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화
이제 지상은 인간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안.
난 벽을 더듬어 승강기를 가린 천을 찾았다.
조심스레 천을 걷어낸 뒤, 한 발 먼저 조심스레 승강기 바닥에 올려놓고서 무게중심을 그쪽 발로 옮겼다.
보이는 건 없으니 승강기가 아직도 작동하는지 확인하려면 직접 무게를 실어보는 수밖에 없다.
‘괜찮아.’
승강기는 무게를 버틴다. 가림막으로 쓰였던 천에는 먼지가 가득하다. 고로 침입의 흔적은 없다는 뜻.
이를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승강기에 온전히 몸을 실었다.
망해 버린 세상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은 당연히 없었고.
끼이이이이익-
직접 줄을 당겨 내려갔다. 더 어둡고 더 깊은 곳으로.
대략 20분 정도를 내려왔을 즈음, 텅 하고 승강기가 바닥에 닿았다.
지하 깊은 곳에 설치된 또 하나의 가림막을 쳐내자 내부의 공간이 드러났다.
강예빈의 은거지.
10명도 채 남지 않는 한국의 생존자 중 한 명인 그녀가 일 년 전에 숨어들었던 곳.
이곳을 이후로 더 들를 곳은 없음에 나는 도르래의 줄을 잘랐고, 소리를 내는 건 그 이후가 되었다.
“살아 있어?”
“신혁 씨?”
곧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불이 켜졌다.
구한말에나 쓰일 법한 백열등 아래로 인형(人形)이 다가서자, 불빛에 꾀죄죄한 몰골이 드러난다.
제대로 먹지 못해 움푹 팬 볼. 얼굴에 붙어 있는 기름 진 머리카락. 햇볕을 받지 못해 창백한 피부.
“밥 줘요.”
보자마자 밥부터 달라 말하는 게 퍽 어울릴 만한.
“얼마나 굶었어?”
“네 달 정도……?”
“아껴 먹어도 그 정도야?”
“더 아꼈다간 여기에 시체로 누워 있었을걸요? 지금도 배랑 등이랑 붙어 있는 거 안 보여요?”
옷 뒤를 잡아당기는 걸 보니 홀쭉해진 배를 부각시키려 한 모양인데, 네 달을 굶은 사람치고는 꽤 멀쩡한 편이었다.
“과장은.”
굶은 지 네 달이면 양호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이미 아사하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그녀나 나처럼 남은 생존자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니.
“네 달 굶어서 죽었으면 진작에 죽었겠지.”
우리는 각성자였고, 각성자의 육체는 평범한 인간의 육체와 결을 달리한다.
성능으로 보자면 단순한 날붙이로 건물을 가를 수 있고, 네 달을 굶었던 그녀가 의식이 멀쩡할 정도로 항상성 역시 뛰어나다.
아마 이러지 못했다면, 몬스터가 인류를 밀어낸 세상에서 우리는 진작에 죽었을 거다.
“남은 게 이것뿐이다. 상태는…… 알지?”
난 [인벤토리]에서 썩은 고기와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꺼냈다.
“으……. 냄새.”
기실 음식이라기보단 쓰레기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썩은 냄새가 동굴 안에 진동할 정도로, 다른 생존자들에겐 도저히 권할 수 없던 것들만 그녀를 위해 남긴 거니까.
그럼에도 그녀에게 권한 것은 그녀에게 악의를 가져서가 아니다.
그녀의 육체가 튼튼하니 상한 것들을 먹어도 된다는 것도 아니고.
각성자인 내 이능이 [인벤토리]인 것처럼.
“아무튼 잘 먹을게요.”
각성자인 그녀 역시 이능이 있다.
이른바 [타임 슬립].
문명이 남아 있던 시절,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맞다.
‘시간에 대해서’라든가, ‘이상한 박사’라든가.
“과일이나 야채는 없어요? 이제 고기는 지겹다 진짜.”
그런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녀의 손짓에 따라 쓰레기들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되감기 하는 것 마냥, 하얗게 곰팡이가 핀 고기는 본래의 붉은 빛깔을 띨 때로, 부식되어 녹물이 줄줄 새어 나오던 통조림은 갓 제조되었을 때로 돌아간다.
강예빈은 손사래로 냄새를 한번 훑어버린 뒤 고기를 입에 대었다.
“그래도 모르고 먹으면 이만한 게 없죠.”
“알고 먹는 거 아냐?”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말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원효대사 해골 물 몰라요?”
뭐 지금은 이렇게 쓰이고 있지만서도…….
“그게 마지막이야.”
그녀의 이능은 확실히 대단한 구석이 있다.
현재 생존자들을 책임지고 있는 내가 괜히 마지막으로 이곳에 들른 게 아닐 만큼.
“알아요. 저한텐 항상 마지막에 들르잖아요.”
“순서를 말한 게 아니라, 여기까지라고. 이제 지상으로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도르래의 줄을 잘라 버렸듯 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갈 생각이 없었다.
난 그녀와 함께 이곳에서 죽을 생각이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어차피 다 죽었어. 강신우도, 임환도, 하대호도.”
여기로 다시 오기까지 일 년을 돌아다닌 결과, 과거 S급 랭커라고 칭송받았던 이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이제 우리만 남았어.”
그들의 은신처 역시 지금의 강예빈의 것과 다르지 않게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는데도.
그 말인즉슨.
“여기도 위험해. 그들도 전부 은신처에서 죽었으니까.”
“……시간은 얼마나 있어요?”
“정확힌 모르는데, 당장에라도 이상하진 않아.”
“…….”
이미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겪었기에 우리는 동료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그런 건 묻지 않았다.
참치 통조림을 전부 입에 쏟아붓고는 본론을 꺼내는 그녀처럼 이다음을 생각할 뿐.
“……마석은 얼마나 모았어요?”
생존자의 은신처에서 모은 마석을 꺼냈다. SS급 마석 열 개, S급 마석 30개. 자잘한 것은 필요가 없어서 굳이 챙기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을 그녀와 함께하려는 이유.
그러니까 이 마석을 통해 우리가 하려는 것은 일종의 회귀다.
마석을 터뜨려 그녀의 몸에 마력을 쏟아붓고, 그녀는 그 막대한 마력으로 어떠한 물건을 가장 오래된 과거로 보낸다.
[등급] : 일반, E급. [분류] : 소모성 보조 아티팩트. [속성] : 기억의 저장과 출력.그 물건은 기억의 금고.
내 기억을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어긋난다고 해도, 기억의 금고는 오래전부터 내 인벤토리에 있었던 물건이라 누가 채갈 수도 없으니 이론상은 완벽하다.
그래서 회귀다.
난 여기서 죽을 테지만, 20년 전의 박신혁은 지금까지의 일들을 모두 기억할 것이므로.
“꼭 전향자, 약탈자들이 죄짓기 전에 미리 단죄하시고, 게이트는 터지기 전에 클리어해 주세요. 몬스터는 말 안 해도 잘 처리하시겠죠?.”
“……누구한테 얘기하냐?”
“지금 대화를 듣고 있을 20년 전 신혁 씨에게요. 그리고 강예빈이라는 여자는 지금과 다르게 분명 예쁠 테니 꼭! 가장 먼저 찾아가서 호강도 시켜주시고요.”
20년 전의 나에게 전하는 그녀의 말.
“호강은 무슨…….”
난 굳이 그녀처럼 하지 않았다.
‘박신혁. 일단 그 공대부터 나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생각도 예전의 나에게 전달이 될 것이니.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곧 그녀의 몸에 환한 빛이 서렸다.
* * *
나 박신혁.
밖에선 나도 난 놈이다. 각성자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고, 게이트가 생기기 전에는 배우를 준비했을 만큼 잘생기기도 잘생겼다.
“박신혁 개새끼야, 너 뭐 하냐? X발 지금 전투 끝난 거 안 보여?”
그러나 게이트로 들어오면?
“갑니다요~”
ㅈ밥이다.
이능이 [인벤토리]면 태생이 짐꾼이다. 각성자인데 분배마저 월급으로 받으니 말 다 했지.
‘그 월급이야 대기업보다도 쎄긴 하지만…….’
그 월급 때문에 경쟁자가 많으니, 천대받기도 일쑤였다.
인벤토리라는 이능이 없어도 짐꾼을 하려는 사람은 많기에, 나 없어도 전투원분들 시다바리 해줄 애들은 널리고 널렸다는 얘기.
몬스터에서 돈이 되는 것들은 마석과 마력을 띠는 특수 부위라, 누구나 들 수 있다는 게 각성자인 나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반적인 몬스터 사체가 돈이 된다면 나도 대접받고 살 텐데 말이야.
난 다른 짐꾼보다 훨씬 많이 들 수 있는데.
“X발 새끼야. 마석 안 캐냐?”
“갑니다요~”
전투원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을 인벤토리서 꺼내 깔아주고는, 몬스터가 품었을 마석을 캐기 위해 그대로 사체를 향해 뛰었다.
푹-
이어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체를 개복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보통 그렇듯, 사체에서 마석을 캐는 데에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냥 사체의 배를 가르고 마석을 뒤지면 끝. 역하고 더러운 기분이 잔뜩 들지만, 오래 하다 보면 참을 정도는 된다.
‘문제는 모든 몬스터가 다 마석을 품은 건 아니라는 건데…….’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배 안을 거칠게 헤집어놔야 한다. 적어도 뒤질 만큼은 뒤져도 안 나왔다는 표시를 해놔야 욕을 덜 먹으니.
“이번에도 없네…….”
그렇게 10번째 사체도 개복하려던 참, 마석을 캐라 보채던 전투원의 비웃음 섞인 말이 들렸다.
“혹여나 삥땅 칠 생각 마라. 내가 다 세고 있어.”
“그럼요. 정직!”
저 의심병 환자 새끼, 참고로 저 말은 구라다. 난 한 번도 삥땅 친 적이 없거든.
항상 정직하게 마석을 캐서, 있는 그대로를 갖다 바친다.
근데 쟤는 왜 저런 소리를 하냐고?
퍽-
난 모든 폭력을 인내하였다.
저놈이 원하는 대로 몬스터 복부에 얼굴을 처박고 웅크려 있다가.
발길질이 끝나자 몬스터 내장을 얼굴에 휘감은 채 고개를 들었다.
‘인성 터진 새끼들…….’
삥땅은 그저 구실이다.
날 때릴 구실.
퍽-
“X발 새끼야. 마석이 니 몸값보다 비싼 거 몰라? 금 가면 어쩌게 누가 그리 자빠지래?”
퍽-
“어쭈 안 일어나? 월급 받기 싫어?”
퍽-
“X이이이발- 뒤통수가 존나 밟고 싶게 생겼네.”
퍽-
난 모든 폭력을 인내하였다.
저놈이 원하는 대로 몬스터 복부에 얼굴을 처박고 웅크려 있다가.
“…….
발길질이 끝나자 몬스터 내장을 얼굴에 휘감은 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죄송합니다~ 마석 안 다치게 조심조심하겠습니다~”
“역시 근성이 아주 좋아. 내가 이래서 형이랑만 일하잖아.”
ㅈ같다. 진심 ㅈ같다. 내가 형인데. 나도 각성자인데…….
오히려 각성자여서 더 삶이 고달팠다. 비각성자 짐꾼은 시민 단체의 보호라도 받지. 각성자 협회에 등록이 된 나는 일거리가 끊길까 봐 신고조차 못 한다.
각성자여서 폭력의 수위는 더하고. 이 새끼들도 그걸 알아서인지 힘 조절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마 비각성자라면 이미 머리가 터졌겠지.
‘씨이이X 언젠가 진짜…….’
난 그저 울분을 삼키고 마석을 캐서 가방에 넣는다.
인벤토리도 아니고 가방에.
-난 무기를 들고 있는데, 형은 손이 가볍다?
-헤헤. 뭐라도 들까요?
-짐꾼 새끼가? 니가 뭐라도 들면 달라져?
이능이 인벤토리인 내가 맨손으로 다니는 게 보기 싫다며, 저들이 억지로 메게 한 커다란 백팩에.
“마석 다 캤습니다~ 총 40개체에서 F급 마석 5개, E급 마석 1개를 수거했습니다~”
“잘했어. 형도 이제 쉬어. 비린내 나니까 좀 멀리 가는 게 좋겠다. 저쪽이 바람 안 부니까 저쪽 가서 쉬어.”
“그럼 아예 씻고 올까요?”
“뭐, 그러든가. 근데 출발할 때 없으면 또 맞는 거 알지?”
“네!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근데 왜 이런 인성 터진 새끼들 밑에서 일하냐고? 그래도 저놈들은 기분파라 가끔 콩고물이 떨어질 때가 있거든.
지들이 쓸 건 모조리 챙기고, 그게 아닌 것 중에서도, 시세조차 없는 아티팩트는 종종 내게 주는 경우가 있긴 있다.
물론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포장해서.
-형 고생했어. 내가 전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라, 좀 욱하는 게 있네. 형이라면 이해해 줄 수 있지?
가증스러운 새끼. 니네같이 짐꾼이 수시로 바뀐다고 악명이 자자한 공대에서, 짐꾼으로 꾸준히 나와주는 나만 한 샌드백 찾기는 힘들겠지.
그런 이유인 거 내가 다 안다.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그러나 모순적으로 그게 내가 이곳에서 버티는 이유였다. 저놈들이 던져 준 아티팩트에서 언젠간 대박이 나올 거라 바라기에.
게이트란 게 생성된 지 이제 5년, 인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으니, 알려지지 않은 대박이 저들한테 받은 것 중에 터질 수도 있으므로.
아까 봐둔 물가로 가며, 인벤토리를 열어본 것도 그러한 심정 때문이었다.
“저번엔…….”
[등급] : 일반, E급. [분류] : 소모성 보조 아티팩트. [속성] : 기억의 저장과 출력.이걸 주었다.
소모성 아티팩트라 아직 써보진 않았다. 기능도 고작 ‘기억의 저장과 출력’이니 평생 쓸 일이 없을 수도.
“일기 쓰기 귀찮을 때나 한번 써보려나.”
그리고 다시 인벤토리에 기억의 금고를 넣으려 할 때였다.
[동일한 아티팩트가 인벤토리에 있습니다. 중첩하시겠습니까?]뭔 소린지 도통 알 수 없는 시스템 메시지가 목전서 아른거린다.
“동일한? 두 개?”
뭔 개소리일까.
난 하나밖에 받은 기억이 없는데?
뭔지 직접 봐야 알 듯하다.
그리하여 새로 꺼낸 아티팩트.
[등급] : 신화, SSS급. [분류] : 소모성 보조 아티팩트.“신화? SSS급? 그런 게 있어?”
그리고 SSS급 하나 더.
[속성] : SSS급 헌터 박신혁의 기억 출력.“뭐래?”
박신혁은 난데? 난 F급 헌터인데?
내 이해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