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29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29화
“성직을 위하여!”
그리 말하는 어느 각성자였다.
-키키키키키키킥.
그는 강예빈에게 도플갱어를 떠오르게 한다. 인간의 외양을 했지만, 내면은 몬스터에 가까운.
“경고했습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본인에게 다가오는 각성자보다 강할 수호 길드원이 현재 고전하는 이유는, 처음 도플갱어를 접했을 때의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언젠가 내가 박신혁 씨와 똑같이 생긴 몬스터를 죽일 수 있을지가요.
그의 검 끝이 떨린다.
그는 위축되어 있다.
곧 서로의 검이 교차한다.
목적지는 달랐다.
푹! 푹!
수호 길드원은 상대의 어깨를 찔렀고-
성직을 수행한다던 각성자는 수호 길드원의 목을 찔렀다.
쿨럭.
목구멍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울컥거렸다.
“이가을 씨!”
체급을 넘어서 B급 각성자의 시간을 붙잡고 있던 강예빈은 소리를 질렀다.
“여기 힐!”
아주 다행히 아군엔 이가을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가을의 시선이 힐끔 이리로 향하자, 벌떡, 곧 다시 일어난 수호 길드원의 목엔 핏자국만 남아 있다.
“…….”
상처는 없다.
그리고 이제 전과 같은 망설임도 없었다.
여태껏 호위를 받았던바 이미 알고 있듯, 이제 그는 과감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은 수호 길드원이 되었다.
“죽어-!”
검극이 이젠 또렷하다.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자인 수호 길드원은 이윽고 어려움 없이 상대를 반으로 갈랐다.
촤아아아아악-!
상대는 반으로 갈라진 시체가 되었다.
그때 강예빈은 현실을 직시한다.
“아…….”
시체였다.
반으로 갈라진 육체. 교과서에서 보던 그 인체 단면도에서, 실제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도플갱어가 아닌 사람의 시체.
“감정적이면 안 돼.”
제 몸을 살피지 않는 테러리스트와 전력의 우위가 있음에도 고전하는 수호 길드원의 격전 속에서 강예빈은 홀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는 거야.”
다짐이며 자위였다.
이가을이 아니었다면 죽은 건 수호 길드원이었다고.
전투기까지 동원한 흉악한 테러범이 아니라,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이곳에 온 지원자였다고.
“머뭇거릴수록 피해는 커져.”
또 다른 B급 각성자를 붙잡았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 덕분에 저 사람은 죽지 않고, 제압만 당할 것이다.
“이게 최선이야.”
그리 믿으며 그리 생각한 순간이었다.
“지금!”
타다다다닥!
아까의 수호 길드원이 그를 향해 달린다.
촤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자신이 붙잡아둔, 시간이 멈춰 버린 무방비 상태의 테러범을 다시 반 토막 낸다.
“…….”
시체 하나가 또 늘었다. 그럼에도 강예빈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저 [타임 슬립]만 멈췄다.
-그게 힘든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겁니다. 그게 비각성자든, 각성자든.
불가항력적이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전쟁 같은 거다. 적군을 죽인 건 살인이 아니라, 정당방위이며 어쩌면 공적이다.
“차라리 빨리 끝나야 해. 전투가 길어지면 안 돼.”
이를 악물고 그리 납득한다.
강예빈은 빠르게 주위를 훑는다.
“그러려면…….”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을 찾는다.
WAC의 결승까지 올라간, 마왕이라 불릴 만큼 이 사태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을 애타게.
“박신혁.”
빠르게 주변을 훑어 결국 그를 찾았다.
“왜?”
그리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격전지, 아티팩트가 들어 있는 단상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왜 저렇게까지…….”
저 장면을 이해하려 애써본다.
촤아아아아아악-!
상대를 반 토막 낸 박신혁이.
띠- 띠-
인벤토리에서 폭탄을 꺼내서.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짖는 텔레포터의 몸에 박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최진혁 신도님!”
이후, 곧 저 최진혁이란 텔레포터가 손에 아티팩트를 쥐고서, 몸에 폭탄이 박힌 채로 어디로 [텔레포트]하는 것을.
-레비아탄의 눈 때문이 맞습니다. 눈으로 보고, 마력을 움직였죠…… 가시화된 이능의 마력 작용 중 일부분을 흐트린 것에 불과하니까요.
아마 저 이능까지 취소시킬 수 있는 박신혁이, 그저 지켜만 보는 데엔 어떠한 연유가 있을 거라고.
-그자의 이름은 최태수입니다. 더불어 최진혁까지 기억해 두세요. 위험한 자들이니…….
그래.
-성직을 위하여!
그래서일 거다.
이게 맞는 거겠지.
“…….”
박신혁은 늘 그랬던 것처럼 옳은 길은 선택할 거고, 옳은 길을 향하고 있겠지.
-강예빈, 한예리는 비각성자의 제압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이리 생각하는 자신과 어린 한예리에게 그저 이것만 시킨 거다.
그러면 자신은 그저 그 명에만 따르면 된다.
“…….”
이후 강예빈은 격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 *
사태 종료 10분 후.
“다행히 WAC 습격 사태는 발발 30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우리에게 벼락같은 환호가 쏟아진다.
EMP로 인해 이곳의 소식은 끊겼었다.
함성을 지르는 이들은 여기를 궁금해했을, 일이 끝나자 부랴부랴 이곳을 찾은 언론사들이었다.
“피해자를 제압하는 데에 있어 많은 이들이 크게 다쳤지만, 다행히 이가을 클랜원 덕분에 사상자 수는 경미합니다.”
역시 혁예 클랜! 수호 길드!
갑작스럽게 터진 대형 사건을 큰 피해 없이 정리한 우리의 면전엔 계속해 호평이 쏟아졌다.
나는 손을 들어 장내의 호응을 가라앉혔다.
“격전 중에 절반의 테러리스트를 사살했고, 현재 제압된 절반은 바로 경찰과 협회 측으로 넘기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을 뒤로하고, 인터뷰실을 빠져나온다.
언론에게 간략한 정보를 전달한 후엔 주요 인물들을 회의실로 따로 불렀다.
“이가을 클랜원, 상태는 어떠합니까?”
“…….”
고개를 젓는 그녀의 낯빛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다.
그녀가 목숨을 살린 수호 클랜원이 수백이 넘는다.
수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백의 [치유]를 쉴 틈도 없이 사용했다.
아마 태어나서 오늘이 가장 무리한 날이리라.
“미안. 더 이상 치유는 못 할 것 같아.”
현재 회로의 과부하를 겪고 있을 그녀는 더 이상 누구를 치료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른바 내상을 다스리는 근원적인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임솔 길드장은요? 추가적인 웜홀 생성이 가능합니까?”
“당장은.”
임솔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을 경기장에 불러오는 것부터 미사일의 처리까지, 그녀는 계속해 대형 웜홀을 유지하였다.
“강혁 부길드장과 한예리 그리고…….”
그리고 강혁, 한예리를 비롯한 나머지도 비슷했다.
심지어 [재생]을 [원기]로 뽑아 쓴 주진헌도 지친 상태이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일단 다른 치유사를 불러보겠습니다.”
기대를 담은 말은 아니었다.
외상이 아닌 내상까지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치유사는, 컨디션까지 치료할 수 있는 치유사는 이가을이 유일하므로.
“다들 상태가 이러니…….”
현재 [원기 흡수]로 타인의 에너지를 훔친 ‘나’와, 중간에 전투를 멈춘 강예빈만이 지금으로선 멀쩡한 편.
“전원 당장 돌아가서 쉽니다. 그리고…….”
나는 말하며 생각한다.
지금 당장에라도, 나 홀로서라도, 최태수를 쫓아볼까?
‘현재 그의 수준은?’
일단 생각보다 [마력]이 높다.
-아버지!
다시 꺼낸 멀쩡한 차폐막 안에서도 [세뇌]가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거의 확실하다.
‘헌터 등급은?’
적어도 A급이다. 오늘 잡히거나 죽은 세뇌자 중엔 A급 헌터도 다수다.
B급 정신계열 헌터가 다수의 A급 헌터를 다스리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A급 이하의 [보유 마력]의 한계는 뚜렷하다. 그러니 그도 최소 A급으로 봐야 한다.
‘그러면 위험도는?’
그럼 위험할 수도 있다.
전생의 경우를 대입해 보자면, 최태수의 전력이 이게 전부일 가능성은 현저하다.
이번 일에 대해선, 미리 준비한 함정이 있었기에, 아티팩트를 탈취하고 남음의 전력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함정이 아니었다면.’
갑작스레 터진 일이었다면, 적어도 최진혁이 아티팩트를 탈취해 도망갔을 일일 수도.
‘나는 거기서 죽으면 안 돼.’
혼자 가면 위험할 수도 있다. 잃는 게 너무 크다.
난 죽더라도, 결코 최태수에게 죽어선 안 된다. 회귀자가 [세뇌]되면 인류는 반드시 망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본래의 컨디션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주진헌 클랜원, 이가을 클랜원, 강예빈 클랜원만 남고 모두 돌아가시면 됩니다.”
우르르르르.
곧 회의실에는 세 사람만 남았다.
난 먼저 주진헌이 남은 이유를 밝혔다.
“주진헌 클랜원.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지금 회복 속도로 봐서는…… 자정이 넘으면 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세계수다웠다. 원기를 그렇게 줄기차게 뽑아댔으면서도 회복이 빨랐다. 자정이면 최태수를 잡으러 가기 전까지 충분하다.
“우리는 또 다른 작전을 할 겁니다.”
최태수를 잡으러.
주진헌은 되묻지 않았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즉답하는 그가 믿음직스럽다.
나는 그에게 신뢰의 눈빛을 남기며 새벽 4시를 강조했다.
“작전 시간은 새벽 네 시. 우리는 이 일의 배후를 잡을 겁니다.”
문제는 누구와 가느냐.
“이가을 클랜원.”
“어?”
“허드만 번호 있죠?”
허드만, 세계 1위 헌터.
“그가 출국하기 전에, 아니, 지금 바로 전화해서 10분 후 저한테 전화 좀 해달라 말을 전해주세요.”
그가 제격이다.
그라면 최태수에게 [세뇌]당하지 않을 터이니. 게다가 전생에서 겪은바 충분히 믿을 만한 인물이기도 하고.
“우리는 소수 정예로 작전을 실시할 겁니다.”
전생과는 전투방식을 달리해 보려 한다.
‘전생엔 아군과 싸우는 일도 잦았으니까.’
싸우는 와중에, [세뇌]당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그러나 나, 주진헌, 허드만이라면.
S급 헌터의 [마력 저항]과 주진헌의 세뇌당하지 않을 굳건한 멘탈이 있다면.
어쩌면 아군이 세뇌당할 걱정 없이, 깔끔하게 최태수를 죽이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벽 4시를 택했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또 경계가 느슨하게 마련이니.
“그리고 강예빈 클랜원.”
반면 강예빈을 부른 이유는 별거 없다. 전투에선 배제할 예정이므로. C급 각성자를 최태수 앞에 데려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을 것이니.
“오늘은 클랜 사옥에서 머무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다만 현재 수호 길드원의 대부분이 휴식을 취해야 하는바, 그녀의 호위가 빈다.
물론 이제 최태수가 최진혁과 함께 갑작스럽게 나타나, 이동 계열과 정신 계열 각성자가 수호길드의 경호를 무너뜨리고, 강예빈을 [세뇌]할 일은 없겠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괜한 위험은 만들지 않는 게 옳은 법.
“일이 끝나기 전까지 클랜 사옥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현재 클랜 사옥엔 하대호가 들어와 있다. 이가을과 그녀의 경호 인원 역시 그곳에 머무른다. 그곳만은 무조건 안전하다.
“그럼 해산하죠.”
그게 끝이었다.
작전의 세부사항은 말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정보가 새어 나갈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네.”””
그럼에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분명 내게 일이 옳게 흘러가고 있다는 확신을 들게 하였다.
* * *
자정.
클랜 사옥.
[자요? 내일 뭐 하는 거예요? 예전에 말했던 최진혁과 최태수는…… 꼭 다 죽어야 할까요……]“아니야.”
침대에 누운 강예빈은 박신혁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지운다. 곧 새벽 4시에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그를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적어도 오늘 털어놓을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던 때였다.
띠리리리리링.
자정에 울리는 전화.
[발신인 : 이소라]이소라.
-종교 어떠세요? ……원래 다들 힘들 때 신을 의지하잖아요. ……신에게서 위안을 찾아보는 게 어떠세요?
저를 포교하려던 동료 연구원.
-최진혁 신도님!
그리고 신도.
어쩌면 오늘 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강예빈은 순간 고민한다.
이어서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동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신혁 씨. 저 지금 이소라 연구원한테서 온 통화 받았어요.]자정의 시간, 그의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지금 강예빈 클랜원의 방으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