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88
88화
영국에서 맞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드디어 한시우의 RUN 마지막 공연 날이었다.
웨스트엔드 거리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휘황찬란했다.
많은 이들이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환하게 밝혀진 거리의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거대한 트리와 구석진 곳에 있는 가로등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꾸며져 있는 거리.
여기저기 캐롤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남연수는 한시우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역시나 그 곁에는 김산호와 카메라를 둘러맨 제작진들이 뒤따랐다.
“너무 기대돼요!”
어젯밤에도 내린 눈 덕에 웨스트엔드 거리는 질퍽한 눈으로 가득했다.
하루 종일 바깥을 쏘다녀야 하는 일정 탓에 남연수는 아주 단단히 껴입고 다녔다.
오늘은 어그 부츠에 짧은 패딩, 거기다가 군고구마 장수나 쓸법한 귀가 다 덮이는 모자까지 쓴 모습이었다.
“엄청 신났네. 연수야?”
캐롤을 흥얼거리며 씩씩하게 걷는 남연수의 모습에 김산호가 슬쩍 물었다.
그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다.
다만, 남연수가 김산호를 쳐다보는 게 카메라에 잡힐 뿐이다.
“네, 시우가 저한테 엄청 좋은 자리를 잡아줬거든요. 여기… 카메라에 보이려나?”
“잘 보여.”
신이 난 남연수는 한시우가 자신에게 준 특별초대권을 보여주었다.
카메라 렌즈 가까이 대고 글씨가 잘 보이는지 확인까지 했다.
그러던 남연수가 무언가를 보고 멈칫했다.
“어? PD님. 저 저기 신문 하나만 사주세요.”
김산호에게 돈을 받은 남연수는 신문 가판대에 가서 오늘자 신문을 하나 샀다.
이제는 짧은 영어 정도는 제법 익숙하게 주고받는 모습이다.
“이거 보세요! 시우가 영국 현지 신문에 또 나왔어요!”
남연수는 촬영에도 제법 익숙해진 모습으로 자신이 제대로 보기도 전에 카메라 렌즈에다가 신문 1면을 들이댔다.
“잘 보이나? 시우 사진 엄청 크죠? 이 머리는 가발이래요. 조니 역에 맞춰서 시우를 위해 맞춤 제작된 거라고 했어요.”
신문에는 1면의 4분의 1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한시우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영국에서의 첫 공연 이후 신문에 실렸던 작은 사진과는 아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와, 시우의 연기가 엄청나다고 쓰여 있어요.”
“그걸 다 읽을 수 있는 거야?”
제법 있어 보이게 영자신문을 펼쳐 들고 있는 남연수의 모습에 김산호가 웃으며 물었다.
그러자 남연수가 쑥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주섬주섬 신문을 접었다.
“음…… 헤헤. 사실 완벽하게는 못 읽는데. 대충 뉘앙스는 알 수 있어요! 나중에 시우한테 해석해달라고 해야지.”
웃고 떠드는 사이, 일행은 어느새 RUN 공연을 올리는 극장 앞에 도착했다.
극장 앞에는 한시우의 공연을 보기 위한 어마어마한 인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아, 시우 인기 짱이다아.”
남연수의 말처럼 영국 현지에서 한시우의 명성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눈으로만 봐도 여실히 느껴지는 한시우의 인기.
연극이 큰 화제가 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상황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이 사실이 한국에 퍼지면 과연 어떤 변화가 생길는지.
미래를 기약하며 김산호는 마치 악당처럼 미소 지었다.
***
영국에서의 마지막 RUN 공연이 화려한 막을 내렸다.
그날 밤, 김산호의 숙소에 모인 네 사람.
나와 삼촌, 그리고 남연수와 그의 매니저 김성후였다.
우리 네 사람은 진지한 표정으로 김산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여행 촬영이 시작될 텐데요. 지금 여기서! 영국에서의 마지막 바로 전 날, 그야말로 마지막 추억을 쌓기 위해 방문할 극장을 고르게 될 겁니다.”
극장이라.
연기를 하는 아역 배우인 우리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할 이벤트이긴 했다.
나도 영국에 와서 직접 공연을 하느라 공연을 보지는 못했으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어떻게 고를 건데요?”
“좋은 질문입니다.”
김산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섬주섬 종이 두 장을 꺼내 나와 남연수에게 각각 한 장씩 주었다.
“여기 보시면 웨스트엔드에 위치한 극장 스무 곳이 있는데요. 각자 제일 가고 싶은 극장을 우선 동그라미 쳐주세요. 단! 상의를 하거나 서로 어떤 극장을 골랐는지는 비밀입니다.”
으음, 둘 중 하나만 갈 수 있다는 건가.
신중하게 골라야겠군.
“다 고르고 나면, 두 사람이 간단한 게임. 국민 게임이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고른 극장에 가게 될 겁니다. 어때요, 간단하죠?”
“네!”
“네.”
귀찮은 방식이기는 했지만, 나름 예능 프로그램에서 할법한 일이긴 했다.
나는 순순히 펜을 들고 제작진들이 선별한 20개의 극장 리스트를 눈으로 훑었다.
옆에서 남연수는 온몸으로 제 종이를 가리고서 신중하게 동그라미를 쳤다.
그렇게까지 안 가려도 안 볼 텐데 말이지.
아마 남연수는 영국에 오기전에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연구하고 왔을 것이다.
리스트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동그라미를 치는 걸 보면 가장 유명한 4대 극장 중 한 곳을 골랐겠지.
그럼, 나는 마이너한 곳을 공략해볼까.
생각 정리를 마치고 극장의 이름을 살폈다.
그러다가 딱 걸리는 극장 이름이 있었다.
……예전 오스카 극장이 있던 자리를 차지한 극장.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이름을 보자마자 동그라미를 쳐버렸다.
비록 오스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
지금의 그곳에서는 어떤 연기를 하는지, 극장 선배로서 확인하고 싶달까.
이미 선택을 끝난 남연수 말고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던 김산호는 의외라는 듯이 한쪽 눈썹을 올렸다.
“흐음? 두 분 다 골랐나요?”
“네!”
우리는 동그라미를 친 종이가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 두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는 제법 비장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가위… 바위, 보!”
“악!”
“이겼다!”
승자는 나였다.
의기양양하게 보자기를 들고 남연수를 바라봐주었다.
시무룩하게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던 남연수가 곧 내게 물었다.
“어디를 골랐어? 설마, 나랑 같은 데 고른 거 아냐?”
애석하게도 그건 아닐 것이다.
“볼래?”
얼른 고개를 끄덕이는 남연수를 확인하고 나는 내 종이를 휘릭 뒤집었다.
“……프리덤?”
“응, 전 여기 가고 싶어요.”
남연수가 내가 고른 극장을 중얼거리는 사이, 나는 김산호에게 내가 동그라미를 친 종이를 보여주었다.
김산호는 카메라에 종이가 잘 잡히도록 들고는 물었다.
옆에서 남연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이 극장을 골랐지요, 시우 군?”
“그냥 자유로워 보여서요. 프리덤 극장. 멋지지 않나요?”
차마 내가 예전에 올랐던 극장터에 있어서,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둘러대었다.
이걸로 넘어가지 않는다면, 전에 제시카와 지나간 적이 있다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내 말을 듣고서 옆에 있던 남연수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내었으니까.
“시우야아…….”
“어, 어? 왜 울려고 그래, 형.”
“씨이, 감동이야…….”
감동? 무슨 감동?
나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입을 작게 벌렸다.
남연수는 내가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프리덤이라는 이름을 고른 걸 가지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라, 뭐 이런 의미로.
음, 내가 생각해도 꽤나 감동적인 멘트이긴 하네.
좀 민망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음, 어…….”
“역시 시우 네가 최고야.”
“…그, 그래. 하하. 형이 내 선택을 기뻐해 줘서 다행이다. 하하, 하.”
착각을 한 것까지는 상관없는데 문제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시청자들이 남연수 쟤 왜 저러냐고 하면 어쩌지?
나는 쩔쩔매면서 남연수의 모습을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노력했다.
“그럼 저희 이 으로 정해진 거죠?”
“어? 으응, 낙찰!”
“좋은 거 같아요….”
나는 재빠르게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서 김산호에게 물었다.
영문을 몰라 하던 김산호 역시 그렇다며 재빠르게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낯선 이름에 의아해했던 남연수도 어느새 시우가 고른 거라면 뭐든 좋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는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며 촬영을 시작했다.
“우선 뭐 먹을지 정해볼까?”
“좋아!”
RUN 공연이 모두 끝났으니, 이제 내가 연습실에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서 시작된 본격적인 의 촬영.
우리는 호텔을 벗어나 타워브릿지를 걸으며 브런치로 뭘 먹으면 좋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당일.
덕분에 가는 곳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가득이었다.
“영국에서 지금까지 뭐뭐 먹었어?”
“음……. 피자랑 햄버거, 인도 커리?”
영국에서 체류한 기간이 긴 나에게 묻는 남연수.
그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며 그나마 맛있었던 음식들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남연수가 빵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뭐야! 다 외국 음식이잖아!”
“이런 데가 맛집이라는 데 어떡해, 그럼.”
영국 음식은 맥주나 와인이라도 곁들여야 그나마 먹을 만 하단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섯 살이고, 남연수는 고작 여덟 살!
술을 시킬 수야 없었다.
“음, 음……. 큰일이네.”
“다리 건너서 제일 맛있는 냄새가 나는 집으로 들어가자.”
“피자집 갈 거 같은데.”
“그럼 뭐 어때.”
우리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타워브릿지를 건넜다.
매일 혼자 촬영에 나서다가 내가 옆에 있어서 신났는지 남연수는 종알종알 잘도 떠들었다.
“있잖아, 시우야. 내가 책에 봤는데 타워브릿지는 지은 지 100년이 넘었는데 한 번도 고장 난 적이 없대! 엄청난 다리지 않아?”
“그러네.”
“책에 실려 있던 사진이랑 진짜 똑같아. 신기하다.”
어지간히 공부를 많이 하고 왔나 보다.
입만 열면 인터넷이나 책에서 봤다면서 남연수는 자신이 본 걸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혼자 다녀 버릇해서 그런가 혼잣말이 늘듯이 말수도 는 것 같았다.
“100년이라…….”
신식 건축물이군.
나도 처음에 이 다리를 봤을 때 꽤나 신기해했던 기억이 났다.
배를 타고 템스강을 가로질러 다녔을 때는 없었던 건축물이었으니 말이다.
“근데요, PD님. 저희 진짜 아무 데나 가도 돼요? 후보군도 없어요?”
이대로 다리를 다 건너면 정말로 피자집에 들어갈 것 같아서 내가 김산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면 진한 치즈 냄새가 나는 버거집이나, 샌드위치 집.
핫도그 집 같은 곳에 들어가겠지.
내 물음에 김산호가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있긴 한데, 안 가르쳐 주련다. 너희들이 가고 싶은 곳 아무 데나 들어가 봐.”
“네? 이러다가 여기가 영국인지 미국인지 모르게 될 수도 있다고요.”
죙일 미국식 패스트푸드만 먹게 되어도 괜찮느냐는 내 으름장에도 제작진들은 씨익 웃을 뿐 레스토랑 리스트를 내놓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정말 아무 데나 들어가 주겠어.
섭외도 알아서 해줄 것이다.
어린 우리가 나서서 말하는 것보다 수월할 테니.
“시우야, 그래도 우리 영국 음식 먹으면 안 돼?”
“영국 음식?”
그런 게…….
남연수의 말에 고개를 저으려던 나는 한 가지 음식이 떠올랐다.
“피쉬 앤 칩스 어때? 대신 작은 가게로 갈 거야.”
“좋아! 나 그거 먹어보고 싶었어.”
“그래, 그럼 내가 아는 곳으로 가자. 큰 가게는 줄이 너무 길 거야.”
“신난다!”
나는 환호성을 지르는 남연수를 달고 다리를 다 건너고 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피쉬 앤 칩스라니.
이런 게 언제부터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단다.
내가 노아일 시절에는 없던 음식이었으니.
영국의 귀족이었던 내가 어느새 거침없이 런던의 후미진 골목을 누비게 되다니.
세상은 역시 두 번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