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9
79화
“응?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아아, 제시카 사실은…….”
제시카는 들어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읽었는지 자신의 최측근인 조이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바로 대답해주려는 조이수를 보며 내가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음?”
“아, 아… 아니에요. 지금 막 시우가 도착해서 모두에게 소개해주려던 참이었어요. 그렇죠?”
의아해하는 제시카의 뒤에서 연신 고개를 저은 보람이 있었다.
조이수는 배우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스리슬쩍 말을 넘겨버렸다.
그 모습에 배우들은 큭큭거리면서 장단을 맞춰주었다.
“으음, 맞아요.”
“맞아맞아, 그렇지. 고든?”
그중에서 짓궂은 몇몇은 일부러 고든에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하지만 끝끝내 고든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게 왜 시비를 걸어. 걸기를.
나는 활짝 웃으면서 제시카에게 말을 걸었다.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배우들을 지켜보고 있는 그녀의 관심을 돌리기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제시카, 진짜 오랜만이에요. 항상 전화 통화만 했는데.”
“맞아, 시우! 정말 보고 싶었어. 일본을 가든 미국을 가든 시우만 한 애가 없더라고.”
역시나.
제시카는 내 말에 바로 관심을 돌렸다.
내 키에 맞춰 허리까지 살짝 낮춘 제시카의 모습에 영국 팀 극단원들이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시우도 그래. 드라마 촬영이 이제 끝났는데 바로 대타를 부탁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저도 슬슬 차기작을 뭘 할까 살피던 중이거든요.”
김상철은 쉬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사실 이왕 쉬는 거 비상철또 777의 무대에나 오랜만에 오르면 어떨까 생각 중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이 말을 꺼냈다가는 영국에 오기 전 며칠 동안 내내 어머니가 보양식을 차려주었을 것이 뻔했다.
차기작을 운운하는 내 말에 제시카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연습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 이런. 내게 또 행운의 여신이 따랐네. 사실 무엇보다 시우를 데려오게 되어서 기뻐. 미국에도 데려가서 무대에 올리고 싶을 정도라고.”
“나중에 좋은 작품 있으면 정식으로 제안해주길 바라요, 제시카.”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는 제시카를 보고서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말했다.
“물론이야.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알았지? 루카스도 시우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열렬한 제시카의 스카우트 제의에 우리를 지켜보던 배우들의 턱이 빠지려고 했다.
“하하, 제시카. 회포는 나중에 풀고. 저를 소개해야 하지 않아요? 오늘 연습도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
“아, 맞다. 여러분, 오늘부터 저희 팀에 들어오게 된 시우 한입니다. 이렇게 작은 아이라고 무시하면 큰코다칠 겁니다. 저 제시카 브라운이 직접 고른 인재 중의 인재니까요.”
내 말에 제시카가 단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하지만 반응은 조이수가 나를 소개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금 전, 고든을 한 방 먹여서 그런지 고든은 잠잠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왜 이렇게까지 부정적이지?
의아한 마음에 무표정한 단원들을 돌아보는데 한 배우가 살짝 손을 들고 발언했다.
“제시카, 아무리 그래도 다섯 살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원래 조니 역을 맡았던 아이가 도망간 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어요.”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이렇게 어린 배우보다는 조금이라도 타협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다들 이전 주연 배우였던 어린아이가 도망갔던 일 때문에 날카로워진 모양이었다.
날 소개만 했다 하면 왜 이렇게 뒤숭숭한 분위기가 되나 했더니… 아직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할 필요 전혀 없어. 시우는 내가 선택한 배우야. 어쩌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에 차는 배우라고 할 수 있지.”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어려도 너무 어린데 말이야.”
“한국 공연보다 저희 영국 공연의 스케일이 훨씬 큰 거 아닙니까?”
두어 명씩 모인 배우들은 이대로 공연이 정상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거냐고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고든처럼 비아냥거릴 의도는 없어 보였지만 못 미덥다는 시선이 내게 사정없이 날아와 꽂혔다.
스케일만 따지면 한국 공연이 이곳 공연에 밀리지 않는데 말이지.
그건 그렇고… 이건 좀 안 좋은데.
이대로라면 될 연습도 안 되고 말 것이다.
제시카가 괜히 나 때문에 안 해도 될 해명을 하고 있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말이다.
주연이라면 주연의 역할을 해줘야겠지.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서 단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 증명해 보이면 되나요?”
“뭐?”
“……지금?”
내 당돌한 발언에 배우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그저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눈빛들이 조금 변했다.
이리도 자신감 넘치게 말하는 걸 보면 무언가 다르긴 다를 거라고 기대하는 눈빛들.
“당연하죠.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수많은 시선 앞에서도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제시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런, 시우. 나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괜찮아. 방금 열두 시간 비행을 마치고 바로 이곳으로 온 거잖아? 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건 내일로 하자고.”
“하지만, 그래도 괜찮겠어요?”
“물론. 저들은 네가 오기를 일주일간 기다렸어. 설마 하루도 못 기다리겠어? 다들 스무 살도 넘은 성인인데 말이야.”
도발하듯 말하는 제시카의 말에 몇몇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팀인데 이렇게 세게 말해도 되려나…….
제시카가 오기 전 고든의 입에 풀칠을 해버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팀워크가 조금 걱정되었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조이수를 살짝 바라보자 그가 괜찮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뭐, 영국인들이 좀 쿨하긴 하지.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모습을 보고 제시카가 단원들에게 크게 외쳤다.
“내일이면 아무 걱정 없어질 테니 다들 걱정 붙들어 매자고. 피곤할 테니 시우는 이만 보낼게. 내일 연습실에서 확인하면 되겠지?”
시종일관 나에게 무한 신뢰를 보여주는 제시카의 모습.
그 모습을 확인한 단원들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던 단원들 중 강하게 항의했던 단원들이 결국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제시카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역시 제시카의 카리스마는 먼 나라 영국에서도 통하는 모양이었다.
어린 내 모습은 미심쩍지만 제시카의 말은 어느 정도 듣는 듯했다.
“그럼 우린 연습을 계속해볼까?”
제시카의 우렁찬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조이수와 함께 연습실을 나섰다.
“그런데 다들 제시카를 되게 신기해하네요?”
지금까지 같이 연습을 했을 텐데 단원들이 제시카를 놀란 눈으로 자꾸 쳐다보는 게 이상했다.
내 말에 조이수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시우 너와 함께 있는 제시카를 신기해하는 거야.”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조이수가 웃으면서 설명해주었다.
“이런, 눈치 못했어? 네가 있고 없고 제시카의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지거든.”
“오…… 그래요?”
그런가……?
내가 없을 때의 제시카는 어떻다는 거지.
잠시 궁금했지만, 조이수가 내 의아한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하긴 시우는 네가 없을 때의 제시카를 못 봤겠구나. 하여튼 그래. 단원들한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자, 이제 돌아갈까?”
“네, 좋아요.”
잘 모르겠지만, 조이수가 그렇다니까 아마 그런 거겠지.
나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 조이수가 문을 열어준 차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는데 긴 비행으로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듯했다.
나는 호텔로 가는 조이수의 차 안에서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
“다녀왔습니다.”
옆방에 묵는 삼촌에게 인사를 하고 어머니와 함께 쓰는 방으로 들어왔다.
삼촌이 챙겨준 카드키를 가지고 방에 들어와 보니 어머니는 씻고 계셨다.
나는 웃옷을 벗고 탁 트인 창가로 향했다.
통유리 창 앞에 서니 어둠에 잠긴 런던 시내가 고스란히 보였다.
영국 공연 팀을 만나랴 조이수와 이야기하랴 이제야 차분히 영국을 둘러보게 되었다.
내 고향 영국.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올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서울과는 상당히 다른 풍경이었다.
길쭉한 빌딩이 많은 서울과는 다르게 많이 높지 않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건물들.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그 건물을 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퍽 낯설었다.
자신이 알던 런던은 이렇게 밝고 환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커다란 빅벤과 놀랍게도 템스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타워 브릿지.
비행기를 타기 전 요즘 영국의 유명한 명소를 검색해보았을 때 나온 건축물들이었다.
내가 이곳에 살았을 적에는 저런 명소가 없었는데 말이다.
정말로 나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되어 버렸다.
눈을 돌릴 때마다 영국 곳곳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니…….
이제는 런던보다 서울이 더 익숙할 지경이었다.
벌써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지 6년.
TV를 통해 매일 접하는 광경도 한국이거니와, 나의 출퇴근길이었으니 익숙해질 수밖에.
서울이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내 기억 속의 영국과 현재의 영국이 너무 다른 탓도 있었다.
외곽으로 나가면 내가 기억하는 광경이 조금 남아있으려나?
수도인 런던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400년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신기하네.”
이제 한 달 뒤면 이곳에서 내 연기를 보여준다.
오스카 극단 사람들과 오스카 피트의 극장에서 올리는 공연은 아니지만.
나의 든든한 친우인 제시카가 준비한 공연이니 분명 런던 사람들도 이 공연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영국에서 예능프로를 찍게 된 것도 모자라, 영국에서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마치 나를 영국이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신기하고 미묘한 기분이다.
“뭐 보고 있어 시우야?”
“우웅, 시내가 반짝반짝 예뻐서.”
“그래? 실제로 와보니 어때. 인터넷으로 엄청 찾아봤잖아. 사진에서 본 건물들 알아보겠어?”
“전혀. 하나도 못 알아보겠어.”
“으응? 그래?”
어머니는 단호한 내 대답에 의외라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셨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내가 기억하던 그 거리는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아빠한테 보여줄 사진 찍을까?”
“웅! 찍을래!”
나는 어머니의 말에 신나서 캐리어로 향했다.
거기에는 문희성이 영국에 가서 쓰라면서 빌려준 캠코더와 커다란 카메라가 들어있었다.
영국에 오기 며칠 전, 집중적으로 배워왔단 말이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렌즈 앞의 덮개를 벗겨내고 창가에 선 어머니의 곁으로 달려왔다.
내일부터는 연습으로 바쁠 테니, 이렇게 틈만 나면 사진을 찍어놓기로 한 것이다.
“너무 무겁지 않아 시우야……?”
어머니는 내가 처음 카메라를 빌려왔을 때부터 너무 비싼 걸 빌려왔다며 망가뜨리지는 않을까 걱정이셨다.
제가 아직 손이 작기는 하지만, 요령이라는 게 있답니다. 어머니.
나는 야무지게 카메라를 잡고 창밖 광경을 찰칵찰칵 찍었다.
처음 눈에 담는 빅벤도, 영국의 거리 곳곳도.
“이거 봐!”
“시우 엄청 잘 찍었네?”
어머니는 곁에서 캠코더로 그런 나를 영상으로 찍으셨다.
처음 문희성에게서 캠코더를 빌려왔을 때부터 그립다는 표정으로 손에서 놓지 못하시더니 영국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아버지, 희성 아조씨랑 극단장님이랑…… 아, 강 감동님한테도 보여줄 거야.”
그립던 영국의 풍경.
나는 열심히 이 모습을 담아 현재 소중한 이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어느새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