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67
67화
“그래, 한 번 해보자.”
애드립으로 촬영을 진행해도 되냐는 배우의 요청.
실력도 되지 않는 배우가 이렇게 요구해 온다면 맹랑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일남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시우의 말이기에 한번 해보라고 했다.
이미 촬영 스케줄은 넉넉했고, 대본에 쫓길 필요도 없었다.
강수정과의 촬영 이후로 의 연출팀 전부는 한시우의 애드립을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 오전에 보여준 애드립도 좋았기 때문에 허락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한시우에게 끌려온 남연수의 안색이 나빠 보이기는 했지만 둘이서 뭐라고 숙덕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무언가 이야기가 되었나 보다 싶었다.
그리고 남연수의 애드립 제안이라니.
한시우와 함께 와서 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아이가 먼저 와서 이런 제안을 하는 건 이전에 함께했던 작품 때는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솔직히 절로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차일남은 한시우가 촬영 현장을 완전히 바꾸고 주도하고 있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는 사람 중 하나였다.
제멋대로 하고 엉망으로 군다면 미워하겠지만, 촬영하는 족족 결과물이 마음에 드는데 밉게 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흐음…….”
차일남은 자신이 너무 쉽게 생각한 건가 고민에 빠졌다.
촬영이 시작되고 한시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화면 안에 보이는 남연수의 표정이 영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직 너무 시기상조였나.”
“네? 감독님, 뭐라고 하셨어요?”
“아, 아니. 아니야.”
후배 조연출의 물음에 차일남은 재빨리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 조연출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작게 속삭였다.
누가봐도 지금 남연수의 표정은 제대로 연기를 이어나가기 힘들어 보였다.
“……NG 내고 한번 쉬어갈까요?”
“으음, 잠깐. 시우한테 조금만 더 맡겨보자.”
조연출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던 차일남은 웬일로 고개를 절레 저었다.
그 말에 조연출을 비롯한 주변 스태프들은 살짝 놀랐다.
“어… 네.”
다른 베테랑 배우들도 아니고, 이번에 드라마 촬영이 처음인 한시우에게 이 상황을 맡겨본다고?
거기다 한시우는 남연수보다 어린 여섯 살이었다.
고작 여섯 살!
아무리 자신들도 한시우를 인정한다지만, 지금 차일남이 저 작은 아이에게 보여주는 믿음은 실로 놀라울 수밖에.
남연수 표정이 저렇게 굳었는데 불러다가 뭐라 조언이라도 해줄 줄 알았건만,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총책임자는 차일남이었다.
조연출은 차일남의 결정에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촬영 현장을 돌아보았다.
“그, 그렇지만…! 켁, 큼. 죄송합니다. 한 번만 다시 할게요.”
“그래, 연수 조금 침착하게 가자.”
벌써 세 번째 대사 실수.
저러는 애가 아닌데 남연수는 오전보다 잦은 실수가 늘었다.
‘역시 대본이 없으면 안 되는 건가.’
남연수가 한시우의 손에 이끌려 자신을 찾아왔을 때, 아이의 손에 ‘대본’이 없다는 걸 바로 눈여겨본 차일남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차일남은 남연수가 대본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쉬쉬하며 비공개지만, 차일남은 남연수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자신과는 다른 소속이지만, 그 역시 방송국의 PD.
그것도 꽤나 입김이 센 PD였다.
교양, 예능을 거쳐 지금은 드라마국을 꽉 잡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인 남연수의 아버지는 야망과 욕심이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남연수가 직접 보여준 적은 없었지만, 항상 들고 다니는 구깃한 대본에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참견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연기 학원도 가끔 보내고 직접 아들의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 데뷔한 남연수가 천재 소리를 듣는 건 모두 그 혹독한 과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혹자는 남연수가 너무 불쌍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남연수의 존재를 기꺼워했다.
모두가 기다리던 말썽 안 부리고 연기 잘하는 천재 아역 배우의 등장.
알게 모르게 모두가 남연수의 존재를 환영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연수의 사정을 잘 모르기도 했지만, 아는 이들도 남연수 역시 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차일남도 아이가 좋아한다면 상관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본이 없어졌다고 저렇게까지 흐트러지다니.
저건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 이제야 든 것이다.
‘지금은 시우에게 한번 맡겨볼 수밖에.’
대본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한시우가 먼저 ‘애드립’을 운운한 걸 보면 그 아이도 뭔가 눈치챈 것 같았다.
‘진짜 영리한 놈이라니까.’
차일남은 헛웃음을 지으며 이번 촬영이 끝나면 김상철에게 전화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아이를 어디서 발견해 키운 거냐고 말이다.
***
몇 번이고 대사를 씹는 남연수를 보던 한시우.
그렇게 또 다음 테이크가 시작되기 직전, 그가 갑자기 모래사장에 털썩 앉았다.
대본에 없는 그의 행동에 남연수가 살짝 놀라는 게 보였다.
차일남은 이때다 싶어서 얼른 큐 사인을 외쳤다.
“큐!”
우주는 지해성에게 귀찮다는 듯이 말한다.
대본에 없는 행동에 이어지는 건 당연히 대본에 없던 대사다.
“아, 그럼 형은 이거 말고 저걸로 하든가.”
“……너 되게 양보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 말투에 지해성은 어이가 없다는 듯 동생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주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럼 형이 양보 좀 하는 건 어때? 형이잖아.”
“이럴 때만 형 소리 하지, 강우주.”
그놈의 형, 형.
하라고 할 때는 절대 안 하더니 이렇게 자기가 불리할 때만 형, 형 거린다.
지해성은 다루기 힘든 동생에게 볼멘소리로 말했다.
그랬더니 또 방긋 웃으면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외쳤다.
“화낸다. 화낸다. 형 화내?”
“내, 내가 언제 화를 냈다고 그래!”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대본상 근처에 부모님이 앉아 있을 것이다.
마치 그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소리치는 우주의 말에 지해성은 소스라치게 놀라 목소리를 낮췄다.
쉬잇, 쉿.
조용히 하라는 듯이 동생에게 눈을 부라리는 지해성.
우주는 그 얼굴을 보면서 좋다는 듯이 낄낄거리고 웃는다.
오늘도 보기 좋게 동생에게 넘어간 지해성은 허탈하다는 듯 따라 웃어버린다.
“…컷!”
깜짝.
차일남의 컷 소리에 남연수는 깜짝 놀라서 메인 모니터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차일남이 있었다.
‘어, 어……? 나, 나 지금!’
남연수는 자신이 방금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얼굴로 제 볼을 만지작거렸다.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얼굴이 형편없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러면 안 된다고 되뇔수록 다 외웠던 대사도 제대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시우가 대본에 없던 행동을 해버렸다.
형제의 자연스러운 놀이 시간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가 점차 가까워지는 것도 보여줘야 했다.
한시우의 예상 밖 행동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방금 그 장면을 완성시킨 것이다.
남연수는 이래도 되나 싶어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차일남을 힐끔거렸다.
잠자코 모니터링에 들어간 차일남은 그 뒤로 말이 없었다.
어떡하지, 발을 동동 구르는데 모래사장에서 탁탁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한시우가 말을 걸어왔다.
“연수 형.”
“어?”
“형 방금 엄청 자연스러웠어.”
“……진짜?”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모쪼록 차일남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다행일 텐데 말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사형 선고라도 기다리는 듯 얼어있는 남연수에게 한시우가 툭 하고 말했다.
“응, 방금 어땠어? 재밌었어?”
“…….”
재밌었냐고.
남연수는 못 들을 말은 들은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었다.
한시우는 지금 자신이 방금 한 연기가 재미있냐고 묻는다.
그 말에 남연수는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재미, 재미라…….
갑자기 한시우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애드립을 할 때는 더럭 겁이 났다.
어쩌자는 건가 싶었고.
베테랑 배우들도 애드립을 주고받기 전에 상의라도 한다던데, 얘는 그런 것도 아니라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중간의 자신의 표정이 어땠더라?
분명, 지기 싫어서 막 내뱉었던 것 같다.
진짜 강우주한테 지기 싫어하는 지해성처럼.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말이 빨라지기도 했고, 열을 냈던 것도 같다.
목소리도… 조금 커졌던 것 같고.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다른 애들이랑 장난치고 놀 때처럼 말이다.
놀때처럼.
남연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을 보고서 히죽 웃고 있는 한시우에게 천천히 대답했다.
“응…. 엄청 재밌었어.”
***
“하아.”
기나긴 촬영이 끝난 후, 남연수는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한숨 돌렸다.
남연수가 자리에 앉자마자 남연수의 매니저가 얼른 아이에게 시원한 생수를 건네주었다.
“연수야, 오늘 컨디션 좋은데? 오늘 연기한 부분 하나같이 다 좋았어.”
“정말요?”
무더운 날씨에 조명 밑에 있으려니 땀이 송골송골 났다.
매니저는 열심히 애한테 부채질을 해주며 신나서 말을 붙였다.
“그러엄. 내가 오늘 연수 얼마나 잘했는지 아버님한테……. 아, 으음. 아니야. 하하.”
빠르게 말을 잇던 매니저는 아차, 싶었는지 말을 흐렸다.
평소 남연수에게 부친에 대한 말을 하면 컨디션이 나빠지기에 촬영할 때는 거의 말을 꺼내지 않는데,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오늘 남연수가 보여준 모습이 너무나 고무적이라 그랬다.
그런데, 시원하게 물을 들이켠 남연수의 반응이 의외였다.
원래 아빠 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해지는 아이인데, 오늘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에게 말한 것이다.
“아니에요. 오늘 저 진짜진짜 잘했다고 아빠한테 말씀드려주셔야 해요?”
“어?! 어어! 물론이지. 걱정 마 연수야.”
매니저는 놀란 마음에도 당연히 그렇게 해주겠다고 재차 이야기했다.
남연수는 확답을 받고서 신이 나는지 편안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원래 같으면 바로 대본부터 찾을 텐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렇지도 않는다.
‘어, 가만 보자…… 연수 대본이 어디 갔지?’
매니저는 이상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다.
이 몸이 또 나서줘야겠다.
“삼촌.”
“어? 왜 그래. 더워? 선풍기 틀어줄까?”
내 옆에서 부스럭거리며 짐 정리 중이던 삼촌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나는 주의 깊게 남연수와 남연수의 매니저 동향을 살피며 재빠르게 말했다.
“아니, 삼촌 연수 형 매니저랑 친해?”
“어, 뭐. 요즘 친해졌지?”
역시나.
이럴 때 삼촌의 친화력이 아주 도움이 된다.
도대체가 현장에서 안 친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럼 잠깐 저 사람 데리고 딴 데 가조. 나 연수 형이랑 할 말 있어.”
“뭐?”
의외의 말이었는지 삼촌의 눈이 커졌다.
아이참.
지금 한시가 급하구만.
나는 삼촌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말했다.
“빨리! 아이스크림이라도 좀 사다죠.”
“어, 어. 알았어. 저, 저. 성후 씨!”
삼촌의 내 말에 그제야 뭔가를 눈치챘는지, 급하게 남연수의 매니저를 불렀다.
남연수의 짐을 뒤적이던 매니저가 삼촌의 부름에 고개를 든다.
휴, 큰일날 뻔했네.
매니저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물론 찢어진 남연수의 대본은 우리 차에 있지만 말이다.
삼촌이 매니저를 데리고 떠나자 나는 자연스럽게 남연수의 옆에 앉아서 말을 붙였다.
“거봐, 하니까 되지?”
씨익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