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4
74화
“호오, 호오.”
“뭐가 그렇게 신기해 시우야? 평소랑 비슷하지 않아?”
나랑 삼촌은 지금 함께 LSB의 작은 회의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케이블 방송국은 처음이라 그런지 묘하게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았다.
굳이 비교를 해보자면 KMB보다는 작은 규모에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랄까.
그래도 뭔가 사람들이 젊고 활력 넘쳐 보이는 건 좋았다.
“예능을 하러 와서 그런가바. 조끔 새롭네.”
“아, 그런가?”
삼촌이랑 둘이서 새로운 프로그램은 어떨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하루종일 촬영을 하는 것일지, 스태프들 분위기는 많이 다를지.
삼촌도 나를 데리고 하는 첫 예능이라 그런지 군기가 바짝 잡혀 있었다.
오면서 계속 중얼거리는 게 얕보여서는 안 된다던데, 누구한테 그렇게 투지를 불태우는지 모를 일이다.
“연수는 같이 못 하게 돼서 아쉽네.”
“….”
삼촌의 말에 핸드폰을 꺼내 어제 남연수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발신인은 남연수의 매니저였다.
핸드폰이 없어서 이걸로 급한 김에 문자를 보낸 모양이었다.
[ 미안해 시우야 ㅠ 나는 못 가게 될 거 가타. 꼭 같이하고 싶었는데 ㅠㅠㅠㅠ ]울음 가득한 문자 내용.
남연수는 그렇게 같이하자고 조르더니, 갑자기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솔직히 남연수랑 같이가 아니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남연수 대신 잘 모르는 다른 출연진으로 대체된다면, 딱히 재미도 없을 것 같다.
촬영을 하는 나나, 보는 시청자 전부.
일단 미팅은 잡혀있던 상황이고 약속을 지키는 게 신사의 매너이니, 김이 빠졌지만 일단 미팅 장소에 와있는 것이다.
핸드폰을 가방에 도로 집어넣는데 회의실 문이 달칵 열렸다.
“안녕하세요-!”
한 남자가 활기차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저 사람이 바로 김산호 PD인가.
생각보다 젊고 산뜻한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한시우입니다.”
“시우 매니저 지동욱입니다.”
삼촌이 옆에서 김산호에게 명함을 건넸다.
일단 급한 대로 이름과 핸드폰 번호만 적혀 있는 명함이었다.
김산호 역시 인사를 하며 자신의 명함을 삼촌에게 건넸다.
“이야, 올해 최고 화제의 인물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반가워요, 시우 군.”
“우웅, 네. 저도 반갑습니다.”
“하하, 생각보다 시니컬한 친구네.”
나는 그 말에는 모른 체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실제로 보니까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인물이 훨씬 훌륭한데요?”
“하하, 시우가 그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짱이거든요.”
틈을 놓치지 않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 자랑을 했다.
쌍엄지를 치켜든 나를 보고 김산호가 귀엽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시우 매니저님이 시우 삼촌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제 조카입니다.”
“이야, 역시. 유전자가 아주 훌륭하시네요.”
“하하하,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삼촌은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나저나…… 삼촌, 나는 그런 소리 처음 듣는데?
되게 많이 들어본 척하네.
“그럼 슬슬 제대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
“……해서 마지막으로 요약해서 말하면, 시우는 우리와 함께 자유롭게 여행하고, 우리는 그런 시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게 될 거다, 이거야.”
듣다 보니 김산호가 오늘 한 말 그대로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웃겨야 하는 부담 없는, 그야말로 자유 여행이라.
여행은 배우로서 경험과 영감을 쌓을 수 있는 큰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PD와 함께 예능이라는 틀 안에서 하는 여행도 새로운 경험이 되겠지.
그런데 여행 예능이라면, 무엇보다 장소가 중요하다.
“근데 여행은 어디로 가는 거예요?”
“그게 말이야. 아직 확정되지가 않았어. 촬영 장소에 따라서 컨셉이나 스케줄, 촬영비가 달라져서 말이야. 시우랑 같이 나올 파트너가 확정되면 우리도 딱 정할 수 있을 것 같아.”
드라마랑 마찬가지로 출연진이 누가 붙느냐에 따라 편성이나 제작비 지원이 달라진다는 말이구나.
드라마 한번 출연한 걸로도 대충 이쪽 생리를 파악하게 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후보지는 여러 개 있어. 잠깐 볼래?”
“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보지가 있으면 바로 봐야지.
김산호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들고 온 두꺼운 클리어 파일철을 펼쳤다.
그 안에는 알록달록하게 컬러 프린트가 되어 있는 후보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지방 지명들이 여러 군데 있고…….
오, 제주도도 있었다.
TV를 많이 봐서 눈에 익은 지명들을 훌훌 넘겨보았다.
“여기 어딘지 다 알아 시우야?”
“우웅, 대충 알아요.”
뭐라고 질문도 없이 그림을 술술 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미심쩍기도 했나 보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대답해준 것뿐인데 김산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으하하. 아 우리가 섭외 너무 잘한 거 같은데. 너 은근 웃기다.”
“흐음, 그래요?”
김산호가 뭐라고 흐뭇하게 말하는데 솔직히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워낙 빠르게 후보지 명단을 넘기느라 그런지 눈으로 후보지를 훑는 것만 해도 벅찼다.
대부분 국내 여행지인데, 그중에 몇 개 해외 여행지가 섞여 있었다.
“오…?”
그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지명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영국의 런던.
“영국……? 영국도 갈 수 있는 거예요?”
두어 개의 해외 여행지가 더 있었지만, 다른 건 필요 없었다.
한번 이 이름을 본 이상, 영국만이 눈에 들어왔다.
김산호는 내가 관심을 갖는 걸 보고는 눈을 반짝이며 바로 설명해주었다.
“영국에 흥미가 있어? 아무래도 시우가 연극을 했으니까, 연극의 성지를 한번 가보면 어떨까 해서. 그곳의 연극도 볼 수 있고 말이야.”
“우아.”
아주 좋은 발상이었다.
영국이라……. 확실히 구미가 당긴다.
안 그래도 언제 한번 가볼 수 있을까 했는데.
연극의 성지라고 불리고 있다니.
한때 런던의 제일가는 오스카 극단 간판 배우였던 내 심장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만약 하게 된다면 저는 영국으로 가고 시퍼요.”
“오케이. 아저씨가 기억해두고 있을게.”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내가 아주 적극적으로 말하자 김산호는 제법 신이 난 모양이었다.
통성명을 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그새 아저씨라고 스스로를 칭하며 나를 아주 편하게 대해주었다.
김산호가 가지고 있던 펜으로 영국에 크게 동그라미를 치는 걸 보니 이대로만 가면 정말 영국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하지만,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남아있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연수 형은 어떻게 된 거예요?”
“어, 음…….”
내 질문에 김산호는 처음으로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대화 내내 자신만만하던 그답지 않았다.
“사실…… 남연수 쪽에서는 이미 거절당한 상태야. 나도 꼭 같이하고 싶었지만, 그쪽…….”
뭐라고 말을 이으려던 김산호는 그만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김산호의 말만으로도 짐작 가는 구석이 있었다.
잠시 곤란하다는 듯 말을 고르던 김산호는 표정을 바꾸고 밝게 말했다.
“대신 다른 친구를 섭외 중이야. 그건 걱정하지 말아도 돼. 시우가 출연하고 싶다면 우리가 어떻게든 다른 출연자를 물색할 테니까. 엎어지는 건 아니란다.”
“우웅, 그렇구나.”
설마 했는데 역시나였다.
이번 일도 남연수의 아빠가 못 가게 한 것 같았다.
나는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와버렸다.
남연수의 처지를 생각하다 보니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과거가 자꾸 고개를 치켜든다.
꼭 탑 안에 갇혀있던 지난날의 자신이 떠오르지 않나.
왜인지 남연수가 관련되면 무시할 수가 없다.
꼭 이번 예능 때문이 아니라, 그 고운 재능과 연기를 향한 사랑이 이대로라면 썩을 것 같았다.
“PD님. 저 이거 나가고 싶어요. 프로그램 취지도 좋고 새로운 거 같고. 영국도 한번 가보고 싶었고.”
“그래? 그럼 정말 다행이다. 아저씨도 시우랑 같이 꼭 가고 싶어.”
“네, 제가 연극 무대에 섰던 거랑 영국을 연결시킨 것도 색다른 거 같아요. 시청자들한테는 제가 그냥 의 강우주였지만, 저는 그 전에 영수기도 했고, 조나단이기도 했거든요.”
나는 차례로 내가 출연했던 연극 속 맡았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댔다.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김산호가 살짝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가 씨익 웃었다.
“햐, 진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니까. 지니어스, 지니어스. 진지하게 기획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우에 대해 이런 모습을 실제로 보니 정말 새로워. 시청자들에게 이런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벌써 기대되는걸?”
지니, 뭐?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김산호의 콩글리쉬 발음에 잠깐 넋이 나갔다.
강용휘가 쓰는 콩글리쉬도 참 적응이 안 됐는데…… 이쪽 세계에 연출이나 PD인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건가?
당황해서 눈을 껌뻑이던 나는 김산호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선언하듯 말했다.
다행히 김산호는 나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으니, 내 고집에 어느 정도 장단을 맞춰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근데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조건? 좋아. 말해 봐.”
“저는 연수 형이랑 같이 안 하면 안 할래요.”
“뭐……?”
“시, 시우야?”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김산호는 당황해서 입을 작게 벌렸고, 가만히 듣고 있던 삼촌도 당황해서 나를 불렀다.
하지만 이대로 남연수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자꾸 전생이 생각나는 것도 찝찝하고 말이다.
김산호는 내 단호한 말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철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연수 형 데려올 수 있죠, 김산호 PD님?”
대단한 PD라고 하던데, 어디 한번 능력을 보여줘봐라.
***
2007년도 어느새 반 이상이 지났다.
한여름에 시작한 는 오늘 9월 9일 종방을 맞는다.
바로 전날 15화 시청률이 45%를 기록하면서 는 올해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었다.
KMB에서는 선인장 팀의 노고를 치하하며 성대한 종방연을 치러주기로 했다.
마지막회가 방영되는 오늘, 선인장 팀의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본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뒤풀이 겸 회식을 즐기다가 마지막 화를 다 같이 감상하기로 한 것.
차일남은 시내의 커다란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렸다.
점점 판이 커지다 보니 당연히 의 종방연은 업계에 소문이 났다.
우리가 하루 동안 전세 낸 레스토랑 앞에는 각양각층의 사람들이 보낸 호환이 늘어섰고, 그 앞에는 레드카펫 포토존처럼 기사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연 마지막 화인 오늘 가 마의 50%를 넘길 수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에 주목하고 있었다.
“문희성이다!”
찰칵, 찰칵, 찰칵-
레스토랑 앞으로 차례차례 배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조연 배우들 중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문희성.
그는 이번 드라마에서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던 호쾌함과 다정함을 모두 거머쥔 ‘지현성’을 연기해내 더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문희성은 잘생긴 미소로 좌우에 늘어선 카메라들에게 인사한 뒤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서 도착하는 커다란 차 한 대.
드르륵.
그 차 안에서는 이번 드라마의 화제성 1위, 한시우가 내렸다.
“읏쌰.”
뽀짝뽀짝.
커다란 차에서 폴짝 뛰어내린 작은 인영은 해맑게 웃으며 위풍당당하게 레스토랑 입구로 향했다.
엄청난 플래시 세례와 함께 쏟아지는 셔터음.
“시우 군! 여기 한 번만 봐줘요.”
“시우야, 여기 보세요. 이쪽! 이쪽!”
한시우는 밝은 미소를 장착한 채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기사들에게 살래살래 손 인사를 건네며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