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연수 형아. 매운탕 별로야?”
“어? 어…… 나 이런 탕은 별로 안 좋아해서. 일류 배우는 나트륨이 많은 음식은 피해야 한다 했어.”
신경이 쓰여서 내가 먼저 말을 붙였다.
남연수는 맨밥만 깨작거리다가 내 물음에 우물쭈물 대답했다.
음. 일류 배우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아이들 입맛에는 이런 칼칼한 탕이 별로일 수 있었다.
나는 옆 테이블에서 장조림, 부침개 같은 반찬을 더 집어다가 남연수 앞에다가 밀어주었다.
“이거 맛있어. 더 먹어.”
“고마워 시우야.”
“아니야.”
그러고 있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남연수 매니저는 어디로 간 건지.
애 옆에 붙어서 밥 먹는 거나 좀 신경 쓸 것이지.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차일남 옆에 딱 붙어서 술을 마시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저것도 저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자.
“시우 넌, 연기도 잘하고 주위 사람들하고도 쉽게 친해지는 거 같아. 대단해. 일류 배우가 되기 위해 그런 점도 필요하다 했는데.”
“응? 아아, 그런가?”
이게 다 오스카 극단에서 구르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렇다.
극단은 팀워크가 중요하다면서 다들 어찌나 나를 못살게 굴었는지.
그때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지금 남연수의 또래가 나뿐이어서 그런 걸까.
묘하게 남연수를 혼자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저번 주에 너랑 수정 선배랑 나오는 장면. 정말 좋더라.”
남연수는 내가 밀어준 장조림을 잘 집어 먹으며 대뜸 내 칭찬을 했다.
보면 볼수록 참 바른 아이인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러는 형도 방에서 혼자 독백하는 씬 괜찮던데?”
“진짜? 느낌 괜찮았어?”
내 칭찬에 남연수는 볼을 발그레 물들였다.
촬영하는 내내 지켜봤는데 남연수는 칭찬이나 그 비슷한 말만 들어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칭찬 듣는 게 많이 서툰가?
“아! 나 RUN 공연할 때도 연수 형 이름 들은 적 있어. 성지훈이라고, 알아?”
“아, 지훈이 형. 응. 알아.”
“둘이 친구라던데, 친해?”
“…지훈이 형이 나보고 친구랬어?”
“응. 나한테 그랬어.”
그래서 그런지 자기 친구를 제치고 갑자기 튀어나온 내가 주연을 맡은 걸 얼마나 싫어하던지.
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성지훈이 자기보고 친구라고 했다는 한마디를 듣고 저렇게 좋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응, 맞아. 우리 친구야.”
저 반응을 보면 둘이 친구라는 성지훈의 말도 의심해볼 법하다.
아니지. 성지훈 하는 짓을 보면 그 정도로 남연수 실력을 인정하는 걸로 보아 친구일 수도 있겠다.
“근데 왜 연수 형은 RUN 오디션 안 봤어? 지훈이 형이 같이 못 해서 되게 아쉬워하던데. 제시카도 연수 형 이름 언급한 적 있어.”
내 말에 남연수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큰 소리로 물었다.
“진짜?! 제시카가 날 알고 있었어?”
“어? 어어.”
이렇게 좋아하면서 왜 오디션에 참가 안 했지?
제시카가 자기를 알고 있다는 소리에 좋아하던 남연수는 곧 풀이 죽어 시무룩해졌다.
“응? 오디션 나오기 싫었어?”
이쯤 되니 진짜 궁금해졌다.
반응을 보면 절대 하기 싫어한 것은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남연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빠가 안 알려줘서 몰랐어. 오디션 일정은 우리 아빠가 짜주시거든.”
“아, 아빠가?”
역시나, 지난번 독서 수업에서 이혜인을 보고 괜히 남연수가 오버랩돼 보인 게 아니었다.
두 사람 다 비슷하게 부모님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구나.
애초에 연기를 좋아하는 건 맞을까?
억지로 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만약 억지로 하는 거라면, 남연수의 빛나는 재능이 너무도 아깝게 느껴질 테니까.
잠깐 고민이 되었다.
이걸 그냥 둬, 말아?
고민하던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밥을 깨작거리는 남연수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예전에 공작가의 충실한 막내아들로 살던 내 과거가 자꾸 떠올라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에잇, 딱히 어려울 것도 없고.
한번 나서보지 뭐.
***
다음날은 어제 폭우가 쏟아졌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화창한 날씨였다.
오늘은 때마침 오전 오후 모두 남연수와 내가 단둘이 촬영하는 날이었다.
촬영 준비가 한창인 현장에서 우리 둘은 나란히 나무 그늘 밑에서 대기 중이었다.
어김없이 오늘도 대본을 펼쳐두고 거기에 빨려들어 갈 듯이 보고 있는 남연수를 관찰했다.
나는 이미 대본은 씹어 먹은 것처럼 완벽하게 숙지했으니 더 볼 필요는 없었다.
제2의 강수정이야 뭐야.
오늘은 둘이서 촬영하는 날인데,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연기에 대한 의논은 또 물 건너간 것 같았다.
밥 먹을 때는 곧잘 말을 붙이는 남연수지만, 현장에서는 인사만 하고 저놈의 대본에서 손을 놓질 않는다.
말을 걸 타이밍이 없어서 나는 멀거니 생각을 정리하며 남연수에게 무언가 특이점은 없나 관찰하는 중이었다.
흥행도 하고 있겠다, 나는 이번 드라마에 점점 더 욕심이 났다.
필모그래피는 곧 배우의 얼굴이다.
출연작이 흥행하는 것만큼 배우에게 좋은 일이 또 있을까?
RUN 공연이 잘 되어서 차일남이 날 찾아온 것처럼.
이번 드라마가 더 잘 되면 아마 더 좋은 작품이 마구 밀려들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이번 드라마에서 내 연기력을 뽐내주어야 하는데…….
상대역하고의 케미를 만들려고 해도 상대역이 저 모양이니 뭘 할 수가 없다.
남연수하고 무언가 의논을 하고 싶지만, 저 애는 대본에 갇혀서 무언가를 더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촬영한 경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석대로.
대본대로.
그 이상 무언가를 첨가하거나 시도하지 않는 배우.
물론 대본 그대로를 소화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같이 호흡을 맞추는 데 그리 신명 나는 상대역은 아니었다.
강수정도 대본만 파는 스타일이긴 했어도, 말을 트고 나서는 서로의 감정선이나 해석을 주고받고 매 촬영이 흥미진진해졌는데 말이다.
나참.
대본을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는 것에 저리도 사로잡혀 있다니.
저렇게 강박적이라면, 해석의 자유 같은 건 생각해보지 않았을 확률이 컸다.
아아, 내 친우 셰익스피어가 보면 아주 울면서 땅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재능은 있어 보이는데 그걸 펼칠 생각이 없는 배우라니.
하지만, 남연수는 아직 어린아이다.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남연수가 연기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
“우주야.”
지해성(남연수)은 넓은 집을 돌아다니면서 제 동생을 찾는다.
새 엄마 한지혜와 아빠 지현우는 재혼해서 같이 살게 되었다.
그리고 지해성은 새롭게 동생, 강우주(한시우)가 생겼다.
첫 만남에서 ‘너는 형도 뭣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지해성이지만, 매일 밤 한숨을 푹푹 쉬는 아빠를 생각해서 지해성은 강우주와 잘 지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우주는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어른들이 없는 틈을 타 두 사람은 크게 싸우고 말았다.
아무래도 자신이 조금 더 나이가 많아 힘이 세고 키가 큰 탓에 우주가 더 크게 다치게 된다.
집에 돌아온 부모님은 두 사람의 몰골을 보고 할 말을 잃는다.
눈빛을 교환한 한지혜와 지현우가 각자의 아이를 타일러보고, 혼내도 보았다.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그 뒤로도 지해성과 강우주의 사이는 좋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재혼을 하고 행복해질 줄 알았건만, 행복은 왜 이리도 멀리 있는지.
한숨이 늘어가는 아빠를 보고 지해성은 결심한다.
자신이 서울에 있는 할머니 댁에 가겠다고.
우주가 조금 더 크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날이 오면, 그때 돌아오겠다고 말이다.
조금 더 머리가 크다고, 지해성은 우주의 사정을 이해했다.
자신의 엄마는 어릴 때 돌아가셨지만, 강우주의 친아빠는 바람이 나서 두 사람을 떠났다.
너무 어린 우주에게 아무도 그 사실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할 뿐이다.
언젠가 아빠가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우주 입장에서는 지해성과 새로운 아빠, 지현우를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었다.
몇 번이나 안 된다고 한 지현우지만, 아들 지해성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몰래 할머니께 전화까지 넣은 모양.
굳은 의지를 보이는 아들의 말에 지현우는 몇 날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그렇게 하기로 한다.
한지혜는 울먹이며 새로운 아들인 지해성을 꼭 안아주었더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짐도 다 보낸 후, 지해성이 할머니 댁으로 떠나는 날이 오늘이었다.
“우주야, 여기 있어?”
두 집을 합치는 것이기에, 한지혜와 지현우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아이들에게 각각 방을 주고도 남게끔.
지해성은 넓은 집을 돌아다니다가 놀이방으로 쓰는 방문을 빼꼼 열었다.
거기에는 문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혼자 책을 읽는 강우주가 있었다.
“……우주야.”
“…….”
지해성의 물음에도 우주는 등을 돌리지 않는다.
폭 한숨을 쉰 지해성은 결국 포기하고 작게 중얼거리듯 말한다.
“나, 갈게. 우주야. ……잘 지내.”
조용히 문을 도로 닫고 뒤돌아서는데 뒤에서 다다다- 소리가 들린다.
퍽.
“어디가, 너!”
“윽.”
지해성은 갑자기 가해진 충격에 비틀거렸다.
뒤를 돌아보자 허리춤에 놀란 얼굴을 한 우주가 매달려 있었다.
책은 저 멀리 내팽개치고 급하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어, 어……. 나 당분간 할머니 댁에 가 있으려고.”
“왜?”
“어, 음…. 우리가 맨날 싸우기도 하고. 그러면 부모님들이 곤란해하시잖아.”
“……나 때문에 가는 거야? 네, 네가?”
“…….”
차마 아니라는 말은 안 나와 지해성은 입을 다문다.
그리고 그냥 조용히 우주의 손을 자신의 허리춤에서 풀어내고 현관으로 향하려 했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가 마지막 대사를 쳐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지.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건 오늘로서 끝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서 준비한 애드립을 뱉었다.
지난번 강수정과의 촬영 이후, 애드립에 관해선 차일남이 어느 정도의 권한을 준 상태였다.
“……가지 마, 형.”
“어…?”
멈칫, 남연수가 멈춰 섰다.
원래 현관까지 나간 다음, 내 대사가 나갈 예정이었지만 그보다 빠른 타이밍에 다른 대사가 나간 것이다.
“뭐, 라고 했어……?”
오호라.
남연수는 놀란 표정으로 내게 되물어왔다.
반응이 제법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남연수가 어떻게 나올지 살피던 나는 울먹이는 눈으로 말했다.
애드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으, 혀, 형은…… 이제 내 형이잖아. 그런데 어딜 간다는 거야….”
“…지금까지 한 번도 형이라고…….”
도리어 내가 놀랄 뻔했다.
대본에는 전혀 없는 대사.
하지만 남연수는 그 대사를 받아 곧바로 새로운 대사를 뱉어냈다.
거기에 더해진 혼란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저건 연기일까, 아니면 당황한 남연수의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것일까.
“미안해.”
“……!”
“내가 미안해, 형아. 응? 앞으로 형이라고 잘할게.”
한 발자국.
나는 남연수에게로 그렇게 다가가며 애처롭게 말했다.
더 이상 가족을 잃고 싶지 않은 강우주의 간절함.
자신 때문에 또 엄마가 슬퍼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어린아이의 영악함도 깃든 표정이었다.
“……아니야. 그러지 마.”
주춤 물러난 지해성은 애써 울음을 참으며 바쁘게 현관 쪽으로 향했다.
원래 이 장면을 위해 짜인 마지막 동선이었다.
나는 남연수가 그리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며, 마찬가지로 대본 속 마지막 대사를 외쳤다.
“형아까지 가면…… 내가 진짜 혼자란 말이야! 흐어엉.”
유일하게 자신과 같은 처지인 지해성.
피 하나 섞이지 않은 형이자 동지.
매일 싫다고, 형도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
강우주는 지해성이 자신에게서 등 돌리고 떠나는 것이 생각보다 더 서러워 목 놓아 울어버린다.
나가려고 현관 앞에 다다른 지해성도 결국 참지 못하고 와앙 울음을 터트린다.
넓은 집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뒤엉킨다.
그리고 내 머릿속도 뒤엉켰다.
애드립을 이렇게 잘 받아칠 정도면 도대체 왜 그렇게 대본에 집착하며 파고드는 거란 말인가.
남연수 이놈….
내 호기심을 이렇게나 자극하는 것은 한시우 인생 6년 만에 단연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