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나는 레스토랑 한쪽 벽을 전부 가리고 있는 커다란 스크린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얼른 본방송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리를 동당거리고 있자니 스태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넸다.
“시우 오늘 꼭 왕자님 같네?”
“우리 드라마 일등공신! 소감이 어떠십니까.”
“에헤헤.”
오늘 너무 예쁘게 하고 왔다며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과 사진도 잔뜩 찍고, 사인도 잔뜩 했다.
사인은 대부분 영어로 한다고 해서 아주 멋들어지게 해줄 수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연기 너무 잘 봤다고, 이대로 끝나서 너무 아쉽다는 이야기를 백 번쯤 들은 것 같았다.
그야말로 관심 집중!
나는 스태프들의 쏟아지는 관심을 황홀하게 만끽하는 중이었다.
“와악, 시우야. 이것 좀 봐. 여기 로브스터 맛집이라는데, 통째로 나왔어! 엄청 크다!”
어제부터 휘황찬란한 종방연에서는 과연 뭐가 나올까 기대하던 삼촌은 옆에서 호들갑을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일남이 말하길 KMB 국장님이 마음 먹고 쏜다더니, 엄청난 음식들이 줄줄이 나오는 중이었다.
나는 삼촌이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여운을 즐기는 중이었다.
이제 드라마 촬영도 끝났겠다, 한동안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받을 일을 적을 테니까 말이다.
“우웅, 삼촌 잔뜩 먹어.”
“시우 넌 안 먹어?”
“휴, 난 지금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불…….”
지금 딱 좋은데 자꾸 말을 걸어서 그만 좀 하라고 하려 했다.
잘 구워진 로브스터 살을 발라 먹은 삼촌의 중얼거림을 듣기 전까지는.
“와… 이거 스테이크보다 맛있어.”
“삼촌. 나 이고, 저것도 다 발라조.”
나는 앞접시를 내밀며 버터구이와 찜을 각각 가리켰다.
스테이크보다 맛있다고?
하, 참나. 아니기만 해봐라.
“으하하, 잠깐만 기다려봐.”
삼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신나게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며 속살을 가득 발라주었다.
와……. 웬일로 삼촌이 참으로 맞는 말을 했다.
너무 맛있잖아.
냠냠 먹으면서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제야 도착한 강수정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 뒤로는 레스토랑을 한차례 돌면서 인사를 마친 문희성도 보였다.
“시우야, 너 오늘 착장이 너무 완벽한 거 아니니?”
강수정마저 이렇게 감탄을 할 정도라니.
훗, 우리 어머니의 안목이 조금 뛰어나긴 하다.
종방연에 참석한다니까 김상철이 자신의 단골 샵을 소개해주며 오늘은 거기서 준비하라고 했다.
나는 삼촌과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거기에 다녀온 길이었다.
샵에서 어머니가 준비된 옷들 중에 손수 앙증맞은 턱시도를 골라주셨는데,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나 보다.
평소보다 머리로 조금 더 신경 써서 손질한 탓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오늘 멋지다며 난리였다.
“누나도 그런데요?”
“오랜만에 샵에서 힘 좀 주고 왔지. 그런데 시우 네 옆에 있으면 안 되겠는데?”
“에이, 그럴 리가요.”
멋들어진 투피스에 머리까지 한지혜와는 영 딴판으로 세팅하고 온 강수정은 그야말로 여배우 같은 포스를 뿜어냈다.
“시우 너, 이제 드라마 끝났다고 연락 안 하고 그러면 안 된다?”
“누나 벌써 다음 영화 준비 중이라면서요. 누나가 더 바쁜 거 아니에요?”
“소문 빠르네……. 아무리 바빠도 너랑 연기 이야기할 시간은 있어.”
와… 순간적으로 대기시간의 악몽이 스쳐 지나갔다.
“하하, 시우는 오늘도 인기가 많네.”
그만 표정 관리에 실패한 모양이다.
휴식이 휴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지나갔을 뿐인데 말이다.
옆에 있던 문희성이 내 얼굴을 보고 유쾌하다는 듯이 웃는 걸 보니…….
나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했다.
“시우야… 안녕?”
최태우도 멀리서 합류해 웃고 떠들고 있는 와중, 주연 배우 중에 마지막으로 남연수가 등장했다.
“어, 형 왔어? 늦었네.”
“으응, 오늘 청담동 다녀왔는데 차가 조금 막혀서…….”
딱 보니 남연수도 오늘을 위해 엄청나게 꾸민 모양이었다.
청담동에 있는 샵에 다녀오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하는 남연수는 조금 피곤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습니다. 네네, 안녕하세요.”
남연수를 내 옆에 앉힌 남연수의 매니저는 뒤늦게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어이, 김 실장. 잠깐 얘기 좀.”
“네! 선배님. 연수야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네, 다녀오세요.”
그러다가 다른 배우의 매니저에게 불려 나갔다.
남연수의 매니저까지 사라지자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이참에 나는 궁금했던 걸 모두 물어볼 생각이었다.
갑자기 예능에 출연 못 하게 되었다고 문자를 보내고 난 뒤, 남연수하고는 연락도 잘되지 않았다.
촬영도 다 끝난 마당에 만날 일도 없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된 거야?”
“어, 어……?”
“예능 말이야. 원래 되게 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물어보았다.
내 질문에 남연수는 우물쭈물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아빠가 하지 말라고 하셔서……. 내가 먼저 하자고 해놓고 미팅도 못 가고 많이 놀랐지?”
“뭐… 그건 괜찮은데. 형은?”
“응?”
“형은 괜찮아?”
괜찮냐는 내 물음에 남연수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가 사르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너랑 같이 못 가는 게 아쉬울 뿐이야. 난 영화 들어갈 거 같대. 일류 배우답지? 히….”
일류 배우 운운하며 웃는 그 얼굴은 여전히 어색해 보였다.
체념한 기색도 서려 있었고 말이다.
아직도 전화를 해서 같이 예능을 찍게 되어서 기쁘다고 방방 뛰던 게 선연하게 기억나는데, 지금은 또 저렇게 다 괜찮다는 듯이 웃고 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번 일은 예능이라지만, 형은 그래선 일류 배우가 되지 못한다니까.”
“어……?”
내 말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는지 남연수의 두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이대로 하라는 작품에 나가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고.
연기도 그 빽빽하게 메모가 채워진 대본대로만 해야 한다.
정말 그걸로 충분할까?
내가 본 남연수는 분명 재능이 차고 넘치는 아이인데 말이다.
“형, 다시 물을게. 솔직하게 말해줘야 해.”
“…….”
“진짜 괜찮아?”
재차 묻는 내 질문에 남연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풀이 다 죽어있는 표정을 한 남연수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삼키는데 시끌시끌한 소리가 옆에서 넘어왔다.
“세에상에-! 이번 드라마의 일등 공신인 아역 배우 두 분이 여기 모여 계셨네요!”
뭐지? 싶었는데 시끄러운 목소리의 여자 뒤로 커다란 카메라가 보였다.
그리고 그 카메라에 붙어있는 선명한 KMB 방송국 마크.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차일남이 오늘 KMB의 연예 전문 방송 ‘연예정보통’에서 종방연 취재를 나온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바로 방긋 미소를 장착하고 자신을 최린이라고 소개하는 리포터를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내 활기찬 인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남연수도 미소를 짓고 인사했다.
아직 그 얼굴이 조금 굳어져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까부터 저쪽이 시끄럽더라니.
우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른 배우들의 인터뷰를 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어머! 우리 꼬마 배우님들! 누나가 드라마 너무 잘 봤어요!”
“히히, 감사합니다.”
“영광이에요.”
나랑 남연수가 납죽 대답을 잘하자 최린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여섯 살, 여덟 살인데,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해요?”
“하하, 감사합니다.”
“타고 나서일까요?”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남연수 옆에서 나는 오동통한 손으로 내 한쪽 볼을 감싸며 말했다.
그 모습에 최린을 비롯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스태프들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귀, 귀여워…….”
흠, 리액션 좋고.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내렸다.
“이렇게 보니까 실제로도 두 분 사이가 굉장히 좋은가 봐요. 끝나서 아쉽지 않아요?”
“엄청 아쉬워요!”
“시간이 정말 후딱 지나갔어요.”
“아, 역시 두 분도 그러셨군요. 방금 인터뷰 하고 온 강수정 배우님이랑 최태우 씨도 그러더라고요~”
형식적인 질문이 하나하나 지나갔다.
아직 본방송까지 시간이 남았기에 이런 이벤트가 있는 모양이었다.
남연수는 인터뷰를 위한 훈련도 받는 모양인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조곤조곤 대답도 잘했다.
하나같이 겸손하고 정석 같은 답변들이었다.
“그럼, 우리 꼬마 배우님들께 마지막 질문! 아역으로 잠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주연이라 끝까지 촬영하느라 엄청 힘들었을 거 같아요. 우리 두 배우님들은 이제 드라마 끝나서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이 질문도 분명 다른 배우들에게 다 물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우리 둘에게는 분명 다른 걸 기다리고 있겠지.
아주 귀엽고 천진난만한 그런 대답을 말이다.
나는 뭐라고 답을 해줄까 궁리하다가 반짝, 좋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거, 잘하면 남연수의 상황을 말 한마디로 바꿔줄 수도 있겠는데.
생각은 빠르게 정리됐고, 이제 행동할 차례다.
남연수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먼저 치고 나갔다.
“아, 저는….”
“연수 형이랑 예능 하게 될 거 같아요!”
“어, 어…?”
내 대답에 남연수는 뭐라고 말도 못 하고 당황해서 눈만 껌뻑였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답변에 최린이 흥미롭다는 듯이 나에게로 마이크를 바짝 가져다 대었다.
“예능이요? 두 배우님이 함께?”
“네! 김산호 PD님? 프로그램인데요. 연수 형도 하고 싶다고 했고, 저도 너무 재밌을 거 같아 기대 중이에요!”
대놓고 줄줄이 다 불어버렸다.
내 모습에 최린은 제대로 된 정보를 건졌다고 신이 난 얼굴이었다.
다만, 내 답변을 멀찍이서 듣고 있던 삼촌이 놀라서 달려왔다.
“시, 시우야!”
“칫.”
나는 삼촌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삼촌은 나를 입단속 시킨 다음에 최린에게 황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거는 안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김 PD님이랑 아직 이야기가 안 돼서. 허허.”
“아아, 그럼요.”
잔뜩 당황한 삼촌의 말에 최린은 비즈니스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지. 최린은 내가 바라던 눈빛을 하고 있다.
반면, 삼촌은 바로 나를 붙들고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물론 조금 작게 외친 거지만.
“시우야, 그런 거 말하면 안 돼……!”
내 양어깨를 잡고 흔들흔들 흔드는 삼촌을 슬쩍 외면하자 이번에는 옆에 앉아 있던 남연수가 희게 질려서 뻐끔거렸다.
“시, 시우야. 무슨 소리야. 나 못한다니까!”
“형.”
“어, 어……?”
“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치?”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단호하게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건, 그때 그런 거고……. 난,”
“가만있어봐. 하고 싶으면.”
남연수의 말을 뚝 자르고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옆에서 삼촌과 남연수는 내가 또 무슨 사고를 칠까 조마조마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김산호 PD님! 저 시우인데요. 방금 제가 인터뷰하다 어떤 얘기를 했는데…….”
수화기에 대고 활기차게 김산호를 부르고 방금 있었던 일을 줄줄이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삼촌과 남연수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서렸다.
“PD님?”
-어어…….
생각 중인지 김산호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아이참, 이 양반.
느리네.
내가 이렇게까지 떡밥을 뿌려줬으면 물어야지.
-시우야. 최린 리포터라고 했지?
“네, 맞아요. KMB 연예정보통.”
-어, 알았어. 신경 쓰지 마. 어어. 끊자!
김산호가 서둘러 끊은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하더니, 이 정도 밑밥이면 잘 사용해 먹을 줄 알겠지.
나는 전화를 끊고 멀거니 나만을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생긋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금 기다려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