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한시우의 광고와 관련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서 계약서를 검토해 본 후 며칠 후 다시 나누기로 했다.
“동욱이랑 저는 따로 할말이 좀 있는데…….”
“우웅! 그럼 저는 엄마랑 삼촌들한테 인사하고 올게요!”
김상철의 말에 한시우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카모마일 티도 이미 다 마셨겠다, 이 틈에 극단 배우들한테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시우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아유,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저야말로 제가 좋게 본 시우가 승승장구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
한시우의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상철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아들의 손을 잡고 극단장실을 나섰다.
달칵.
“그래, 동욱아. 너는 계속 시우 매니저 할 거냐?”
한시우와 그의 모친을 내보내고 김상철은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단둘이서 해야 할 말이 뭔가 싶었던 지동욱은 김상철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눈치였다.
“예…… 뭐. 그럴 생각인데요?”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는 지동욱을 한동안 살펴본 김상철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이제 내 선에서 시우한테 들어오는 연락 받기는 좀 벅차서 말이지. 더 늦기 전에 시우한테 좋은 소속사를 알아봐 주려고 하거든. 만약 동욱이 네가 정말 시우 매니저 일에 진심이면 너까지 그 소속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알아보려고 한다. 그전에 네 의중을 정확히 알아야 될 거 같아서 물어보는 거야.”
“……소속사요?”
그 말을 듣고 지동욱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한 매니저 자리가 맞기는 하지만, 소속사 산하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제 명실상부하게 진짜 매니지먼트 업계로 들어가게 된다.
배우가 아닌, 매니저로 말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 아니란 걸 알고 있는 김상철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극단에 있었던 지동욱을 생각해서 이렇게 말을 꺼내준 것이다.
정말 꿈을 포기하고 그 길로 가도 괜찮겠느냐고 말이다.
잠시 지동욱은 말이 없었다.
김상철은 그런 지동욱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커피를 들이켜며 그를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쉽게 정할 문제는 아니긴 하지. 그럼 조금 더 생각해보고 나중에…….”
침묵이 길어지자 김상철은 지동욱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동욱의 말이 더 빨랐다.
“…아뇨. 저 시우 매니저 제대로 해볼 겁니다. 제 자리까지 같이 알아봐 주세요. 극단장님.”
“동욱이 너, 진짜 괜찮겠냐?”
“네, 저 매니저 한다는 거 그냥 한 말 아니에요. 또 막상 해보니까 적성에도 맞는 거 같고요, 하하.”
자기가 한 너스레 한다며 웃는 지동욱의 얼굴.
무언가 굳게 결심한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후련하게 뭔가를 털어낸 사람의 얼굴이었다.
김상철은 한동안 환해 보이는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말리지는 않아야지.”
“제 나이가 벌써 28살인걸요. 누나 집에 얹혀사는 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제 다른 길로 가보려고요.”
활기차게 자신의 청사진을 말하는 지동욱을 김상철은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한때 배우를 꿈꾸며 자신의 밑에서 열심히 연기하던 후배를 바라보는 선배의 얼굴이었다.
지금은 저렇게 쾌활하게 말하고 있지만, 아마 며칠 잠을 설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가를 알기에 김상철은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하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돌아와. 다시 시작하면 되지. 나이가 뭐 대수냐?”
“다시 대걸레질부터 하라고요? 그건 힘들 거 같은데요…….”
정말 꿈이 안 잊혀진다면, 연기를 하고 싶다면 돌아오라고.
본인이 선택한 일이지만 낭떠러지로 몰고 싶지 않은 김상철의 마음이었다.
한때 같은 배에 태웠던 선원을 보는 선장의 마음이랄까.
돌아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과 돌아갈 곳이 있는데도 묵묵히 자신의 일은 하는 것은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진다.
극단으로 돌아와도 된다는 말에 지동욱은 뜨악한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그 모습에 김상철은 웃으면서 덧붙였다.
“하긴 동욱이 네 성격에 매니저 일 잘할 거 같기는 하다. 네가 또 그런 건 잘하지. 극단 식구들하고도 좀 일찍 친해졌냐?”
“하하, 제 적성 이제 찾은 거 같기는 해요.”
“그래, 열심히 하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
“……네, 감사합니다.”
괜한 위로로 말이 길어지는 건 오히려 지동욱을 위한 배려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김상철은 꾸벅 고개를 숙이는 지동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
집으로 가는 차 안.
나랑 어머니는 뒷좌석에 나란히 앉고, 삼촌이 운전대를 잡았다.
“휴.”
극단 삼촌들과의 만남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방영 중인 가 성공적이어서 그런지 반응이 아주 뜨거웠던 것이다.
사인에,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서 나는 일렬로 줄을 서라고 했다.
시끄럽게 떠들던 배우들이 모두 얌전히 줄을 서는 모습이 얼마나 재밌던지.
실컷 사진도 찍고 연기 잘 보고 있다는 칭찬도 듬뿍 들었더니 배가 다 부른 기분이었다.
주기적으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나가는 창밖 풍경을 멍하니 보다가 툭 말했다.
“광고 재밌을 거 같아요. 빨리 찍고 싶다.”
그러면 2천만 원이 들어오겠지?
나는 절로 신이 나서 다리를 동당거렸다.
“그래? 시우 광고 찍고 싶었어?”
“웅, 인기 많은 사람들이 찍는 거라고 했어. 희성 아조씨도 찍었고.”
“그건 그러네. 문희성 씨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면 되겠다.”
“우웅!”
어머니는 들뜬 내 모습을 보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언제 이렇게 커서 돈도 벌고……. 엄마가 시우 덕분에 호강하게 생겼네?”
아, 또 씁쓸한 얼굴.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보다가 어머니의 품속에 폭 안겼다.
어린 내가 벌써부터 돈을 버는 게 안쓰러우신 걸까.
그럴 필요 없는데 말이다.
속은 이미 다 큰 성인이라구요.
새로운 생을 선물해주셨는데, 이 정도 효도는 해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헤헤.”
“웬일이야. 우리 시우가 이렇게 어리광을 다 피우고.”
먼저 잘 안 안기는 내가 이러니까 어머니도 제법 기분이 풀어지신 모양이다.
어머니 표정이 풀린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운전석에서 들뜬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오오, 시우야. 광고비 받아서 뭐 할 거야? 이제 부자 되는데 말이야!”
“음, 음……. 엄마 차 사줄 거야!”
“헉.”
내 말에 삼촌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어머니는 놀라서 되물으셨다.
“그래? 시우가 엄마 차 바꿔주려고?”
“웅! 내가 맨날 차 가져가서 엄마 차 없잖아. 내가 이번에 받은 광고비로 차 사줄게! 음… 2천만 원으로는 차 못 사?”
삼촌이랑 어머니가 너무 놀라는 거 같아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셨다.
가만히 생각하던 어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물으신다.
“하하, 시우가 사고 싶은 건 없니?”
“우움. 엄마 차 사주고 남으면 희성 아조씨네 있는 커다란 TV를 살 거야!”
“으하하, 시우 너 다운 생각이다.”
삼촌은 TV를 산다는 내 말이 퍽 웃겼는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웃던 어머니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드신 건지 웃음이 사라지셨다.
“근데 시우야…. 그렇게 큰 TV는 우리 집에 놓을 수가 없어.”
“……문희성 씨네 TV가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어머니의 진지한 말에 삼촌은 질려서 물었다.
내가 평소에 문희성의 집에 다녀와서 커다란 TV를 봤다고 자랑할 때는 실감 나지 않았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엄청나게 큰 TV라고 했는데 사람 말을 믿지도 않고, 참.
“음……. 그럼 안 되는데.”
커다란 TV 말고는 지금 딱히 사고 싶은 게 없다.
우리 집에 그 TV가 안 들어간단 말이지.
좋다.
그럼 일단 집부터 커다란 곳으로 이사 가야겠다.
속으로 착착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삼촌이 백미러로 어머니를 힐끔힐끔거린다.
운전은 안 하고 왜 저러는 거지?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이 우물쭈물거리던 삼촌이 어머니에게 슬그머니 말을 흘렸다.
“근데 누나……. 누나 이 차… 정 되게 많이 들지 않았어?”
“뭐?”
“아니, 이거 누나가 계속 끌고 다니던 차고, 갑자기 새 차가 되면 적응이 힘들지 않을까…… 해서.”
얼씨구.
내가 차를 사준다니까 삼촌은 지가 새 차를 끌고 싶은가 보다.
연기를 했다는 사람이 저렇게 표정 관리가 안 되어서야.
마음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데 어머니가 내 머리통을 꼭 끌어안으셨다.
“우리 시우가 엄마 새 차도 사준다고 하고. 우리 시우 다 컸네.”
“우웅!”
그럼요!
따지자면 제 나이가 서른이 넘었습니다, 어머니.
연기를 시작하고 몇십만 원, 몇백만 원 돈을 야금야금 벌기는 했지만, 이번 광고는 감회가 남다르신가 보다.
그 돈도 딱히 어디에 쓰고 계시지는 않은 거 같던데 아마 나를 위해 모아주고 있으시겠지.
연신 내 얼굴을 쓸어주시는 어머니의 손길로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렇게 큰돈을 벌게 되었으니 거기에 따라오는 책임이 너무 무겁지는 않을까 걱정하시는 듯했다.
“나 괜찮아, 엄마.”
“후후, 그래? 맞아. 우리 시우 아주 잘할 거야.”
내 한마디로 어머니의 불안이 다 가시지는 않겠지만, 나는 어머니가 지닌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내 말에 환하게 웃으시며 더욱 꼭 끌어안아 주셨다.
그렇게 한창 둘이서 감동의 장면을 만들고 있는데 운전석에서 방정맞은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 누나. 시우 쟤가 촬영장에서도 시리얼을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몰라. 누가 보면 아침부터 쫄쫄 굶긴 줄 알았을 거라니까. 그렇게 맛있디 시우야?”
“우씨, 시리얼을 맛있게 먹으라고 했자나. 감독님이!”
거참, 그것도 다 연기인 것을.
나는 내 연기 혼을 알아주지 못하는 삼촌의 모습에 기가 찼다.
“후후, 광고도 수월하게 찍겠네. 우리 아들.”
“우웅! 나만 믿어 엄마.”
“그럼 우리 시우 믿지 누굴 믿어.”
나는 오동통한 작은 손으로 나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의 팔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시우야…… 그럼 차는 삼촌 사주는 거지? 맞지?”
“너어는 진짜…!”
다정한 모자의 순간을 자꾸 방해하는 삼촌의 행태에 결국 어머니가 뿔이 나셨다.
운전석으로 홱 고개를 돌리는 어머니를 보며 나는 속으로 삼촌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
“안녕하세요!”
“어, 시우 왔니?”
그 뒤로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의 마지막 촬영일이 되었다.
나는 차일남과 모여있는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하며 현장으로 들어섰다.
드라마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순조롭다 못해 이곳 사람들 말로 ‘대박’을 치고 있었다.
저번 주에 반영된 최신화인 12화의 시청률은 39%를 기록했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우리 드라마가 40%를 넘길 수 있을지 주목하는 가운데, 나는 다소 힘이 빠진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로써 촬영은 마지막.
무사히 끝냈다는 후련한 마음도 있고,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유난히 기분이 뒤숭숭하고 다운된 느낌이었다.
“에휴.”
한숨을 쉬며 삼촌이 펼쳐준 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촬영이 시작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제 이 기나긴 대기시간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았다.
익숙해지려니 끝인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도 컸다.
“시우야!”
“왔어, 시우야?”
나는 촬영장에 자리를 잡자마자 내 곁으로 몰려오는 두 사람을 흐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 저 두 사람 때문에 익숙해지던 대기시간이 다시 멀어지긴 했다.
요즘 내 대기시간은 결코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