이 대본을 다 못 끝냈는데 너무 아쉬워요.”
“음…….”
원래는 일주일 가볍게 봐주고 갈 예정이었는데…….
내가 너무 열심히 연습을 지도한 모양이다.
정이 잔뜩 들은 신입배우들은 특히나 울먹이려고 했다.
“좋아요. 조금만 더 머물다 갈까요?”
어차피 영국 여행까지만 정하고 이후의 스케줄은 다 빼둔 상태였기에 상관없었다.
영국 여행에서 리프레쉬한 뒤, 시간을 들여 차기작을 선정할 계획이었던 것.
나는 바다 엔터와 부모님에게 연락한 후, 프리덤 극장에 남아 이들의 연습을 도왔다.
결국 여행을 와서도 스파르타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만 것이다.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배우들보다 극장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헉…… 시우.”
“아, 아침은 드셨어요?”
“간단하게 해결하고 시작할까요?”
나는 호텔 빵집에서 사온 갓 구운 빵들을 내밀며 말했다.
배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서 정면! ……방금 장면은 제가 말 안 해도 알겠죠? 감정이 너무 격해졌어요. 벌써부터 몰입하면 이 다음다음 장면의 감정선이 뭉개질 겁니다.”
“…네!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그들의 성장이 너무나 뿌듯했다.
그러다가 일주일이 아니라 이주일.
이 주일이 아니라 한 달이면 얼마나 달라질까 기대가 되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자신을 잘 따랐던 팀이 이토록 재능까지 출중하니, 정도 더 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는 이들이 공연을 올릴 때까지 극장에 남아 이들의 연습을 돕기로 했다.
‘바이올렛……. 보고 있으려나. 다른 곳도 아니고 네가 세운 극장에서 이러고 있으니.’
나는 배우들의 연습을 보고 있다가도 아련한 시선을 들어 극장 곳곳을 쳐다보곤 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극단 연습을 매일 같이하고 있자니, 바이올렛과 함께 과거 이곳, 오스카 극단에서 다 함께 연습했던 시절이 떠오른 탓이었다.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바이올렛이 세운 극장.
이 극장이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것.
그리고 웨스트엔드의 거리에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아직도 수많은 관객들을 받고 있다는 사실.
모든 것이 내 가슴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로엘.”
“응? 시우. 오늘 연습은 끝난 건가요.”
“네. 다들 아주 잘해주고 있어요. 실은 제가 드릴 말씀이…….”
나는 이 팀의 성장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기한을 정하지 않고 웨스트엔드에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
“굉장했어요, 다들.”
“허억, 허억. 시,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커튼콜이 원래 이렇게 해로운 거였나요……?”
인생 첫 무대를 무사히 마치고 내려온 프리덤 극장의 신입 단원들의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을 가르친 지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와 함께 열심히 연습한 공연을 무대에 올렸을 때, 이들 모두는 신입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몰라보게 성장해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무대에서 다들 날아다니던데? 시우, 저 엄살 다 받아주지 마세요.”
“하하, 알았어요. 고트. 오늘 무대도 아주 굉장했어요.”
“그거 영광이군요.”
이들과 함께 무대에 선 주연배우가 땀에 흠뻑 젖어서 말을 보탰다.
신입 단원들은 고트의 말에 야유를 퍼부었다.
자신들의 긴장을 마음대로 평가하지 말라는 아우성이었다.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어.’
흔한 비유지만, 이들은 스펀지 같은 배우들이었다.
알려주면 알려주는 대로, 피드백을 주면 피드백을 주는 대로 바로바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내가 충고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나의 전생인 노아를 떠오르게 했다.
“으앗! 톰! 지금 뭐하는 거야. 그 의상은 내일도 입을 거라고. 살살 벗어야지.”
“……저기, 수지. 지금은 좀 쑥스럽고 그래야 하는 상황 아니야?”
톰은 대기실의 공기가 너무 더웠는지 탈의실에 들어간 동료를 기다리지 못하고 훌렁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보고 수지가 잔소리를 시전하자 톰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녀를 쳐다본 것이다.
“내가 왜?”
“그, 후… 말을 말아야지.”
“왜! 뭔데. 말을 끝까지 하라고.”
무대가 끝나고 대기실에 돌아온 배우들을 둘러보는데 오늘도 역시 수지와 톰이 소란을 피웠다.
신입배우들 중에 가장 사이가 좋은 두 사람이 큰 소리를 내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기에 다들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늘도 사이가 좋구나,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불쑥 말소리가 들렸다.
“저 둘, 사귀는 게 분명해요. 제가 100파운드도 걸 수 있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어라? 몰랐어요? 시우는 이런 쪽으로 둔한 모양이네요.”
내게 말을 건 것은 신입 단원들의 연기 스승인 모니카였다.
모니카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나를 응시했다.
“그 얼굴로 설마… 연애 경험이 없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죠?”
“하하…… 노코멘트 하죠.”
“흐음?”
모니카는 무언가 할말이 굉장히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얼굴로 말을 줄였다.
하마터면 모든 언론이 떠들기 좋아할 찌라시가 풀릴 뻔했다.
나는 모니카가 나와의 의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며 새삼스러운 얼굴로 수지와 톰 쪽을 바라보았다.
‘많이 친밀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말일까?’
알고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나만 빼고 극단 식구들 대부분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다가온 로엘이 날 보고 놀랍다는 듯이 되물을 정도였다.
“그걸 몰랐다고? 정말?”
“……정말인가 보네요.”
“그럼 남녀관계는 척 보면 척이지.”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로엘의 말에 순간 조금 두려워졌다.
작년에 호기롭게 성인 첫 작품은 로맨스를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난 탓이었다.
…이거 큰일인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모른 척해주길 바라. 시우.”
“그러죠.”
“극단에서, 자신들은 몰래 한다고 하지만 주변은 모르는 척해주는 게 낫거든. 저렇게 티가 나서 보는 우리는 조금 괴롭지만.”
“하하…….”
피곤하다는 듯이 뱉어져 나온 로엘의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저 말을 듣고 있자니, 과거 나와 바이올렛의 이야기가 절로 떠오른 것이다.
극단의 터줏대감이었던 바이올렛에게 나는 표현을 하지 못했다.
여러 사정이 맞물려 잇기도 했지만, 극단 식구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나와 바이올렛 사이에 흐르는 묘한 전류를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사실은 모두가 모른 척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톰. 이 상처는 뭐야?”
“뭐, 억. 수지. 너… 무 가깝지 않아?”
“뭐 어때.”
“…여기 지금 극장이라고…!”
저 모습을 보니 정말 사귀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훈훈한 눈길로 어린 연인을 쳐다보며 나는 로엘의 말처럼 두 사람의 사이를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그 시절 노아와 바이올렛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고 보니…….
꽤… 재밌잖아.
내 과거 이야기가 참 흥미롭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그때 그 시절 너무 즐거웠다, 가 아니라
한 명의 관객으로서 노아의 삶을 방관하자니 노아의 삶 자체가 이야기적 요소로 재미있게 느껴진 것이다.
‘노아는 완성하지 못했던 꿈과 사랑.’
이걸,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바로, 나의 대본으로서 말이다.
성인이 되면, 로맨스로 복귀하겠다는 인터뷰를 잊지 않고 손꼽아 기다리던 팬들이 떠올랐다.
한국에 남아 있는 팬들에 대한 기대와 기다림도 늘 잊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이건 좋은 찬스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내가 다른 로맨스물에 도전하는 게 더 큰 일일 수도 있으니.
지금 이 발상이 그 복귀에 큰 도움을 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팬에 대한 기대도 충족시킬 수 있는 기회이자, 지금 이 시간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나는 아웅다웅하는 톰과 수지의 모습을 두 눈으로 담으며 씨익 미소 지었다.
노아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한번 써보자.
그렇게 시놉시스가 탄생했다.
***
“이거 봐, 이거 봐. 한국도 아니고 영국에 있는 놈을…… 달리는 놈이 나는 놈을 무슨 수로 잡아오냐고오.”
전생 이야기는 빼고, 영국에서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설명했다.
아는 분의 극단에 있다가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얻었노라고.
내 영국 여행기를 다 들은 차일남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저 많이 찾으셨어요?”
“그걸 말이라고……!”
그동안, 차일남뿐 아니라 수많은 방송국의 능력자들이 얼마나 한시우를 찾아 헤매었던가.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헛수고였는지 깨달은 차일남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나저나 그 와중에 복귀는 잊지 않고 이걸 준비한 거야? 외국에서? 정말 시우 너답다…….”
“그러니까 잘 읽어봐 주세요. 작가님만 믿을게요.”
“어휴, 이거 부담스러운데.”
한유주가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하자, 옆에서 짝 소리가 들렸다.
“제발! 나도 이렇게 부탁한다.”
“선배 부탁은 됐어요.”
차일남도 한유주에게 믿겠다고 두 손을 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