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이거 꼭 들고 있어야 하는 거죠?”
“응응, 너무 귀엽다. 연수가 이거 보면 정말 좋아할 거야.”
나는 커다랗게 ‘남연수의 영국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걸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제작진들이 너무 기대된다며 옆에서 더 성화였다.
못마땅하지만 시키니 별수 있나.
지금도 카메라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도 연기다, 연기.
나는 이 플래카드가 너무 좋다.
들고 있으니 행복하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이걸 보고 진짜 남연수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는 걸 테니.
“어, 이제 슬슬 나오나 보다!”
제작진의 외침에 출국 게이트 쪽을 바라봤다.
조금 전에 한국발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안내를 봤으니, 이제 슬슬 나오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출국 게이트 문이 열리고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섞여서 들어오는 걸 보니 이제 수화물을 찾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김산호를 비롯한 나머지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함께 오는 것이기에 장비가 많을 거라고 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말에 플래카드를 흔들면서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했다.
“시우야!”
얼마나 기다렸을까.
짐을 가득 실은 카트 서너 대와 함께 남연수와 김산호, 그리고 나머지 제작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연수형.”
나는 플래카드를 열심히 팔락이며 남연수를 환영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아니면 먼 영국에서 남연수를 보니까 괜히 반가운 건가.
남연수의 얼굴을 봤더니 약간 뭉클해졌다.
“보고 싶었어!”
남연수는 매니저에게 뭐라 말하더니 총총 뛰어와 나를 와락 안았다.
생각보다 격한 인사인데?
“어, 어. 나도 보고 싶었어.”
들고 있던 플래카드를 내려놓고 내게 돌진한 남연수를 받아 냈다.
나를 꼭 끌어안은 남연수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다정한 우리의 모습 역시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남연수의 매니저와 우리 삼촌, 어머니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우리보다 더욱 떠들썩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무리도 있었다.
“조 PD! 이게 얼마 만이야. 살 좀 빠진 거 같다?”
“선배님이 영국 음식 일주일만 먹어보세요…. 바로 이렇게 될 테니까.”
바로 김산호를 위시한 이번 다큐 예능의 제작팀이었다.
오랜만에 자신들의 팀원들을 만난 김산호가 그동안 수고 많았다며 후배들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본격적인 고생은 이제부터인 거 알지?”
“해맑은 얼굴로 그런 잔인한 말씀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요…….”
별로 격려가 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히히, 시우야. 나 오늘 길에 너 나온 기사도 봤다?”
남연수는 격한 포옹을 마치고서 내게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기사는 물론 나도 봤다.
아침부터 단원들이 모두 그 신문을 들고 와서 보여줬으니 안 볼 수가 없었다.
“아 진짜? 나 사진 잘 나왔지.”
“맞아. 나 잊어먹을까 봐 사진도 찍어놨어.”
“……사진까지?”
남연수가 매니저의 핸드폰으로 찍은 내 기사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며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남연수가 웃겨 죽겠다는 듯이 쾌활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간만에 보는 남연수의 환한 웃음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연수 표정 좋은데요?”
“그치. 내 말이 맞지? 이 조합은 성공한다니까. 선인장 속 형제 케미를 이어나갈 거라고.”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제작진들은 카메라를 돌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잘 지냈어? 이거 말고 새로운 거 뭐 안 하지?”
“응! 영국에 와 있어야 하니까. 일정이 애매해져서 새 작품은 내년에 들어갈 것 같아. 시우 너는 안 피곤해?”
“우웅. 어제 오늘 공연 없었어. 오늘은 연습도 없어.”
자연스럽게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근황으로 넘어갔다.
를 촬영할 때는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촬영이 끝나자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우와, 피곤하겠다. 이제 얼마나 남았어?”
“일주일 정도. 별로 안 피곤해. 이제 익숙해졌거든.”
“멋지다……. 시우야. 나나 너희 연습실 놀러 가 봐도 돼?”
“연습실?”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남연수는 감탄하더니 대뜸 물었다.
“응! 공연 보기 전에 너 연습하는 거 보고 싶은데……. 안 될까?”
“으음, 극단에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남연수는 나에게 애처롭게 말하다가 힐긋 제작진의 눈치를 봤다.
그 눈빛을 보고 내가 먼저 김산호를 쳐다보며 물었다.
“저희 연습실 가서 촬영해도 돼요?”
아마 제시카는 괜찮다고 할 것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남연수가 구경하고 싶다고 한 거니까.
조이수에게 듣기로는 그녀 역시 예전부터 남연수를 궁금해했다고 했으니 말이다.
직접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지.
나는 제시카에게 남연수를 선보일 생각으로 김산호의 의중을 살폈다.
그냥 남연수가 나를 보러 영국에 놀러 온 거라면 내가 연락하고 가면 그만이지만, 지금은 딸린 식구가 너무 많았다.
남의 나라 공연 준비를 취재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촬영 문제를 해결해 줄 거지? 그렇지?
나는 김산호에게 마구마구 눈빛을 보냈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김산호가 제작진들과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자. 지금 레인보우 픽처스 쪽과 영국 팀 쪽으로 연락해볼게. 시우야, 네가 말 좀 전해줄래? 그다음에는 우리가 교섭하마.”
“네, 좋아요.”
김산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 공식적인 연습 일정은 없으니 아마 내일 가게 되겠지.
“여보세요? 제시카? 옆에 이수도 있어요?”
내가 자연스럽게 영어로 통화를 시작하자 옆에서 남연수가 헤-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가볍게 용건을 말한 나는 김산호에게 휴대폰을 넘겨주었다.
“크흠, 헬로우?”
발음은 영 구리지만, 김산호는 꽤나 수월하게 영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게 더 자연스럽겠네요. 시우 공연장에 연수가 찾아가는 것보다.”
“좋은 소스네요. 잘됐으면 좋겠다.”
제작진들은 갑자기 변경된 촬영 일정에도 별다른 말 없이 기대감을 내비쳤다.
틀에 짜인 예능이 아니라 정말 모두가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는 느낌.
짜여진 각본과 스케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러프하다.
출연진은 단 두 사람.
한시우와 남연수뿐.
그리고 김산호는 이번 예능에서 우리 두 사람이 하고 싶은 걸 우선하겠다고 했다.
미리 짜여진 스케줄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일 뿐이니 우리 뜻에 따라 자유롭게 일정을 조정해도 된다고 했다.
“이렇게 빨리 일정을 바꿔버릴 줄은 몰랐네?”
제시카와의 통화는 긍정적이었나 보다.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산호는 바쁘게 연락을 돌리는 와중에도 우리를 보고 씨익 웃었다.
“원하는 거 있으면 다 말하라고 하셨잖아요.”
“하하, 그래. 좋아. 나는 너희들의 자유로운 유럽 여행을 보고 싶은 거니까. 뭐든지 더 말하렴.”
“진짜요?”
“그럼. 즉흥으로 나온 이번 아이디어도 그림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내 프로그램에 그 제시카 브라운이 나올지도 모른다니.”
얼씨구.
좋아하는 이유가 그거였단 말이지?
나는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김산호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다.
“저희 둘만으로는 부족하세요?”
내 당돌한 말에 김산호는 으하하!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시우 널 데려온 건 신의 한 수다.”
“뭘요. 이제 시작인걸요.”
“그래, 기대할게. 물론, 연수도. 시우 보고 반가워하는 장면 아주 좋았다. 아저씨 마음이 뭉클해질 정도였어.”
“정말요?”
“응, 정말. 앞으로도 이대로만 해주렴. 지금 아주 재밌으니까.”
김산호의 말에 남연수는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이었다.
영국에 오기 전에 그의 부친이 또 애를 얼마나 잡았을까.
그 생각에 절로 인상이 구겨질 뻔했지만, 이것도 다 찍히고 있다는 생각에 겨우 표정을 수습했다.
“영국 극장 측이랑도 연락됐습니다! 오케이래요.”
“오케이- 그럼 시우네 연습실은 내일 가볼까?”
“와아!”
남연수가 만세를 하며 기뻐하고 우리는 다 같이 공항을 나섰다.
***
다음날, 내가 매일 같이 출근하고 있는 연습실에 촬영팀과 남연수를 데리고 도착했다.
원래 남연수는 영국에서 내 RUN 공연이 끝날 때까지 혼자 영국을 돌아다니기로 되어 있었다.
나와 어딜 갈지 제작진들과 함께 답사를 다니는 컨셉으로 촬영하거나, 낮 동안은 쉬다가 저녁에 나와 함께 호텔에서 만나 잠깐잠깐 촬영할 예정이었다.
혼자서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첫날부터 나와 함께 촬영하게 되어서 그런지 남연수는 상당히 표정이 밝았다.
“혼자서 촬영 안 해서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나 혼자 열심히 찍었는데 하나도 재미없어서 다 편집되면 어떡해…….”
“나랑 같이 편집 당하는 건 괜찮고?”
“헉, 아니야. 편집 안 당할 거야.”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남연수를 놀리면서 복도를 지나 연습실 문을 열어젖혔다.
“저 왔어요.”
내 등장에 연습 준비에 한창이던 단원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시우!”
“우리의 슈퍼스타가 오셨다!”
제시카와 조이수에게 이미 들었는지 배우들은 신이 나서 우리에게 달려왔다.
“환영해요. 영국에 온 걸.”
“세상에, 시우의 친구라더니 정말 어린 친구가 왔잖아. 한국에서 시우만큼 유명하댔나?”
“시우의 선배라고 했어.”
영어로 쏟아지는 환영의 말에 남연수는 약간 당황해서 뻣뻣해졌다.
“나, 나이스 투 미츄…….”
긴장해서 더듬더듬 영어로 말하는 남연수의 모습에 단원들은 또 좋아라 했다.
“이게 한국 TV에 방영되는 건가? 반가워요 한국!”
“나도! 나도 한국 TV에 나올래.”
한쪽에서는 우리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막고 영국 배우들이 오두방정을 떨고 있었다.
“안 말릴 거예요, 제시카?”
“내가 왜? 다들 시우네 촬영팀을 환영하는 거라고. 보기 좋잖아.”
능글맞게 웃는 제시카의 말에 나는 한숨을 폭 쉬었다.
조이수와 제시카는 나란히 서서 활달한 배우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헤, 헬로우? 제시카.”
“Oh, 연수. Glad to see you. I really wanted to meet you.”
“어, 음…….”
남연수는 너무 빠른 제시카의 말에 도와달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재빠르게 제시카에게 말했다.
“제시카, 연수는 저만큼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요. 최대한 천천히 쉽게 말해주세요.”
“아, 좋아. 여러모로 시우 너한테 너무 익숙해졌다니까.”
제시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간단하고 쉬운 영어를 천천히 말해주었다.
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지 남연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리고 더듬더듬 대답도 곧잘 했다.
중간에 이게 맞는 말이냐고 나를 힐끔거리기는 했지만.
역시나.
아빠가 그렇게 극성이니 예상하기는 했지만, 조기 교육을 꽤나 혹독하게 받은 모양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영어에 친숙해 보였다.
“그나저나, 연수. 시우의 친구라면 시우 정도로 연기를 잘한다는 건가?”
“오, 그럼 연기를 한번 보고 싶은걸.”
이런, 생각보다 남연수에 대한 단원들의 관심이 지대했다.
기대에 가득 찬 영국 배우들의 눈이 남연수에게 사정없이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