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47
47화
‘돈이 많으면 연기를 못 한다’
내 말에 세 명의 어른들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궁리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진 게 많으면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거 같아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사랑하는 아빠 엄마, 삼촌이랑 같이 살고. 돈은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돼요.”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노아 바텐베르크로 살았던 시절이 있기 때문이었다.
귀족.
그것도 대귀족인 바텐베르크 공작가는 당시 불안하던 왕권을 쥐고 흔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위상이 드높았다.
길고 긴 역사를 가진 바텐베르크의 핏줄인 나는 넘쳐나는 부와 명예를 누리는 대신, 그 체면과 위신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의무는 나의 자유를 앗아갔다.
공작가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지극히 한정되었으니까.
흔히들 돈이 많으면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잃을 게 많으니 그만큼 두려움도 크다.
그 돈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유도 포기해야 하고, 원하는 것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나는 바텐베르크의 공자로서 연기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올리버도.
오스카 극단 사람들도 전부.
40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있는 한국은 그곳과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만에 하나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때와 같은 전철을 밟기 싫었다.
“시우야······.”
어머니는 내 말에 목이 메는지 말끝을 흐리셨다.
일렁이는 두 눈은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 내 말에 감동한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세상에······.”
같이 내 대답을 들은 이가은과 김상철은 나란히 입을 벌렸다.
“어, 어린 나이에 벌써 돈이 주는 안주와 나태함을 경계하는 것일까요?”
“그건 너무 갔다, 이 기자.”
너무 놀란 이가은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김상철에게 속삭이며 물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대답이 어떻게 나와요? ···시우 군, 여섯 살 맞죠?”
“맞아. 나 가끔 쟤 등본 확인하잖아.”
두 사람이 속닥거리는 사이, 어머니가 이가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기자님. 이제 돈 이야기는 조금···.”
“아, 죄송해요. 시우 군이 너무 신기한 답을 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
서울 시내의 한 카페.
구석의 가장 큰 테이블에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용준이가 2차 오디션 명단에 들었더라구요.”
“와, 진짜요?”
“용준 어머니. 나중에 용준 1차 오디션 영상 공유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럼요. 보내드릴게요.”
한시우의 모친, 지연화는 지금 RUN 아역 배우들의 엄마들 모임에 나와 있었다.
방송국에서 일할 당시, 아역 배우들은 그 엄마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치맛바람이 세다고 듣긴 했는데.
지연화는 직접 아역 배우들의 엄마들을 만나면서 그 소문이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리다고 생각했다.
“하아, 아들 가진 분들은 좋겠어요. 저희는 이번에 영 지원할 데가 없더라고요.”
“지연이도요? 저희 수진이도 마찬가지예요. 여자 아역 배우를 모집하는 곳이 이번 분기에는 왜 이렇게 없는지. 오디션이 잡히질 않으니까 매일 연습도 안 하려고 해서 큰일이에요. 이러다 연기 다 까먹으면 어쩌죠?”
이런 자리에 나온 건 유치원도 다니기 싫어하는 아들의 교육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같은 또래의 엄마들과 만나서 교류를 하면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지연화가 간과한 점은 이 엄마들의 최고 관심사가 자신의 것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었다.
브로드웨이에도 올랐던 RUN의 현지화 공연.
그 연극에 자신의 아이를 단역으로나마 캐스팅되도록 노력한 엄마들이니만큼 다른 것보다 아이의 성공을 바랐다.
“저희 집은 이번에 오디션 영상 촬영하려고 캠코더도 새로 장만했는데, 확실히 장비가 좋긴 좋더라고요.”
“진짜요? 어떤 모델로 사셨어요? 저 태성 신제품이랑 코댑 간판 모델 두고 고민 중인데······.”
‘약간 결이 다른 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아이의 성공에 투영된 엄마들의 욕망.
그저 자신의 아들인 시우가 잘 자라기만을 바라던 지연화에게는 상당히 낯선 풍경일 수밖에 없었다.
“아, 시우 어머님. 시우는 요즘 어떤 학원 다녀요?”
“저희 아이는 따로 학원은 안 다니는데요.”
“에이, 수진이 엄마도 참. 시우는 학원이 아니라 극단에 속해 있잖아요. 거기서 연습도 다 시켜주고 하는 거지.”
“와······. 극단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아니지. 극단에 속해 있다 보면 저희 애들은 방송 쪽에 빛도 못 볼 수도 있어요.”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여기서도 은연중에 다른 엄마들은 한시우의 재능을 부러워했다.
별다른 학원도 보내지 않고, 교육도 시키지 않았는데 무려 제시카 브라운의 눈에 들어 주연 자리를 따낸 천재.
이 자리에서 지연화는 많은 엄마들의 호기심을 한 몸에 받았다.
집에서 시우는 뭐하냐, 평소 시우는 먹는 거 뭘 좋아하냐, 존경하는 배우는 누구냐, 등등.
아역 배우의 엄마들은 사소한 것까지 궁금해했다.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을 열심히 해주던 지연화가 일순 입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음······. 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네, 뭔데요?”
“저희가 아는 건 다 알려드릴게요. 그런 정보 공유하려고 모이는 거니까.”
이때다 싶어서 엄마들이 지연화에게 눈을 빛냈다.
시름에 잠긴 듯 어두운 표정이 된 지연화는 최근에 하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우를 유치원에 보냈는데. 갔다 오면 가기 싫어하고, 묘하게 시무룩해 보이고 그러더라고요. 다른 아이들도 유치원을 싫어하나요?”
갑작스러운 화제에 엄마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대답해주었다.
“유치원이요······? 아뇨? 놀이시간도 많고 친구들도 많다고 좋아하던데.”
“우리 애도요. 유치원 오전반만 보내고 연기 학원 가자고 했을 때 드러누워서 엄청 애먹었어요.”
하지만 나오는 대답은 딱히 도움이 되질 않았다.
간혹 낯을 너무 가리는 아이면 유치원을 힘들어한다는 대답도 들렸다.
낯을 가린다라······.
그런 것치고 자신의 아들은 처음 보는 어른들에게 인사도 넙죽 잘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문희성과도 잘 놀곤 했다.
“그런데 시우는 걱정할 필요 있나요? 영어도 술술 잘하고 똑똑하니까 유치원에 딱히 안 보내도 괜찮지 않아요?”
“그럴까요?”
한 엄마의 의견에 지연화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이건 또 새로운 의견이다.
“네, 저도 원래 연기 학원만 보내고 싶은데. 이번에 시우 보고 영어 유치원 등록했거든요. 아무래도 점점 글로벌해지니까. 영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어머, 저희 애도요.”
“저희 동네는 영어 유치원 대기자 수가 너무 많아서 아직도 기다리는 중이에요.”
아, 음.
다들 유치원에는 별 관심이 없구나, 싶어서 지연화는 조용히 커피만 들이켰다.
그러다 한 엄마가 지연화의 어깨를 살며시 건드렸다.
“시우 엄마. 그러면 유치원 말고 다른 데는 어때요?”
“다른 데요?”
“네, 제가 알고 있는 곳이 있는데······.”
지연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한 엄마의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
“우아.”
주말인 오늘은 그 지긋지긋한 유치원에 안 가도 되는 날이었다.
나는 오전부터 극단에 나갈 수 있는 주말이기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했다.
거하게 세수를 마치고 나오는데 식탁 한가득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배고프지? 얼른 밥 먹자.”
“우웅!”
아침부터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는지.
나는 어머니가 발라주시는 야들야들한 백숙 살을 얌얌 받아먹었다.
“움, 마시써.”
입안 가득 밥을 넣고 씹으면서 어머니에게 쌍따봉을 치켜들었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이번에는 전복죽을 한입 떠서 후후 불어서 내밀었다.
얼른 받아먹자 입안 가득 고소한 참기름 향이 감돌았다.
오전부터 거하게 아침을 받아먹고 나니 어머니가 따끈한 차를 따라주셨다.
“아직 날이 추우니까. 몸에 좋은 삼이랑 목에 좋은 생강을 넣어서 끓인 거란다. 조금 쓸 수도 있는데. 한번 먹어봐. 너무 쓰면 꿀 더 타줄게.”
“우웅.”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후후 불어 후룩 마셨다.
음, 향이 아주 진하다.
순간 너무 쓴가 싶었지만 뜨거운 차가 목으로 넘어가면서 온몸이 따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도 좋은 거 같아요.”
“그래? 앞으로 종종 타줘야겠네.”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활짝 웃으셨다.
역시 이게 다 뭐냐고 하기보다 잘 먹는 게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방법인 거 같았다.
“햐, 배 터져.”
“잘 먹었니? 바로 극단 갈 거지?”
“우웅! 오늘 연습 이따만큼 할 거야.”
나는 신나서 말했다.
그러자 그릇을 치우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주말까지 나가서 연습하겠다고 하고. 엄마는 시우 몸이 너무 힘들까 봐 걱정돼.”
“그래서 닭이랑 전복이랑 먹었자나. 괜차나요.”
이거 보라며 나는 최근에 아침 방송에 나온 ‘푸쉬업’이라는 걸 선보였다.
내가 이만큼이나 멀쩡하다는 걸 어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래, 어휴. 이거 치우고 극단 데려다줄게. 다친다 그러다가.”
“우웅!”
나는 어머니의 말에 신이 나서 식탁 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오늘 나온 그릇들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어머니를 돕지 않았다.
잘못 들면 다친다고 어머니가 들지 말라고 한 그릇들이 잔뜩이었다.
“시우야, 유치원은 도저히 못 가겠다는 거지?”
그릇을 치우던 어머니가 넌지시 물었다.
“······웅. 힘드러.”
유치원에 다닌 지 일주일.
나는 결국 어제저녁 집에 들어와서는 어머니에게 선포했다.
그 유치원이라는 곳에 다니지 않겠다고.
어머니가 너무 원해서 며칠 꾹 참으며 있어 봤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유치원에 가서 어머니 말처럼 뭘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쌓였다.
“음, 시우야. 그러면 이건 어떨까.”
“우웅?”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지간히 지쳐 보였나 보다.
“엄마가 알아봤는데, 여기 앞 도서관에 ‘책 읽는 교실’이라는 게 있대.”
“책 읽는 교실······?”
“응, 시우 또래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이 모여서 다 같이 책 읽고 그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클래스인데. 오전에 세 시간만 가면 돼. 매일 안 가도 되고.”
“으음.”
“몇 명 있지도 않아. 10명 미만 소수정예고, 도서관이니까 시우 말처럼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지도 못할 거 같은데. 여기에 다녀보는 건 어떨까?”
책이라.
이건 나도 생각지 못한 방법이다.
아무래도 어머니는 내가 유치원을 안 좋아하는 것 같자 다른 방법을 찾으신 모양이었다.
매일 극단으로 출근하는 날 보고 상당히 걱정이 되셨나 보다.
책 읽고 의견 나누는 정도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RUN 아역 배우들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아는 것도 필요할 것 같고.
내가 연기할 아이들은 평범한 이쪽 문화권 아이일 테니까.
무엇보다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게 우선이었다.
오전 세 시간이면, 유치원보다 빨리 끝난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우웅. 좋은 거 같아.”
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늘 한번 잠깐만 들렀다 가볼까?”
어? 오늘?
······우리 어머니의 추진력은 정말 굉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