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6
76화
한적한 VBS 방송국의 로비.
그 안에 있는 카페에 두 중년 남성이 마주 앉아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배님.”
김산호 PD는 앞에 앉은 40대 중년 남성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의 앞에 앉은 이는 남진용.
3대 공중파 채널 중 하나인 VBS 드라마국의 잘나가는 대표 PD다.
그리고 그는 천재라고 불리우는 아역 배우 남연수의 아버지였다.
남연수가 그의 아들인 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았지만, 동종업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김산호는 바로 어제, 한시우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미팅을 한 지 삼 일이 지난 날이었다.
한시우와의 통화내용은 곧 아주 재미있는 방송이 나갈 거라는 힌트였다.
자신이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멋모르고 하고 말았다는데…….
한시우가 의도적이었건 아니었건 김산호는 직감했다.
이건 바로 기회라고.
그는 바로 연예정보통 쪽에 연락해서 오늘 한시우가 한 인터뷰를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도 좋다고 알렸다.
연예정보통에서는 핫한 정보이다 보니 얼씨구나 해서 바로 내보냈다.
그 방송은 바로 방영되었다.
애초에 의 마지막 화가 나가면서 함께 나가기로 기획된 것이기에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예, 김산호 PD님. 이름은 들어 저도 압니다. 그나저나…… 제가 그쪽 박해수 CP에게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아는데,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돌려돌려 말하고 있지만, 결국 좋게좋게 말할 때 꺼지라는 말이었다.
왜 말귀를 못 알아듣고 찾아오기까지 하냐는 뉘앙스도 묻어나왔다.
남진용의 얼굴에 걸려 있는 미소는 차디차기만 했다.
‘귀찮게스리…….’
남진용은 힐긋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저번 분기에 운 좋게 다큐인지 뭔지 하는 구닥다리 프로그램 하나 히트 친 놈이라 안내데스크에서도 김산호를 내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갈 생각으로 남진용은 김산호를 대충 건너보았다.
남진용은 김산호를 싫어했다.
정석적으로 하면 될 걸, 굳이 개성을 살려보겠다고 이쪽 세계의 교과서를 막 벗어나는 사람.
평소 남진용이 딱 질색하는 스타일의 PD였다.
‘내 밑에 있었으면 이런 식으로 설치게 두지도 않을 텐데……. 하여간 케이블 놈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사람을 앞에 앉혀두고 작게 혀를 차는 남진용을 보고 김산호는 그린 듯한 비즈니스 미소를 지었다.
김산호도 그런 남진용을 알고 있었다.
아마 그는 자신을 썩 달갑게 여기고 있지 않으리란 것도.
그는 40대인데도 나이보다 더 꽉 막힌 사람인 것으로 유명했다.
아직 4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기성세대보다 더 기성세대의 대표 같은 사람으로 PD들 사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으니까.
“제가 편집을 하다가 급하게 와서요. 왜 오셨는지 빨리 이야기했으면 좋겠는데.”
재차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남진용은 대놓고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뭐?”
“아이고, 아직 못 들으셨구나.”
김산호는 남진용의 표정이 변하는 걸 지켜보며 주섬주섬 옆에 있는 노트북 가방을 열어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열심히 편집하시느라 기사 나신 걸 모르셨나 보군요. 그럴 줄 알고 제가 이렇게! 준비해왔습니다.”
노트북을 열자 거기에는 바로 여러 개의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의 형제 케미, 김산호 PD의 새 예능에서 이어지나?!] [화제의 아역 한시우, 남연수 나란히 LSB의 새로운 예능 출연…… 가능성 높아]“이게 다…….”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남진용은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빠르게 기사를 훑었다.
한 기사에는 한시우의 ‘연예정보통’ 인터뷰 내용을 발췌한 문장도 짧게 담겨 있었다.
‘연수 형이랑 같이하게 돼서 너무 조아요! 기대대요! 많이 기대해주세요!’
확정을 지어버리고 벌써 선전까지 하고 있었다.
남진용은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댓글을 읽었다.
댓글에는 두 아이의 출연을 기대하는 팬들의 댓글들이 줄기차게 달려있었다.
-와 벌써 너무 귀여워ㅋㅋㅋㅋ
-선인장 끝나서 아쉬웠는데 이걸로 달래야겠다ㅠㅠ
-드라마에서 친해졌나 보네 귀여운 애기 + 귀여운 애기 얼마나 귀여울까?
-이건 무조건 본방사수다
1위 : 한시우 남연수 예능
2위 : 김산호 새 예능
3위 : 선인장 꽃이 피었습니다 마지막화 시청률
4위 : 한시우 인터뷰
.
.
.
그뿐만이 아니었다.
벌써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라있었다.
하필 어제 드라마 의 종영과 맞물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
예기치 못한 사태에 남진용이 말문이 막혀 있을 때였다.
마침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 근처로 두 명의 PD가 지나가다가 멈춰 섰다.
“어, 선배님?!”
“남 PD님. 여기 계셨어요? 같이 있는 분은…… 어어, 김산호 PD님 아니세요?”
“하하,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남진용의 후배들로 보이는 그들은 남진용과 김산호가 함께 앉아 있으니 오늘 아침 뜬 기사가 사실이라고 여긴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남진용 아들의 새로운 예능 출연에 반색하며 남진용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연수 너무 귀엽던데. 시우랑 같이 나간다면서요?”
후배들은 일단 공식적으로 남진용의 아들이 남연수인 것은 비밀이기에 소곤소곤 남진용에게 말했다.
그들의 말에 남진용은 아니라는 말도 못 하고 어색하게 하하… 웃을 뿐이었다.
“연수도 이런 힐링 프로그램 나가면 좋지. 좋은 경험 되겠네요. 다른 예능보다 훨 낫네요.”
“안 그래도 연수 드라마 너무 안 쉬고 하더라. 김 PD님. 연수 잘 챙겨 줄 거죠?”
“당연하죠. 하하.”
김산호는 다른 PD들에게 대꾸하면서 슬쩍 남진용의 눈치를 살폈다.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는 쉽사리 아니라고 부정을 못 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산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성세대 중의 기성세대!
꼰대 중의 꼰대라고 불리는 남진용은 체면과 평판을 누구보다 챙기는 사람이었다.
이 자리에서 아니라고 할 분위기는 아니니 일단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이거, 김산호 PD님 섭외력이 장난 아니네요. 저희도 본받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촬영해볼게요.”
그 사이 김산호는 수월하게 남연수의 예능 출연을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환한 얼굴로 연신 파이팅!을 외치고 두 후배 PD들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남진용은 그제야 인상을 구겼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희 측하고 상의도 없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유포하다니……. 이거 고소해도 그쪽에 할 말 없는 거 알죠?”
“에헤이, 고소라니요. 그렇게 살벌하게 나오실 거 없습니다. 여섯 살 아이가 실수로 이야기한 거 가지고……. 저도 당혹스러울 뿐이네요. 허허.”
김산호는 뭐 그런 무서운 말을 하시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은근슬쩍 이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 김산호의 작태에 결국 남진용이 폭발해서 언성을 높이려 했다.
“실수라니 지금 이게……!”
그 순간, 두 사람이 앉아 있던 카페에 있던 또 다른 방송국 직원이 반갑게 아는 체를 해왔다.
“어? 김산호?”
“아, 오랜만이에요, 신 PD님.”
“아, 남진용 PD님 만나러 오셨구나. 두 분이 만나고 계시다는 건, 혹시……?”
역시.
방송국의 소문은 적토마보다 빠르다.
“역시! 그 기사가 사실인가 보네! 나도 꼭 챙겨볼게. 남 PD님! 너무 잘됐어요.”
“아, 예에…….”
연이어 잘 보겠다는 축하 인사를 받자, 남진용의 입꼬리에 경련이 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김산호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김 PD님 프로그램 기대하고 있을게요.”
“네네, 감사합니다.”
활달하게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직원마저 사라지라 남진용을 표정을 잔뜩 구긴 채로 두 손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잠시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던 남진용이 고개를 들었다.
드러난 얼굴은 야차처럼 일그러져 무서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기획안 좀 봅시다.”
김산호가 순간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기획을 보자?
이건 남연수의 출연을 허락하겠다는 뜻과 다름없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발을 빼다가는 남연수에게 타격이 갈 수 있음을 모르는 남진용이 아니었다.
다만,
‘무슨 우리 국장님보다 무서운 얼굴을 하면서 기획안을 달래…….’
김산호는 결재라도 받으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LSB에서는 통과된 기획안인데 말이다.
“네네, 물론이죠.”
노트북을 꺼냈던 가방에서 기획안을 챙기는데, 남진용이 서늘하게 말했다.
“경고하는데 연수에게 피해 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연수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호오. 소 스캐어리.”
“뭐?!”
“아닙니다 아버님. 물론이죠. 자, 기획안 보시죠.”
출연진의 보호자가 된 남진용.
그에게 선배님이라는 딱딱한 호칭 말고 아버님이라는 호칭으로 바꿔 부른 김산호는 유들유들한 미소와 함께 기획안을 내밀었다.
남진용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그 파일철을 받아들었다.
***
“시우는 좋겠네. 남의 돈으로 영국도 가고?”
“우웅, 짱 좋아요.”
“허허, 그렇게 좋아?”
그럼!
아주 기분이 좋아서 다리를 동당거렸다.
나는 지금 삼촌이랑 함께 김상철의 극단장실에 앉아 있었다.
“어제 연수 형아한테도 전화 왔어요. 우리 둘이 출연 확정되어서 너무너무 좋다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좋아했잖아요.”
“와, 둘이 진짜 사이좋네.”
“그럼요. 두 사람 촬영장에서 아주 꼭 붙어있었어요.”
“하……. 쉽지 않았어요.”
아주 고생이었다고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자, 김상철과 삼촌은 그저 귀엽다며 껄껄 웃을 뿐이었다.
아니, 이 사람들아.
남연수가 신난 걸 당신들이 못 봐서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거다.
진짜로.
신난 남연수는 한 시간 내내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다.
“시우야, 나는 영국 처음 가봐. 영국 가면 역시 연극을 마음껏 봐야겠지? 시우 너는 가봤어? 헉, 맞아. 나 여권도 만들어야 한다던데. 시우 너는 여권 있어? 우리 가서 뭐부터 먹을까? 영국은 인도 커리가 맛있다던데… 그럼 그건 인도 음식 아니야? 왜 영국에서 유명하지?”
나도 방금 전에 확정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마당에 영국 어디어디 갈 거냐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거기다 대고 내가 전생에 즐겨 다녔던 영국의 지명을 뱉을 수도 없고 말이다.
바텐베르크 영지에 가보고 싶다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우리 대영 박물관이랑 런던 브릿지는 꼭 가야 돼. 그리고, 그리고…… 이름이 뭐였더라 코, 코 어쩌구 정원이었는데.”
“코벤트 가든?”
“어! 맞아, 거기도 가야 되고 또….”
“헤에, 재밌겠다. 나도 얼른 가고 싶어.”
신이 나서 어디도 가고, 어디도 갈 거라는 남연수의 말을 들으며 영국에 대해 정말 하나도 모르는 척을 하느라 진을 다 빼고 말았다.
“허허, 아역 배우는 안 그래도 인재들이 적은데 시우한테 좋은 친구가 생겨서 참 다행이네.”
“우웅, 연수 형 좋아요.”
애는 착하다.
악의 없이 순수한 게, 엄한 아빠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주눅이 좀 들어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 여행을 가서 남연수에게 눈치 보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혼자 속으로 이번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계획을 짜는데, 김상철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자아, 그러면. 이제 스케줄 정리를 한번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