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2
72화
식당 전경이 담긴 프레임 너머로 그릇 닦는 소리가 들려온다.
달그락, 달그락.
한차례 점심시간이 지난 식당.
테이블마다 남아 있는 빈 그릇을 식당 주인 혼자서 바쁘게 치우는 중이다.
딸랑.
문에 달린 종소리에 식당 주인은 그릇을 옮기다 말고 출입문을 바라본다.
“어서오, 어? 우주 아니야. 오랜만이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그래그래, 저기 치워놓은 데로 앉으렴. 오늘도 혼자니? 엄마는 조금 이따가 오시나?”
오랜만에 가게에 온 단골손님의 모습에 식당 주인은 푸근하게 웃으며 아이를 맞았다.
우주는 익숙하게 식당 주인이 가리킨 곳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늘도 청국장 1인분 먼저 줄까? 엄마 오면 하나 더 주고.”
“어, 아뇨.”
“응?”
평소와 다른 아이의 태도에 의문을 표하던 것도 잠시.
쭈뼛거리며 현관문을 바라보는 우주의 시선을 따라가니,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한지혜, 그리고 낯선 남자가 빙그레 미소 지은 채로 서 있었다.
“어……?”
“아니요,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형이랑 다 같이 왔어요.”
“세상에…. 가족이 다 같이 온 거야?”
바쁘게 테이블을 닦던 식당 주인은 빠르게 우주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 되물었다.
그 말에 우주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듯 웃는 얼굴로 주문을 했다.
“네, 그러니까 오늘은 청국장 네 개 주세요!”
청국장이라는 말에 지해성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평소 콩을 싫어하는 지해성에게 청국장은 정말 먹기 싫은 음식 중 하나였다.
냄새도 별로였고 말이다.
“어, 나는… 청국장 싫은데.”
하필 오늘은 동생이 먹자는 대로 가겠다고 선언한 후였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으로 간다더니… 와봤더니 청국장집이다.
울상을 하고 있는 형을 보고 우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는 청국장 맛집이야.”
“……나 잘 못 먹는데.”
오기 전에 동생이 시켜주는 대로 먹겠다고 약속까지 한 터라 나가는 말이 조그맣기만 하다.
아닌 게 아니라, 형의 말에 우주의 입술이 벌써 비죽 튀어나왔다.
형제의 모습을 보고 있던 한지혜가 보다 못해 나섰다.
“우주야, 형은 다른 거 시켜줘.”
“치, 여기는 청국장이 짱인데.”
우주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속상한지 꾸물거리며 말이 없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식당 주인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유, 우리 형이 청국장 냄새가 별론가 보네. 아줌마가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줄까?”
“네, 네!”
지해성은 살았다는 듯이 크게 대답한다.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식당 안을 얼추 다 정리한 식당 주인이 물을 가져다주고서 바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주방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구수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여기가 우주 단골집이라고?”
“네, 여기서 큰아빠랑 만났어요.”
“아, 우리 형이랑 여기서 만난 거야?”
우주의 말에 지현우는 놀란 듯 허름한 가게를 둘러보았다.
이런 데는 또 어떻게 알고 들어온 거야… 라고 중얼거리는 게 상당히 생소한 동네인 모양이었다.
“맞아. 그때 현성 씨, 아니, 아니지. 아주버님이 되게 잘 챙겨주셨다고 했어.”
“우리 형도 청국장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때 두 그릇 드셨는데요?”
청국장을 안 좋아한다니?
그 말에 놀란 우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그 말에 지현우과 지해성은 깜짝 놀랐다.
“진짜…?”
“와, 큰아빠 짱이다….”
지현우는 그 고집 센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은 걸 두 그릇이나 먹은 사실에.
옆에서 지해성은 자신의 입에는 맛있지도 않은 걸 두 그릇이나 먹었다는 소리에.
“여길 다시 올 줄은 몰랐네.”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닐 때 자주 오던 단골집에 온 한지혜가 추억에 잠겨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지현우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뭐야, 서울 와서 매번 오던 데 오니까 옛날 생각이라도 나나 봐?”
“당신 질투라도 해?”
“지, 질투는 무슨……!”
펄쩍 뛰는 지현우의 모습에 아들 둘이 웃겨서 입을 가리고 큭큭거리면서 웃었다.
“아니, 난 또. 질투라도 해주는가 했지.”
“어, 어……? 큼, 아니. 조금 나는 거 같기도 하고.”
갑자기 둘만의 세상에 들어가려고 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지해성이 우주에게 몰래 눈짓을 보내며 말한다.
“앞에 뽑기 있던데.”
우주는 주방을 빼꼼 바라보더니 아직 음식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는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
“그래.”
두 형제는 눈치껏 가게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형도 제법이네.”
“나도 할 때는 한다고.”
두 사람은 큭큭거리면서 바깥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하늘을 바라보는 우주의 눈이 약간 촉촉하게 젖어들어 있다.
식당 바깥 처마에는 주인이 키우는 선인장이 옹기종기 모여 줄지어 서 있었다.
“이거 봐, 우주야.”
“응? 우와.”
형의 부름에 우주는 얼른 그 옆으로 가서 햇빛 아래 모여있는 선인장을 구경한다.
그중 한 선인장에는 오밀조밀한 빨간 꽃이 하나 피어있었다.
“선인장에도 꽃이 피네.”
“그러네. 엄청 예쁘다.”
화창한 오후.
두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컷! 오케이!”
활짝 웃으며 남연수를 보고 웃는데, 차일남이 경쾌하게 오케이 사인을 외쳤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소매춤으로 눈가를 훔쳤다.
“시우야… 왜 울어?”
“아, 안 울어!”
걱정스럽게 묻는 남연수에게 괜히 성질을 냈다.
나도 모르겠다.
원래 이 장면에서는 울 필요도 없고, 슬픈 장면도 아닌데 눈물이 났다.
강수정과 최태우를 남기고 식당을 나설 때부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대로는 주룩 흐를 것 같아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애써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이 장면으로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다사다난했던 나의 우주가 해피엔딩을 맞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두 사람 아주 잘해줬다. 마지막까지 장면이 예쁘게 잘 나왔어.”
“진짜요?”
“감독님이 고생해주셨잖아요. 감사해요.”
우리에게 다가와서 칭찬을 건네는 차일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하하, 내가 오히려 고맙지. 아역 배우 두 사람을 주연으로 세우겠다는 우리의 고집을 잘 따라와줘서 정말 고맙다.”
제작이 결정되었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이 심했던 차일남은 우리를 보면서 활짝 웃어주었다.
어렵게 만든 드라마가 흥행하는 중이어서 그런지 선인장 팀의 얼굴은 나날이 밝아지는 중이었다.
“헤헤, 저도 시우랑 같이 촬영해서 너무 좋았어요.”
“나도 형이랑 연기해서 재밌었어.”
“진짜?! 흐으, 고마워 시우야아….”
뭐, 뭐야.
내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나 보다.
남연수가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더니 나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어, 어? 혀, 형! 왜 그래. 울지 마…….”
당황한 나는 차일남을 슬쩍 쳐다봤다.
그러자 차일남은 허허 웃으면서 슬쩍 자리를 피해버린다.
아니! 우는 애를 그냥 두고 가면 어쩝니까!
내가 쩔쩔매고 있자니 스태프들도 다들 웃으면서 우리 둘을 보고 지나간다.
……너무 어른스럽게 하고 다녔나 보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는데도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다니.
“울지 마, 연수 형……. 뚝!”
“흐엉엉.”
결국 나는 나보다 큰 남연수를 안아주며 토닥거리고 있어야 했다.
나중에 식당에서 나온 강수정과 최태우가 웃기다며 우리 둘의 사진까지 찍고 나서야 남연수는 눈물을 그쳤다.
“시우야아, 우리 이제 못 보는 거니?”
“시우 연기 진짜 그리울 거야…….”
그 뒤로도 날 보고 눈물을 흘리는 스태프들이 많았다.
내 인생 첫 드라마의 마지막 현장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내 마음도 절로 몽글몽글해졌다.
이 사람들을 오랜 시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번 드라마의 추억은, 아마 꽤나 오랫동안 나를 살아가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
타다다닥.
타다다다닥.
조용한 사무실 한켠에는 얼마나 세게 치는지 시끄러운 타자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려왔다.
이곳은 LSB(Life Style Broadcasting) 방송국의 예능국 사무실.
LSB는 케이블 TV로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방송국이었다.
케이블이면서도 자체적으로 종합적인 콘텐츠를 내놓기 시작한 LSB는 초반 부침을 겪었지만 최근 내부적으로 나름 괜찮은 프로그램을 내면서 내실을 다져가는 중이었다.
“너 또 뭐 하는데 이렇게 요란하냐?”
시끄럽게 컴퓨터 앞에서 타자를 두드리는 남자 뒤로 LSB의 예능국 CP, 박해수가 다가와 물었다.
그 말에 타자를 두들기던 김산호 PD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도 그러려니 하는 박해수는 바로 뒤에 붙어서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모니터를 봤다.
“관찰 여행 예능? 이건 또 무슨 꿍꿍이냐. 이놈아.”
“비 콰이엇 플리즈. 요즘 제가 꽂힌 아이디업니다.”
LSB에서 다른 사람은 다 말려도 김산호는 못 말린다는 말이 있었다.
꽂힌 건 무조건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라는 걸 알기에 박해수는 저게 곧 나에게 결재 서류로 올라오겠구나 싶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위에 말 안 듣는 거지?”
“오브 코스. 슈얼.”
2007년 현재.
지금 예능계는 ‘극 리얼리즘’이니, ‘리얼 버라이어티’가 판을 치고 있었다.
반복적인 플롯의 지속에 따른 시청자들의 실증에, 기존에 굳혀진 틀을 깨고 돌발적인 개그를 선보이는 예능이 인기를 끄는 시대였다.
LSB에서도 그러한 요즘 트랜드 플롯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하라는 압박이 쉬지 않고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몇 번을 말하냐 도대체.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 모르냐, 산호야?”
그런데 지금 김산호가 키보드가 부서져라 치고 있는 저걸 들여다보니 또 그냥 자신이 만들고 싶은 걸 두들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방 없이 끝내주게 창조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노 프라블럼.”
“야, 그래도 너 직장인이야. 까라면 좀 까야지, 무슨…….”
역시나 김산호는 바로 수긍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바로 직전에 만든 다큐 드라마가 LSB 최초로 1%의 시청률을 넘겼으니 말이다.
당시 처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김산호는 숱한 반대와 질타를 받았더랬다.
“헤이, 형. 지난 분기 최고 시청률 피디 이름이 뭐였지?”
“……그래서 기어이 이 관찰 프로그램인가 뭔가를 만들겠다고?”
“예스. 뜰 거야 분명. 다음 트렌드는 관찰이 될 거라고. 윗대가리들이 말하는 거 백날천날 하면 뭐해? 다 똑같은 걸 만들며 어떻게 최고가 될 수 있겠냐고.”
“나도 나름 네 윗대가리 중 하나거든…? 맘대로 해라. 네가 언제는 내 말 들었냐.”
아주 자신만만한 김산호의 말에 박해수는 한숨만 늘었다.
여행이라면 알겠다.
사시사철 여행만큼 잘 먹히는 소재가 없으니까.
그런데 뭐? 관찰?
그거 관음증이라며 병원 가라며 뭐라 할 게 분명했다.
“난 모르겠다, 모르겠어. 나중에 꼭 말해라. 나는 처음에 분명히 말렸다고. 그보다 누굴 관찰하려고 그러는데? 여행은 국내야, 해외야?”
“좀 조용히 해주세요 CP님. 집중이 안 되네, 집중이.”
결국 김산호에게 한마디를 들은 박해수가 궁시렁거리면서 그의 책상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찬밥 취급을 받으면서도 자리를 뜰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늘 안에 기획안을 마무리 지을 생각인지 김산호의 손가락은 쉴 생각이 없었다.
“어, 어……?”
그러다가 박해수는 김산호의 책상에서 포스트잇 하나를 발견했다.
그 메모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거기에는 요즘 제일 핫하다는 배우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