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9
9화
“우웅?”
넌 누구냐.
저번 첫 방문에서는 못 본 얼굴이 나를 향해 생글거리고 있었다.
이놈, 만만치 않다.
“시우 맞지? 나랑 이름이 비슷하네. 나는 선우야, 김선우. 이번에 에서 연섭 역을 맡았어. 같이 잘해보자?”
“웅? 그럼 주인공이에요?”
“하하, 맞아. 내가 주인공이야.”
“우웅.”
역시나.
연기 잘하는 놈은 평소 말하는 것만 들어도 대충 감이 온다.
아까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초장에 범상치 않은 놈이구나 싶었는데, 주인공이라니.
나는 김선우라는 멀끔한 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직 젊어 보이는데 이 공연의 주연이라 이거지?
눈여겨봐야겠군.
김선우의 길쭉한 팔다리, 조막만 한 얼굴을 샅샅이 살피는데 저 멀리서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자, 오늘 연습 시작해볼까? 그전에, 우리 극단에 들어온 뉴페이스부터 소개하고 시작합시다.
시우야, 이리 와.”
뽀짝뽀짝.
어머니가 미끄러지지 말라고 새로 사준 운동화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 운동화를 신고 나가면 사람들이 힐끗거리는 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덕분에 요새 즐겨 신는 중이었다.
‘얘는 누구 닮아서 관심받는 걸 이렇게 좋아하냐. 종자가 다르네.’
손을 잡고 같이 가던 삼촌이 한 말이었다.
“어머, 귀여워.”
“시우 결국 캐스팅 확정된 거야?”
이것 봐라.
내가 지나가니까 역시나 모두의 시선이 따라오지 않는가.
나는 어깨를 쫙 펴고 포부도 당당히 강용휘 옆에 섰다.
“안냐세요.”
배꼽 인사를 하자 귀엽다는 소리가 폭포처럼 귓가에 흘러들었다.
흠, 역시 이 인사가 효과가 좋군.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인사를 마쳤다.
“오늘부터 영수 역으로 에 합류하게 된 한시우 군이다. 박수!”
우렁찬 강용휘의 말에 다들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감쨥니다. 감쨥니다.”
화답하기 위해 다시 한번 배꼽 인사를 선보였다.
그러자 강용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신고식 대신 오늘 연습은 시우 연기로 시작해볼까? 다들 어때?”
“좋아요!”
“대찬성!”
모두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서게 될 무대를 위한 연습.
작은 몸이 울릴 정도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
팟.
아까 내가 신기해한 조명이 연습실 한가운데를 비춘다.
조명을 제외한 모든 불이 꺼져 캄캄한 연습실 한쪽에는 이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배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나를 포함해 이 장면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반대편 구석에 서서 출연을 대기 중이다.
이윽고, 연습이 시작됐다.
“저거, 저거.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나?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어차피 다들 판자촌 못 벗어나는 인생인 거 뻔한데. 여기서 몇 푼이나 더 벌겠다고 나서, 나서기는.”
오호라.
연기가 시작되기 전 나무로 된 큐브를 이리저리 옮기길래 저게 뭔가 싶었는데, 소품으로 활용하는 모양이었다.
큐브 서너 개를 붙인 곳에 걸터앉은 배우 두 사람이 어딘가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내가 나설 차례라는 사인.
나는 대기석을 박차고 나가 양팔을 쫙 펼치고 그들 앞에 섰다.
“우리 압빠 욕하지 마요!”
“크흠.”
내 노성에 조금 전까지 영수의 아버지를 욕하던 배우 두 사람이 고개를 모로 돌렸다.
제법이다.
저번 연습에도 느꼈지만, 걸출하게 툭툭 내뱉는 대사 톤이 일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이곳 극단의 배우들 실력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는 덩달아 흥이 올라 더 크게 외쳤다.
“우리 압빠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러지 마요! 아조씨들 나빠.”
“영수야, 네가 어려서 뭘 몰라서 그래.”
“어이,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겨. 그만해! 영수 너도 집에나 들어가라. 들어가서 아빠 자알 붙들고 있어. 허튼짓 못 허게. 으응?”
누군가의 멱살이라도 잡아채듯 허공을 쥐고 바르르 떠는 동작.
말린다기보다는 조금 더 원한이 들이찬 듯하다.
애라고 그 뉘앙스를 모를 리 없다.
어느새 내 눈가는 불긋해졌다.
“허, 참. 왜 우리가 나쁜 놈들처럼 욕이나 처먹고 있는 거야.”
“너도 그만혀. 애가 뭘 안다고 그려. 어? 지 허물이 자식한테 가는 것도 모르는 저 정신 나간 놈이 문제지.”
결국 참지 못하고 악에 받쳐 빼액 소리를 지른다.
억울함과 분함이 그득 담긴 눈물은 차마 떨어지지 못하고 두 눈에 고인 채다.
“우리 압빠 이제 안 나빠요! 그만해!”
“아이고, 영수야!”
옆에서 튀어나온 아버지 역의 배우, 최이섭이 나를 잡아챘다.
그리고 황급하게 두 사내의 사나운 눈초리를 피해 퇴장.
“좋았어! 감정 좋고.”
강용휘의 사인으로 다시 연습실 불이 환하게 밝아졌다.
나는 배우의 품에서 빠져나와 두 눈을 꾹꾹 눌렀다.
훌쩍.
에이씨, 콧물 나오면 안 되는데.
“와, 다섯 살 맞아? 저렇게 순식간에 몰입하는 게 저 나이에 가능하다고?”
“다시 봐도 대박이다. 저런 애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대.”
배우들은 내 연기를 보고 수런거리는 중이었다.
“시우야, 잘했어. 아주 이거다, 이거.”
강용휘는 나에게 다가와 쌍엄지를 치켜들어 주었다.
뭐야?
나는 알 수 없는 그의 제스처에 어설프게 두 엄지를 올려 주먹을 쥐며 물었다.
“이고? 이게 모야?”
“이거 몰라? 네가 짱이라는 거야.”
“짱?”
“최고라고. 풜펙트.”
Perfect?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그렇군.
이곳 문화권에서는 Perfect를 짱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짱이야.”
휴, 이런 게 극단생활 아니겠는가.
나는 엄지를 펴고 강용휘를 향해 치켜들어 보여주었다.
극단장이 없는 자리에서 이 작자가 최고 책임자였다.
미리미리 잘 보여둬서 나쁠 것 없지.
“응? 나 말이야?”
“잘해, 강 감동님 짱!”
“아하하, 고맙다.”
“아우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나는 내 머리를 마구 헤집은 강용휘를 시퍼런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런데도 강용휘는 귀엽다, 어쩐다며 내 머리를 한 번 더 엉망으로 만들고 나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럼 피드백을 시작해볼까?”
오, 평가 시간인가.
나는 삼촌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강용휘의 입을 바라보았다.
“우선, 우리 뉴페이스 연기 어땠습니까, 다들.”
곳곳에서 최고였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아주 최고였지. 음, 그런데 다 좋은데 말이야. 조명이 좀 익숙지 않은 거 같아.”
조명!
안 그래도 이리저리 몸이 움직이는데 환한 빛이 생각보다 강해 당황스러웠다.
일렁이는 횃불이랑은 조도가 아예 다르달까?
“처음에 영수가 등장할 때 이쯤에서 멈추는 게 좋았어. 왜냐면 그 지점을 넘어가면 조명이 영수를 제대로 비출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시우는 여기서 세 발걸음 더 나아갔지.”
“우웅. 여기서 멈추며는 저 사람드리랑 너무 머니까.”
나와 함께 연기한 배우들이 걸터앉아 있던 큐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맞아. 이게 현실이었다면 거리감이 조금 있지. 하지만 무대에서는 조명을 생각해야 해. 그래서 연출가인 내가 ‘동선’이라는 걸 짜줄 거야.”
전생, 내가 연기할 때도 동선은 매우 중요했다.
다만, 방금 연습에서는 강용휘가 디테일한 동선 지시를 주지 않았기에 자유롭게 움직여봤을 뿐이다.
아마 어린 내게 조명에 따른 동선이 필요하다는 걸 빠르게 이해시키기 위해 택한 방법이리라.
“때에 따라서는 조명에 따라 지금보다 더 현실과는 다른 자리에 서게 될 수도 있어. 음··· 일단 여기까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시우?”
“웅! 아라요!”
“좋아. 우선 이 장면에서는 영수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향해 나서는 장면이라 조명을······.”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이어지는 강용휘의 평을 들었다.
확실히 조명이라는 게, 횃불과 비슷한 역할인 것 같았다.
조금 다른 점은 한 곳에 고정할 수밖에 없는 횃불하고는 달리 조명은 연출가나 배우들이 원하는 대로 훨씬 자유롭게 위치를 조정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또명 조아.”
“어?”
강용휘가 다음 배우의 피드백으로 넘어간 사이.
갑작스러운 내 중얼거림에 삼촌이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또명 짱.”
“하하,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런데 오늘따라 삼촌이 묘하게 힘이 없다.
왜 그러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니 너무 긴장하느라 온몸이 굳어져 있는 게 한눈에 들어왔다.
얼굴도 하얗게 질린 것이 연기는커녕 저러다 픽 하고 쓰러지겠다.
“다음! 나동 사람들 대화 장면 가볼까.”
강용휘의 말에 해당 장면의 배우들이 빠르게 앞으로 나갔다.
그렇게 이어지는 연습.
순서상 이제 곧 삼촌이 연기할 차례였다.
흐음.
이렇게나 굳어서 잘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좋아. 잠깐 쉬었다 갈까?”
아쉬움에 쩝, 입맛을 다시는 나와는 다르게 삼촌은 벌떡 일어나 연습실 바깥으로 향했다.
저놈 저거, 꽤나 급했나 보다.
***
“그만, 좋아. 여기서 끊고 가자고.”
“휴우.”
강용휘의 말에 준비된 대사를 모두 마친 삼촌이 티 나도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주어진 대사가 끝난 후에 무대에 남아 있기만 했는데도 저렇게 뻣뻣할 수가 없었다.
“먼저, 지현이? 좋았어. 좋았는데······ 그냥 도도한 거 말고. 싸가지 없게 도도해야 해.”
“조금 더 비꼬듯이 말해볼까요?”
“그래. 그런 식으로. 단아한 아가씨 역할 하는 거 아니잖아, 지금. 그냥 쿨하게 가보자고.”
“네.”
“발성도 조금 더 탄탄하게 가져가면 좋을 것 같고······. 동선이 조금 어색하네.”
“동욱이랑 조금 더 맞춰봐야 할 것 같아요.”
배우의 말에 강용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다른 배우와 합을 맞추다가 생초짜나 다름없는 삼촌과 이 정도로 합을 맞춘다는 건 오로지 저 배우의 실력이었다.
그걸 강용휘 역시 아는지 별말 없이 넘어갔다.
“거리감 잘 가져가자고. 다음, 지동욱.”
“네, 넵!”
너무나 긴장해서 연기 전에 화장실까지 다녀온 삼촌은 군기가 바짝 들어서 대답했다.
“알지?”
“네······.”
강용휘의 단출한 물음에 삼촌은 시무룩 고개를 숙였다.
“긴말 안 한다. 동욱이 너는 아직 연습 충분치 않으니까. 긴장 푸는 것부터 하고, 그다음에 피드백 들어간다. 알았지?”
“넵!”
“그래, 들어가 봐.”
제법이네.
물론, 삼촌 말고 강용휘를 말하는 것이다.
이 몸의 울음을 그냥 생떼가 아닌, 연기라고 알아본 것을 보아 안목이 꽤 괜찮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오늘 보니 연출도 제법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한번 본 것만으로도 그 배우가 어떤 생각인지 잡아내고 교정해준다.
카리스마 있는 그의 지도에 어느 하나 불만을 가지는 이도 없었다.
리더십도 있는 거 같고.
그런 그에게 피드백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 탓일까.
내 곁에 풀썩 주저앉는 삼촌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껴 있었다.
“삼쭌.”
“으응, 시우야.”
어쭈, 땅 파고 들어가겠네 이러다.
연체동물 마냥 흐느적거리는 걸 보고 안 되겠다 싶었다.
이 모습으로 집에 돌아가면 우리 어머니께서 또 걱정이 한가득이실 테니.
“나 바바.”
어쩔 수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삼쭌, 긴장해서 몸 딱딱이야.”
“어? 어어, 그렇지.”
아니, 시무룩해할 시간이 없다니까?
나는 다시 주목하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말했다.
“그러치만, 힘업는 고 아냐. 바바.”
자리에서 일어난 그대로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려서 우뚝 섰다.
“기본은 이로케 서는 거야. 다리에 힘주고! 이케! 알아쪄?”
배우는 연기할 때 하체에는 힘을 딱주고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심이 잡혀 보이고 관객에게 안정감을 준다.
무대에 선 배우가 안정감이 없으면 어떤 연기를 하던 조마조마하게 볼 수밖에 없다.
배우에게 하체 밸런스는 그야말로 모든 것의 원천이다.
“삼쭌. 하체 부실!”
“커헉. 시, 시우야. 누가 들으면 오해해.”
“오해? 몰라. 그보다 알아쪄?”
하체 힘을 딱주고, 중심 이동을 언제 어떻게 할지를 정하면 그 뒤는 쉽다.
상체를 어떻게 쓸지 정하면 끝이니까.
동작이 확실해지면 자연스레 긴장도 덜하고 대사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아, 알았어. 하체에 힘을 주라는 거지?”
“으웅!”
이제야 알아듣는군.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은 긴가민가한 얼굴이지만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휴.”
나는 한숨을 돌리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응?
그러다가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김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거지?
“흐응.”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앉아 팔짱을 꼈다.
어쭈 저쪽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제 곧 김선우의 연습이 시작되겠지.
좋아, 이 극단의 주인공이 어느 정도 하는지 한번 지켜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