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53
53화
“다음은 우주랑 해성이의 첫 만남 씬 리딩 해볼게요.”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첫 장면은 남연수가 맡은 지해성과 내가 맡은 강우주의 첫 만남.
“두 배우, 준비됐죠?”
차일남의 말에 나와 남연수가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스레 자리도 고쳐 앉았다.
“액션!”
매 장면 리딩 시작할 때마다 외쳤던 차일남의 신호에 맞춰 남연수가 먼저 대사를 시작했다.
“아, 안녕. 네가 우주구나. 나는 지해성이라고 해.”
“웅.”
“내가 여덟 살이고, 우주 네가 일곱 살이라며? 그럼 내가 형아니까 잘 챙겨줄게.”
“……웅.”
극 중에서 강우주의 엄마, 한지혜와 지해성의 아빠, 지현우는 재혼을 꿈꾼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며 새출발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자, 각자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재혼 이야기가 오고 가기 전에 아이들끼리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한 것인데…….
우주의 표정이 특히 더욱 좋지 않다.
무뚝뚝한 동생의 반응에 해성은 잠시 당황하지만, 이내 꿋꿋이 새롭게 생긴 동생에게 말을 붙인다.
“음, 이거 해봤어. 우주야? 요즘 학교에서 유행하는 건데……. 아, 우주는 아직 학교는 잘 모르지? 유치원 다녀?”
“웅, 유치원 다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해성은 신이 나서 동생이 될 우주에게 학교 이야기를 꺼낸다.
“그렇구나. 우주는 동생이니까 아직 학교가 뭔지 모를 수 있는데… 이거는 말이야.”
“별로 재미없는데?”
열심히 해성이 요즘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우주가 말을 끊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해버린다.
“어? 그, 그래도 같이 가지고 놀자. 이제 나는 우주 형아니까 동생 잘 챙겨야 한다고 우리 아빠가,”
“야.”
평소 아빠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지켜봐 온 해성은 최근에 아빠의 표정이 환한 게 모두 우주의 엄마, 한지혜를 만나서라고 생각한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잊는 건가 서운할 때도 있지만, 매일 힘들어하던 아빠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해성은 더 좋았다.
그래서 아빠가 당부한 대로 좋은 형이 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한 건데…….
자신보다 어린아이한테 야,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벙찐 해성이 입을 헤 벌리고 있다가 겨우 대답한다.
“……어?”
멍하니 대답하는 해성을 보고 우주가 코웃음을 치더니 쌀쌀맞은 어조로 쏘아붙였다.
“너 바보야? 네가 어떻게 내 형아야.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한 살 많다고 형형 거리지 마. 너 같은 형 없어. 나는 외동이야. 우리 엄마아빠 하나뿐인 아들이라고!”
“우주야!”
멀찍이서 앉아 있던 한지혜(강수정)는 큰소리가 나자 놀라서 개입한다.
엄마의 등장에 우주는 입을 다문다.
“……칫.”
“형한테 그러면 안 되지! 자, 어서 형한테 사과해.”
하지만 또 튀어나온 형 소리에 결국 우주는 폭발하고 만다.
“나는 형 없어요. 저런 형 둔 적 없다고!”
“우주야. 잠깐. 잠깐만.”
계속되는 우주의 악다구니에 가만히 지켜보던 지현우(최태우)가 어떻게든 아이를 달래려 나선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희게 질린 얼굴이 된 해성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만다.
“……컷! 아, 우리 아역들 아주 좋았어요. 아니 우리 주연들이라고 해야지!”
차일남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우리 두 사람을 칭찬했다.
나는 어머니가 빨대를 꽂아준 생수를 꼴깍 삼켰다.
첫 리딩치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만족은 금물.
앞으로 몇 시간이나 더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에 미리미리 목이 마르지 않도록 신경 써줘야 했다.
“와, 주고받는 템포가 장난이 아닌데?”
“방금 연기는 대본 리딩 수준이 아닌데? 감독님, 애들 바로 촬영해도 되겠어요.”
“나 지금 팔에 소름 돋은 것 좀 봐.”
“둘이 왜 이렇게 살벌해~? 순간 회의실이 두 사람 때문에 꽁꽁 얼어붙었다.”
차일남의 칭찬에 이어 숨죽이고 우리의 리딩을 지켜보던 스태프들도 너스레를 떨었다.
흠, 이쯤이야.
나는 물을 마시면서 우리 두 사람의 연기를 칭찬해주는 사람들에게 방긋방긋 웃었다.
극단 사람들은 이제 내 연기에 너무 익숙해진 터라, 이런 신선한 반응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시우랑 연수랑 투톱 주연으로 해도 되겠다!”
지현우 역을 맡은 최태우는 적잖이 놀랐는지 나와 남연수를 엄청나게 띄워줬다.
두 사람이 나오면 내 연기가 다 묻힐 거라느니.
둘이 대사 주고받는데 중간에 끼어들기가 겁이 날 정도였다느니, 엄살이 아주 끝도 없었다.
서글서글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아역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 같았다.
“…….”
그옆에서 방금 같이 합을 맞췄던 강수정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대본을 넘겨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연기와 자신의 연기는 별개라는 듯이.
“또또, 최태우 오바한다.”
“아니, 감독님. 저 진짜 감명받았다니까요? 감독님도 그러셨잖아요.”
최태우는 가슴에 손을 얹고 이번 건 정말 진심이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을 듣고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는지 차일남도 우리 두 사람을 보며 엄지를 치켜 들어줬다.
“그건 그래. 잘하는 줄 알고는 있었지만 놀랍더라. 둘이 처음 호흡 맞춰보는 건데 아주 잘해줬다.”
“감쨥니다.”
“…감사합니다.”
수줍게 말하는 남연수는 칭찬을 받는데 상당히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러지?
연기하는 걸로 보면 소문대로 제법 뛰어난 실력이었다.
여기저기서 칭찬 많이 받아봤을 것 같은데 의외였다.
의아하게 남연수를 살피는데, 한유주도 거들었다.
“둘 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감정을 아주 잘 파악해준 거 같아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세요. 지금 딱 좋았으니까.”
“네, 작가님!”
“대본이 너무 좋아서 그래요, 작가님.”
어쭈, 대본이 너무 좋다고?
보아하니 남연수도 사회생활을 제법 잘하는 모양이다.
여덟 살답지 않은 대답을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도 한다.
요즘 애들한테는 저런 것을 가르치는 곳도 따로 있으려나.
성지훈과 같은 아이들처럼 남연수도 연기 학원인가 뭔가에 다니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까 처음 내가 회의실에 들어왔을 때도 그랬다.
다른 배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남연수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이질감이 들었달까.
아직 여덟 살이면서 나와 다르게 어머니와 같이 오지 않은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나저나 한유주가 저렇게 말하다니, 다행히 캐릭터 분석 방향이 맞은 모양이다.
나는 확답도 들었겠다 한결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대본 리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다음 장면은 나는 안 나오고 남연수가 맡은 지해성이 나오는 장면.
“저는 괜찮아요, 아빠. 잘 다녀오세요.”
어라?
뭔가 걸린다.
나는 들리는 대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묘하게 회의실에서 인사를 나누던 남연수와 지금 남연수가 연기하고 있는 지해성이 겹쳐 보이는 기분.
한유주가 본래의 남연수를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있어서 현실의 남연수를 그대로 지해성이라는 캐릭터에 녹여낸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한유주는 본래 장편 드라마 대본은 작성하지 않고 단막극 위주로 집필했었는데, 거기서 남연수를 만났을 가능성은 상당히 적었으니까.
시종일관 바르고 착한 아이를 연기하고 있는 남연수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슬픔에 빠진 아빠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철이 들어버린 지해성.
지해성과 연기 중인 아닌 남연수가 비슷해 보이는 건 내 착각인 건가.
마치, 대본 리딩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도 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남연수를 지켜보던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말았다.
지금 하고 있는 연기가 영 못 봐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장 분란을 일으키고 있는 건 아니니, 일단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
드라마는 생각보다 시작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대본 리딩은 물론, 협찬이며 뭐며 하며 여러 미팅을 가졌다.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 5월도 어느새 반이 지나갔다.
오랜만에 아무 미팅 없는 날.
부쩍 따뜻해진 화창한 날을 맞이해 우리 가족은 나들이를 나왔다.
용인에 있는 ‘해피랜드’에서 봄꽃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내가 아버지를 조른 덕분이었다.
‘아빠, 나 바쁘게 일하기 전에 저기 가서 놀고 싶어요. 엄마랑 아빠랑. 나 계약금도 들어와써! 엄마가 그랬어!’
위풍당당한 내 발언에 아버지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다.
덕분에 오늘 치킨집은 삼촌과 알바생들이 맡게 되었다.
이 시즌이 되자 툭하면 TV에 대문짝만하게 ‘해피랜드’의 로고가 떠오르는데 안 보는 게 더 힘들었다.
TV로 볼 때도 정신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들어와 본 ‘해피랜드’는 더욱 굉장했다.
일단 입장권이 생각보다 비쌌다.
이제 아버지의 치킨집이 잘된다지만…….
한 사람 입장권이면, 치킨이 몇 마리야…?
계약금이 들어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를 끊고 들어오니 사람들은 어찌나 많고, 시끄러운지.
나는 고개를 휙휙 돌리며 요란한 소리가 나는 놀이기구들을 정신없이 구경했다.
신기해서 쳐다본 건데 어머니는 내가 타고 싶어 하는 줄 아셨나 보다.
내 손을 이끌고 회전목마니, 범퍼카니 하는 걸 같이 타자고 하셨다.
어린 애도 아니고 이런 걸 왜 저렇게 좋아하나 싶었다.
마지못해 타는 거라고 생각하며 흔들거리는 목마에 올랐는데…….
“우아!”
나는 그만, 너무 신나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그대로 어머니의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렇게 재미난 것이 있었다니!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 뒤로도 여섯 살인 내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한 차례 돌아본 다음, 봄꽃 페스티벌이 열리는 광장으로 향했다.
꽃보다 사람들이 더 많은 느낌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양손에 어머니 아버지의 손을 잡고 꽃밭을 거니는데… 이번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과거, 바텐베르크 성은 훌륭한 정원으로 에워싸여 있어서 꽃밭이 이토록 귀한 것인 줄 몰랐다.
오랜만에 향긋한 꽃내음을 실컷 맡았더니 몸속이 절로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노아였을 시절부터 나는 향기로운 것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때도 생화나 향수를 즐겨 맡았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올 줄이야.
아버지를 졸라서 오길 참 잘했다.
“우움, 맛있어.”
“이것도 먹어봐 시우야.”
꽃밭에서 길고 긴 포토타임을 가진 후, 지친 다리도 쉴 겸 근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한 햇빛을 막으라고 파라솔도 처져 있는 자리였다.
그 김에 셋이서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도 먹기로 했다.
마침 허기가 졌던 터라 나는 김밥을 야무지게 집어 먹고 어머니 아버지가 주시는 음식도 날름날름 받아먹었다.
“새벽부터 준비한 보람이 있네.”
“여보, 이 계란말이는 너무 짠 거 같은데…….”
“응? 계란말이가 왜?”
우리는 알록달록한 도시락을 펼쳐놓고 열심히 식사를 했다.
그러다 계란말이를 먹은 아버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이런, 내 특제 계란말이를 먹고 저런 표정을 짓다니!
“내가 간했어!”
간을 했다기보다 소금을 잘못 쏟은 것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머니가 말아주셔서 모양은 아주 예뻤다.
“…아 그래? 시우야, 너무너무 맛있다.”
“웅! 그럼 아빠가 다 먹어.”
그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계란말이를 아빠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싼 샌드위치를 베어먹었다.
아버지는 당했다는 듯이 울적한 얼굴로 계란말이를 마저 드셨다.
“당신도 봤다면 좋았을 텐데. 시우가 대본 리딩장에서 진짜 제일 잘하더라니까?”
“진짜? 아쉽네. 아빠도 우리 시우 활약하는 거 봐야 되는데.”
도시락을 먹다가 화제는 내 대본 리딩으로 옮겨갔다.
적당히 배가 찬 뒤로는 방울토마토를 집어 먹던 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도 다들 굉장해.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받아치고, 또 희성 아조씨가 저번에…….”
나는 대본 리딩 현장을 궁금해하는 아버지에게 아주 소상히 이것저것 말씀드렸다.
생생한 내 표현이 감명을 받으셨는지 아버지는 열심히 내 말을 들어주셨다.
그러다가 계란말이를 기어코 다 먹은 아버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으… 나 음료수 좀 뽑아올게.”
“나도 갈래! 나도! 펭펭 음료수 있나 볼래.”
그 말에 나는 얼른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자판기를 찾았다.
줄지어 있는 자판기 앞에 도착해 무슨 음료수를 먹을까 궁리하던 중이었다.
“거기, 잠깐만요! 자제분이 너무 귀여우시네.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붙였다.
“연예인 해볼 생각 없니?”
뭐라는 거지. 이 대학로 아이돌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