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난 후, 영국 RUN 공연은 매일매일 순항 중이었다.
“시우, 물 마셔.”
“고마워요, 고든.”
이제 막 월요일 오전 연습을 마친 후, 나는 고든이 건네준 물을 꼴깍꼴깍 달게 마셨다.
공연을 시작한 지 한달, 이제 다음 주면 이곳에서의 RUN 공연도 마지막이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마지막 공연을 하게 되었다.
괜히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하니, 한국에서 이브에 첫 공연을 올렸던 것이 기억났다.
…충격적이었던 아버지의 산타 분장도 함께.
나는 그 모습을 잊기 위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왜, 어지러워? 열나?”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고든이 놀라 내 이마를 짚어주었다.
“으응,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놀래라.”
놀랍게도 연습을 이어나가며 고든은 정말 내 아빠라도 되는 양 행동하고 있었다.
하도 쏘리거려서 이제 사과는 그만 받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물심양면으로 챙겨주기 시작했다.
고든의 모습을 보고 저 정도면 하인 아니냐고 놀리는 단원마저 있을 정도였다.
그 말에 잠시 올리버를 떠올린 나는 고든은 아직 멀었다고 대답해버렸다.
문제는 그 말을 고든 역시 들어버렸다는 거지만.
하루 정도 풀이 죽어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올리버를 뛰어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오늘 오후에는 B팀 연습이지. 시우, 오늘 뭐 할 거야? 내일도 휴일인데!”
월요일인 오늘은 더블 캐스팅으로 나뉜 두 팀이 오전 오후에 나뉘어 연습하기로 되어 있었다.
A팀인 나는 이미 연습이 끝났다.
그리고 화요일인 내일은 공연도 연습도 없는 귀중한 휴일이었다.
간만에 맞는 휴일에 단원들은 오랜만에 오늘 밤에 뭉칠 거라며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제시카도 그들이 얼마나 혹독한 연습 스케줄을 소화했는지 알기에 오늘만큼은 그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물론 컨디션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놀라고 충고하긴 했지만.
“그러게. 별일 없으면 우리가 시우에게 신세계를 맛보여줄까?”
한 단원의 질문에 다른 배우들까지 신나서 우리 곁으로 몰려왔다.
“오우, 좋아. 오늘이야말로 너에게 기필코 맛있는 영국 음식을 보여주겠어.”
“나도나도. 2차로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자고.”
“어이, 너희들 시우를 펍에 데려갈 생각은 아니겠지.”
신난 단원들의 모습을 보고 고든이 인상을 쓰며 그들을 제지했다.
물론 조금도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나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흐응.”
“뭐야, 시우. 지금 영국 음식을 무시하는 거야?”
“시우. 실제로 먹어보면 다르다니까. 지금까지 네가 제대로 된 영국 음식을 못 먹어본 거뿐이야.”
내 반응에 위기감을 느낀 단원들이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지만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제대로 된 영국 음식? 퍽이나.
이봐, 후손들. 역사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아무리 저렇게 떠들어봐도 헛수고일 것이다.
전생에서 내가 평생 먹던 음식을 떠올려 보아도 영국 전통 음식이라고 부른 것들 중 인상적인 요리는 없었으니까.
한시우로 살아가며 한식과 어머니의 보양식에 길들여진 내 혀를 만족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으음, 그게 아니라. 저도 같이 가고 싶지만, 오늘은 안 되겠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도 이들이 납득할 리 없으니 나는 생긋 웃으며 그들을 달랬다.
“뭐? 선약이 있는 거야?”
“이런, 시우. 아직 포기하기는 일러. 겨우 한 달이잖아? 영국 음식을 벌써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끈질기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제대로 단념시키기로 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오늘 한국에서 친구가 오거든요. 친구를 맞이하러 가야 해요.”
“친구? 오, 누구지?”
“누가 오는 거야? 설마 걸프렌드?”
“시우, 아직 네 나이는 어리다구. 더 많은 인연이 찾아올 거야. 알았지?”
단원들은 친구라는 말에 저들이 더 신나서 떠들어댔다.
수다스러운 그들의 말에 둘러싸여 나는 미안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떠날 시간이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오늘은 안 돼요.”
“너무해, 시우…….”
“그래도 다음 기회가 있을 거야. 다음을 기약하자고.”
뒤에서 작당을 하기 시작하는 단원들에게서 도망치듯 연습실을 나섰다.
절대, 영국 음식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는 아니다.
***
“오늘 날씨 진짜 좋다.”
“비행하기 좋은 날씨였겠는걸?”
“우웅!”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삼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오는 히드로 공항.
오늘도 이곳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우야! 여기야.”
주차장에서 공항으로 들어선 우리는 미리 영국에 와있던 3명의 LSB 예능 ‘소년, 영국을 걷다’의 사전 조사팀과 합류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피곤하지는 않니?”
“우웅, 괜찮아요.”
예능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답사팀과 우리는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삼촌과 어머니도 제작진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사전 답사팀은 내가 영국으로 들어온 시기와 비슷하게 들어와서 답사를 다니는 중이었다.
계속 영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왔다 갔다 하는 이들도 있는 거 같았지만.
그 사이, 우리와도 몇 번씩 만나서 소통을 해왔다.
온 김에 내가 ‘RUN’ 공연을 준비하며 연습하는 장면도 어느 정도 촬영하기도 하고 말이다.
“며칠 없는 휴일까지 일하게 해서 미안하네.”
“아직 여섯 살인데 어떻게 우리보다 더 바쁜 거 같아.”
덕분에 내 연습을 지켜본 제작진들은 나에게 완전히 빠진 상태였다.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더 팬이 됐다나?
그래서 그런지 내 컨디션을 어머니만큼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오늘은 저도 꼭 오고 싶었어요.”
공항 한쪽 벤치에 앉아 씩씩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는 제작진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생각났다는 듯이 짐 속에 있던 쇼핑백을 건넸다.
“이거 우리가 시우 주려고 준비한 거야.”
“우아! 감사합니다.”
뜻밖의 선물에 신나서 내가 쇼핑백 안에 든 선물을 꺼냈다.
제작진들이 준비한 건 달콤한 초코 과자와 티 세트였다.
“시우가 차를 즐겨 마신다는 말을 들었거든.”
“진짜 처음에는 사실인가 싶었다니까?”
“호오, 처음 보는 차다. 감사합니다.”
내가 앉은 채로 배꼽인사를 하자 제작진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굴렀다.
“많이 먹어 시우야.”
“다 먹으면 우리가 다른 거 또 줄게.”
“우아! 조금 이따가 다 같이 먹어요.”
처음에 차를 즐긴다는 내 취향에 처음에는 신기해하던 제작진들이지만, 이제는 먼저 내 취향을 챙겨주기까지 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삼촌에게 건넸다.
삼촌은 가방에 내 선물을 잘 넣어주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럼 이제 촬영을 시작할게요~”
시계를 확인한 제작진들이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마쳤다.
다큐 예능답게, 이제부터 내 일상과 여행기를 놓치지 않고 담으려는 것이다.
사전에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줄은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음? 아직 김 PD님이랑 연수 형 안 왔는데 시작하는 거예요?”
카메라 가득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이 담겼다.
***
널찍하고 조용한 남연수네 아파트.
원래는 깔끔하고 널따란 거실에는 남연수의 커다란 캐리어가 활짝 젖혀져 있었다.
오늘도 남진용은 일이 바빠 귀가가 늦었다.
아버지도 없고, 어린 시절 세세하게 챙겨주었던 어머니의 손길도 없기에 남연수는 낮부터 혼자 끙끙대면서 짐을 쌌다.
중간에 매니저인 김성후가 와서 챙겨주기도 하고, 가정부가 정리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쌀 짐이 한가득이었다.
“으음, 이 정도면 되려나?”
이토록 멀리 외국에 나가는 것은 처음이기에 남연수는 서툰 글씨로 작성한 체크 리스트를 들여다보며 고민,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도어락 소리와 함께 남진용이 귀가하는 소리가 났다.
거실 소파에서 고민하던 남연수가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현관으로 향했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남진용은 거실을 가로지르며 힐긋 남연수의 캐리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뿐, 뭐라고 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려는 남진용을 보고 남연수는 용기를 끌어모아 아버지를 불렀다.
“아, 아빠……!”
“…? 왜 그러냐.”
남진용을 멈춰 세웠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물쭈물거리던 남연수가 두 눈을 질끈 감고 허리를 숙였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영국 잘… 다녀올게요!”
“…….”
늘 엄하기만 한 아버지.
남연수는 그가 무섭긴 하지만, 항상 인정받고 싶었다.
고작 여덟 살밖에 안 된 남연수는 부모에게 관심받고 싶은 나이였으니까.
힘겹게 웃음을 짓고 얘기했건만, 감사 인사를 듣는 남진용의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괜히 말했나 싶어서 더럭 겁이 나 고개를 슬그머니 숙이는데, 남진용의 묵직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
역시, 괜히 말했다.
감사하다는 소리를 하고 나서는 혼자서 이렇게 짐을 챙겼다고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말짱 헛것이 될 것 같았다.
“남연수. 고개 들어.”
“네, 넷.”
차가운 아버지의 말에 남연수의 고개가 발딱 들렸다.
“잘 들어라. 넌 놀러 가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들떠서는 안 된다.”
“네에….”
“놀라고 보내는 예능이 아니라 확실히 너를 어필하기 위한 예능이니까. 드라마, 영화 촬영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임하고. 흐트러지는 모습도 보이지 말아라.”
돌아오는 것은 엄한 잔소리뿐.
당부의 말이 줄줄이 이어지며 남연수의 표정에는 실망이 스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남연수는 웃으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 마세요. 아빠, 잘하고 올게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진용이 마지막 당부를 했다.
“그리고, 그 어린놈한테 밀리지 마라.”
“…….”
“예능이건 현장이건 배우는 기에서 밀리면 끝인 거야. 알아들어?”
“……네.”
‘시우는 그런 애가 아닌데….’
속으로 생각한 말은 결코 입 밖으로 내보내지 못한다.
“대충 정리하고 오늘 일찍 자라. 들떠서 컨디션 망치면 안 된다.”
“…네.”
마지막까지 서늘한 어조로 날아온 당부의 말.
그렇게 따뜻한 한마디 인사도 받지 못한 채 남연수는 영국으로 출발했다.
매니저와 함께 LSB 제작진들을 만나고 함께 비행기에 탑승했다.
영국행으로 향하며 남연수는 매니저가 구해다 준 영국 신문을 보고 있었다.
한시우의 얼굴이 실린 기사가 담긴 신문이었다.
“히힛.”
그 신문을 보는 남연수의 표정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영국에 오기 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덕분에 영어로 쓰여 있는 기사도 몇 번이고 꼼꼼히 다 읽었다.
어려운 단어가 많아 완벽히 해석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기사 내용보다는, 한시우의 얼굴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으니까.
영국에 가서 제일 기대되는 스케줄은 다름 아닌 RUN 공연 관람.
스케줄이 바빠서 남연수는 한국의 RUN 공연도 끝내 보러 가지 못했다.
성지훈이 매니저를 통해 보러 올 거냐고 물어봤다던데, 결국 스케줄을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머나먼 영국에 가서 친구의 공연을 보게 되다니.
남연수는 들떠서 다리를 흔들거렸다.
이번에 시우가 보여줄 무대는 어떤 무대일까.
여행하는 동안에 시우랑은 이번에 무슨 대화를 할까.
생각만 해도 즐겁다.
“연수야, 창밖에 봐봐.”
“와아.”
기나긴 비행시간 끝에 드디어 창밖으로 런던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