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40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40화
3차 게이트 브레이크, 6일 전.
[발신인 엄마 : 아들. 이거 다 선물받은 거 맞아? 요새 식량이 엄청 귀한데 이렇게나 많이?]김우주는 거짓을 답했다.
[응. 선물 맞아.]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매일 거실의 팬트리에서 훔친 식료품을 전달한 것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거짓말이 자연스럽다.
[박신혁 클랜장이 마음껏 가져가도 된댔어.]신경 쓰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얼마를 가져가든 다음 날이면 식료품은 그대로 채워져 있었기에.
[알았어, 우주야. 매번 감사하다고 꼭 전해 드려. 지금 밖은 난리도 아니야. 어제는 통조림 하나 때문에 칼부림도 났어. 꼭 거기 붙어 있어야 해, 알았지?]우리 가족이 밖에선 어떤 생활을 보내든, 이곳은 무탈하기에.
“어차피 혁예 클랜원이야 잘 먹고 잘살겠지.”
엄마의 비유에 따르면, 밖은 흡사 전쟁터와 같다고 한다.
적군의 당도를 기다리며 각자도생하는 피난민처럼.
실제로 몬스터와 조우하기 직전이니, 틀린 비유도 아니리라.
“이건 마땅한 일이야.”
어떠한 신념하에, 김우주는 오늘도 불 꺼진 거실 속에서 움직인다.
‘이건 의로운 도둑질이야. 난 의적 같은 거지.’
밤에 피어오르는 절도 행위는 점점 명분을 갖췄다.
이건 부의 재분배 같은 거다.
우리 가족이 밖에서 힘든데 이곳은 식량이 넘치니까, 자신은 도의적 선순환을 하고 있는 거라고.
어차피 각성자들은 공복에도 몬스터를 잡을 수 있으니까, 며칠 굶어도 살 수 있으니까, 식량 같은 건 우리 같은 비각성자들이 취해야 한다고.
더구나 생활고로 인한 절도 행위는 애당초 참작 사유가 되지 않나.
그런 상념에 빠져서일 거다.
“우주?”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 아무런 눈치를 못 챈 것은 그래서일 거다.
등 뒤에서 비친 빛줄기가, 자신과 자신이 집어 든 식료품을 밝혔다.
“……!”
급히 뒤를 돌았다.
동시에 식료품이 가득 담긴 가방에서 폰을 꺼내, 김우주 역시 폰의 조명으로 상대를 비췄다.
어둠 속에서 불빛이 교차한다.
“왜…….”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대가 라이트를 꺼버렸기에.
마치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학용품을 전부 빼낸 가방에 남의 집 식료품을 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우주, 네가 왜……?”
상대는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다는 듯이 외면하기에.
고개를 돌린 반쪽의 얼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비추는 폰의 조명에 드러난 한예리의 표정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선연했다.
“X이이이이이발.”
충분히 그렇게 보였다.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거렸다.
“우주야…….”
“비켜!”
김우주는 가방을 둘러매고 첫사랑을 거칠게 지나쳤다.
-나라고 여태 성실히 일했던 사람이 그럴 줄 알았겠냐고. 나라고 일부러 집을 비워놨겠어?
갑작스레 가정부 아줌마를 욕하던 엄마가 떠올랐다.
* * *
브레이크, 2일 전.
4일이 지났다.
-너네 요새 싸웠어?
-아냐~ 싸우긴 뭘 싸워.
한예리가 대답했지만, 김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 일간 있었던 첫사랑과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예리야. 오늘부터랬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거?”
그러던 와중에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리지 않았다면, 계속해 그랬을지도.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있든 말든, 김우주는 한예리에게 큰 소리를 내었다.
“한예리. 출입이 통제된다고?”
“응……. 말했잖아, 오늘 저녁부터 클랜 부지에 대피인 들어와.”
브레이크.
그 예언된 재해는 평소 김우주가 그리던 재해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대피인이 미리 지정되었다.
브레이크 발발 시, 혁예 클랜 부지에 들어오고 싶은 이들은 거주지에 무관하기 때문이다.
과장 없이 전 국민이 원하는 격.
2차 브레이크에서 그랬듯, 이곳에선 확실하게 브레이크를 피할 수가 있을 게 다분했다.
더구나 3차 브레이크에선 이곳에 출몰할 몬스터가 다른 곳보다 현격히 적을 거라는 말이 되니, 모든 사람이 이곳에 오길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다.
“뭐야? 김우주? 이거 예리가 우리 처음 집에 들어온 날 다 설명했던 거잖아? 왜 이제 와서 놀래?”
“아, 아니, 그냥 갑작스러워서.”
대피인이 한계 이상으로 몰리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것.
그게 오늘부터라고 한다.
“나가면 아예 못 들어와?”
“신혁 님 말씀대로라면, 사람들이 잔뜩 몰릴 텐데 입주민만 따로 들어오는 통로를 만들어줄 수는…….”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김우주는 심란했다.
-우주야…….
-비켜!
오밤중에 한예리와 대면한 그 날 이후, 한 번도 가족에게 식량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제는 통조림 하나 때문에 칼부림도 났어.
엄마와 아빠와 여동생이 밖에서 버틸 수 있을까.
웬만하면 식량을 바리바리 싸 들고, 사태가 진압될 때까지 집안 깊숙이 숨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그런데 요 며칠간 제가 가져다준 식량은 없으니…… 오늘이어야 한다.
장남인 자신이 가족들에게 브레이크가 끝날 때까지 버틸 식량을 전해야 한다.
‘반드시 오늘.’
오늘 가족한테 식량을 전하고, 곧바로 돌아와, 어떻게든 한예리에게 비벼야 한다.
이곳에 다시 들어오려면.
“알았어.”
김우주는 비장하게 말했다.
이후 방에 들어와 조용히 시간을 죽인다.
시간은 흘러 11시가 되었다.
식료품을 훔치던 평소의 시간에 조용히 한예리의 옷 방으로 향한다.
그곳에 걸려 있는 남의 가방을 모조리 챙긴다. 하나하나가 명품으로 보였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양팔에 주렁주렁 그 가방들을 매달고는, 다시 주방으로.
슥. 슥. 슥.
조용히 전부 쓸어 담는다.
이걸 전부 들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만치 가득.
그 후엔 어둠 속에서 준비된 문자를 보냈다.
[엄마. 안 자고 있지? 지금 바로 혁예 클랜 부지 입구로 차 가지고 와. 빨리!]슥. 슥. 슥.
이후 가방을 질질 끌어서, 현관문을 나서, 이윽고 클랜 사옥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대면한다.
“야. 쟤 봐. 클랜 사옥에서 나오는데?”
진정한 현실을.
“뭐야? 각성자야?”
“아니지 않을까? 저것도 못 들어서 질질 끌고 있는데, 각성자겠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이곳에 오기까지 순탄한 길을 걷지 않았음을.
“저 새낀 뭘 그렇게 중요한 걸 몰래 가지고 나오길래, 이 야심한 밤에 혼자서 빠져나왔을까?”
나이는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의 눈빛은 자신과 달랐다.
끼리끼리 모여 있는 그들의 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어제는 통조림 하나 때문에 칼부림도 났어.
대피인들은 결코 선량하지 않았다.
“야. 저 새끼 잡아. 안에 든 것 좀 보자.”
몬스터에게 향해야 할 무기들을 들고서 접근하는 이들의 눈에는 탐욕만이 가득하니-
“좋은 말로 할 때 꺼져.”
김우주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저 병신이 뭐라냐?”
통하진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놈들은 한쪽 입꼬리만 올라간 웃음을 주고받는다.
“지가 꼭 각성자인 듯이 말하네?”
스무 명에 달하는 놈들의 기세는 등등하다.
실제로 저들의 숫자와 무기는 비각성자에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더구나 자신에겐 고작 식량이 담긴 가방이 전부니. 그마저도 지금은 짐일 뿐이고.
“여기 혁예 클랜 부지야. 니들이 행패 부리는 걸 혁예 클랜이 가만히 두고 볼 거 같아?”
거친 목소리를 낸 건 허장성세였다.
그게 뻔했나 보다. 선두에 서 있는 놈이 비릿하게 웃었다.
“야. 그렇게 자신 있으면 소리 질러 봐. 도와달라고. 여기 애들이 내 물건을 뺏어가려 한다고.”
재수 없게도, 상황 파악이 빠른 놈이었다.
“근데 왜 안 해? 이 야밤에 뭘 그리 바득바득 싸 가지고 도망가길래 그런 말도 못 해? 응? 클랜 사옥에서 뭘 훔쳐 나오길래, 도와달라고 소리도 못 지르냐고-!”
놈이 한걸음 이쪽으로 다가온다.
“이 X새끼야. 좋은 것 좀 나눠 갖자?”
대답 대신 김우주는 들고 있는 가방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퍽!
운이 좋았다. 가방 밑에 깔아놓았던 게 통조림이었나 싶다.
놈의 얼굴을 강타한 소리는 생각보다 둔탁했다.
“씨이이이이X!”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의 절망이 한 번의 행운만으로는 타결이 불가능함을 알았다.
한쪽 얼굴에 피를 흘리며 놈은 다시 일어난다.
철제의 창을 든 채였다.
“이 새끼가 뒤질려고-!”
퍽!
이윽고 놈이 휘두른 창대에 얼굴을 가격당한 순간.
세상이 핑그르르 돌아가며 정신이 아득해진다.
“덮쳐-!”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진다.
동시에 놈의 말대로 무리가 덮쳐온다.
“어어어어…….”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은 양다리가 붙잡혔다.
속절없이 질질 끌려간다.
질질질.
대피인을 위한 커다란 대형 텐트로.
저들의 아지트로.
“이 새끼 봐라. 이 와중에 끝까지 안 놓네?”
“형! 이 새끼가 들고 온 거 전부 식량인데요?”
“전부 뺏어!”
순식간에 놈들에게 둘러싸였다.
‘아빠! 엄마!’
뒤늦게야 정신이 번쩍 들어, 식량을 품속으로 가득 껴안았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순 없었다.
퍽!
누군가의 사커킥이 옆구리에 꽂혔다.
고통에 절로 힘이 풀린 순간, 식량이 담긴 가방 하나를 빼았겼다.
삭!
창날 하나가 팔뚝을 스쳤다.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자, 또다시 가방 하나를 빼앗겼다.
“하나도 남기지 마! 전부!”
또 뺏긴다.
다시 뺏긴다.
계속 뺏긴다.
퍽! 폭력이 거듭될수록, 지킬 것은 줄어든다.
“제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어!”
뒤늦게 필사적으로 외쳐봤지만.
“이 이기적인 쓰레기 새끼야! 누군 가족이 없어서이래? 니네 가족만 사람이고, 니네 가족만 입이냐?”
대답은 발길질이 돌아왔다.
-어제는 통조림 하나 때문에 칼부림도 났어.
퍽!
자신이 클랜의 사옥에 있는 동안, 든든한 울타리 안에 며칠 있는 동안 세상은 변해 있었다.
이들에게 혁예 클랜이고 뭐고 없었다.
범죄를 저지르는 데엔 어떠한 주저함도 없었다.
“제발…….”
“뺏어! 전부 뺏어!”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짐이 가벼워지고, 등에 메고 있는 가방 하나마저 절반쯤 놈들 손에 넘어갔을 때였다.
삐이이이익!
멀리서 이는 호루라기 소리.
“너네 뭐야? 다들 쫓겨나고 싶어!”
이어서 누군가가 고작 한 손만으로 대형 텐트를 들어내었다.
나머지 한 손에 들린 아티팩트, 보호구 아티팩트의 가운데 수놓인 수호 길드 표식.
그는 각성자였다.
“튀어-!”
그 등장에, 저를 습격한 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어딜!”
각성자는 주변에 있는 이들을 순식간에 제압했지만, 그 이상 쫓진 않았다.
“학생. 괜찮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자신의 상처를 살피는 각성자의 물음에, 김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멀어져 가는 자신의 식량을 허무히 바라볼 뿐이었다.
“몸은 괜찮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냥, 그냥 치료만 해주세요.”
일이 더 커지는 걸 원치 않았음에 작게 소리 내었다.
얼마 남지 않은, 훔친 물건이라도, 가족한테 전달하려면 그래야 하니까.
* * *
다행히 각성자의 도움을 받아 입구까진 무사히 도착했다.
“학생.”
“네.”
“지금 와서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여기가 나을 거야.”
이곳을 안내해 준 각성자의 등 뒤로 또 다른 폭동이 보였다.
“곧 게이트를 클리어한 수호 길드의 본대가 돌아올 거거든. 그러면 더 이상 치안 문제도 없을 거야.”
저게 곧 잠잠해진다고 한다.
“……괜찮아요.”
순간 두 시간만 늦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후회는 없었다.
그 두 시간 때문에 다시 저 클랜 사옥에 못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전 지금 나가야 해요.”
어쨌든 제일 큰 백팩과, 가방 세 개는 되찾았다. 아껴 먹으면 어쩌면 가족들이 이것으로 브레이크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런 희망이 아직은 남았다.
“감사합니다.”
도와준 이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클랜 부지의 입구로 나왔다.
“지금 나가시면, 재입장이 힘들 수도 있어요.”
“……네. 알아요.”
바깥은 한예리의 말대로였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문제는 그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죄송하지만, 다시 확인해 봐도 대피인 명단에 없습니다. 혹 다른 대피소를 배정받으신 건 아닐까요?”
미리 대피인 명단을 정했는데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혁예 클랜을 찾은 이들 때문에.
“……혹 못 오는 사람 있으면 그 빈자리에 대신 들어갈 수 있죠?”
“가능은 합니다. 그러나 장담할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지정된 대피소로 가시는 게…….”
저 검사원마저 각성자기에, 저들이 대놓고 민폐를 부리지 못하는 게 다행일 지경.
한참이나 시간을 잡아먹던 이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돌아가 줄을 섰다.
그렇게 악순환은 반복된다.
김우주는 고깝게 그들을 쳐다본 후,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이기적인 새끼들……. 저밖에 모르는 새끼들…….’
쉽사리 욕설을 뱉진 않았다.
“…….”
저를 보는 눈빛이 흉흉했기에.
한예리에게서 가져온 명품 가방에 그들의 시선이 꽂힐 때마다, 그 정도는 배가 되었고.
익히 알던 문명인의 눈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방에 시선을 둔 채로 대기열에서 한 걸음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걸 보아하니, 어쩌면 저 새끼들이 자신을 노릴 수도 있겠지.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평이 지배적인 혁예 클랜의 부지 앞입니다. 현재 대피소를 들어가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선 가운데……]급히 이곳을 취재하는 외국인 근처로 향했다.
무기도 없는 자신은 카메라 앞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외신 기자까지 건들진 못할 거라는 계산하에.
카메라 근처에서 폰을 열었다.
지도 앱을 켜서, 현재의 위치를 엄마에게 공유했다.
[엄마. 이리로 와줘. 차에서 내리지 말고, 물건만 받아가. 알았지?]그리고 그때서야 알았다.
[새로 온 메시지가 13개 있습니다.]깨진 액정 위로, 꽤 많은 부재중 통화와 메시지가 와 있었음을.
“…….”
액정에 튄 피를 옷으로 흘쩍 닦으니, 조금은 투명해진 화면에서 첫사랑의 이름이 보였다.
[발신자 한예리 : 우주야. 괜찮아?] [발신자 한예리 : 어디야 지금? 설마 바깥으로 나간 건 아니겠지?]……
[발신자 한예리 : 걱정되니까 바로 연락 줘.]한예리.
[예리야. 지금 실수로 밖에 나왔는데 다시 들어갈 수 있을까?]“지금은 너밖에 없다.”
빠드득. 이를 악물고 철판을 깔았다.
지금 자신이 붙잡을 수 있는 동아줄은 한예리가 유일했으니까.
[왜? 나가면 안 된다고 했잖아.] [미안. 진짜 어쩔 수가 없었어.] [일단……신혁 님이 게이트 클리어하고 오시는 대로 말은 해볼게.] [알았어. 기다릴게. 고마워 예리야.]이후 다시 혁예 클랜의 사옥으로 들어가려면, 살려면, 첫사랑에게 빌붙어야 했다.
자존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살려면…… 살려면 어쩔 수 없어.”
그러나 마음이 무너져갈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렇게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이 지났다.
-우주야. 너 옷이 왜 그래?
-오다가 좀 넘어졌어. 엄마. 사람들이 보니까 바로 돌아가. 내가 다시 전화할게.
그사이에 식량도 전달했건만, 아직도 한예리의 답장은 오지 않는다.
김우주는 쭈그려 앉았다.
줄어들지 않는 대기열을 보며 또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니…….
[우, 우주야.] [응. 예리야. 박신혁 클랜장님한텐 말했어?] [신혁 님이…… 대기열 맨 뒤로 가래. 지금 따로 들어오는 특혜는 줄 수 없다고…….]순간 눈이 화끈거렸다. 눈알이 격하게 뒤집힌다.
가까스로 대기열을 본다.
“그러니까…….”
그 끝이 가늠도 안 되는 저 줄의 맨 끝에 서라고?
그러다 브레이크가 터질 때까지 못 들어가면?
“나보고 죽으라고……?”
다시 한예리를 붙잡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너 혁예 클랜원이잖아. 네 보호자가 혁예 클랜장이잖아. 근데 왜 안 돼?]필사적으로 깨진 액정을 두드렸다.
[……예리야. 나 아무 준비도 못 했어…….] [우주야. 아까도 말했잖아.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는데, 입주민만 따로 들어오는 통로를 만들 수는 없다고.] [나 무기도 없고 식량도 없어. 이 상태로 몬스터를 만나면 바로 죽을 거야. 알잖아? 난 너와 달리 비각성자라고!] [미안……. 신혁 님이 며칠 전부터 누누이 말했던 일이라,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화가 났다.
지는 각성자니까, 또 저런 풍족한 철옹성 안에 사니까, 저딴 말을 쉽게 할 수 있겠지.
반면 목숨이 걸려 있는 김우주는 열불이 치솟았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넌 고작 이게 다야?] [우, 우주야?] [너 교과서 읽는 것도 버벅거려서 개쪽당했을 때 옆에 있어준 게 누구야!] [……그건 고마운데, 나도 안 되는 걸 되게 할 순 없어.]박신혁 옆에서 히죽히죽거리는 첫사랑의 얼굴이 떠오르니 더욱이.
[그렇게 박신혁 옆에서 간이든 쓸개든 내줄 듯하더니 고작 이게 다야? 이거 하나 못 해줘?] [……박신혁?]순간 문자의 온도가 차가워진 걸 느꼈다.
그러나 물러날 순 없었다.
[그래. 박신혁.] [김우주. 나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는데, 식량을 훔쳐서 밖으로 나간 건 너잖아? 근데 너 왜 신혁 님한테 화살을 돌려?] [그놈의 박신혁, 박신혁.] [뭐, 뭐?] [그 새낀 애 데리고 뭐 하는 거야? 네 보호자 맞아? 너한테 가스라이팅이라도 하니? 정작 이거 하나 못 해주면서-]그때 전화가 왔다.
당연히 한예리였다.
‘수락’을 누르자, 싸늘한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너 식료품 건드는 거 신혁 님이 알고 있었어. 그래도 너한테 신경 써주라며 말한 게 신혁 님이야. 근데 니가 신혁 님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해?
“…….”
가져간 만큼 다시 차 있었던, 팬트리의 식량이 떠올랐다.
그걸 채운 게 박신혁이었나 보다.
그러나 이미 모든 일을 저질러 버린 이상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쩌라고?”
김우주는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자꾸 박신혁, 박신혁거리는데, 사람 하나 자기 클랜 사옥에 못 들이는 사람이 뭐 신이라도 돼?”
-누가 신이래? 니 맘대로 안 되니까 괜히 신혁 님을 트집 잡지 말라는 소리잖아.
명분에서 밀리니 감정을 내세웠다.
“씨이이이X. 잘난 척은 X나 하더니 고작 이것 하나 못 해주냐?”
-뭐?
김우주는 주변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토록 잘난 사람이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히 있어? 사람들이 불안에 떨며 서로 약탈하며 무기까지 빼 드는데, 세계 랭커 1위란 사람은 지금 뭐 하고 있는데? 게이트만 깨면 다야?”
마침 옆에 있던 외신 기자의 말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혁예 클랜의 부지 앞이라 한들,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만한 한예리를 쏘아붙이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한예리. 밖이 지금 어떤지 알아?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상 물정도 모르는 네가 밖이 지금 어떤지 아냐고!”
-알아.
“알아? 아는데, 날 이대로 둬? 너 친구 맞아? 내가 밖에서 죽든 말든 상관없어?”
-말 똑바로 해. 너와 관련된 모든 일은, 그냥 네가 망친 거야.
“이게 나 때문이라고?
-그래. 신혁 님은 다 예상했어. 그래서 나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예상?
“그래? 그럼 그 잘난 박신혁이, 이 도시 전체가 미쳐 버린 이 불안을 그냥 보고만 있는 거네? 브레이크 터지기 전에 사람들이 이럴 거는 생각 못 했나 봐-!”
크게 소리 지른 그때였다.
“…….”
갑작스레 주변이 고요해졌다.
“저, 저기 봐봐.”
자신이 너무 큰 소리를 내서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정작 자신을 향해 있지 않았으니.
다만, 사람들의 얼굴엔 경악의 감정이 가득했다.
“부유 도시?”
쿠웅!
이윽고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거세게 흔들렸다.
[어,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이에 옆에 있는 외신 기자의 말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온다.
김우주도 외신 기자가 든 카메라가 향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뭐, 뭐야?”
그리고 보았다.
그곳에 기적이 펼쳐지고 있음을.
“미, 미친!”
“저게 뭐야!”
클랜 사옥이.
128층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과 그 주변에 있는 뭇 건물들이.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격렬한 불안 속에서.
일제히 하늘 위로 떠오르고 있음을…….
뚝.
저도 모르게 떨어뜨린 폰에서, 한예리의 음성이 낭랑하게 퍼졌다.
-그래. 예상. 너 따위가 생각한 걸 신혁 님과 예언자 언니가 생각 못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