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7
77화
“내일은… 알지? 첫 광고 촬영이 있다는 거.”
“네.”
김상철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이날은 집에 있는 온갖 달력에 표시해놓고 잊지 않으려고 기억했으니 말이다.
2천만 원이 온전히 생기는 날!
이걸로 얼른 어머니에게 새 차를 사주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때 말했다시피 시리얼 광고이고, 기획안은 저번에 같이 확인한 거에서 변한 건 없어. 시우한테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우웅, 콘티는 다 봤어요.”
김상철이 미리 기획안과 콘티 초안을 받아서 삼촌에게 전해줬다.
TV를 보면서 틈틈이 읽어 놓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드라마 촬영보다 훨씬 간단할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하하, 대본도 휘릭 다 외우는데 이 정도는 아주 쉽겠네.”
김상철은 내 대본 외우는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말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김상철이 들고 있는 종이를 한 장 넘기며 계속 이어 말했다.
저건 어젯밤까지도 삼촌이 밤 늦게 작성한 내 스케줄표였다.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내 섭외 전화를 받고서 김상철이 1차로 걸러서 보내주고, 그다음에 내게 보여줄 만한 제안서와 기획안을 어머니와 삼촌이 보신다.
물론 그 작업을 할 때는 집에서 하기 때문에 나도 어깨너머로 보긴 한다.
그리고 2차로 걸러진 걸 김상철이 다시 보고 회사나 외부 영향력을 확인한 후 최종 컨택을 해주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스케줄만 정리된 게 바로 저 스케줄 표였다.
“또 김산호 PD 예능은 연말 촬영 예정이고, 지금 작품 들어온 것들 목록은 봤니?”
“네. 엄청 많던데요.”
“하하, 그것도 3분의 1로 줄인 거란다.”
“우아…….”
리스트만 봐도 작품의 개수가 만만치 않던데 이 시대는 참 다양한 극본이 있는 것 같았다.
수도 수지만, 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한 장르가 한가득이었다.
“이제 이 중에서 시우 네가 원하는 거 골라서 말해주렴. 그럼 내가 그쪽으로 한번 연락해보마.”
“네!”
김상철은 대략적인 스토리와 촬영 예정 시기가 같이 정리된 표를 옆에 놔주었다.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시나리오도 같이 주겠다고 한다.
나는 보물찾기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이 안에 내가 출연하게 될 작품이 있을까?
“그보다 놀랐어. 말로만 매니저가 적성에 맞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 동욱이 너, 정리하는 폼이 예사롭지 않던데? 놀랐다, 깔끔해서.”
“왓,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처음 해봐서 이게 맞나 싶긴 했어요. 그런데 시우가 워낙 인지도 갑자기 올라가니까 양이 많아가지고…….”
삼촌은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히죽 웃으며 삼촌 옆에 찰싹 붙어서 앉았다.
“뭐야? 시우야, 왜 그래.”
“히힛, 삼촌. 고마어.”
“하하…. 그럼! 삼촌이 해주지 이거 누가 해주겠냐!”
요즘 매일 밤마다 잠도 안 자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던데 이걸 하느라 그랬나 보다.
새삼스럽게 내가 고맙다는 말을 전하자 삼촌은 쑥스러운지 귓가가 빨개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음, 그런데 시우야. 이제는 네가 인지도도 생겼겠다, 마구잡이로 작품이 들어오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나는 이번에는 네가 조금 쉬었다가 작품에 들어가는 게 어떨까 싶다. 영화 쪽은 촬영 텀도 길고… 연기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거든? 이런 작품들은 어떨까 싶어.”
김상철은 나에게 내밀었던 리스트의 어느 한 부분을 짚더니 말했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부분을 주의 깊게 보았다.
이르면 올해 초, 아니면 내년 초에 촬영이 시작되는 작품들이었다.
아무래도 연극과 드라마, 영화까지 모든 분야에서 연기를 해본 김상철의 말이기에 신빙성이 있었다.
나는 생각해보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생에서는 한평생 연극만 해본 나보다는 그래도 김상철이 연륜이나 경험이 있겠지 싶었다.
좋아,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저 작품들 시나리오부터 훑어봐야지.
그렇게 결심한 순간이었다.
우웅-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번호 앞자리가 조금 색달랐다.
“어? 뭐지. 삼촌, 이거 봐봐.”
“아…… 이거 국제전화 같은데?”
국제전화?
그럼 제시카인가?
음? 하지만, 이건 또 일본이나 미국에서 걸려올 때와는 다른 번호였다.
우리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김상철이 급하다는 듯이 말했다.
“만약 진짜 제시카면 얼른 받아야지!”
“어, 어…… 그럼 잠깐 받을게요, 극단장님.”
“그래그래. 얼른 받아봐라.”
그러는 김상철도 진짜 제시카한테 온 건지 궁금한 눈치였다.
나는 얼른 플립을 열고 전화를 받았다.
“Hello? Jessica?”
놀랍게도 전화를 건 사람은 정말 제시카였다.
나는 김상철과 삼촌을 보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제시카가 맞다고.
두 사람은 얼른 전화에 집중하라고 손짓에 고갯짓에 난리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편안하게 영어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 음……. 시우의 첫 드라마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야. 촬영은 잘 끝났어?
“네, 네. 맞아요. 최근에 드라마 촬영이 다 끝났어요.”
-오. 그 작품은 아주 잘됐다던데. 이다음 스케줄은 어떻게 돼, 슈퍼스타 씨?
“내일 광고 촬영이 하나 있긴 한데…….”
-음…… 그래?
내가 빠르게 영어로 전화를 받자 두 사람은 눈을 껌뻑이며 나와 제시카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연결된 제시카와의 전화이기에 활기차게 근황을 전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시카의 반응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나와 대화를 하면서도 조금 정신이 다른 데로 가 있는 것 같달까.
“제시카, 말해봐요. 무슨 일인데요?”
그걸 재빠르게 알아채고 제시카에게 물었다.
-예리하네. 크큼, 시우. 사실은 말이야…….
이어지는 제시카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심각해져서 그녀의 전화에 열중했다.
지금 옆에 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로 말이다.
“네에?! 어, 음. 네……. 아마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부모님하고 상의드리고 다시 연락 드려요 될까요? 네, 알았어요. 빠른 시일 내에 연락 줄게요.”
전화를 끊은 나는 멍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뭐래?”
“무슨 일이래? 마지막에는 꽤나 다급해 보이던데…….”
김상철과 삼촌은 앞다투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로 나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제시카가…… 영국으로 와줄 수 없냐는 데요?”
“응, 뭐어? 영국?”
“영국……?! 아니, 그보다 어, 언제?”
“으음……. 그게,”
As soon as possible.
나는 통화 말미에 제시카가 빠르게 덧붙인 말을 떠올렸다.
“바로?”
***
운명일까.
김산호의 예능, 그리고 갑작스러운 제시카의 호출.
둘 모두 영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웅성웅성.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는 커다란 홀.
나는 지금 인천국제공항에 와 있었다.
제시카에게 전화가 오고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탑승 수속까지 다 마치고 난 뒤, 어머니와 삼촌과 함께 게이트 앞에 앉아 대기하는 중이었다.
“와, 시우야. 저기 좀 봐. 광고가 벌써 저렇게 붙었네?”
“으응.”
그러던 중 어머니가 공항 한쪽에 걸린 대형 광고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시리얼 그릇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이 있었다.
얼마 전에 찍은 시리얼 광고 사진이 여기에도 붙은 모양이었다.
윽…….
그런데 저 사진을 보자마자 내 얼굴을 헬쓱 해졌다.
“왜 신나지 않아? 시우 너, 광고 찍는 거 엄청 기다렸잖아.”
이상하다는 듯이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옆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삼촌이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숨을 죽여 큭큭거렸다.
하아…….
같이 광고 촬영장에 갔던 삼촌은 아마 내 심정을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나 광고 이제 안 찍을래.”
“뭐어?”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이 어머니가 삼촌을 휙 돌아봤다.
그러자 겨우 웃음을 참고 있던 삼촌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누나. 당분간 시우 앞에서 시리얼의 시옷도 꺼내지 마.”
“왜? 촬영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내 표정을 확인한 어머니가 안절부절못하고 삼촌을 채근했다.
삼촌은 아직도 웃겨 죽겠다는 듯이 배를 움켜쥔 채로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누나가 걱정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애가 왜 이래……?”
“크큭, 거의 일 년 치 먹을 시리얼을 하루 만에 다 먹어서…?”
우욱.
삼촌의 말에 속에서 시리얼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많이 먹은 거야?”
“연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거지.”
처음에는 맛있게 먹는 연기?
그 정도는 껌이라고 생각했다.
한 그릇을 가볍게 클리어하고 감독님한테 칭찬도 받았다.
훗, 역시 제대로 연기하려면 실제로 먹어야겠지.
나는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불행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아, 그럼 종류별로 계속 먹어볼까요?”
그날, 나는 쏟아지는 시리얼 속에서 먹고, 먹고, 또 먹어야 했다.
나름 뛰어다니는 장면도 있고 앉았다 일어났다 많이 움직였기에 소화가 안 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었지만…….
그날 밤, 나는 삼촌에게 소화제를 사달라고 해야 했다.
“…….”
나는 조용히 그날을 회상하며 창밖에 쭈욱 뻗은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탁 트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느글거리는 속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삼촌, 저건 뭐야?”
지긋지긋한 광고 생각은 그만하고 삼촌을 붙잡고 생소한 모습에 대한 설명이나 듣기로 했다.
“아아, 저건… 아마 비행기 관리하는 분들이 타고 다니는 걸 거야. 신기하게 생겼지?”
“응. 우아, 이렇게 큰 비행기가 하늘을 날 수 있어?”
“그럼. 조금 이따가 시우 너도 저거 타고 하늘로 갈 거야.”
“우아아.”
난생처음 온 공항은 나에게 온통 낯선 것투성이였다.
눈만 돌리면 처음 보는 물건에 듣도 보도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삼촌을 붙잡고 그런 게 보일 때마다 묻기 바빴다.
“후후, 그렇게 신기해 시우야? 이거 먹으면서 기다리자.”
“우웅! 잘 먹겠습니다.”
심지어 어머니가 손에 들려주신 이 츄러스도 너무 낯설 게 느껴졌다.
‘해피랜드’ 놀이공원에 가서 먹었을 때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달까?
“우리 비행기 언제 타?”
“으음, 이제 곧 타라고 할 거 같아.”
“우아!”
이제 몇 분 후면, 나는 저 철로 만든 날개 달린 물체를 타고 내 고향 영국으로 출발한다.
처음에 김산호 PD가 영국에 간다고 하고, 이번에 제시카가 영국에 오라고 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저 멀리 있는 영국에는 도대체 무슨 수로 가는 거지?
TV를 통해서 외국의 모습을 자유롭게 보게 된 것은 가능하다고 쳐도 마음대로 저 먼 곳에 갈 수 있나 싶었던 것이다.
제시카에게 영국에 간다고 했을 때, 그녀는 바로 나와 삼촌, 어머니의 비행기 티켓을 끊어 보내주겠다고 했다.
비행기라는 걸 타게 된다고 들은 후, 나는 비행기에 대해 열심히 찾아보았다.
알면 알수록 기분이 이상하기만 했다.
한국의 인천공항에서 런던의 히드로 공항까지 열두 시간.
그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면 그 머나먼 고향을 찾아갈 수 있다니.
“알립니다. 영국편 비행기 10번 게이트의 탑승을 시작합니다. 소지하고 계신 티켓의 앞번호부터 차례로 입장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차례다! 가자, 시우야.”
삼촌이 간단한 짐과 내 티켓을 챙기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삼촌의 손을 잡고 게이트를 통과해 비행기 안으로 들어갔다.
“우아…….”
“안전벨트 매야지.”
“우웅.”
다소 긴장된 상태로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출발하길 기다렸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으로 나는 찰칵, 벨트를 잠갔다.
곧 닥치게 될 엄청난 진동과 소음은 꿈에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