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촬영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다 모여 바글바글해진 촬영장.
비상철또 777 연습실은 단역 배우들로 가득했다.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극장 내부에서 촬영을 하기 때문에 오늘 첫 촬영을 하게 될 극장 바로 옆 연습실에 드라마 촬영팀이 모든 짐을 풀었다.
그리고 비상철또 777의 중극장에서는 첫 촬영 준비가 한창이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무대 앞에서부터 백스테이지 통로까지 빠짐없이 세팅되었다.
현장에서는 차일남이 카메라를 확인하며 촬영에 대한 코칭을 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녔다.
“거기 입구 조명 너무 밝아, 좀만 내리고.”
무대 쪽에서 바라보며 꼼꼼히 체크한 차일남이 통로 쪽으로 와서 살폈다.
“이 옆 바스트 카메라 조금만 더 내리자.”
“네.”
“리허설 하면서 다시 위치 조정할 겁니다.”
차일남은 그렇게 말하면서 첫 촬영의 긴장감을 안고 준비 중인 스태프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형. 이쪽으로 와봐.”
한편, 나와 채지수, 그리고 남연수는 대본을 보면서 동선 이야기에 한창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잡고 들어가는 건 어때?”
“카메라에 등이 너무 걸리지 않을까.”
“그런가. 생각보다 이 극장 통로가 좁았네.”
새로 극장을 세운 지 얼마 안 된 김상철이 들었더라면 대학로에서 가장 백스테이지 공간 활용이 넓은 곳이라고 큰소리쳤을 말이었다.
“두 사람이 여기서 이렇게 서 있을 거지?”
“응. 거기가 제일 가운데래. 감독님 맞죠?”
“저기 저 홈 보이지? 저지가 딱 가운데야.”
중간에 카메라 감독님하고도 상의하며 남연수가 걸어들어오는 동선을 요리조리 바꿔보았다.
오늘이 인생 첫 촬영은 채지수는 나와 남연수가 능숙하게 촬영 이야기를 하는 걸 바짝 긴장해서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마 오자마자 촬영팀 전부에게 인사를 하느라 지금쯤 진이 다 빠졌을 것이다.
“아무래도 구도상 내가 두 사람 사이에 위치하는 것보다 이렇게…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늘 첫 촬영은 채지수가 나에게 가면을 씌워주는 장면이다.
남연수는 카메라에 자신이 최대한 방해가 안 될 법한 동선을 연구하고 있었다.
“괜찮은데? 형 거기 서봐. 누나 이리로 와보세요.”
“네, 넷!”
그리고 채지수는 아까 인사할 때도 느꼈지만, 나와 남연수의 존재를 아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군기가 아주 바짝 들었다.
나이는 내가 더 어리다고 할지라도 같이 연기하는 우리 두 사람의 경력을 합치면 30년이 훌쩍 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인생에서 첫 연기를 대 선배님이랑 하게 되었으니 아닌 척하려고 해도 몸이 굳는 모양이었다.
“흐음, 내 상체가 너무 잘리나? 어때요, 감독님?”
방금 남연수가 말한 대로 리허설 겸 동선을 맞춰보며 스태프에게 물었다.
“가운데가 나을 것 같은데……. 연수 네가 그렇게 움직이니까 통로가 더 좁아 보이는 거 같아. 장면이 답답하다.”
카메라 감독의 말에 남연수와 한시우가 고심했다.
“차 PD님한테도 물어봐야 하나.”
“지금 조명 감독님하고 있던데, 조금 이따가 물어볼까?”
남연수와 둘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채지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고 말했다.
“저…… 제가 남연수 선배님이랑 최대한 안 겹치게 이렇게 비켜서면 어떨까요. 그럼 셋 다 안정적으로 들어가지 않… 을까요?”
굉장히 용기 내서 한 말인지 채지수는 말을 하면서도 부산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채지수의 말에 멍하니 그녀를 보다가 당장 움직였다.
“해볼까요.”
“시우야, 그럼 네가 한 발자국 뒤로 서봐봐. 그렇게 멀리 잡히지 않을 것 같은데.”
“어때요. 감독님?”
나는 채지수의 양어깨를 살짝 끌어당겨 동선을 맞춰보며 카메라 감독에게 물었다.
앵글을 확인하던 카메라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됐어. 지금 그림 딱 좋다.”
“다행이다. 고마워요, 누나. 덕분에 화면 잘 나오겠네요.”
“잘 돼서 다행이에요.”
채지수는 한숨 돌렸다는 듯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방금 이 일로 긴장이 좀 풀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동선 문제가 해결되자, 내가 촬영에 쓰일 소품을 집어 들었다.
“누나. 가면 줄 때 이 각도 괜찮아요? 너무 높나.”
나는 황희가 쓰게 될 황금가면을 들고서 마주 본 채지수와 가까이 눈을 맞췄다.
그리고 채지수의 손에 가면을 쥐여주었다.
촬영 때는 반대가 되겠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겠지.
얼결에 리허설을 한 것 같지만 상관없었다.
“……!”
확 가까워진 채지수의 얼굴이 바짝 굳었다.
두 얼굴 사이가 15cm도 안 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여기 통로 좀 좁은 거 같은데.
채지수가 당황한 건지 그대로 멈춰서 말이 없다.
나는 그런 채지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음…… 역시 너무 높나?”
말이 없는 채지수를 가까이서 내려다보다가 백스테이지에서 의자를 끌고 왔다.
“제가 이렇게 앉거나 아님 다리를 벌려서 높이를 낮출까요? 앉아있는 게 좋아요?”
“…….”
“어떤 게 누나가 시선 처리하기 편하려나.”
의자에 앉아 채지수를 올려다보며 재차 물었다.
“그, 음…….”
채지수는 아까부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쪽 손을 뺨에 가져다 대었다.
어? 왜 그러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채지수의 얼굴이 좀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여기가 너무 덥나 싶어서 김상철에게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해야 하나 싶었다.
“시우야. 살살해. 지수씨 쓰러지겠어.”
“응? 아, 내가 촬영 전인데 너무 일 이야기만 했나?”
나는 아차 싶어서 얼른 채지수 앞에서 일어났다.
멀리 떨어지자 채지수가 작게 숨을 몰아쉬는 게 보였다.
역시나.
너무 부담스러웠나 보다.
“아니… 그건 아닌, 아냐. 그래. 조금 이따가 마저 하자.”
“……죄송합니다, 선배님.”
“아니에요. 제가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요.”
내 말에 옆에서 남연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아니, 왜 저러는 거야.
원래 나는 상대 배우에게는 따뜻한 남자였다.
자기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채지수에게 상냥한 내 모습이 웃겨서 저러는 게 분명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눈짓으로 남연수에게 묻자, 태연한 얼굴을 한 남연수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촬영 끝나고 보자.
그 사이, 채지수가 정신을 차렸는지 의견을 제시했다.
“저, 선배님! 선배님이 앉아있고 제가 선 상태에서 가면을 건네는 걸로 갈까요? 그게 더 그림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럴까요? 그럼 의자도 여기 둬야겠네.”
“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의 동선을 마무리 지을 때쯤 차일남의 스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첫 촬영 시작합니다-!”
우렁찬 차일남의 소리에 나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첫 촬영, 재밌게 합시다.”
“네!”
“좋아!”
***
집안에는 비밀로 한 뒤, 극단에 들어온 황희.
한국을 떠받치는 재벌가 중 한 곳의 자제인 황희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배우를 하기 위해 몰래 극단에 들어온 것이다.
“후우.”
그리고 오늘은 그가 극단에 올라온 후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날.
이곳에서 만난 간판 배우 이하영이 옆에 서 있다.
살짝 얼굴을 내밀어 환한 관객석을 확인하자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에 압박감을 느끼고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괜찮아. 쫄지 마.”
“아, 선배…….”
그 모습에 이 극단에 먼저 들어와 있던 배우 박재우가 황희이 어깨를 격려하듯 두드린다.
살짝 아픈 감이 있는 터치였기에 황희는 제 어깨를 슬슬 문지르며 애써 객석에서 시선을 돌린다.
괜찮다.
자신은 할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몰래 극단에까지 들어왔는데 앞으로 무대에 많이 오르기 위해서는 이 정도 압박감은 거뜬히 이겨내야 한다.
혼자서 중얼중얼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게 느껴졌다.
“희야. 이거.”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이하영에 돌아보는 황희.
이하영은 황희를 의자에 앉힌 뒤, 황희에게 전에 얘기했던 걸 주겠다며 뒤에 숨기고 있던 가면을 꺼낸다.
무대에서 과하게 빛나지 않는, 매트한 질감의 황금색 가면이다.
“아, 완성됐네요?”
“응. 네 말대로 황금색으로 맞췄어.”
재벌가 아들인 황희.
그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극단에 들어온 것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바로 이하영이다.
우연한 기회로 황희의 정체를 알게 된 이하영은 황희가 무대에 오르게 된다면 무대에 얼굴을 보이는 걸 걱정하는 걸 알게 된다.
이 걱정을 해결해 주기 위해 극단 사람들 앞에서 극 내용의 논리를 펼치며 연출로서 먼저 가면을 제안한 것도 이하영이다.
“오페라의 유령 같은데?”
“그것도 노리면 좋지.”
황재우의 농담을 받아치며 이하영이 황희의 얼굴에 가면을 얹는다.
“너무 큰가…….”
중얼거리는데 황희가 그런 이하영의 손을 덥썩 잡는다.
“뭐, 뭐야.”
순간 놀라서 이하영은 가면을 떨어뜨릴 뻔한다.
황희는 그런 이하영의 손에서 떨어지려는 가면을 낚아채고 웃는다.
“고마워요. 믿을 건 선배밖에 없네.”
그 말에 이하영도 놀란 기색을 감추고 웃고, 황희는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를 향해 선다.
극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이제 막 끝난 것이다.
지난 몇 달간 지겹도록 들어온 극의 인트로 음악이 무대에 잔잔히 깔린다.
무대의 불이 모두 꺼지고, 황희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무대로 나선다.
손에는 황금색 가면이 들린 채로.
그리고 무대 중앙에 서서 불이 들어오기 전, 눈을 감고 이하영이 준 황금색 가면을 쓴다.
곧 무대에 불이 들어오고, 강렬한 조명이 황금색 가면을 쓴 황희를 밝게 비춘다.
“거기,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자. 누구요.”
이렇게, 황희의 배우 인생이 시작된다.
***
첫 번째 촬영이 끝나고, 세 사람은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고 모니터링을 했다.
“오, 리허설 대로 동선 잘 잡혔네.”
“괜찮은데?”
나와 남연수가 자화자찬을 하고 있자, 차일남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야, 베테랑들이 해서 그런가 이거 그림이 아주 제대로야. 기대한 만큼 나온 거 같아.”
상당히 촬영분이 마음에 든 건지 차일남의 웃음이 사라질 줄 몰랐다.
그와 동시에 화면에는 채지수의 손을 덥썩 잡는 내 모습이 흘러나왔다.
차일남은 그 화면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크, 한시우 박력 봐라. 또 무슨 별명이 생길지 벌써 기대되네.”
“선인장 형제 이후로 작품마다 별명 생겨서 죽겠어요.”
“로맨스 장인 딱지 붙는 거 아니야?”
설레발을 치는 차일남의 말에 한유주가 냉큼 대답했다.
“저희야 매년 시우 로맨스 볼 수 있으면 좋죠.”
그 말에 다른 스태프들도 맞다며 동조해왔다.
“아우, 벌써 설레. 팬들이 시우 로맨스 기다린 보람 좀 있겠다.”
“그래요? 그럼 다행인데…….”
사실 나는 저 장면을 봐도 내가 제대로 로맨스물을 찍은 건지 아직 자신이 없었다.
채지수가 훌륭하게 놀란 것 같기는 했다.
“말도 마요. 감독님. 시우 쟤 타고났어요.”
옆에서 남연수가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이제 한 장면 찍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데 내 항변에도 불구하고 차일남과 한유주는 맞는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지. 내 장담하는데 이번 드라마 여성팬들 여럿 울릴 거다.”
“흐음.”
내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자, 한유주가 부연했다.
“시우 눈빛이랑 목소리 톤만 봐도 알지. 그리고 지수 연기도 자연스러워서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그래요?”
한유주의 말에 나와 채지수는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첫 출발이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