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43
43화
“저를요?”
정말 갑작스러운 말이었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서 김상철을 돌아봤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서 아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상철이 보였다.
아니, 오랜만에 밝은 데서 저 두꺼비 같은 얼굴을 봐서 그런가.
한층 더 저 얼굴에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래, 시우야. 두 분이 이번에 시우가 나온 RUN을 본 모양이더라고. 공연을 보고 네가 아주 마음에 드셨다고 연락해오신 거야.”
“우아, 제 공연 보셨어요?”
이건 또 몰랐다.
나는 새삼 팬들 앞에 앉은 것처럼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런이런, 진작 그렇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응응, 그럼. 우리 둘 다 엄청난 팬이란다.”
“나도 그렇고 PD님도 그렇고 몇 번이나 보러 갔어.”
팬이라는 말에 조금 더 의젓하게 보이기 위해 찻잔을 두 손으로 야무지게 들어 올렸다.
휴, 이럴 줄 알았으면 거울이라도 보고 올 걸 그랬다.
분명 또 사진을 찍자고 할 텐데 말이다.
후룩, 차로 목을 한번 적시고 방긋 웃어주었다.
“히히, 공연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은 채로 배꼽 인사를 꾸벅 해줬더니 두 사람에게서 헉,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음, 내 팬이 확실하군.
나는 아까보다 조금 더 인자한 표정이 되어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제 연기를 보시고 캐스팅하고 싶어서 찾아오신 거라고요?”
“아, 응. 일단 이건 내가 써온 기획안이야. 이거 먼저 봐줄래? 아, 글씨를 너무 작게 했나.”
여섯 살인 내 나이를 고려해서 한유주가 잠시 멈칫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차나요. 저 잘 읽어요.”
“어? 어어. 그래?”
한유주는 짐짓 놀라서 내게 기획안을 넘겼다.
“후후, 걱정마세요. 시우는 대본도 혼자 다 읽거든요.”
“······시우 군 이제 여섯 살 되지 않았나요?”
“전에 우리 극단에서 공연할 때도 금방 읽고 금방 외우더라고. 아무래도 진짜 타고난 게 있는 모양이지!”
어머니의 말에 차일남과 한유주는 놀랍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옆에서 김상철은 제가 더 뿌듯하다는 듯이 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와, 진짜 한글을 빨리 뗐네요. 제가 만난 아역 배우들 중에 가장 똑똑한 거 같습니다.”
차일남은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새삼스럽게 저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지 어머니는 연신 웃으시며 커피를 마셨다.
나는 어른들이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열심히 한유주가 쓴 기획안을 읽어 내려갔다.
작품 개요에 가족로맨스 힐링 드라마라고 적혀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힐링 드라마예요?”
“응. 내 작품은 큰 위기나 큰 반전이 들어있지는 않아. 대신 인물들 간에 잔잔하게 깔려 있는 사연이랑 감정선이 복잡하고 심오하게 얽혀 있지. 시우 군한테 부탁할 배역은······. 엄마를 빼앗길 것 같은 위기와 엄마의 행복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이의 심리를 잘 표현해야 할 거야. 좀 어렵긴 한데······.”
“흐음.”
나는 한유주의 부연 설명을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놉시스로 넘어가자 그녀가 추구하는 바가 어떤 식인지 대략 이해가 되었다.
내가 내려놓은 기획안은 옆에서 어머니가 가져가서 들여다보셨다.
“많이 어려운 작품인가요?”
“한 작가가 배우들을 좀 괴롭히는 걸로 유명합니다. 연기력이 그만큼 받쳐줘야 하는 인물을 잘 쓰는데, 지금까지 배우 운이 없어서 크게 히트작이 없을 뿐이지. 글은 기가 막히게 씁니다.”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는 어머니에게 차일남은 열심히 이번 작품에 대해서 어필했다.
배우들을 괴롭힌다는 부분을 들은 어머니의 표정이 점차 더 굳어졌다.
아차, 안 그래도 요즘 좀 쉬라고 노래를 부르는 어머니인데 이러다가 아무런 작품도 못 하게 생겼다.
나는 위기감을 느끼고 얼른 차일남에게 그만하라고 눈을 부라렸다.
그런데 내 시선을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차일남은 더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하하, 시우 군. 시우 군이랑 함께할 배우가 걱정이니? 괜찮아. 내가 지금까지 쌓은 경력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황금 라인업을 만들기로 약속하마. 하나같이 쟁쟁한 사람들이니까 시우 군 마음에 들지 않는 배우는 없을 거다.”
“······쟁쟁한 사람들.”
어머니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그런 배우들 틈바구니에 있으면 저희 애가 너무 스트레스 받지는 않을까요? 배우들 사이 신경전도 무시 못 하는데······.”
“아, 아? 어어······. 그건,”
“그리고 드라마면 몇 부작으로 편성될까요. 16부작을 염두에 두고 계신 거겠죠?”
“예에,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당황해서 대답하던 차일남은 김상철에게 눈짓했다.
같이 당황한 김상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시우는 아직 여섯 살인데···. 드라마 쪽 일은 안 그래도 촬영 스케줄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한창 커야 할 애한테 너무 무리이지 않을까요. 앞부분만 살짝 나오는 아역 배우도 아닌 것 같아서요.”
“으음, 어머님. 그건······.”
예상치 못한 어머니의 말에 차일남은 할 말을 잃고 우물거렸다.
내 저럴 줄 알았지.
아마 다들 어머니가 전에 이쪽 세계에서 일해봤다는 것은 모를 테니까.
경직된 분위기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엄마, 나 이거 재밌는 거 같아요.”
“···그러니? 시우 네가 재밌다고 하니 다행이네.”
“웅, 그래서, 저 말고 어떤 배우가 나올 건데요?”
어머니가 차일남의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심해지신 것과 반대로 나는 흥미가 생겨버렸다.
그러니까, 드라마에 나를 캐스팅 하고 싶은데.
딱 보니까 주인공의 어린 시절로 나오는 적은 비중이 아니라 어엿한 주조연급이라는 거 아닌가.
생각 정리를 마친 나는 기획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채, 두 팔을 테이블 위로 올려 반짝이는 눈으로 차일남을 바라보았다.
어디 한번, 내 구미가 당길 제안을 더 해보라는 듯이.
“시우 군이 RUN에서 잘 나타내주었던 것처럼, 이것도 가족 서사야. 결이 약간 다르기는 하겠지만, 목적은 똑같아. 감동을 주는 거지.”
“네에네에.”
“완전히 달랐던 두 가족이 사건 사고를 겪고 점차 한 가족으로 탄생하는 거지. RUN에서 조니랑 벨라가 결국 진정한 가족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야.”
“웅, 재미있을 거 같아요.”
적극적인 한유주의 말을 들으면서 대본을 들여다봤다.
한유주는 대본을 손수 짚어주며 이 배역은 어떤 느낌인지, 나는 거기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면 좋을지, 그리고 너라면 잘하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웅?”
한유주가 팔락팔락 넘기는 대본을 보다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요······.”
“응, 뭐든지 물어보렴.”
“근데 이 작품······ 뒤에 내용은 어디 있어요?”
초반부에서 뚝 끊겨버린 극본을 들고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한유주와 차일남을 올려다보았다.
뭐지?
당연한 질문을 한 것 같은데, 저 둘의 표정이 이상하다.
“어, 그게······ 시우 군. 원래 이쪽 업계는 대본이 다 나온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거든?”
“네에? 왜 그렇게 하는 거죠?”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그럼 결말까지도 다 안 나온 작품의 얼개만 보고서 모든 배우들이 이 작품을 연기한단 말인가?
그게 말이 되는 건가.
나는, 전생에 노아였을 적을 떠올려보았다.
17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크리스토퍼 마알로우, 벤 존슨, 토마스 키드, 존 블리 등 수많은 극작가들이 있었다.
이들이 극본을 기획할 때 스토리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은 있어도, 캐스팅 제안을 받거나 연습할 때는 완결되지 않은 작품으로 해본 일이 없었다.
400년이 지나 시대가 달라진 건가 생각하려고 해도, 내가 지금껏 했던 작품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번 만 해도 그렇고 도 마찬가지였다.
캐스팅 제안을 받든 오디션을 통과해 팀을 합류하든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이 나와 있었다.
이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극을 끝까지 봐야 그 작품과 캐릭터를 이해하고, 내가 그 캐릭터에 담길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테니.
400년 전과 지금이 왜 다른 걸까.
그 시대의 극작가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연기하는 배우들도 많아서였을까?
내 질문에 차일남은 말문이 막혔는지 입을 딱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어머니가 반대하시는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도 마음이 급하지 않았다.
당장 아무 작품이나 하고 싶은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 돈을 당장 많이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무작정 TV에 출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RUN 공연을 할 당시 아역 배우들은 모두들 입을 모아 TV에 나가고 싶다는 한탄을 흘렸지만, 나는 그게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대에 설 수 있는데도 왜 저렇게 맹목적으로 TV 출연을 원하는 걸까.
뭐, 사실··· 나도 그 네모난 상자에 내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긴 하지만, 그냥 그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끝이 어떤지도 모르고 참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궁리하던 나는 입을 열려고 하는 차일남의 말을 막았다.
“저기, 시우 군. 방송이라는 게, 제작 환경이랑 제작비가······.”
“우움, 저 이거 안 할래요.”
뭐라고 이어지는 차일남의 말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결국 당장 대본의 결말을 보여주지 못하겠다는 말 아닌가.
단호하게 떨어진 내 말에 극단장실에 모여 있던 다른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차일남과 한유주는 물론이고, 걱정하던 어머니마저 내가 작품을 안 하겠다고 하니 놀라운 모양이었다.
“시, 시우 군?!”
“정말이니, 시우야······? 그럼, 이제 조금 쉬겠구나.”
어머니는 잠깐 놀라셨지만, 곧 안심하셨다.
내가 일주일 동안 열심히 쉰 걸로도 성이 안 차신 모양이었다.
이런, 어머니.
죄송하지만,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나는 바로 김상철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극단장님, 강 감독님은 어디 계세요? 보내주신 대본 되게 좋던데. 오늘 감독님이랑 얘기해보고 시퍼요.”
내 말에 차일남은 이마를 짚었다.
왜 저러는지는 알겠다.
나를 캐스팅을 하러 왔는데 강용휘에게 뺏기게 생겼으니 말이다.
“허허, 그랬니? 강 감독이 엄청 좋아하겠네.”
“녜, 엄청 재밌었어요. 강 감독님이 저 주연하라고 써주신 거 같았어요. 맞죠?”
“그럼그럼, 강용휘, 그 자··· 아니. 강 감독이 시우 네가 돌아오길 아주 눈 빠지게 기다렸지.”
다정하게 내게 말한 김상철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차일남을 바라보았다.
빙글빙글 웃는 얼굴은 어딘가 으스대는 듯한 표정인데······.
왜 저러지?
“거봐라, 내가 그랬지?”
“······형 때문에 말이 씨가 된 겁니다.”
“어허, 남탓을 하면 쓰나. 우리 배우님이 결말까지 나온 대본을 보고 결정하고 싶으시다는데.”
김상철은 짐짓 안타깝다는 어조를 꾸며내며 말했다.
와, 내가 봐도 정말 얄밉다.
순간 차일남이 조금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초반 내용만 있는 드라마보다, 완결까지 재밌는 강용휘의 작품이 훨씬 더 끌리는걸.
“우웅, 그럼 안녕히 가세요. 저는 강 감독님 찾으러 가볼게요!”
나는 남은 카모마일 티까지 야무지게 다 홀짝이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침나절에 읽은 강용휘의 대본이 머릿속에서 넘실대고 있어 어서 그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니까.
그때였다.
“잠깐!”
가만히 있던 한유주의 입이 열린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