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시우야, 옷 갈아입을까?”
삼촌의 부름에 뒤를 돌아봤다.
내 입가에는 뻘건 초장이 잔뜩 묻어있었다.
남연수가 날 골탕 먹이려는 줄 알았는데 초장은 진짜 달았다.
연속으로 세 점을 먹은 다음에는 혀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아 물을 마셔야 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그렇게 남연수랑 둘이서 조용히 회를 정신없이 집어 먹고 있는데 삼촌이 부른 것이다.
“우웅?”
“아이고, 입에 다 묻히고 먹고 있었어. 뭐야? 우럭? 그렇게 맛있었어…?”
“웅.”
“크크. 잘 먹었나 보네. 이제 어두워져서 불꽃놀이 시작할 거 같던데.”
“헉! 갈래.”
나는 폴짝 일어나서 삼촌의 손을 잡고 우리 숙소로 향했다.
“만세, 해봐.”
“웅.”
경건한 마음으로 이번 여행을 위해 삼촌과 함께 산 옷으로 갈아입었다.
여름이라지만, 밤에는 쌀쌀한 바닷바람이 몰아친다.
무슨 옷을 살까 하다가 후드에 귀여운 동물 귀가 달린 옷이 있었다.
이건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린애 옷 같다는 생각에 관두려고 했는데, 거기 직원들이 너무 귀엽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구매해줬다.
이걸 입으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거라나?
“흠, 됐어.”
“이제 나갈까? 잠깐, 누나가 이 옷 입고 사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어.”
“웅, 저기서 찍을까?”
나는 삼촌의 말에 얼른 벽에 가서 포즈를 취했다.
삼촌은 진지하게 사진을 찰칵찰칵 찍은 뒤 잘 나온 걸로 나에게 보여줬다.
“첫 번째랑 세 번째.”
“오케이. 누나가 진짜 좋아하겠다.”
어머니에게 사진을 보낸 뒤, 우리 둘은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나를 발견한 스태프들은 하던 걸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헉, 시우야……. 그 옷 뭐야?”
한 사람의 말에 하나둘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는,
“너무 귀여워!”
“귀여워!”
이거지.
나는 삼촌 손을 잡고 방긋 웃어주며 쏟아지는 ‘귀여워’ 세례를 기꺼이 맞았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중에 그 옷가게에 한번 더 찾아가야겠다.
뭘 좀 아는 사람들이었다.
팬서비스로 후드도 써주고 벗어도 주고 사진도 찍어준 다음에 불꽃놀이가 제일 잘 보일 명당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읏차.”
“춥지는 않니?”
“네!”
내가 앉은 걸 보고 차일남이 한번 묻고는 지나갔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한유주 작가가 쓴 대본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차일남의 연출도 그랬다.
이들은 사람 냄새나는 드라마를 찍고 싶어 하는구나,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차일남의 현장에서는 스태프들끼리도 굉장히 친해 보였다.
오죽하면 매니저로 매 촬영장 함께하는 삼촌이 이런 현장은 정말 처음 본다고 나에게 말해주었을 정도였다.
촬영 현장을 이 드라마의 기운에 물들이고 싶은 것도 연출가의 욕심일 것이다.
아마 그래서 오늘 이런 시간을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 내가 오늘 이 옷을 굳이 가져와서 갈아입은 건 다른 뜻이 아니었다.
차일남이 만들고 싶어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었던 거다.
이전에 김상철이 말했듯이 ‘주인공은 극 외에서도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고 말이다.
정말 내 욕심이 아니었다.
정말이다.
피융!
“와아-”
“멋있다.”
선인장 팀이 모여 있는 해변가.
몇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평선 위로 폭죽이 터졌다.
“여름에 바다에 왔으면 역시 폭죽이지.”
“그런데 아까 보니까 진짜 많이 사 왔던데 그래도 돼요?”
“그럼, 여기 해변에 오늘 우리밖에 없다고 그랬고 주인한테도 우리가 다 치우고 간다고 했어.”
불꽃놀이를 준비한 스태프가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걸 들으며 깜깜한 하늘을 정신없이 올려다 보았다.
앉은키가 작아서 그런가.
고개가 한없이 뒤로 꺾였다.
어떻게 불꽃이 하늘에서 터질 수가 있지.
이건 놀라운 발명품이다.
게다가 멋지다.
“우아. 우아아.”
난생처음 보는 폭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하, 시우야 그렇게 신기하니?”
“네. 이런 거 처음 봐요.”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문희성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려주었다.
한쪽 팔로 나를 들어 올린 문희성의 품에 편히 안긴 나는 한결 편안하게 폭죽을 구경할 수 있었다.
덕분에 고개가 조금 덜 아팠다.
피융. 피융.
검푸른 밤하늘에 붉은 폭죽이 끝도 없이 피어올랐다.
주변에는 모든 스태프들이 좋아라 하며 폭죽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더 한꺼번에 터트려 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
모두가 즐겁게 폭죽놀이를 보고 있었다.
배우들도 다 자리하고 있구나, 했는데 한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응?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숙소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홀로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강수정이 있었다.
간간이 터지는 폭죽에 번쩍이는 그녀의 얼굴이 유독 고독해 보였다.
***
다음날 오전 촬영 현장.
“여기 자연광 많이 들어오니까 조명 이쪽으로 옮기자.”
“네, 잠시만요. 어이! 거기 조심해. 전선 다 밝힌다!”
“여기 오디오 체크 한 번 더 해주세요. 바람이 쎈 거 같은데.”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 오늘의 촬영 장소였다.
준비부터 촬영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오전 일찍 준비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수고 많으십니다.”
나는 숙소에서 분장까지 마치고 촬영 현장에 나타났다.
옆에는 오늘도 삼촌도 함께였다.
가게 안쪽을 보자 오늘의 촬영 상대인 강수정은 이미 와 있었다.
“시우 왔니? 준비 거의 다 끝나간다.”
“네.”
차일남의 말을 들으며 강수정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어? 연수 형?”
“좋은 아침.”
“시우야, 안녕.”
안쪽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아직 촬영 순서가 아닌 최태우와 남연수도 와 있었다.
너무 조용해서 와 있는 줄도 몰랐네.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아직 차례도 아닌데.”
“어차피 이다음에 바로 촬영인데 뭐. 두 사람 연기하는 거 구경할 겸 연수랑 같이 나왔지.”
최태우는 넉살 좋게 대답했다.
나는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강수정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어제 저녁을 먹고 불꽃놀이를 하면서도 두 마디? 그 정도밖에 대화를 안 했다.
어김없이 오늘도 강수정은 아주 조용했다.
흐음, 오늘도 촬영 전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긴 그른 것 같았다.
하지만 방법이 다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의 입을 여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입을 열어본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수다쟁이가 된 경험이 있었다.
내가 노아 바텐베르크일 시절 몸담았던 오스카 극단.
그 오스카 극단이 어떤 곳인가,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배우를 가만히 못 두는 곳이었다.
입 다물고 있는 배우는 일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게 바로 오스카 피트와 그가 데리고 있는 배우들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말을 많이 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던 것이지.
갑자기 극단장이 데려온 어린 배우.
거기다 오자마자 꽤나 큰 역할을 맡긴다는 오스카의 말에 배우들은 나를 경계하느라 말도 잘 걸지 않았다.
내가 귀족으로 살아온 덕에 넉살 좋게 녹아들지 못한 탓도 있다.
이런 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내게 말을 걸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내 끝내주는 연기를 제대로 보고 난 후였다.
‘어이, 신입.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다소 껄렁해 보이는 이 한마디가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쉬는 시간마다 연기를 할 때보다 목을 더 혹사시킬 정도로 말이 많아졌다.
이 끝없는 수다는 무대 위에서 맞닥뜨리는 위기를 다른 동료들과 쉽게 넘길 수 있는 양분이 되어 주었고 말이다.
연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닌가.
아무리 껄쩍지근한 사람이라도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보이면 말을 걸고 싶은 게 배우들의 심리다.
연극 무대든 드라마를 위한 것이든 그건 이제 상관없었다.
강수정 역시 소통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연기를 좋아하는 건 확실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저번처럼 그런 진심이 담긴 연기를 할 리가 없으니까.
나는 오늘 강수정과의 대화를 시도해볼 작정이었다.
어차피 배우는 연기로 대화하는 족속들이니까.
***
푸른 바다가 그대로 내다보이는 식당의 창가 자리.
우주(한시우)와 한지혜(강수정)가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다.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해지는 바다.
날씨는 또 어찌나 좋은지 저 풍경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끝내주는 풍경과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데도 우주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우주야, 이것도 먹어볼래? 재료가 엄청 싱싱하다?”
갑작스럽게 시골로 이사 오게 된 이후로 우주는 밥도 잘 먹지 않고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오늘은 일부러 바깥으로 나온 한지혜다.
기분을 풀어주려고 아들의 숟가락과 밥공기에 이것저것 반찬을 넣어주자 우주는 말없이 잘 받아먹는다.
이사 오고 나서 이렇게 잘 먹은 적이 없는데, 이상한 마음에 한지혜는 우주의 표정을 살핀다.
아무래도 무거운 마음에 한지혜는 우주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우주야, 괜… 찮은 거지?”
“…….”
하지만 우주는 대답이 없다.
밥도 잘 받아먹는 걸로 봐서는 괜찮은가 싶은데, 표정을 보면 또 영 아닌 거 같다.
겉으로 봐서는 문제없는 장면.
하지만, 지금 한지혜를 연기하는 강수정의 머릿속은 순간 복잡해졌다.
‘뭐야?’
원래 여기서 우주의 대사가 바로 나와야 한다.
말없는 한시우를 마주하고 있는 강수정은 이대로 연기를 이어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대사를 잊은 건가, NG 외쳐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을 때였다.
마주보고 있던 우주의 입이 열렸다.
“엄마는?”
“어, 어……?”
차일남을 바라봐야 하나 고민하던 강수정은 얼결에 그렇게 대답해버렸다.
대본에 없는 대사.
갑작스러운 한시우의 애드립에 강수정은 표정이 구겨질 뻔했다.
변덕스러운 아역 배우가 아니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변칙이 있을 줄이야.
NG인 거 아니냐고 말하려던 찰나, 한시우가 또 입을 연다.
“엄마는… 괜찮아?”
우뚝.
젓가락질을 하던 강수정이 멈췄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제대로 된 애드립이었다.
아마 지금 NG인가 아닌가 안절부절못하던 모습과 애드립에 놀라서 멈춘 행동 역시 극 중 한지혜의 것처럼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겼을 것이다.
당황을 넘어 재빨리 상황 파악을 마친 강수정이 천천히 그에 답했다.
“뭐……?”
아들의 속내를 제대로 알아보자.
이토록 엄마의 심정을 알아주고 먼저 물을 정도의 아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아 짧게 되묻는 게 전부였다.
동시에, 한시우가 또 뭐라고 받아칠까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엄마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고.”
이 대사는 원래 한지혜가 뱉을 예정이었다.
-우주가 괜찮으면 엄마도 괜찮아. 우주가 좋으면 엄마도 좋으니까.-
그 대사를 가로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앞뒤 상황도 완벽하게 조정해서.
이혼가정의 일곱 살 아이가 가질 법한 눈치였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고 최대한 자신의 상황을 체념해서 받아들이는 것.
한시우는 지금 엄마의 속내를 다 아는 것만 같은 애처로운 일곱 살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서 그런 한시우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자, 마무리까지 맺어준다.
“여긴 앞에 바다도 있고, 공기도 좋고… 그리고 엄마랑 이렇게 밥도 같이 먹을 수 있잖아. 그러니까 난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는다.
시골에 이사 오고 나서 처음으로 지어주는 아들의 웃음.
그 대사를 들으면서 강수정은 정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엄마랑 이제 이렇게 매일매일 밥 먹을 거야.”
우주는 차라리 잘되었다, 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말을 맺는다.
그 얼굴을 보면서 강수정은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