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19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19화
아비뉴의 중간.
통유리로 된 Coffee Bar.
강혁이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술잔을 슬그머니 한예리 앞으로 밀었다.
“아니, B급 각성자가 술 마시고 어떻게 취해요? 마셔도 될 것 같은데? 한예리 클랜원?”
“예리 양. 안 돼요.”
강예빈의 뾰족한 음성 뒤엔 술잔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다.
파티 주최자인 이가을이 전세를 낸 가게였고, 혁예 클랜원에 더해 강혁까지만 합류한 자리였다.
[염력] 각성자는 없으니 [타임 슬립] 각성자의 이능일 수밖에 없다.“아니, 그럼 해독 능력이 좋은 미성년자들은 다 술 마셔도 되겠네요?”
“에이. 비약이 심하십니다. 각성자랑 일반인이랑 같습니까? 한예리 클랜원이 취하려면 적어도 공업용 알콜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물론 그러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죠. 하하하하.”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은 그쯤이었다.
“술은 안 됩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오셨습니까, 혁예 클랜장님.”
“오셨어요? 뭐 좀 가져다 드려요?”
“왔어? 일은 잘 끝냈고?”
“괜찮습니다. 그리고 일도 잘 매듭지었습니다. 바람살 길드 역시 3차 브레이크에 합류하기로 했으며……”
난 가볍게 임솔과의 약속을 정리하여 말한 후 슬쩍 옆 테이블에 쌓인 물건들을 가리켰다.
“그건 그렇고 저건 뭡니까?”
카드키였다.
테이블을 뒤덮고도 남아서 수북이 쌓인 카드키 더미.
“아나-!”
순간 이가을이 탁자를 내려치자, 원목 테이블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진다.
“혁예 클랜장님이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 찾아온 손님들이 두고 간 겁니다.”
강혁이 그런 이가을을 보며 실소를 짓다가, 그 옆에 놓인 어느 목록을 내게 전했다.
[1407호 : 아라한 길드, 이유리] [3301호 : 허드만 길드, 레이첼 살트]……
[4412호 : 유메이 길드, 사쿠라 카타]“어떤 일인지 몰라서 일단은 전부 받아놓았습니다.”
목록엔 각각 카드키의 주인이 누구인지 표기되어 있었다.
“……용건은 뭐였습니까?”
“하하하하하. 뭐겠습니까? 올림픽 때도 그랬잖습니까, 뭐 말로는 혁예 클랜장과 긴밀히 나눌 말이 있다고 찾아왔는데…… 그런데 어째 다 여성분만 오셨네요. 하하하하하.”
“…….”
“한창 불타오를 나이 아니십니까? 다녀오시죠. 혁예 클랜원분들은 자매단체인 우리 수호 길드가 책임지고 지키겠습니다. 젊으신 우리 혁예 클랜장님은 그저 젊음을 불태우고-”
“괜찮습니다.”
뭐 나쁠 거야 없다, 책임 없는 관계를 피하진 않는다.
그러나 TF 호텔에서 묵는다고 어제 잠옷까지 구매한 한예리를 놔두고 외박을 한다는 것은 보호자로서 실격이다.
이윽고 난 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럼 잠시.”
잠시 뒤 주변에 있던 이 비서가 들어와 카드키을 전부 수거해 간 후에야, 왠지 모르게 날이 선 분위기는 사그라들었다.
내가 말을 이은 건 그 뒤였다.
“강예빈 클랜원. 건물 전체에 블라인드 좀 내려주시겠습니까?”
“네. 어려울 것 없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딱! 강예빈이 손가락을 튕기자, 블라인드는 내려져 있었던 시간으로 돌아간다. 일 층뿐만이 아니라 이 층까지도.
술을 마시거나 물놀이를 즐기거나,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이곳으로 시선을 보내는 뭇 헌터들의 시선이 이윽고 차단된다.
“그럼 강예빈 클랜원과 한예리 클랜원은 잠시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난 한예리와 강예빈을 따로 이 층으로 불렀다. 곧 내 앞에 앉은 둘을 보며 용건을 꺼냈다.
“다들 아시다시피 WAC가 모레면 열립니다.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둘의 얼굴엔 결연함이 차 있다.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아마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야 가능할 거고요.”
어차피 WAC가 끝나면 곧 3차 브레이크가 터진다. 몬스터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전력을 숨길 수는 없다.
“어차피 드러날 전력이면 WAC에서 드러내는 것도 좋겠죠.”
하여 최선을 다하라 일행들에게 전했지만, 두 사람의 전력엔 도리어 제약을 걸어놓았었다.
-아티팩트의 사용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전력 중 아티팩트의 비중은 꽤 크다.
예를 들어 한예리에게 건넨 [공간의 팔찌].
B급 마력 회로를 운영하는 강예빈에게 전해준, 마력 스텟을 무려 10이나 올려주는 [마력의 반지].
그것들은 모두 최태수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대외적인 자리에서의 착용은 반드시 기피하라 했었죠.”
WAC, 최태수를 위해 파놓은 함정에서 버젓이 그걸 착용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다.
적에게 자신이 적임을 알리는 행위만큼 우매한 짓은 없다.
‘그래서?’라는 문구를 얼굴에 쓴 두 사람에게 나는 이 자리에 따로 부른 연유를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픈해도 좋습니다. 먼저 한예리.”
“네, 네!”
소녀가 어깨를 움츠린 채 나를 올려다본다.
며칠 전 몰래 B급으로 출전하는 게 걸린 한예리는 이미 3일 전에 이와 관련된 경고를 단단히 받았다. 출전하는 건 상관없다만, 몰래 출전하는 건 문제가 되므로.
공간의 팔찌를 그대로 끼고 나갔다간, 앞서 말했듯 그대로 최태수의 타깃이 될 것이다.
물론 한예리에게 큰 문제가 생길 거라 보지 않으나, 혹시 모르는 거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기존의 것을 반납하고 WAC에서는 이걸 쓰도록 해.”
하여 [공간의 팔찌 1]를 수거하고 [공간의 팔찌 2]를 건넨다.
“외양이 아예 바뀌었으니 사용해도 문제는 없을 거다.”
겉으로는 절대 구분할 수 없다.
또한 [인벤토리] 각성자인 나로선 아티팩트 업그레이드의 효용을 크게 실감하지 못하는바, 임솔과의 볼일도 끝난 마당에 [공간의 팔찌 2]는 WAC에서 한예리가 사용하는 게 낫다.
“와…….”
“아직 이틀의 시간이 남았으니 적응부터 해봐.”
그리고 난 강예빈에게도 [마력의 반지]를 건넸다.
[등급] : 희귀, B급. [분류] : – [속성] : 90 이하의 마력 10 증가.최태수에게서 비롯된, 이 주 전쯤에 잠깐 수거해 갔던 아티팩트다.
“이제 마음껏 쓰셔도 됩니다.”
“바뀐 건 없는데요?”
“네. 없습니다.”
“그럼 가져가서 뭘 하신 거예요?”
난 답했다.
“이자벨라를 통해 정확히 1만 개를 복제했습니다.”
“네?”
“모레 전부 기념품으로 배포할 예정이고요.”
이자벨라의 변환은 시스템적 표기마저 속인다. 그게 내일 일제히 풀린다. 그렇다면 최태수의 입장에서 진품을 낀 사람을 어찌 찾겠는가. 끼고 있는 사람이 만 명 단위이고, 전부 각성자일 텐데.
“WAC 기간 동안 마음껏 사용해도 됩니다.”
강예빈이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신혁 씨가 그렇다 하면 그렇겠죠. 믿을게요.”
“네.”
오늘로써 WAC의 준비는 모두 끝났다.
* * *
이틀 뒤.
WAC 개막식.
[오래 기다리셨습니다~]긴 고함을 지르는 사회자가 대형 전광판에 잠시 나타난 뒤에 다시 암전한다.
[세계 100대 기업 중 78개의 기업이 후원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관람객을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았다. 이내 블랙미러 속에서 TF(The fall) 공식 로고가 환하게 발광하고, 그 아래로 세계 유수 기업들의 로고가 차례로 새겨진다.
[총상금 10조! 상품 A급 아티팩트 40점! B급 아티팩트 20점! C급 아티팩트 10점! 그리고 무려 S급 아티팩트까지!]아무도 상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거대한 돔 안, 모든 관중의 시선은 가치 추정이 불가한 S급 아티팩트 [아리앗의 마수]의 외양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관중 수십만 명의 침묵은 화면이 다시 암전하고 나서야-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으로 일변한다.
[총참여자 수 십만 명!]와아아아아. 더 크게.
[세계 100대 길드가 모두 참여한 가장 위대한 아레나!]함성이 고점이 이르렀다 싶더니.
[전 세계 각성자 중에 무려 10%가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이윽고 세계 100대 길드의 길드장의 얼굴이 스크린의 가로 10등분, 세로 10등분 한 전광판에 가득 채워지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
다시 새로운 고점을 찍는다.
[위대한 성녀를 비롯한 치유 각성자 총 천 명!]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베리어’ 각성자와 ‘염력’ 각성자 등의 안전 요원 총 천 명!] [총 세 개의 돔에서 쉴 새 없이 치러지는 전투의 연속!]진행 멘트가 함성에 묻히자, 사회자는 더욱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바로 이곳! 서울 TF 돔! 현대판 콜로세움에서!]다시 화면에 잡힌 사회자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장소는 돔의 입구였다.
[가장 위대한 격전의 시작을 알립니다!]과장된 몸짓으로 그가 한곳을 가리킨다.
카메라 앵글이 그의 손끝을 따라간다.
[먼저 WAC의 참가자를 소개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돔의 입구가 대형 전광판에 송출되었다.
입장식이었다.
[그 포문을 여는 첫 번째 순서! 한국 1위 길드! 세계 랭킹 4위의 이혁건 헌터가 이끄는 아라한 길드!]곧 이혁건을 필두로 아라한 길드가 돔으로 입장한다.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돔을 한 바퀴 돈 이혁건이 다시 돔을 빠져나가도, 다른 아라한 길드원들은 여전히 입장 중이었다.
[두 번째, 일본 1위 길드이자 세계 랭킹 30위 안에 무려 두 사람의 이름을 올린 소수 정예 길드! 알짜배기라는 평이 지배적인 일본의 이스 길드!]아라한 길드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존재감마저 작진 않았다.
소개대로 소수 정예의 성격을 띠었지만, 그 정예의 전부가 참여한 탓이었다.
[……중국 1위의 웨이보 길드…… 러시아 1위의 네자쉬 길드…… 이탈리아 1위의 아모르 길드…… 영국 1위의 토마스 길드…… 한국 2위의 수호 길드…….]이어서 세계 100위 길드에 이름을 호명한 다음엔 개인 참여자의 나열이 이어졌으며.
[영국의 기사! 영국민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헌터! 앰버 세리아드!]……
[혜성처럼 등장한 다크호스! 김태완 헌터!]개인으로 참여한 각성자를 소개한 뒤엔, 모두가 기다린 순서가 말미에 등장했다.
[세계 1위 랭커이자 세계 1위 길드를 이끄는 허드만! 허드만이 이끄는 허드만 길드가 지금 바로 입장합니다!]느릿한 걸음으로 장내를 도는 허드만. 모두의 관심을 쓸어 담는 그의 태도는 누가 봐도 여유로운 것이었다.
기실 그의 입장부터 퇴장까지 함성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다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그리고 마지막.
[이제 마지막 참여 단체입니다.]1년 전까지만 해도, 허드만과 그의 길드가 참여하는 모든 행사에서 피날레를 담당했건만, 이번엔 아니었다.
[이제 전 세계에서 이 클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 장담하겠습니다. 수식어는 빼고 바로 소개해 올리도록 하죠.]어느 무대 효과도 없었다.
인위적인 연출은 전무했다.
[혁!]다만 함성 소리가 음소거되고, 천 대에 이르는 중계 카메라와 관중석에 빼곡히 차 있는 관객의 폰이 전부 같은 방향으로 향하니-
[예!]돔의 관심은 등장 소개만으로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클!]십만 명의 관객이 내뿜는 기이한 정적 속.
[랜!]박신혁이 모습을 드러낸다.
뚜벅.
이미 [스킬]이라 알려진바, 노란 광채를 내뿜는 좌안(左眼)과 더불어.
“뭐, 뭐야 저건?”
“……!”
“나노 아머(Nano armor)?”
“저런 게 있어?”
광택을 띠는 묵빛의 피부, [레비아탄의 피부]까지.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여태와는 차원이 다른,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과 함께-
[지금 입장합니다!]박신혁이 대중에게 전력의 일부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