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83
83화
나는 서둘러 조이수에게 맹렬하게 눈빛을 보냈다.
여기서 똑바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내 눈빛을 읽은 건지 어쩐 건지 모르지만, 조이수는 아까보다는 바짝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대답했다.
“어머님. 아마 아시겠지만, 시우는 정말 다른 아역 배우들하고는 다릅니다. 일단 영어를 잘하죠.”
“음, 네…….”
어머니는 조이수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큰 비하 이유 중 하나가 외국인이 자신들의 언어를 못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아는 어머니는 원어민급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나를 잘 알기에 잠자코 조이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잘한다, 조이수!
그대로만 하는 거야!
나는 어머니의 반응을 살피며 조이수를 남몰래 응원했다.
“그리고 강용휘 연출가나 제시카가 인정한 연기 실력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비하를 하려고 해도 눈부신 시우의 재능을 보면 절대 욕이 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영국 팀의 극단원들도 시우의 연기를 보고서 하루 만에 인정한 실력인걸요. 어머니도 잘 아시죠?”
“……그렇지만, 그게 영국에서도 통할지.”
“통합니다. 무조건. 미심쩍으실 수도 있지만 제시카 브라운의 안목을 한번 믿어보세요. 그녀는 브로드웨이에서 정상급 배우들만 보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녀가 인정한 시우의 실력을 어머님께서 인정 못 한다고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
어머니는 말없이 생각에 잠기셨다.
하긴 한국에서도 그냥 놀러간 삼촌의 극단에 덜컥 스카우트이 된 걸로도 모자라 수많은 실력자들이 나를 인정해왔으니.
그걸 곁에서 모두 지켜본 어머니는 생각이 많아지신 듯했다.
“그리고 시우는 천상 무대 체질입니다. 원래 영국에서 조니 역을 맡은 아이가 잠수를 타 버렸는데, 시우는 영국에 적응하기까지 일주일이 채 안 걸렸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일주일이 뭔가 나는 하루 만에 다 적응했다고!
다들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모여서 그런가, 긴장은커녕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잔뜩 기대를 안고 올라가기까지 했다.
“그리고 시우의 연기를 본 모두가 시우를 주연으로 인정했고요. 그 콧대 높은 웨스트엔드 인재들이 인정한 겁니다. 같이 일하는 배우들도 알아보는 걸 영국 관객들이 못 알아볼 리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걱정이 많이 누그러졌는지 아까보다는 평소 어조로 돌아온 어머니가 되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와 조이수.
그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내일모레 저와 함께 객석에 앉아 확인하시죠.”
“벌써 기대가 되네요.”
첫 공연을 운운하는 조이수의 말에 삼촌이 고개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당연하게도 극단 측에서 우리 가족을 위한 표를 마련해줬다.
“기대하셔도 좋아요. 제시카가 시우 어머님과 삼촌분의 표는 특별히 좋은 걸로 확보해놓으라고 지시했으니까요. 또, 제가 그날 가이드를 직접 할 거고요.”
“웅? 이수 형. 그날 조연출은 누가 하고요.”
가이드를 한다고?
제시카의 최측근인 그가 무대 준비를 안 하고 웬 가이드란 말인가.
내 물음에 조이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다가 입을 떼었다.
“아, 안 그래도 제시카가 공지를 할 테지만…. 그날 레인보우 픽처스 본사에서 중요한 손님들을 데리고 오거든. 그래서 나는 첫날 백스테이지가 아니라 객석에서 그들을 맞이할 거야. 시우 너한테는 미리 말해도 상관없겠지.”
“루카스?”
본사 직원이 온다는 말에 나는 안면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 멋쟁이 신사 아저씨를 또 만날 수 있는 건가?
바로 튀어나온 레인보우 픽처스의 이사 이름에 조이수가 크게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루카스의 이름을 막 부르는 여섯 살은 나밖에 없을 거라며.
“하하, 그도 오는지는 모르겠다. 혹시 모르지. 시우 네가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에 그도 달려올지도. 아,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제시카의 지인들도 시우 네 공연을 보러 온다고 했단다.”
“하, 할리우드?!”
“네, 예전에 제시카가 할리우드에 진출했을 때 알게 된 사람들이에요. 무지막지한 포스를 자랑하죠.”
자신도 예전에 미국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먼발치에서부터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아!”
할리우드라는 말에 나도 눈이 반짝였다.
내가 좋아하는 잘 나가는 미국 영화의 성지 할리우드!
그리고 제시카가 만들었다는 영화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꽤나 예전에 개봉된 영화라고 했다.
애석하지만 아직 보진 못했다.
어마어마하게 흥행했다는 말에 제시카에게 꼭 보고 오겠다고 했더니, 그녀가 허리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나 했더니, 슬프게도 19세 관람 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란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속에 있는 영혼은 그 영화를 보고도 넘치는 나이인데, 앞으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손가락만 빨면서 기다려야 한다니….
제시카는 그 영화를 마지막으로 영화판에서는 흥미가 떨어져 연극만 계속해오고 있다고 했다.
나는 괜히 친근한 마음이 들어서 조이수에게 물었다.
“누가 오는 건데요?”
“하하, 시우야. 너는 할리우드라는 말에 긴장도 안 되니?”
빨리 말해달라는 내 말에 조이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옆에서 레몬에이드를 먹던 삼촌이 허, 입을 벌렸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무대에 서는 것도 아닌데 벌써 심장이 벌렁거리는데. 너도 참, 강심장이다. 강심장. 이런 건 아마 누나를 닮아서겠지.”
“나도 저 정도는 아니야.”
어머니도 나를 외면하셨다.
아니, 어차피 똑같은 관객인데 무슨 상관이람?
그래도 다행인 건 어머니가 완전히 마음을 놓으신 것 같았다.
본인이 걱정을 해봤자 무대에 오르는 어린 아들이 긴장을 안 한다는데.
걱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으신 것 같았다.
나는 안심한 마음에 활짝 웃으며 물었다.
“아빠는? 아빠는 언제 올 수 있대? 영국 공연도 보여줘야 하는데.”
“으음, 아빠는 내일모레 아침에 도착하실 거야.”
“히힛, 좋아. 아빠한테 대사 다 알아들었냐고 꼭 물어봐야지.”
“시우 때문에 온 가족이 영어 공부하게 생겼네?”
“우웅, 글로벌 가족이야.”
내 말에 어머니가 웃으면서 나를 꼭 안아주셨다.
좋아, 성공이다.
완전히 기분이 나아지셨다.
어머니 품에 안겨 나는 생긋 웃으면서 조이수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역시 몰래 엄지를 치켜들어주었다.
우리 두 사람은 공범처럼 미소를 교환했다.
옆에서 졸졸 흐르는 템스강.
다른 풍경이 다 바뀌었지만 템스강의 모습만큼은 그대로였다.
여기서 남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과거 바텐베르크의 영지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템스강에 옹기종기 앉아 있는 지금, 그곳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
전생에는 차게만 느껴졌던 11월의 바람이 오늘은 따스하게만 느껴진다.
“엣취!”
“시우 춥나 보다. 이제는 실내로 이동해볼까요?”
“좋아요.”
훌쩍, 이게 아닌데.
***
다음날, 만전을 기해 최종 리허설을 끝내고 일찍 호텔로 들어가 푸욱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모처럼 맑은 런던 하늘의 햇살이 밝았다.
대망의 영국판 ‘RUN’ 첫 공연 날.
커다란 극장 대기실에 앉은 나는 내 머리에 씌워지는 가발을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햐, 어쩜 저렇게 위화감이 없는 가발을 만들 수가 있을까.
내가 쓰게 된 것은 밝은 갈색의 살짝 구부정한 결의 가발.
아무래도 영국 공연이다 보니 백인 조니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가발 정도의 분장은 하기로 했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흰 피부 덕에 다른 분장은 크게 하지 않고 가발만 진행하기로 했다.
가발을 쓰기 전 의상은 이미 갈아입은 후였다.
복장은 한국에서 할 때보다 훨씬 영국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퍼프가 들어간 폴리 재질의 하늘하늘한 흰 셔츠에 고동색 니트 조끼.
거기에 귀여운 베이지색 카고바지를 받쳐 입었다.
“다 됐다. 그야말로 조니잖아?”
가발을 씌워진 스태프가 거울로 내 모습을 보며 생긋 웃었다.
나도 그 말에 아주 동감한다.
거울 속에는 아주 예쁜 아이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미 리허설 때 이 분장을 몇 번 해봤기에 처음 보는 모습은 아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꽤 낯선 모습이었다.
금발에 파란 눈일 때도 있었는데, 갈색 머리 좀 했다고 낯설어하다니.
한국인이 다 됐다, 다 됐어.
“오, 시우야. 볼에 눈이 내린 것도 아니고. 겨우 그 정도 분장으로 이 얼굴 나오는 게 맞는 거야?”
“어떻게 백인이라고 불리는 나보다 하얄 수가 있지.”
완전히 친해진 배우들이 내 분장이 끝난 걸 보고 몰려와 내 볼을 콕콕 찔렀다.
내 볼이 하얀 찹쌀떡 같기는 하지.
아, 영국인들은 찹쌀떡이 뭔지 모르겠구나.
말 안 해줘야지.
이 말을 또 하면 공연 시작 전까지 찹쌀떡이 무엇인지 일장연설을 펼쳐야 할 것이다.
요즘 배우들 사이에서 한국 문화 배우기 붐이 일고 있어서 잘못 말을 꺼내면 계속 시달려야 했다.
“어이, 내 아들 너무 조물락거리지 말라고.”
“고든. 빨리 끝났네요?”
“어 음, 시우. 오늘도 미안. 나 방금 백인이니 동양인이니 안 했어.”
“알아요. 전 순수하게 분장 빨리 끝나서 신기하단 소리였어요.”
“…미안. 하지만 나도 별로 할 거 없다고.”
고든은 민망한지 왁스 한 통을 비운 듯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처음으로 영국 극단 사람들에게 인사한 날, 고든은 내게 심한 말을 퍼부은 것에 대해 정말 매일같이 사과를 건넸다.
하도 고든이 날 만날 때마다 쏘리, 시우 해서 내 이름이 쏘리시우인 줄 알았다.
방금 들은 두 번의 사과까지 합쳐서 정말 과장 안 하고 백 번 정도 사과를 들은 것 같았다.
“시우, 이거 마실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거든.”
“고마워요.”
그리고 고든은 그 뒤로 알게 모르게 나를 굉장히 많이 챙겨주었다.
물론, 아이로서가 아닌 배우로서.
제시카가 나를 어린아이 취급 안 하는 것처럼, 영국 팀 사람들도 비슷했다.
아무래도 이게 한국을 벗어나서 드러나는 특징인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라는 느낌이랄까?
똑같은 대사로 똑같은 공연을 위해 모인 팀인데도 국가별로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 퍽 신기하게 느껴지긴 했다.
“이십 분 전! 우리 파이팅 한 번 할까?”
“그거 좋지. 고든, 시우랑 얼른 오라고.”
나는 그 말에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모두가 모인 곳으로 향했다.
“자아, 그럼… RUN 공연을 성공적으로 RUN하자!”
“와아!”
고든과 나, 에밀 리가 가운데 서고 모든 배우들이 모여서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박수와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으아, 너무 떨려. 이제 관객들이 입장하고 있대.”
“안 떨 거라고 하더니, 다 허풍이었나 봐?”
배우들은 서로 긴장을 나누며 대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 역시 제법 긴장하고 있었다.
전생 고향에서의 첫 공연.
솔직히 아주 의미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생각보다 특별히 엄청나게 남다르지도 않다.
떨리는 이유는 그냥, 이 멤버로 처음 선보이는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랄까.
고향이든 어디든, 모든 공연의 무대는 중요하다.
제시카가 나를 데려온 만큼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리라.
그리고 한 번 더 내 조니로 모두를 감동시키리라.
“스탠바이!”
우리는 스태프의 외침을 듣고 다 같이 백스테이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