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0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0화
난 일부러 차갑게 말했다.
“분명히 제가 저 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라 했죠?”
“아, 저 그게…….”
“강예빈 씨.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닐 텐데 왜 그랬어요?”
“…….”
그녀는 상황에 대해 좀 더 명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주장이 입증되면 어느 기사 면에 실릴 것 같아요?”
미래서 왔다는 사람의 예언이 적중하면 그에 따른 영향이 어느 정도일까?
장담컨대, 우리는 신문의 경제면, 정치면, 연예면, 사회면, 종합면에서 모두 대서특필될 것이다.
“근데 우리가 방송 찍을 때 개소리로 치부할 수 없게끔 찍었잖아요. 벌써 믿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크게 흥행해 널리 알려진 만큼, 여러 관심이 우리에게 쏠릴 수밖에 없어요.”
그 관심이 호의라고만 생각하면 진심으로 곤란하다.
방금처럼 말이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을 줄 알았어요…….”
아직? 하루 만에 조회 수 400만을 찍었는데 아직이라.
난 그녀가 쥐고 있는 핸드폰에 고갯짓을 했다.
“SNS 해요?”
“맞팔……?”
“……하는 거 같으니 차 잠깐 세우고 DM 확인해 보세요.”
“네…….”
한번 당했던지라 그녀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핸드폰을 들고 툭툭 화면을 건들더니.
“끼아아아악-!”
이내 핸드폰을 내던진다.
예상하고 있던 나는 그녀가 던진 폰을 어렵지 않게 받아내었다.
그녀가 보던 화면을 나 역시 봐보았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천 쪼가리 하나 남기고 모두 벗어젖힌 어느 남성 사진.
그 아래론 악의적인 문구가 가득하다.
└예빈아♡ 나랑 사귀는 미래는 봄?
……
└니 아킬레스건 자르면 시간 돌려서 재생 가능하냐?
……
└로또 번호 좀 X발련아.
등등.
당연히 모든 메시지가 저렇진 않지만, 자극적인 워딩 때문에 유독 저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아…….”
강예빈이 안전벨트마저 풀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일반인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이런 악의는 익숙지 않을 터.
꽤나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운전은 제가 할게요.”
난 차 밖으로 반 바퀴를 돌아 운전석으로 왔다.
조수석으로 기어가 다시 제 무릎을 끌어안는 그녀에게 희망적인 말을 건넸다.
“5일. 5일만 버티시면 돼요.”
“네?”
“5일만 지나면 해결될 겁니다.”
“더 심해지는 게 아니라요? 갈수록 더 심해지는 거 아니에요?”
결국 그녀를 책임질 사람은 클랜장인 나다.
병 주고 약 주는 격이지만, 그녀가 상황을 파악했다면 좋은 말로 그녀를 복돋아주는 것도 응당 내가 할 일이리라.
“5일 뒤면 당신은 예언자라는 게 증명됩니다. 정부든 협회든 당신을 가만히 놔두겠어요?”
“아…….”
“앞으로 저런 건 전부 사전에 검열될뿐더러, 당신의 안전과 타국의 접근을 막기 위해 항상 각성자가 당신 주변에 배치될 겁니다.”
이는 내 바람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과거, 아니, 미래에 곧 탄생할 S급 각성자에게 그러한 조치를 취했었고, 나는 예언자란 타이틀을 갖게 될 그녀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거라 아주 확신하는 바이다.
‘아니, 오히려 더.’
애지중지하는 건 S급 각성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거다.
시간이 지나며 S급 헌터는 계속 생겨날 테지만, 예언자는 언제나 그녀 한 명일 테니 그리될 수밖에.
그러니까 우리는 그때까지, 즉 5일만 버티면 된다.
어떻게?
“그리고 우리 클랜을 믿으세요.”
“클랜이요?”
“지금처럼 당신을 혼자 있게 하지 않게 할뿐더러, 이런 일에 대비해 당신의 성장 계획까지 나름 짜두었으니까요. 미래 정보를 바탕으로 알짜배기들로만 구성된.”
예를 들면 오늘 아침에 구상한 교육용 마력회로라든가, 아직 발견조차 안 된 보상 두둑한 미공략 게이트라든가.
“성장이요? 비전투 계열인 제가?”
“네. 성장. 이 정도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큼의 성장.”
이 또한 진심이었다.
난 그녀가 전생처럼 S급에 머물러 있지 않길 바란다.
전장의 시간을 멈춰 세우는 그 좋은 이능은 S급에 머무르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난 그리 바랐다.
“…….”
정작 본인은 자신이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겠지만.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창가에 시선을 두는 강예빈. 유리창에 살짝 비친 그녀의 앳된 얼굴이 자못 어지러워 보였다.
그녀가 말을 이은 건 대략 1분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영상을 찍자 할 때 여기까지 생각해 두셨던 거예요?”
“네.”
“영상 대충 찍자고 한 것도?”
“네. 게이트 브레이크 이전에 찍은 예언 영상이라면 어차피 알려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니까요.”
“그럼 괜히 제가 일을 키워서-”
난 자책하는 그녀의 말을 끊어내었다.
“이게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다면 조작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고, 또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헌터들의 관심과 사회적 위상이니 널리 알려져서 결코 나쁠 게 없죠.”
“…….”
“그게 별로라 생각했으면 왜 제가 잠자코 있었겠어요? 저도 동의한 거고 예빈 씨가 잘하신 거니 거기엔 괘념치 말아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창가서 고개를 떼는 그녀의 얼굴이 아까보단 밝아져 있었다.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래도요.”
하여 난 아까보다 밝아진 그녀에게, 상황 파악을 한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래서 말인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 * *
삼십 분 뒤.
강예빈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박신혁을 보았다.
사실 어제 처음 본 남자다. 그런데-
‘미쳤지 내가.’
그런 남자의 제안대로 협회에 휴가 신청을 내었다.
띠링-
마침 걸려오는 협회장의 전화였다.
-아니, 강예빈 박사. 지금 휴가를 쓰겠다고요?
휴가 쓰겠다고 한 거 맞다. 박신혁과 며칠간 함께 있으려고.
“네. 죄송합니다. 협회장님.”
-일을 이렇게 벌여놓고? 지금 협회 앞에 기자들 쫙 포진된 건 알고서 하는 말인가? 이래 놓고 어딜 가겠다는 겁니까?
“도망치는 게 아닙니다. 휴가 끝나고 바로 진술서든 시말서든 다 쓸 테니까 수리해 주세요. 어차피 제가 지금 일에 집중할 상황이 아니니, 협회 입장에서도-”
-그래. 방송 말이야.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그 방송은 대체 뭡니까? 계속 마력만 연구하던 양반이 갑자기 타임 슬립 이능이니 뭐니 그런 얘기를 방송에 왜 한 거요?
협회장은 방송의 내용을 어그로로만 생각하는 듯싶었다.
지금은 그리 생각해 주는 게 나쁘진 않다.
“그것도 복귀해서 말씀드릴게요. 지금 제가 좀 그것 때문에 사정이 복잡해서요. 여하간…… 수리된 걸로 알고 있어도 될까요?”
-이이잉. 쯧쯧. 협회로 돌아오기 전까지 일 더 키우지 말고 입 다물고 계세요. 알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치고 얼른 통화를 끊어버렸다. 협회장 말이 더 길어질까 봐.
옆에서 듣고 있는 박신혁이 물었다.
“잘 해결됐나 보죠?”
“네. 다행히요.”
박신혁의 표정을 살폈다. 아주 덤덤하다. 5일, 예언 영상이 증명되길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신과 같은 미인과 붙어 있게 됐는데 그의 표정엔 조그마한 기쁨도 보이질 않는다.
‘뭐 저러니까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긴 하지만.’
그의 제안을 수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침의 상황으로 보아 그의 옆이 안전할 것 같기도 했고.
그가 짜둔 성장 계획이 꽤 그럴싸했다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그럼 우린 어느 게이트로 가요?”
여과되지 않는 관심이 몰리는 지금, 게이트로 들어가 사람들 눈에서 아예 사라져 있자는 말이 너무나 끌렸다.
그도 그럴 게, 현실과 단절된 게이트에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자신을 찾겠는가.
“남들이 모르는 게이트를 다수 알고 있습니다. 남쪽부터 시작해 그런 게이트를 전전하며 다시 북상할 생각이고요.”
“아. 그 데이트, 아, 아, 아니, 그 게이트도 미래 기억에서 본 거예요?”
“네. 거기 주변엔 사람도, 위병소도, CCTV도 없을 겁니다. 숨어 있기 좋을 테고, 또 미공략 게이트라 보상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말실수에 얼굴이 화끈해졌지만 다행히 그가 트집 잡진 않았다.
‘에이. 쪽팔리게.’
열기를 가라앉히려 창문을 열었다.
겨울바람이 들어와 차 안을 환기한다.
다소 서늘하긴 하나, 그래도 춥다기보단 상쾌했다.
열기와 함께 아침의 불미스러운 일도 다소 옅어지는 듯했다.
“좋네.”
일이 이렇게 돼서 어쩔 수 없이 쓴 휴가라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마냥 나쁘진 않았다.
공부하랴, 일하랴, 이 나이가 되도록 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었는데, 마치 여행이라도 떠나는 기분이었으니.
일상을 떠나는 홀가분함이란.
‘동행자도 이 정도면 뭐…….’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고, 회로를 완성시킬 만큼 똑똑하고, 오전의 일로 미루어봤을 때 배려심도 깊을뿐더러 사람 자체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물론 어제 만난 사람인 만큼 당연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박신혁.’
그러고 보니 이름 석 자밖에 아는 게 없었다.
그에게 물었다.
“몇 살이에요?”
“스물둘이요.”
“에?”
동생?
예상보다 5살은 어렸다.
“아니…….”
얼굴이 노안이라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사람 분위기라는 게 있잖는가.
분위기는 완전 오빠, 아니, 아빠스러운데 두 살 동생이라?
“생각보다 어리시네요?”
근데 오히려 좋아.
저 중후한 입에서 나오는 누나 소리는 과연 어떨까?
휴가 중에 친해진다면 한번 들어볼 수 있지 않으려나.
“전 스물네 살이에요.”
“그러시군요.”
끝?
“제가 누나네요. 그것도 두 살이나 많은. 우리 나이 때 두 살은 되게 크잖아요. 신혁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네. 클랜원 강예빈 씨. 안 그래도 슬슬 얘기하려던 참인데, 제가 클랜장이니 앞으로 말을 놓아도 될까요?”
이것 봐라?
“갑자기요? 제가 누난데요? 그리고 요새 누가 막 직위 높다고 말 놓고 그래요? 저희 연구실에서도 직위에 관계없이 서로 존대하는 문화가-”
“그럼 우리도 그렇게 하죠.”
“……! 그 말이 왜 그렇게 되지?”
“강예빈 클랜원? 말이 짧네?”
당했다.
본전도 못 찾는다.
“그냥 지금처럼 할까요……?”
“네. 그러죠.”
씨이이이. 왜 이 남자랑 얘기하면 말리는 기분이 들까.
어제부터 그랬던 건데 마치 이 사람은 강예빈이라는 사람에 대해 훤히 알고서 받아치는 것만 같다.
마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강예빈 씨.”
“네?”
“혹 심심하신 거면 잘 수 있을 때 자두세요. 우린 5일 내내 게이트에서 노숙할 테니까요. 저야 익숙한데 예빈 씨한텐 그리 편한 잠자리가 되진 못할 겁니다.”
“노숙? 아…….”
아아아아. 여행은 무슨.
이러니 오빠나 아빠 같다는 거지.
* * *
얼마나 잠들었을까?
똑똑.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쪽을 보니 차 밖에 있는 박신혁이 나오라 손짓하고 있다.
“도착했어요?”
“네. 차로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내가 꽤 깊게 잤구나.’
차를 나와 보니 어느 야산의 갓길이었다.
자신은 이런 울퉁불퉁한 도로 위에서 숙면을 취했던 거고.
“운전하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아주 푹 잤네요.”
고개를 끄덕인 박신혁이 트렁크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와 강예빈 앞에 놓았다.
“지금부턴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삼십 분 정도는 이동해야 하니 편한 거로 갈아 신으세요.”
상자를 열어보니 운동화였다.
하얀색 운동화.
박신혁이 어제오늘 국방색을 입고 다녀서 왠지 그런 색만 아는 줄 알았는데, 편의성에 더해 어째 자신의 취향까지 저격하는 심미성까지 갖춘 하얀색 운동화.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언제 이런 걸 사뒀대? 잘 때 어디 휴게소라도 들렀나?
강예빈은 흡족한 마음으로 구두를 벗고 운동화를 신어봤다.
“딱 맞네요?”
신발 사이즈를 알려준 적이 없는데, 어찌 알고 딱 맞는 걸 골라 사 왔다. 눈썰미가 좋은 듯하다.
흡족한 마음에 괜스레 바닥까지 팡팡 튀기며 자리서 일어났다.
“고마워요. 잘 신을게요.”
“별말씀을. 그럼 출발할까요? 아니면 방금 일어났는데 몸 좀 풀었다 가도 상관은 없습니다.”
“아니에요. 삼십 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고 했으니 몸이야 가면서 풀면 되죠. 지금 출발해도 돼요.”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박신혁이 앞장서 인적 없는 야산의 길을 트고 강예빈은 그 뒤를 따랐다.
휴가 첫날의 오후.
그들은 밀양 어느 야산에 숨겨진 미공략 게이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