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34
34화
“닉슨! 어서 나오라고!”
“어어, 알겠어. 조니. 조니? 어딨니? 아빠 이제 나간다.”
왁자지껄한 무리에 속한 닉슨(유정석)은 극 ‘RUN’ 속 조나단(한시우)의 아버지이다.
어린 나이에 사고처럼 생겨난 아들은 항상 그에게 있어서 짐덩이에 불과했다.
천성이 밝은 터라 닉슨은 대놓고 조나단에게 그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만나면 좋은 친구처럼 편한 아버지이지만, 아들을 제대로 부양할 책임감은 가지지 못한 닉슨은 오늘도 락스타를 꿈꾼다.
그는 오후 늦게 친구들의 호출에 나갈 준비를 하느라 부산하다.
“또 어디 가려고?”
아기자기한 집안으로 꾸며진 세트장.
작은 방에서 꼬마 조나단, 통칭 조니로 분한 한시우가 빼꼼 머리를 내민다.
불퉁한 어조로 묻는 조니의 얼굴에는 웃음기라고는 없다.
어떻게 된 게 일곱 살인 자신보다도 철이 덜 든 것 같은 아버지가, 이번에 나가면 내일 들어올지 모레 들어올지 모르니 말이다.
“오, 조니. 나가기 전에 얼굴을 봐서 다행이야. 집 잘 지키고 있어?”
정신없이 집 안을 오가며 기타 가방에 짐을 챙기던 닉슨은 반갑게 자신의 아들을 맞았다.
오늘 아침에야 겨우 들어온 닉슨이었다.
이번만큼은 집에 오래 머물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니는 그의 등 뒤로 보이는 닉슨의 기타 가방을 보고 힘이 쭉 빠져버렸다.
“언제 들어올 건데?”
“기회를 잡게 되면! 아닌가? 기회를 잡게 되면 오히려 멀리 떠날 수도 있겠다. 유명 녹음 스튜디오는 보통 LA에 모여있거든. 우리 팀도 거기로 떠날 거고.”
“······떠날 수는 있고?”
조니는 불안함이 깃든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아빠가 이러다가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언제나처럼 집에서 아빠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은 까맣게 잊은 채로.
“그럼, 조니. 항상 될 거라고 믿고 살아가야 하는 거야.”
“아빠가 LA로 가면 나도 이사 가야 해?”
“으음.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자. 아빠 진짜 나가야 해.”
닉슨은 얼버무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이! 닉슨!
저 멀리서 닉슨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기타 가방을 메는 아버지의 모습에 조니는 다급하게 그를 붙잡고 말했다.
“오늘 안 들어올 거면 내일 먹을 빵이 없어. 그러니까,”
“이웃집 마틸다 아주머니께 부탁해봐. 그럼 나 간다!”
“마틸다 아주머니는 어제부터 가족 여행을 떠났······! 가버렸네······.”
닉슨은 괜찮을 거라며 싱긋 웃고는 훌쩍 떠나버렸다.
무대에 혼자 남은 조니는 울음을 꾹 참고 아빠인 닉슨과 딱 둘이서만 앉을 수 있는 좁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는다.
······그러다 일이 터진다.
닉슨이 친구들과 정말로 저 멀리 떠나게 된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버지 닉슨은 멀리 떠나기 전 마지막 남은 책임감으로 조니를 돌봐줄 사람을 찾는다.
그렇게 조니는 하루아침에 있는지도 몰랐던, 자신의 친할머니.
벨라(노영희)의 집에 맡겨지게 된다.
닉슨의 낙천적인 성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벨라는 자신의 남편이 죽은 뒤로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괴팍한 노인이다.
처음 벨라의 집에 맡겨진 조니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일명, 버림받지 않기.
이를 위해 조니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발랄한 아이로 탈바꿈해 벨라의 곁을 맴돈다.
“······할머니네 집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째야. 오늘이야말로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얻어야 할 텐데.”
무대 한구석에서 조니는 자신이 밤새 세운 계획을 곱씹는다.
그리고 큼큼 목을 가다듬고, 저기 거실에서 뜨개질 삼매경인 자신의 할머니를 바라본다.
벨라는 촛불 단 하나만 켜진 거실에서 뜨개질에 열중하는 중이다.
닉슨과 조니 둘이서 살던 집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구조는 똑같은 무대 세트지만, 빈티지한 가구와 화사한 느낌으로 꾸며진 벽지가 다르다.
군데군데 놓인 수제 장식품들은 벨라의 손재주를 보여준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실내는 어둠에 잠겨 있다.
지금은 한창 햇빛이 따사롭게 들어올 오전이지만, 벨라는 암막 커튼을 젖히는 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집 안은 촛불 한두 개로만 밝혀져 있다.
그 어둠이 벨라에게는 무엇보다 포근하고 안전하게 느껴진다는 듯이.
“흠, 할머니?”
“······.”
“할머니!”
“······.”
조니가 살금살금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붙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벨라는 묵묵부답.
손자의 말에도 입을 꾹 다물고 열심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뜰 뿐이다.
펑퍼짐한 꽃무늬 치마에 직접 뜬 스웨터를 입고 아주 작은 돋보기 안경을 코끝에 걸터 쓰고 있는 벨라.
그녀의 표정은 무섭도록 굳어져 있다.
꾹 다물려 있는 고집스러운 입매가 그녀의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듯했다.
조니는 대답 없는 할머니를 힐끗거리다가 살그머니 그녀의 앞 안락의자에 앉는 것에 성공한다.
“할머니.”
“······.”
“할머니?”
“······.”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안 들리시나······? 할머니!”
“아이고 깜짝이야!”
조니의 세상 큰 소리에 벨라는 화들짝 놀라서 뜨개질을 떨어트린다.
내동댕이쳐진 뜨개질 감을 보고 벨라는 성이 잔뜩 난 표정으로 조니를 바라본다.
그 광경을 같이 지켜본 조니는 혀를 쏙 빼 내밀고 개구진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천사와도 같았다.
“조나단, 이게 무슨 짓이냐? 나이 많은 노인을 그렇게나 괴롭히고 싶은 거니?”
“그게 아니라요, 할머니. 저는 그냥······.”
“그냥? 말을 똑바로 하거라.”
“피자 먹고 싶어요.”
때마침 조니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벨라는 그 맥없는 소리를 듣고 맥이 탁 풀려 두 팔을 늘어트린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역을 치르는지······. 아이고.”
벨라는 갑자기 나타난 손자가 탐탁지 않았다.
갑자기 음악을 하겠다고 집을 나갔던 아들놈을 기다리다 허송세월을 보냈다.
이제 성인도 되었겠다, 마음대로 하라고 포기할 무렵.
이번에는 갑자기 그 철부지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며 연락이 왔다.
인사도 오지 않고 그냥 전화 한 통이었다.
애 엄마는 어디 갔는지 설명도 없다.
아마 돈도 안 되는 음악을 한답시고 나돌아다녀서 도망이라도 간 모양이었다.
알아서 잘 살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먼 지역에서 열리는 락 페스티벌에 가야 한다며 손자를 맡아달라고 찾아왔다.
말간 눈을 한 손자는 이상하게 자신을 처음부터 그리 무서워하지 않았다.
“얌전한 애여서 손도 안 갈 거라고 하더니. 피자? 그런 건 이 집에 없다.”
“에이, 할머니. 그러지 말고요. 이 냄새가 안 나시는 건 아니겠죠? 요 앞에 피자 트럭이 온 모양인걸요!”
조니는 그렇게 조잘거리며 벨라의 바로 앞에 있는 창문으로 가 커튼을 걷으려 했다.
그 모습을 본 벨라는 눈을 홉 뜨며 자신의 손자를 만류했다.
“아, 안돼! 커튼은 걷지 마라.”
“하지만, 정말 이 앞에 온 걸 보셔야 하는데······.”
“나는 못 간다.”
“할머니······.”
애처로운 손자의 말이 흘러나온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촉촉한 눈망울을 한 손자의 얼굴.
벨라는 저 얼굴을 더 보다가는 깜빡 넘어갈 것만 같아 손을 내저었다.
“부르지 마.”
“저 피자가 먹고 싶어요.”
“······오늘 하루종일 그 이야기를 계속할 셈이니?”
지친 듯한 어조로 말하는 벨라의 모습에 조니는 다시금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지끈거린다는 듯이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싼 벨라 곁에 조니가 찰싹 붙어서 결연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저는 정말 할머니랑 피자를 먹고 싶은걸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할머니랑!”
“조나단, 너······.”
조니가 벨라의 집에 들어온 지 이제 일주일.
지금까지 한 번도 강하게 제 주장을 해본 일이 없는 조니였다.
그런데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입을 앙다물고 있는 조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벨라는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어린 닉슨을 키울 때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
신경쓰지 않으려고 애쓰는 자신의 속내를 다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먼저 다가와 조르는 조니의 모습에 벨라는 한숨을 내뱉고 만다.
“정말 빨리 다녀올 자신 있지?”
“그럼요! 할머니, 모자 챙겨드릴까요?”
“이건 또 어디서 찾았니?”
“제 옆방에 걸려 있던걸요? 할머니 거 아니에요?”
벨라는 말없이 조니가 건네는 챙 넓은 밀짚모자를 받아들었다.
이건 남편이 살아있을 적, 그와 함께 산책을 나갈 때 쓰고 나가던 모자였다.
모자를 쓰다듬던 벨라의 입매가 처음으로 부드럽게 풀렸다.
조니는 그걸 못 본 채 후다닥 자신의 신발을 신고 나와 벨라의 팔을 잡아 끌었다.
“빨리요, 할머니. 빨리.”
“피자 트럭은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아. 서두르지 좀 마라.”
“맨날 커튼만 치고 사시면서 그건 어떻게 알아요?”
“······조나단, 어서 문 좀 열어다오.”
조니가 대문을 열자 따사로운 햇볕과도 같은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두 사람을 비춘다.
두 사람은 한 발자국 객석으로 다가서 말없이 그 빛을 느낀다.
한 발자국.
“화단 밖으로 나오는 건······. 참 오랜만이구나.”
“나쁘지 않은 기분이죠 할머니?”
“흐, 흥. 그래봤자 우리 집 거실이 더 좋단다.”
벨라는 남편이 죽은 후로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이 밝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게 어색하기도 했고.
홀로 나이를 먹으며 점점 몸이 불편해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싶지 않은 탓도 컸다.
“잠깐, 조니. 내 팔 좀 잡아주렴.”
“무슨 일이에요, 할머니?”
“원래 나이가 들면 이렇게, 이렇게 무릎도 쑤시고. 허리도 아프고 그런 게다. 콩만 한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렇게 큰 콩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두 사람은 아주 천천히, 벨라의 걸음에 맞춰서 저 멀리 보이는 빨간 피자 트럭을 향해 걸었다.
벨라는 버튼이 잘못 눌린 사람처럼, 오랜만에 세 어절 이상이 되는 문장을 쉴 틈 없이 뱉어냈다.
그 곁에는 살뜰히 벨라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이는 조니가 함께였다.
***
무대가 암전되었다.
긴장 속에서 1막 무대가 끝났다.
무대가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연출석에 선 제시카와 조이수.
팔짱을 끼고 무대를 지켜보던 조이수는 헤드마이크를 착용한 채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대를 지켜보던 제사카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제 긴장 좀 풀렸어?”
“휴우. 뭐 대충요.”
조이수는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대답했다.
그는 전 스태프들을 관리 감독하는 입장에서 공연 도중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 위해 무전기를 허리에 차고 긴장 속에서 공연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한눈에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객석 1층과 2층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조명의 변화까지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연출석.
조이수는 제시카의 몫까지 긴장을 한 채 공연을 지켜보느라 목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제시카는 긴장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즐겨. 즐기라고. 우리 배우들이 저기 저렇게 재밌게 놀고 있는데.”
제시카는 항상 스스로에게 대한 확신에 가득찬 사람답게 명쾌하게 말했다.
그녀가 조연출이었어도 저렇게 태평하게 말할 수 있을까?
······왠지 제시카는 조연출이었을 때에도 저랬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네요. 시우는 무슨 놀이터에 놀러 온 꼬마 같네요. 어떻게 저렇게 긴장을 안 하는지.”
“놀이터 맞아. 저 아이에겐.”
제시카는 흐뭇한 표정으로 암전된 무대를 바라보았다.
리허설 때에도 느꼈지만, 저 작은 체구로도 이 무대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장악력이 아주 보통이 아니었다.
“이대로면 걱정 없겠네.”
너무나도 태평한 제시카의 말에 조이수가 대답 없이 제시카를 돌아봤다.
긴장은커녕, 미소를 머금고 기대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말이다.
‘여전하시네.’
제시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그녀만큼 연극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걸.
빵-빵-
자동차 클랙슨 소리와 함께 다시 무대에 조명이 켜지며 2막이 시작됐다.
바뀐 배경 속에 서 있는 건 여전히 한시우와 노영휘였다.
누구보다 가볍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무대 위를 살랑살랑 날아다니는 한시우.
저 작은 아이가 머금고 있는 미소는 가짜가 아니었다.
“······그러네요. 걱정 없겠네요.”
그런 한시우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린 조이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쩌면 한시우와 제시카가 말이 잘 통하는 이유는, 두 사람이 너무 닮았기 때문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