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감독님, 저는요?”
“연수 너는 항상 잘하지.”
“저 지금 서브남이라고 이렇게 홀대하시는 건가요?”
에서 처음 만나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란 사이라 그런지 차일남과 남연수 그리고 나는 상당히 친밀했다.
차일남이 나랑 채지수의 연기만 칭찬하니까 남연수가 자신도 말 좀 해달라고 그에게 매달렸다.
“형도 당연히 좋았지. 엄청 믿음직스러워.”
“진짜? 나 좀 형 같아?”
“완전. 이 극단 정신적 지주 같아.”
“그럼 됐어.”
내가 나서서 말하자 남연수의 얼굴이 풀렸다.
남연수는 이번 장면에 많은 대사는 없었다.
다만, 이후에 채지수를 두고 갈등하게 될 황희와 박재우 두 사람의 관계가 더 대비될 수 있도록 믿음직스러운 선배의 역할을 능숙하게 잘 해내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스태프들이 쿡쿡 웃었다.
“두 사람 진짜 친하구나. 나는 솔직히 언론 플레이인 줄 알았는데. 선인장 형제로 유명하잖아.”
“네? 그럴 리가요. 시우야, 아무래도 안 되겠어. 우리 친분을 대중들에게 더 과시해야겠어!”
“지금도 충분해.”
스태프의 말에 충격을 먹은 남연수의 말에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며 대본으로 시선을 돌렸다.
냉정한 내 반응에 지난 10년간 익숙해진 남연수는 개의치 않고 대본을 보는 내 어깨에 얼굴을 올렸다.
“무거워.”
“같이 좀 보자.”
그런 우리의 모습은 촬영 현장 스틸컷을 찍는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두 분은 진짜 친하시네요….”
옆에서 채지수가 신기하다는 듯이 나와 남연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 말에 나는 너무 우리 둘만 떠들었나 싶어서 대본을 슬쩍 내밀었다.
다 또래인데 우리끼리만 친해 보여서 소외감을 느낄까 봐 한 행동이었다.
“아, 누나도 같이 볼래요?”
“아, 아아니. 괜찮아요! 전 이거 볼게요.”
그런데 내 제안에 채지수가 황급하게 두 손을 젓더니 자신의 대본을 들어 보였다.
“그래요? 그러세요. 그럼.”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다시 대본으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남연수의 얼굴이 올라간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푸흡, 아 진짜… 시우 너…….”
“왜 또 그래.”
“아냐, 아무것도.”
실없긴.
남연수가 왜 저러는지는 신경 끄고 대본이나 한 번 더 보기로 했다.
“컷!”
그 뒤로 극장을 배경으로 하는 촬영을 이어나갔다.
이곳을 빌린 김에 오늘 황희가 처음으로 오르는 연극 무대 씬을 거의 다 찍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 촬영 장면에 연극 무대가 나오는 바람에 무대를 오르는 배우들은 졸지에 방송 연기와 극 연기를 다 하게 되었다.
나는 물론이고, 남연수 역시 어렵지 않게 해냈다.
걱정했던 것은 채지수였다.
드라마 내용을 알고 있으니 방송국에서도 촬영 전에 연기 강사를 붙여줬다더니 무리 없이 연기를 해낸 것이다.
채지수는 매일같이 방송국에 나와 연기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나중에 스태프에게 전해 듣기로는 제대로 된 연기를 배운 적이 없던 그녀는 이 기회에 정식 수업을 받게 되어서 기뻐했단다.
“어디 두 눈 똑바로 뜨고 다시 한번 말해봐. 방금 뭐라고……?”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맥스! 당신이…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가겠습니다!”
무대 위에서 연극 공연을 이어나가던 채지수는 몇 번 대사를 잊거나, 동작이 어색해지곤 했다.
그럴 때는 나나 남연수가 눈치껏 끊었다.
몇 번 그러다 보니 당황해서 미안한 기색이던 채지수도 요령이 생긴 듯했다.
실수를 해서 당황하는 것보다 얼른 정신 차리고 만회하는 것이 기다리는 스태프들한테도, 같이 일하는 배우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오케이. 그럼 방금 재우 대사부터 다시 들어가자. 레디… 큐!”
차일남의 지시에 남연수는 알겠다는 듯이 미소 짓고 바로 박재우 연기에 몰입했다.
“…어디 두 눈 똑바로 뜨고 다시 한번 말해봐. 방금 뭐라고?”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채지수는 그럴싸한 연기를 해나갔다.
대사 실수를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크게 죄송하다고 인사한 뒤 기죽지 않고 다음 장면을 이어서 연기했다.
“컷, 오케이! 오늘 촬영 여기서 끝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기나긴 연극 무대 촬영도 밝고 화기애애하게 끝났다.
차일남이 촬영 끝이라는 소리에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역의 엑스트라 배우들이 우리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왔다.
“무대 너무 좋았어요!”
“이 공연 결말까지 보고 싶은데 아쉬워요!”
“하하,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대 위에 있던 우리 세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커튼콜을 선보였다.
장난스러운 우리의 포즈에 단역 배우들이 짐을 챙기다 말고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오래 쉬었다가 하는 연기라서 그런가.
이런 현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몰랐는데, 그리워하고 있었나.’
프리덤 극단 사람들의 연기를 봐주고, 그들이 올린 공연을 보면서 연기와 완전히 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가르치기만 하고 내가 직접 무대에 서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연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오랜만에 시우 너랑 같이 연기하니까 좋다. 역시 한시우네.”
“형도 마찬가지야. 박재우 역에 아주 찰떡인데? 또 맨날 분석했지.”
싱글벙글한 남연수의 말에 웃으며 대꾸하자, 남연수가 찔끔한 얼굴로 말했다.
“네가 같이 해줬잖아. 그냥… 밤마다 조금씩 본 거지.”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형한테 새로운 도전이었을 텐데, 고마워.”
“…시우야.”
“안돼. 감동은 받지 마. 여기 현장이다.”
나를 울먹이려는 남연수의 표정을 포착한 내가 단호하게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저런 남연수의 얼굴은 내가 더 잘 알았다.
저러다가 곧 내게 달려들 태세였다.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 때문에 두 분이 너무 고생하셨죠.”
여기저기서 수고했다는 인사가 오가는 중, 채지수가 우리에게도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철수하는 촬영팀에게 한차례 인사 돌리던 것이 모두 끝난 모양이다.
“아니에요, 오늘 누나가 제일 고생하셨죠. 갑자기 극 연기랑 아닌 연기랑 다 익히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진짜 잘했어요. 이하영 그 자체 같았어요. 지수씨.”
“후아……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마음이 좀 놓이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종일 꽤나 긴장했는지 우리의 말에 채지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다음 촬영 때 보자고 인사를 마치려 했다.
그런데… 채지수는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도 좀처럼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누나? 뭐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어…… 실은.”
채지수가 쉽게 입을 못 열고 우물쭈물하자, 남연수가 웃으며 말했다.
“자리 비켜 드릴까요? 시우하고 둘이서 말씀 나누세요.”
다소 민감한 이야기인가 싶어서 남연수가 편하게 말하라고 말을 꺼내자, 채지수가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사실 그, 다음 주 촬영 있잖아요.”
“다음 주…? 네.”
다음 주 촬영이라 함은… 드라마 내에서 극단원들이 다음 무대를 위해 뮤지컬을 준비하는 장면일 것이다.
연극 다음에 이번에는 뮤지컬도 촬영해야 해서 너무 부담스러운 건가?
나는 잠자코 채지수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러자 채지수가 오늘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어색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춤을 잘 못 춥니다.”
“네?”
“춤을…! 잘 못 춰요!”
기세 좋은 채지수의 고백에 나와 남연수는 벙찌고 말았다.
황희와 이하영이 속한 극단에서 준비하는 뮤지컬.
이하영은 극 중에서 춤을 못 추는 황희에게 간단한 스텝을 알려주게 된다.
그래봤자 극 중에 나오는 게 고난이도 안무도 아닌데다가 춤을 선보이는 장면도 아주 짧았다.
그냥 흉내만 내면 괜찮은 정도로.
못 춰봤자 얼마나 못 추겠어.
그렇게 나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나도 전생에 몸치였는데 말이다.
“제가 연기 수업을 하다가… 조금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댄스 학원에도 찾아가 봤거든요.”
“아, 네…….”
생각보다 본격적이었다.
“학원에서도 배워보긴 했는데, 이제 됐다는 선생님의 표정이 아무래도 된 것 같지 않아서요. 당장 다음 주 촬영이다 보니 불안해졌어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첫 주연인데다가 이번 촬영이 첫 연기였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선배님. 서, 선배님이랑 같이 다음 주 장면을 미리 리허설 해볼 수 있을까요?”
“아, 저랑요?”
“네……!”
채지수보다 내가 어리더라도 사실상 엄청난 대선배였다.
오디션장에서 만났을 때도 나를 보고 굳어버릴 정도였으니까.
분명 저 말도 상당히 용기를 내서 말했을 것이다.
“그러죠. 뭐. 여기 단장님한테 제가 연습실 좀 쓰겠다고 할게요.”
그리고 우리 둘은 다른 날, 연습실에서 만났다.
“후우……. 그럼 일단 대본대로 진행해보겠습니다.”
“네. 편하실 대로 하세요. 제가 맞출게요.”
촬영 때도 긴장하지 않았던 채지수가 긴장한 듯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이제 됐다고 시작하겠다고 했다.
“희야. 그렇게 하지 말고 스텝을 이렇게 해보라니까?”
이하영을 연기하기 시작한 채지수는 대사를 하며 발을 탁탁탁, 굴렀다.
문제는 저 움직임이… 대본상으로 생각하자면 나름 안무였다는 게 문제다.
“…….”
리허설을 시작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채지수의 모습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합리적인 의심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무래도 학원 선생님이, 그녀를 포기한 건 아닐까.
***
일주일 내내 비상철또 777 연습실은 나와 채지수의 연습으로 빈 적이 없었다.
“그렇죠. 이번에는 오른쪽…… 아니, 그쪽 말고 오른쪽이요.”
채지수는 쉬지 않고 스텝을 연습 중이었다.
짧은 장면을 위한 댄스이기 때문에 기본기를 익혀서 천천히 나아가기보다는 그럴싸해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사칙연산을 위해 덧셈 뺄셈부터 시작해서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초부터 다 하기에는 당장 다음 주가 촬영이었다.
“후우…….”
“좀 쉴까요?”
확실히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직 멀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몸이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숙명 같은 것이다.
연습을 거듭할수록, 채지수가 마치 전생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고 내가 바이올렛이 된 기분이 들었다.
바이올렛이 나를 가르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생각할 때마다 부끄러워지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극 중에서는 분명 채지수가 바이올렛 역할인데 말이다.
현실에서는 완전히 반대가 되어버렸다.
뭔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렇게 바이올렛의 기분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잠깐 쉬었다가 하자고 해도 채지수는 절박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 번만 더 할까요? 한 번만.”
의욕을 잃지 않고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채지수를 보고 있자니 뿌듯하긴 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주일 동안 연습을 거듭한 결과.
결전의 날이 밝았다.
나와 채지수는 아주 결연한 표정으로 비상철또 777의 연습실에서 연습을 하는 장면을 준비 중이었다.
좋은 점은 오늘 우리 둘이 촬영하는 장소가 익숙한 이 연습실이라는 것이다.
“준비 운동 꼼꼼히 했죠?”
“네. 문제없어요.”
비장하게 준비를 마치자, 차일남이 우리를 보고 얼떨떨하게 말했다.
“너네 진짜 지금 오디션 보러 가는 거 같아. 몰입력 대박인데?”
“선배님이 엄청 도와주셨거든요.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잘해보겠습니다!”
“저도요.”
우리 둘이 자신만만하게 외치자, 차일남이 웃으며 스태프들을 돌아보았다.
“스탠바이해 주세요!”
비장한 표정으로 서 있는 둘의 모습 위로 차일남의 스탠바이 소리가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