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07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07화
내가 한예리를 믿지 않았던 시간에 한 말들.
-그 말을 믿다니.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 자랑이나? 멍청한 거였군.
그 말에 진심인 부분이 있었다. 적어도 그때는.
생각해 보면 진실의 파편들은 이미 드러나 있었다.
변화에는 항상 원인이 따른다.
어느 날부턴가 한예리의 면회는 거절당했다.
아주 갑작스레.
왜일까?
‘엄마가 죽어서’라는 대답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만난 이후에도 변화가 있었고, 거기에도 원인은 보였다.
도플갱어 가면을 면회의 조건으로 내세워야만 면회가 허락되었다는 것.
왜 그 조건으로만 면회가 성립될 수 있을까?
면회를 위해 인벤토리에서 꺼낸 [도플갱어의 가면]을 보았을 소녀는, 30분의 면회 시간이 도플갱어의 가면의 유지 시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계속 의심하였다.
왜 면회 시간이 굳이 30분일지.
그럼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한예리의 엄마가 죽었다고 쳐보자.
도플갱어의 가면을 사용해 엄마가 살아 있는 것처럼, 한예리를 속인다 쳐보자.
그렇다면 누가 한예리의 엄마를 흉내 내야 할까?
자연스러운 연기로 친딸을 속이려면?
수년간 한예리의 엄마를 돌보던 수간호사라는 여자는 같은 시기에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아주 공교롭게도, 면회가 거절되는 시기와 같은 시간에.
여기까지는 내게도 아주 짙은 의심으로 남았다.
그러나 나는 미래를 안다.
어느 날 정지석은 의문에 죽음을 당한다. 아마도 칠악 한예리에게.
그리고 이토록 순수하고 바른 한예리는 최악의 각성자 중 하나가 된다. 아마도 지금처럼 거친 진실을 대면하고서.
여기까지는 확신이 불과했으나.
다만 오늘.
난 이제 아티팩트를 통한 마력 작용을 [레비아탄의 눈]으로 볼 수 있기에.
한예리가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기이한 마력 작용이 온몸을 덮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기에.
그게 [도플갱어의 가면]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리고 지금으로서 실증이 되었다.
난 소녀를 본다.
“죽었어…….”
“왜?”
“살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래서 시, 신약 실험을 하다가-”
엄마를 흉내 내던 수간호사의 목을 밟고 있는 소녀를.
“넌 왜 가만히 있었어?”
“커, 컥.”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
“정지석 길드장이 워낙 순식간에 진행-”
“그럼 그 이후엔? 왜 나한테 말 안 하고 니가 엄마인 척하고 있던 건데?”
“……그것도 정지석이- 꺽, 꺽.”
소녀가 발에 무게를 실었다.
여인의 목이 곧 부러질 듯 짓눌렸다.
“정지석 핑계만 대면 넘어갈 줄 알아? 내가 만만해?”
“꺽. 꺽.”
“이미 죽은 엄마를 위해서, 정경 길드에 이용만 당하는 내가 만만했어?”
“아니, 꺽. 꺽.”
“지 애미 살리자고,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가 우스워 보였니?”
뚝.
소녀의 시뻘건 눈에선 핏방울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 뭐가?”
“엄마의 시체는?”
“……시체 소각……. 네가 태, 태웠…….”
“…….”
네가 태운 살 껍데기 중의 하나가 니 엄마라는 말. 그 말에 소녀의 대답은 없었다.
소녀는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며 나를 본다.
“신혁 님.”
마주친 눈동자는 공허하다.
고저 없는 목소리였다.
“들으셨어요?”
“들었다.”
소녀는 목에서 발을 떼고서 이번엔 머리를 밟았다.
“이년이 제가 신혁 님한테 잘 보여서 엄마를 꼭 치료하겠다 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우스웠겠죠? 어미 뒤진 딸년이 어미인 척하는 살인범에게 그딴 망언이나 했으니.”
“…….”
“희망은 참 잔인해요. 달콤한 거짓말이에요. 저는 그저 그 거짓말에 속아서 정지석이 하라는 건 다했었어요.”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네. 그렇지만, 죄송하지만, 신혁 님 말씀대로 하진 못할 것 같아요.”
“이해한다.”
“……모조리 다 부술 거예요. 지금부터 날 농락했던 이 역겨운 공간 자체를 격렬히 부정할 거예요.”
순간 소녀가 찬 팔찌, [공간의 팔찌]가 번쩍거렸다.
쿵.
그리고 익숙한 진동음.
한예리와 게이트를 전전했던 내겐 익숙한 대규모 [식물 조작]을 알리는 전조음.
그 뒤엔-
콰콰가가가가강!
복도의 통로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식물 줄기가 지상에서 지하로 강림한다.
방금 내가 제압한 정경 길드원과 소녀의 발밑에 깔린 수간호사까지 주렁주렁 매달고서 병실까지 그대로 들이닥친다.
식물이 행한 것이란 믿을 수 없는, 그 거대한 질량의 진격.
그 끝엔 한예리가 서 있다.
“이렇게 쓸 줄 몰랐네요.”
줄기 끝에 달린 꽃잎이 피어나자, 거대한 꽃 받침대 위로 마석이 드러난다.
“어차피 엄마를 위해 모았던 것이니. 엄마도 이렇게 쓰이길 바라실 거예요.”
소녀는 그 마석을 쥐어 든다.
“전부. 전부가 죽길.”
이윽고 소녀가 마석을 깨뜨리려던 때.
[마력회로]로 증폭된 마력으로 저 말을 실현하려던 때.식물이 구속된 인간의 모든 구멍으로 파고들려는 찰나.
“한예리.”
나는 소녀를 불렀다.
동시에 [순수의 마석]을 꺼내 정확히 한 번만 흔들며.
-신호는 순수의 마석으로 하죠. 한 번이면 그대로 시행. 두 번은 대기. 세 번은 철수.
오래전부터 준비한 신호를 수호 길드와 혁예클랜에게 보낸다.
“신호를 보냈다.”
“…….”
“정경 길드가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물자를 파헤치라는 신호. 모든 지부를 공격하라는 신호.”
난 그 결과를 말한다.
“그리고 매스컴엔 이렇게 알려질 거야.”
소녀를 가리켰다.
“정경 길드 소속의 어느 헌터가 제보한 내용에 따라-”
이어서 나를 가리켰다.
“혁예 클랜과 수호 길드가 정경 길드를 급습.”
그 뒤엔 지금 소녀가 죽이려는, 식물에 매달려 꿈쩍도 못 하는 이들을 가리켰고-
“그 과정에서 정경 길드 측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
나는 말이 끝나는 동시에 움직였다.
한예리가 아닌.
한예리가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격하며 두 자루의 검을 들었다.
곧바로 왼손에 [원기]를, 오른손에 [마력]을 담은 두 개의 검을 동시에 휘둘렀고-
촤아아아아아악.
이 공간 자체를 양분한다.
쩌어어어어어억.
식물과 함께 수십 명의 사람이 토막 난다.
식물이 내뿜은 체액과, 뭇 사람들이 내뿜는 피 분수 사이엔 오롯이 두 사람만 서 있게 된다.
“저들이 죽는 건, 왜 죽게 되었는지 그렇게 알려질 거다.”
나와 소녀.
나는 당당히 살인의 이유를 밝혔다.
“이 사람들이 죽은 이유는 정경 길드에 속한 악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처단한 것이다.”
“…….”
“결코 너의 분노 때문이 아니라. 저들이 벌을 받아 마땅하기 때문에 내가 죽인 것이다.”
난 말했다.
“말했듯, 너의 선택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이게 바로 내가 말한 나의 ‘책임’이라고.
“전부 내가 지겠다.”
네가 저지를 업보를 전부 내가 가져가겠노라고.
“그러니 내게 맡겨라.”
나는 손을 펴 요구했다. 뺏을 수 있지만 뺏지 않는다.
소녀는 거절했다.
“제 복수예요. 제가 직접 죽일 거예요.”
“너의 가치를 저들의 더러운 피로 더럽히지 말도록.”
“상관없어요.”
“나를 믿어라. 저들의 죄는 내가 대신해 묻겠다. 아주 처절하도록. 죽어서마저도 그 죄를 뉘우칠 만치.”
“…….”
“그게 불만족스럽다면, 그땐 다시 너에게 맡기겠다.”
충혈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소녀는…… 결국 마석과 [공간의 팔찌]를 내 손 위에 올렸다.
온전한 본인의 의지로.
“보아라.”
“…….”
“저들을 내가 어떻게 처단하는지.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난 깊게 호흡한다. 죽은 시체들이 내뿜는 [원기]를 모조리 흡수한다.
또한 한예리가 내게 건넨 마석을 깨드려 몸 안에 마력을 한가득 담았다.
이어서 천장을 본다.
오른쪽 눈으로는 지하 40층의 천장을 보고.
왼쪽 눈으로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본다.
‘각성자.’
푸른 입자로 표현된 사람의 형상.
‘비각성자.’
붉은 입자로 표현된 사람의 형상.
투시.
에너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투시를 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했다.
“단죄.”
난 지금 정경 길드의 본부 내 모든 사람들을 주시하며 담담히 말했다.
“그 단죄의 결과는 전부 죽음이 될 거야.”
* * *
정경 길드 본부.
지하 30층, 상황 통제실.
“길드장님! 길드 2지부와 3지부도 함락되었습니다.”
정지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또 수호 길드?”
“네. 지금 방송에 나오고 있습니다.”
길드원 하나가 대형 스크린에 해당 화면을 띄운다.
[이곳은 정경 길드 3지부입니다. 현재 혁예 클랜과 수호 길드의 합동 작전이 종료된 직후입니다.]기자의 짤막한 설명 뒤엔 바로 자료 화면이 송출되었다.
[현재 납치되었던 류성근 박사가 병원으로 이송 중인 가운데, 정경 길드의 창고와 지부에선 마약과 살인 청부로 의심되는 명부, 인체 실험, 불법 아티팩트의 소지 등의 증거들이 차례로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만 해도 예상 피해자 수와 예상 피해액이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정지석은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했다.
“돌려.”
“네?”
“채널 돌리라고.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네, 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이곳에서 몸을 빼는 것.
“다시 CCTV 띄워.”
그러나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이미 지하 1층부터 5층까진 수호 길드와 뒤늦게 합류한 협회 소속의 각성자들로 가득 차 있으므로.
“젠장.”
도망치려면, 아래로 가야 한다.
애초에 위로 올린 건물이 아닌, 아래로 내린 건물을 고집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와 같은 경우에 대비해, 지하 깊숙한 곳에 저만 아는 비상 통로를 만들어두려고.
길드원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본인은 탈출하기 위하여.
그런데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다.
“애들한테 다시 연락도 해봐!”
저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지하 40층부터 32층까지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모든 이들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잘 봐! CCTV가 끊기기 전에 무슨 일이 있는지!”
이를 확인할, 절반 이상의 CCTV가 연결이 끊겼다.
“길드장님! CCTV 하나 또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 더.
“어디야?”
“지하 31층, B-31-012 섹터입니다!”
31층이면 바로 한 층 아래다.
정지석은 거칠게 물었다.
“박신혁은? 한예리는? 끊기기 전에 못 봤어?”
“모, 못 봤습니다! 그냥 갑자기 꺼졌습니다.”
그때 복도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길드장님! 엘리베이터가 올라옵니다!”
“몇 층에서?”
“40층에서 출발했고, 지금은 35층입니다!”
정지석은 벼락같은 노성을 질렀다.
“전부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해. 누구든 나오면 바로 죽여-!”
이후 [염력]을 활성화한 뒤 기다린다.
“34층! 33층! 32층! 31층! 멈췄습니다. 31층입니다!”
“엘리베이터 CCTV 놓치지 마! 아니, 바로 큰 화면으로 띄워!”
“네!”
곧 대형 스크린은 엘리베이터를 비추는 CCTV 화면으로 가득 찬다.
뚜벅. 뚜벅.
그리고 그 화면으로 처음으로 흉수가 나타났다.
“모, 몬스터?”
검은 피부로 전신이 뒤덮인 괴인이었다.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건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밖에 없었다. 다만 본인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뭐, 뭐야?”
그리고 이윽고 괴인이 정면으로 CCTV를 주시한 순간.
“끄, 끊겼습니다!”
“알아. 새끼야!”
또다시 CCTV는 끊겼고.
그 직후.
“길드장님! 엘리베이터가 움직입니다. 31층!”
엘리베이터는 다시 올라온다.
“30층!”
고작 한 층을 올라오기까지의 시간은 짧았다. 바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띵!
-문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