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93
93화
나는 조용히 거울 속 모습을 보다가 행거 맨 구석에 걸려 있는,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 기본 턱시도를 가리켰다.
“나 저걸로 할래요.”
“어……?”
“저, 저걸로?”
언뜻 보면 너무 단정해 보이지만, 새틴 소재로 된 카라와 자켓 뒷부분에 디테일이 정교하게 들어간 수작이었다.
“저런 검은색은 그날 다른 어른들이 너무 많이 입을 텐데?”
“그래, 시우야. 네 나이 때 이런 턱시도 입으면 얼마나 귀여운데!”
“연수 군이나 다른 아역들은 훨씬 화려한 걸 입어서 시우 네가 묻힐 수도 있어.”
“아니, 저걸로 할래요.”
당황해서 너무 수수하지 않느냐는 주변인들의 말에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연수 성격에 이렇게 튀는 옷을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 데 말이지…….
하지만, 아마 이번에도 부친이 골라주는 옷을 입고 시상식에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한껏 튀는 옷을 입고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이중에 그나마 저게 제일 마음에 드는걸.
“하지만…….”
“으응, 정말 그걸로 할 거예요?”
단호한 내 태도에 직원들이 당황한 찰나였다.
구석에 있던 원장에게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후후, 시우 군이 안목이 있네요. 저게 행거에 걸려 있는 것 중 제일 비싼 옷인데.”
“헉.”
“어어……?”
직원들은 그건 맞다는 듯 아쉬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가족들은 놀라서 숨을 들이쉬었다.
“연기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옷도 잘 보는 거야 시우 군은?”
다시 한번 이어진 원장의 칭찬에, 어머니는 나 보고 어떤 기준으로 선택한 건지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한편, 나는 원장의 말에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아, 그럼 내가 이래 봬도 바텐베르크 성에서 가장 좋은 것만 보고 자란 사람인데 이 정도 안목은 기본이죠.
옷이 아무리 휘황찬란하고 빛나면 뭐 하나, 정작 그 옷을 입은 사람이 묻히면 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제 기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내 눈에 저렇게 화려한 옷들은 옷 그 자체가 빛날 뿐이지, 나를 살려주는 옷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이 행거 하나지만, 바텐베르크의 성을 달고 있던 시절엔 연회 한번 참석하기 위해 방 안 가득 걸려 있는 옷을 피팅한 적도 있는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일단 한번 입어볼게요.”
휴, 이번 생의 내 미모도 웬만한 옷에 가릴 생김새는 아니긴 하지만.
이왕 사람들 앞에 나설 거 최고로 멋진 모습이어야겠지 않은가?
그것도 무려 상을 타러 가는 건데 말이다.
나는 원장에게서 옷을 받아들고 척척 탈의실로 향했다.
음, 이게 훨씬 났군.
고급스럽고 차분한 분위기.
그야말로 배우상이었다.
탈의실 안에 달린 거울을 보면서 내 모습을 점검했다.
그리고 나서 밖으로 나가자 수많은 눈이 나에게 박혔다.
나는 잘 보라는 듯이 어깨를 당당하게 펴고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주었다.
찰칵, 찰칵-
아버지가 홀린 듯이 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
“…….”
“…크흠, 괜찮네.”
식구들 중 삼촌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반응을 했다.
사심 가득했던 직원들도 눈물을 머금고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크윽, 멋있긴 하네요…….”
“시우 군 귀여운 거 입으면 진짜 누나들 다 쓰러질 텐데…….”
나는 작게 중얼거리는 직원의 말을 듣고서 방긋 웃었다.
“그럼 이걸로 할게요!”
***
12월 31일.
2007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아직 크리스마스의 열기가 식지 않은 거리.
늦은 밤까지 불이 들어와 있는 가게가 여럿 있었다.
곳곳에서는 여전히 캐럴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기도 했다.
거리에는 송년회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아닌 곳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으니.
바로 KMB 연기대상이 열리고 있는 KMB 공개홀이었다.
시상식 객석에는 팀을 비롯한 드라마 팀, 배우들이 앉아 있었다.
“와, 너무 떨려.”
“후. 우리 후보에 올라있는 건 언제 발표하는 거야. 원래 이렇게 시상식이 길었나.”
선인장 팀 테이블에 앉은 배우들이 서로서로 긴장을 나누며 소곤거리는 사이.
그런 배우들 사이에 유독 여유롭게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오늘따라 번쩍번쩍 빛이 날 정도로 꾸민 나, 한시우였다.
휴, 역시 내가 고른 턱시도는 빛을 발했다.
레드카펫을 지나 포토존에 섰을 때부터 기자들이 의상이 멋지다고 몇 번이나 소리쳐준 것이다.
모든 아역들이 알록달록 화려하게 옷을 입었으니 오히려 반대로 단정하고 차분하게 차려입은 내가 눈에 띄는 결과를 낳았다.
이목을 모으며 입장한 나는 테이블 보 밑으로 신나서 다리를 동당거렸다.
매일 TV로만 보던 연말 시상식에 직접 오게 되다니.
초대된 이들만 올 수 있는 파티에 참석한 것 자체가 즐거웠다.
지금까지 매일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면서 눈에 익은 배우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웠고.
이 안에서 나도 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든 일부라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후하, 시우야. 너는 안 떨려?”
“별로? 근데 연수 형. 그거 뭐야?”
“어, 어? ……마시는 걸로 나온 청심환.”
혼자 조용히 텀블러에 담긴 무언가를 홀짝이던 남연수가 내 말에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그거 먹다가 형 이따가 졸려서 꾸벅꾸벅 졸 수도 있어. 여기 엄청 따뜻하잖아.”
“그래도 지금 심장 터지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 시우야, 너의 평정심을 나한테도 나눠주면 안 되겠니?”
울상인 남연수와 내가 조잘거리는 모습이 화면에 가득 잡혔다.
순간, 평소 연예 대상에 비해 조용하고 과묵하다고 알려진 연기대상에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객석에서만 들린 소리도 아니었다.
배우들이 모여 앉아 있는 홀에서도 귀엽다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이 오늘 좀 귀엽긴 하지.
나는 거대한 화면에 잡힌 우리 둘의 모습을 보고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환호 소리에 토끼 눈을 뜨고 있던 남연수도 내 모습을 보고 재빨리 따라 손을 흔들었다.
“아아, 과연 올해 최고 화제 인물다운 여유입니다. 한시우 군.”
“저런 담력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연기 연극부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말 무대 체질인 걸까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진행자인 두 사람이 화제의 주인공다운 여유로운 자세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 시우 오늘 너 진짜 멋있는 거 같아.”
“턱시도 모습을 처음 보여줘서 그런가?”
나는 많은 배우들한테 들은 말로 웃으며 받아쳐 주었다.
그러자 남연수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저어버리는 게 아닌가.
“아니. 시우 너는 옷이 시우빨인 거지. 엄청 단정한 옷이잖아.”
“……어, 그래. 고마워.”
이러니까 자꾸 김산호를 비롯한 제작진들이 남연수보고 내 1호팬이라고 놀리는 거다.
저런 말을 저렇게 진지하게 하고 있으니 내가 놀리고 싶어도 더 이상 놀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오늘 신인상을 비롯해, 다양한 부문에서 경쟁자가 되었는데요.”
“희대의 라이벌전이죠? 모두가 결과에 주목하는 가운데 오늘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과연 누가 될지! 남연수, 한시우 라이벌전도 오늘의 관람 포인트니 놓치지 말고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연수는 주위에서 뭐라고 하던 이렇게 바르게 내 칭송이나 하고 있는데.
진행자들은 우리 사이에 불을 붙이지 못해 안달 나 있었다.
선인장 팀의 아역 두 사람이 워낙 화제이다 보니 틈만 나면 비는 시간에 우리 이야기를 끼워 넣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사이 좋게 장난을 치며 다음 수상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세상이 우리를 이토록 라이벌로 만들고 있으니 남연수가 나를 질투할 법도 하지만, 남연수는 달라짐이 전혀 없었다.
테이블 중앙에 놓인 꽃이 예쁘다며, 내가 상 받으러 가면 저 꽃 들고 달려 올라온단다.
그걸 보고 다시금 생각했다.
이 아이는 이대로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다음은 드디어 아역배우상 시상입니다.”
“신인상에는 두 사람 다 수상을 하지 못했죠? 신인상 말고 더 큰 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다들 말들이 많은데요. 후보부터, 확인하시죠.”
아역배우상 후보에 나와 남연수의 얼굴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럼, 수상하겠습니다.”
후보자 영상이 끝나고, 어느새 무대 위에 오른 시상자가 천천히 금빛 봉투를 열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수상자를 호명했다.
“올해 2007년 KMB 아역배우상 수상자는 의 한시우입니다. 축하합니다!”
나는 우와! 절로 나오는 탄성을 감추지 않았다.
다들 상을 받을 거다, 받을 거다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름이 불리자 온몸을 휘감는 쾌감은 정말 난생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나는 오늘만큼은 맨들맨들한 구두를 신고 열심히 무대 위로 올랐다.
준비된 상패와 꽃다발을 받은 나는, 내 키에 맞춰진 마이크에 대고 열심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가장 먼저 엄마아빠에게 감사합니다!”
내 또랑또랑한 말에 홀에 있는 배우들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남연수를 포함한 모두가 수고했다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한차례 박수가 잦아든 뒤, 나는 내 은인들에게 한 명, 한 명 인사를 전했다.
“이 자리에 있게 해주신 한유주 작가님, 차일남 PD님 정말 감사하고요. 비상철또 식구들! 저 상 탔어요. 김상철 극단장님, 강용휘 연출가님 감사합니다. 희성 아저씨도 감사해요. 저 아저씨한테 많이 배운 거 아시죠? 앞으로 더 많이 배울 거고요.”
내 말에 카메라가 문희성을 한가득 잡았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문희성이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시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선인장 팀에 들어가게 됐으니까요. 조이수 프로듀서님, 노영희 배우님, 유정석 배우님.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RUN팀 식구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내가 출연한 작품의 배우들과 제작진들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인연을 만났는지.
하나같이 소중하지 않은 이름이 없다.
마지막으로 발갛게 상기된 볼을 하고 있는 선인장 팀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들. 우리 아빠, 최태우 배우님. 누나 같은 엄마, 강수정 배우님. 제가 너무 감사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해성이 형.”
순간 극 중 이름이 불려 놀란 남연수의 눈과 마주쳤다.
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주눅 들어 있는 그에게 이 자리를 빌려 얘기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 연수 형이랑 같이 연기해서 너무 재밌고 행복했어. 함께 연기한 남연수 선배.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똘망똘망한 내 우렁찬 인사가 마이크를 타고 홀 안을 가득 울렸다.
마지막으로 내 인사를 받은 남연수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는지 펑펑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옆에 있던 배우들이 당황해서 휴지랑 손수건을 꺼내줘야 할 지경이었다.
결국 내 수상 소감 이후로 우리 두 사람의 훈훈한 우애를 보고 진행자를 포함한 아무도 더 이상 라이벌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올해의 작가상에 한유주 님.”
“올해의 연출상에 의 차일남 님!”
그리고 이어지는 수상에서 선인장 팀의 이름이 줄줄이 불렸다.
마지막 작품상 역시 우리 팀이 가져갔고, 영예의 연기 대상은 내 엄마였던 강수정이 차지했다.
그야말로 선인장 팀의 연말 시상식을 싹쓸이였다.
당분간은, 아마 아무도 우리의 기록을 깨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연말 시상식을 진행하는 사이 2008년 1월 1일이 되며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열두 시 땡! 하는 순간에 맞춰 서로 새해 인사를 주고받으며 덕담을 나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 나의 두 번째 7살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