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이야, 장 감독. 이번 시나리오도 아주 대박이야?”
고독진은 호쾌하게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남자, 장진홍에게 말했다.
그는 짧고 강렬한 사극 단편 영화로 한국 영화계에 처음 들어와, 최근엔 으로 사극으로는 첫 천만 관객을 달성한 10년 차 영화감독이었다.
“하하, 좋게 봐주셨다니 다행이네요. 어때요? 바다 엔터 내 반응은….”
이 대흥행을 한 지 벌써 2년.
이제 슬슬 차기작 촬영을 위해 요즘 배우 소속사 위주로 시나리오를 돌리고 있는 장진홍이었다.
오늘은 시나리오에 대한 감상도 들을 겸, 캐스팅하기 전에 슬쩍 떠보기도 할 겸 바다 엔터테인먼트를 찾은 참이었다.
“장 감독 영화라면 무조건 한다고 그러지. 오디션 자리 만들면 대여섯 명은 나갈 거 같아.”
“휴……. 다행입니다. 바다 엔터에서 그 정도면 어느 정도 제 시나리오가 먹혔다는 말 아닙니까.”
긴장이 탁 풀렸다는 듯이 앞에 놓은 커피를 한입에 털어 넣는 장진홍.
그 모습을 보고 고독진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 말은 안도의 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바다 엔터 식구들을 띄워주는 말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장진홍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바로 직전 천만 영화를 만든 사람이었음에도 거만한 모습은 없었다.
“이거 기분 좋은데? 장 감독한테 우리 엔터가 인정받은 건가?”
“아유, 대표님. 제가 인정하고 말게 있나요. 이미 대단하신데.”
두 사람은 오늘 가벼운 미팅이기에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며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오디션은 언제쯤 할 생각인데?”
“지금 시나리오는 다 돌렸고…… 빠르면 다음 달? 아니면 그 다음 달?”
“올해 크랭크인 예정이고, 맞지?”
고독진이 손을 뻗어 탁상달력을 집어들며 물었다.
일정 이야기에 장진홍의 안색이 푸르죽죽해졌다.
“네. 추워지기 전에 다 찍을 생각이에요. 뭐, 어떻게 될지는 찍어봐야 알겠지만.”
영화 촬영 스케줄이라는 게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달라질 수 있지만, 항상 제작사나 투자자들은 정확한 날짜를 알려달라고 성화니 그게 제일 스트레스였다.
캐스팅을 정확히 정해진 날짜에 완료하는 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데 말이다.
촬영으로 넘어가면 고무줄처럼 일정이 제 마음대로 늘어지고 당겨지는 법이었으니.
오죽하면 영화계에서 촬영을 하고 편집하는 것보다 일정 정리하는 게 제일 골칫거리라고 하겠는가.
“하긴, 사극 의상이 보기보다 춥긴 하지.”
고독진도 장진홍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배우 생활을 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많은 배우들과 일하면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장진홍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리필한 커피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요즘 바다 엔터에서 한시우를 영입했다는 소문이 돌던데…….”
“아아, 시우 군. 맞아. 이번에 우리가 데려왔지. 벌써 소문이 났어?”
고독진은 한껏 거만해진 자세로 소파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진 장진홍은 말도 말라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요. 벌써 바다 엔터가 대어를 건져갔다고 화제던데요.”
“힘 좀 썼지. 마침 시우 군이 소속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어서 말이야. 운이 좋았지 뭐.”
“고 대표님이니까 믿고 온 게 아니겠습니까. 든든하시겠네요. 원래 아역 배우는 안 뽑으시더니. 그거 때문에라도 유명해요. 아역 배우는 안 보는 바다 엔터가 유일하게 스카우트한 인재 아니냐고.”
이쪽 업계에서는 벌써 한시우를 두고 바다 엔터마저 인정한 천재 아역 배우라며 치켜세우는 중이다.
바다 엔터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라는 걸 보증하는 셈이랄까.
“아니, 뭐. 내가 그동안 아역을 안 뽑으려고 안 뽑은 건가? 바다 엔터의 기준은 오로지 연기력과 잠재력이야. 시우 군도 그래. 나는 아역 배우를 뽑은 게 아니야. 그저 훌륭한 연기를 보인 배우의 나이가 우연치 않게 어렸을 뿐이지.”
“하하, 아주 대표님다운 기준이네요.”
그 말을 들으면서 장진홍은 속으로 씁쓸함을 삼켰다.
아무리 연기가 재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지만, 일단 살면서 겪는 경험치를 무시 못 한다.
그래서 아역 배우들 중에 아무리 재능이 출중해도 경험 부족 때문에 인정을 못 받는 배우들이 많은 거고.
그중에서도 한시우는 특별해 보이기는 했다.
이제 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연기를 한다는 건 그만큼 노련하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노련함은 출중한 재능만으로는 얻을 수 없다.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달고 씁쓸한 경험을 겪은 후에야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번 그의 새로운 영화 주인공 중 한 명의 극 중 나이는 11세.
나이에서 오는 이러한 현실적인 장벽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벌써부터 그 역할을 맡을 배우가 있을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장 감독. 우리 시우 군한테 관심있나? 이번 시나리오에 시우 군 줄 만한 배역이 있던가…….”
“에이, 아닙니다. 너무 어리긴 하죠. 십 년 후면 모를까.”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가늠에 들어간 고독진의 모습에 장진홍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어린 배우에게 줄 배역은 아쉽게도 이번 시나리오에는 없었으니.
“지금 우리 소속 배우한테 예약 거는 거야? 허참,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하, 이거 기대하겠습니다.”
장난스럽게 맞받아치는 고독진의 말에 장진홍은 유쾌하게 웃었다.
바다 엔터는 언제 와도 참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다.
대표인 고독진의 능글맞은 성격도 대화하기 즐겁고, 소속 배우들과 하나같이 덜 까다롭고 실력이 좋아 호감이랄까.
“저는 이만 다음 미팅 시간이 되어서 일어나 봐야 될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어어, 그래요. 차기작 준비로 한창 바쁜 몸인데 내가 너무 붙잡았네. 다음에 보지.”
장진홍은 꾸벅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오자 그곳에는 소속 배우들의 프로필 사진이 액자에 담겨 주르륵 전시되어 있었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프로필 사진을 살피며 걸어가던 장진홍의 걸음이 멈칫했다.
원래 가장 마지막에는 요새 떠오르는 다크호스, 김선우의 사진이 걸려 있었건만.
오늘은 그 옆에 앳된 얼굴이 하나 더 걸려 있었다.
바로, 해사하게 웃고 있는 배우 한시우의 얼굴이었다.
***
“여기 잠시 있어요? 제가 시나리오 가져다줄게요.”
“네!”
달칵.
연습실 문이 닫히고 바다 엔터 매니지먼트 3팀의 팀장이라는 김민석이 나갔다.
오롯이 혼자가 된 나는 둘레둘레 바다 엔터의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한쪽에는 그리 크지 않은 업라이트 피아노가 하나 덩그러니 놓인 10평 남짓한 방이었다.
가수는 받지 않는 배우 전문 소속사라는데, 피아노는 왜 있는 거지.
아무튼, 방음 처리가 다 되어 있어서 발성 연습이나 고함을 쳐야 하는 대사 연습을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다.
나는 바다 엔터와 계약을 마무리한 후 일주일만인 오늘 다시 회사를 찾았다.
일주일 전, 나는 김상철과 삼촌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고독진과 다시 만나 최종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문희성으로부터 받은 멋들어진 만년필을 멋들어지게 휘갈겼었지.
워낙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었고, 일곱 살에 불과한 나를 배려해주기 위한 문항이 세심하게 들어있어 어머니와 김상철 모두 만족한 계약서였다.
다만, 내년부터는 한국의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기에 학교에 들어간 후의 변동사항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합의 후 새로운 조항을 기재하겠다는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고작 일 년 뒤에 내 사정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처음 바다 엔터 건물에 들어온 나는 바로 만족했다.
바로 1층에 있는 직원 전용 카페테리아를 둘러본 것이다.
물론 소속 배우들도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카페에는 온갖 종류의 차가 10종 넘게 구비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내가 사랑하는 카모마일을 비롯해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차가 즐비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광경이었다.
삼촌은 지하주차장이 아주 크다며 좋아했고, 어머니는 널찍널찍한 시설을 보며 감탄하셨다.
나와 같이 출근한 삼촌은 이제 상사가 된 매니지먼트부 사람들에게 붙들려 어디로 사라졌다.
대신 앞으로 회사 내에서 나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는 김민석이 나를 연습실로 안내해준 것이다.
삼촌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매니저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는 로드 매니저라는 직함으로 채용되었다.
앞으로 매니저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은 후 내 총괄 매니저가 되기로 했다.
“오래 기다렸죠?”
연습실 의자에 앉아 다리를 동당거리고 있으려니 다시 문이 열리고 김민석이 거대한 종이 뭉치를 안고 들어왔다.
내가 부탁한 시나리오들이었다.
극단에 있을 때와 다르게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 시나리오나 제작에 들어가지 않은 드라마 각본을 볼 수 있단다.
물론, 접근할 수 없는 대본들도 있었지만 그걸 제외해도 이렇게 많았다.
“이거의 세 배는 있는데……. 일단 이 정도면 되겠죠?”
“네!”
김민석이 가져다준 것만 해도 대충 읽는 데 일주일은 걸릴 양이었다.
나는 신나서 맨 위에 있는 시나리오를 답싹 집어 펼쳤다.
음, 영화 시나리오인가 보군.
“그럼, 다 봤으면 나와서 절 부르세요. 아, 아까 제 번호도 입력했죠?”
“네. 김민석 팀장님. 이렇게!”
“맞네요. 그럼 끝나면 부르세요? 지 매니저한테 데려다 드릴 테니.”
“네!”
나는 싱긋 웃으며 나가는 김민석의 모습을 확인하고 펼쳐 든 시나리오에 몰입했다.
열 장 안으로 흥미를 잃은 대본이 많아서, 다음 대본을 펼쳐 드는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았다.
어떤 대본은 조금 더 읽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중간에 억지스러운 설정이나 전개 때문에 대본을 덮게 만들었다.
“휴,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군.”
평소에는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김상철이 대충 검토해보고 볼 만한 걸 추천해주었기에 이토록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니면 강용휘를 찾아가 그가 요즘 집필하고 있거나, 예전에 집필한 걸 보여달라고 했으니…….
글솜씨가 좋은 사람들의 시나리오를 읽다가 이런 걸 읽자니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느낌이었다.
“으음……. 이것도 별로네.”
보던 드라마 대본을 넘기고 다음 대본을 집기 전, 표지를 살폈다.
이번에는 아무거나 보는 게 아니라, 끌리는 제목이 없나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중 잘 모르겠지만 멋들어지게 한자로 쓰여 있는 대본을 발견했다.
“이건…… 사극인가?”
사극 드라마나 영화는 TV로 자주 보았기에 낯설지 않았다.
이쪽 문화권의 시대극인 사극은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한 작품 두 작품 보다 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다.
나는 얼른 그 대본을 집어서 무릎 위에 펼쳤다.
“호오, 호오. 영화군.”
흥미를 가지며 나는 팔락팔락 페이지를 넘겼다.
내용은… 10대인 어린 왕의 몸에 어쩌다 30대의 평민이 빙의해버린 후 궁중에서 살아남는 내용이었다.
당시의 정치 용어가 많이 나와서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흥미로운 소재와 대담한 전개로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드디어, 읽을 만한 대본이 나왔다는 느낌이랄까.
이 대본은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신이 나서 페이지를 넘겼다.
좌충우돌 벌어지는 궁중 생활은 코믹하기도 하고, 가슴이 서늘하도록 스산하기도 했으며, 감동적이기도 했다.
정신없이 빠져 읽던 나는 뒤늦게 이 시나리오를 집필한 인물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어디 보자…… 장, 진홍?”
장진홍 감독?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