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42
42화
길고 긴 공연이 끝나자 나는 하루 아침에 일거리를 잃었다.
원래는 공연을 마치자마자 다음날부터 비상철또 777에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다음 날.
번쩍 눈을 떴더니 해가 중천이었다.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도도도 나갔다.
“엄마! 왜 나 안 깨웠어!”
“으응? 시우 이제 연습실 안 가도 되잖아.”
“삼촌이랑 같이 극단 나가려고 했단 말이야.”
혹시 몰라서 바쁘게 작은방으로 가보니 삼촌은 이미 극단으로 출근한 후였다.
모든 배우들이 일찍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단역을 맡는 삼촌은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나가서 연습실 정리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배우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전에 혼자서 맘껏 연습도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삼촌이 하는 연기도 보고, 많이 늘었나 봐주려고 했는데 모든 계획을 망쳐버렸다.
비어있는 작은방을 확인한 나는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비틀비틀 거실로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한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일부러 너 깨우지 말라고 했어. 요 몇 달간 정신없이 일했잖니. 하루쯤은 늦잠도 푹 자고 그래도 돼.”
“몰라.”
나는 입을 비죽 내밀고 식탁에 턱하니 앉았다.
입맛도 없었다.
“스프 끓여줄까?”
“······웅.”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필이면.
요즘 내가 제일 빠져 사는 아침 식사 메뉴였다.
어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면서 콘스프를 준비해주셨다.
“엄마는 시우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나가서 다른 애들처럼 뛰어놀기도 하고. 밀린 드라마도 보고, 시우가 잠도 열심히 자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우웅?”
달그락거리면서 어머니가 끓여주신 따듯한 스프를 떠먹었다.
내 앞에 앉은 어머니의 조곤거리는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요즘 TV도 못 봤잖니? 하루 종일 봐도 되는데~”
“······.”
나는 조용히 그릇을 들어 스프를 마셔버렸다.
그리고 얼른 소파로 가서 리모컨을 쥐고 앉았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내 곁에 앉았다.
“나 이거 볼래요.”
“그러렴.”
휴, 어머니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걱정이다.
나는 어느새 극단에 가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밀린 드라마에 열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작은 몸은 지난 몇 달간의 스케줄에 많이 지쳐있던 모양이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나도 모르던 피로가 몰려왔다.
어머니의 말씀도 있었고, 이참에 푹 쉬기로 했다.
배우에겐 몸 관리도 생명이니 말이다.
지난 몇 달과는 참 다른 일주일이었다.
한참 드라마를 보다가 눈이 뻑뻑해질 즈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가서 산책도 하고, 돌아와서 낮잠도 늘어지게 잤다.
저녁에는 퇴근한 아버지와 심야 영화도 보러 가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여유로운 날도 있었다.
“우웅, 마시써.”
“그래? 내일은 두 마리 가져올까?”
입안 가득 아버지가 튀겨온 치킨을 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먹고 자고 또 먹어서 볼이 더 빵빵해진 것 같았다.
“시우야! 삼촌이 뭐 가져왔는지 봐라!”
그렇게 일주일을 푹 쉬었을 때, 극단에서 돌아온 삼촌이 나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건 다름 아닌 강용휘의 신작 극본이었다.
“우와!”
“강 감독님이 시우 네게 가져다 달래.”
“고마워 삼촌!”
나는 치킨을 먹다 말고 식탁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손에는 강용휘의 극본이 꼬옥 들려 있었다.
“시우야, 아버지가 치킨 가져왔는데 이건 먹어야지?”
“음······.”
하지만, 낮게 가라앉은 어머니의 말에 멈칫했다.
너무 읽고 싶다.
지금 당장 읽고 싶다.
이번에는 강용휘가 또 어떤 인물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저 두툼한 종이 뭉치에 어떤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들어있을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내리깐 목소리를 내는 어머니를 무시했다가는 큰 화를 당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얌전히 극본을 옆에 내려두고 다시 치킨을 우물우물 먹었다.
“내일 아침부터 읽자? 오늘은 너무 늦었잖니.”
“헉, 그건 안 되는데······!”
“시우 너, 그러다가 키 안 큰다? 문희성 아저씨만큼 커다래지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끄응······.”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에 나는 고심했다.
항상 문희성이 높다란 키 때문에 만날 때마다 목이 꺾이는 것만 같았다.
항상 문희성네 집에 다녀오면 그만큼 키가 커질 거라고 얘기해서 그런지 어머니는 툭하면 저런 말로 나를 자극했다.
확실히, 나중에 주연을 잘 맡기 위해서는 키가 웬만큼 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갈등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네, 우리 시우.”
“우웅.”
나는 시무룩하게 대답하며 치킨을 마저 먹었다.
이 와중에도 아버지의 치킨은 너무 맛있었다.
월드컵 이후에 아버지의 치킨집은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는 요즘 밤늦게 돌아오셔서 내가 공연을 하는 동안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연습이 끝나고 내가 지쳐 잠들면 아버지가 퇴근하셨기 때문이다.
에잇, 그래.
요즘 가족들과 시간을 잘 보내지도 못했는데 기분이다!
나는 생각을 고쳐먹고 치킨을 와구와구 먹었다.
대본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내일 보기로 했다.
“시우야, 콜라 줄까?”
“아니! 나 우유 먹으꺼야!”
“오? 그래?”
아버지는 의외라는 얼굴로 우유를 따라주셨다.
치킨 먹을 때가 아니면 어머니는 콜라를 잘 주지 않았기에 나는 치킨을 꼭 콜라랑 먹었다.
그런데 오늘도 어머니가 키 이야기를 해서 신경이 쓰였다.
무릇 키가 크려면 우유를 먹어야지, 암.
나는 치킨도 잔뜩 먹고 우유도 큰 컵으로 하나 가득 마셨다.
“크아!”
“하하, 시우야. 너 무슨 맥주라도 먹냐?”
앞에 앉아 치킨을 먹던 삼촌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 삼촌보다 커질 거야.”
“윽, 갑자기 왜 아픈 곳을 찌르고 그러냐······. 너도 나 작다고 뭐라 하냐?”
삼촌은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 이왕 잡는 목표 크게 잡아야지.
내 목표 피지컬은, 문희성이다!
***
“흐흥, 흠!”
나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거실로 향했다.
요새 늦게 일어나던 나는 오늘만큼은 일찍 일어나서 얼른 세수도 마쳤다.
그리고 한 손에는 강용휘의 대본을, 한 손에는 쿠션을 들고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읏차.
쿠션을 배에 깔고 엎드려서 강용휘의 대본을 펼쳤다.
제목부터 이상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기대하면서 표지를 열었다.
“오, 오오.”
나는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면서 두 다리를 동당거렸다.
역시 강용휘.
극본은 역시나 아주 재미있었다.
깡시골 학교에 신입생이 들어오며 극은 시작된다.
오래된 초등학교는 폐교를 각오하고 있는 허름한 곳이었는데, 그곳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다섯 선생님들과 뜬금없이 들어온 1학년 신입생이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오오, 재밌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강용휘가 나를 위해 이 극본을 썼다는 걸.
다른 학교도 아니고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한 학생이 나오는 이야기는 나보고 연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극본을 보자마자 혹했다.
제목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신입생은 주연이다.
신입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이기에 대사도 아주 많고, 소화해야 하는 분량이 제법이었다.
벌써부터 몇 장면은 강용휘가 어떤 식으로 연출을 할지, 거기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려지기도 했다.
“좋아, 좋아.”
나 혼자 극을 쓰고 연기를 한 세월만 20년이다.
거기다가 오스카 피트가 인정했을 정도로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나, 노아 바텐베르크가 봐도 훌륭한 사상과 구성, 이야기였다.
자본상의 문제로 스케일을 더 키울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서 아쉽긴 했다.
한편으로는 이 한정된 상황 속에서 최고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극을 쓴 강용휘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순식간에 대본을 완독한 뒤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본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김상철이 만날 사람이 있다고 비상철또 777로 오라고 했지.
잘됐다. 간 김에 강용휘와도 얘기를 나눠봐야겠다.
“엄마! 우리 언제 가?”
“으응, 엄마 십 분만.”
어머니 저 급합니다.
얼른 출발하시죠.
***
“안녕하세요.”
나는 어머니와 함께 단장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어서 와라, 어서 와. 시우 어머님도 오랜만입니다.”
“네, 오랜만이에요.”
“시우는 오늘도 카모마일 줄까?”
“네······.”
김상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은편을 보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달그락거리면서 김상철이 내 차와 어머니의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맞은편의 남녀를 바라보았다.
극단에 들락거리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대학로에서 유명하다는 배우들과 연출가들과는 인사를 나눠봤는데, 진짜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으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차만 먹고 나가고 싶었다.
방금 읽은 극본에 대해서 강용휘랑 이야기를 나눠야 했으니까.
“자, 이건 시우 거.”
“고맙습니다.”
나는 얼른 차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오늘 시우를 부른 이유는, 이분들을 소개시켜 주려고 그랬단다.”
“우웅?”
열심히 차를 후후- 식히다가 김상철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KMB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차일남 PD라고 합니다.”
“저는 한유주 작가예요. 같은 방송국 소속입니다.”
“이건 제 명함인데······. 어머님께 드리죠.”
“아, 네.”
KMB 방송국?
일전에 어머니랑 삼촌이 말하길, 방송국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내보내는 곳이라고 했었다.
문희성 역시 촬영을 할 때면 방송국으로 출근을 한다고 했었지.
“드라마 만드시는 분들이에요?”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오, 드라마를 잘 아는구나? 그래, 맞아. 아 최근 제 작품은 입니다. 혹시 보셨으려나 모르겠네요.”
“아, 그거 만드신 분이구나. 저도 알아요.”
차일남이 크게 히트 쳤던 드라마 는 종영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드라마였다.
어머니는 제목을 듣더니 알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차일남은 그러실 줄 알았다며 활짝 웃었다.
한편, 나는 내가 보지 못한 드라마여서 흥미가 조금 식어버렸다.
연습을 하느라 TV를 잘 못 보던 때이기도 하지만, 제목을 보고 어머니가 자극적인 내용일 것 같다며 못 보게 한 드라마 중 하나였던 것이다.
“저는 그건 못 봤어요. 근데 KMB라면 이랑 이랑 하는 데 맞죠?”
내가 그 드라마만 못 봤지, 평소에 드라마 좀 본다 이거야.
요즘에는 매일 광화문 문화센터에 가서 사느라 TV를 많이 못 보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 이야기가 나온 도 언제 한번 어머니 몰래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오오, 시우 군은 평소에 드라마를 많이 보는 모양이지? 맞단다. 우리는 그거 만든 곳에서 나온 거야.”
“그중에서 도 차일남 PD님이 만드신 거야.”
내 말에 두 사람은 크게 기뻐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한유주는 적극적으로 차일남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오, 그렇구나.
시큰둥했는데 조금 흥미가 생겼다.
PD라면······ 강용휘처럼 연출가를 말하는 거 같았다.
“와, 진짜요? 나 그거 되게 재밌게 봤는데.”
“하하, 그러니? 그것 참 다행이구나.”
다행?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나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던 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비장한 표정이 된 한유주가 대표해서 말을 꺼냈다.
“실은, 우리는 오늘 시우 군을 캐스팅하고 싶어서 찾아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