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48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48화
클랜 사옥 128층.
나는 어느 곳보다 높은 건물의 꼭대기 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텔레포터. 꽤 까다로운 이능이긴 한데…… 위치를 확정할 수만 있다면야.”
최진혁을 잡았던 것처럼,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텔레포터도 잡으면 된다.
WAC에 최진혁이 나타났던 것처럼, 텔레포터가 나타날 위치로 가면 그뿐이다.
“밀항선을 따라 들어가면 잡을 수 있겠지.”
좀비의 이능에도 한계가 있다.
즉 제주도를 넘어서까지 레이더와 드론 운영이 불가능한 건 아니니, 충분히 밀항선은 잡을 수 있다.
그 밀항선을 찾아내 같이 제주도로 향하면 텔레포터의 위치를 확정할 수 있을 터.
그렇게 내 눈에만 들어오면 제압은 쉽다.
[레비아탄의 눈(左眼) : 에너지 가시화]최진혁의 [텔레포트]를 전부 취소시켰던 것처럼, 텔레포터들이 내 가시권에만 들어온다면 나는 그들의 천적이 될 수 있으므로.
영문 모르게 취소된 이능에 어버버대는 텔레포터에게 다가가, 심장에 검을 꽂아줄 수 있다.
“문제는 죽이냐 마냐인데…….”
똑똑.
“들어갈까요? 신혁 님.”
마침 한예리가 들어온다.
“들어와.”
나는 창문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네! 제가 뭐 도와드릴까요?”
이제는 소녀라 부르면 실례가 되는, 누구라도 감탄할 만치 만개한 외모를 자랑하는 한예리가 편안한 걸음으로 내게 향한다.
“헤헤헤헤.”
내 앞까지 걸어와 배시시 웃었다.
“앉아서 얘기하지.”
나는 자리를 권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김우주라고 기억나지?”
“네? 김우주요?”
“그래. 3년 전에 클랜 사옥에 있다가, 밖으로 나갔던 친구.”
“아……. 당연히 기억나죠.”
그러면 얘기가 쉽다.
“그 김우주에 관련된 소식 들은 거 있어?”
“음…… 연락은 따로 안 했는데…… 걔네 집이 좀 어렵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왜?”
“아버지가 선장이셨고, 어머니는 조그만 항공사를 운영하셨대요.”
“아…… 바로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버텼나 보군.”
바닷길이 좁아지고, 국경이 닫히는 세상엔 해운업과 항공업은 대표적인 사양산업(斜陽産業)이었다.
그걸 붙잡고 있으면, 가세가 기울기 십상이다.
‘소년 가장이 되었을 수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재차 물었다.
“헤어질 때는 어땠지? 좀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을까?”
순간 한예리의 얼굴은 암석보다 딱딱하게 굳었다.
“어처구니없는 놈이었어요.”
한예리는 씨익씨익거리며, 웬일로 남 흉을 보기 시작했다.
“얼탱이가 없는 파렴치한 놈이 감히 신혁 님한테 막! 고작 그거 하나 못 해주냐면서!……”
걸러 들으면 별건 없었지만.
“날 원망했다? 그럼 자의적인 협조를 기대하긴 어렵겠어.”
“네? 협조요?”
다음 한예리의 표정은 ‘의문’이었고.
“김우주가 협조를요?”
“그래. 저번 제주도 토벌 회의 자료에서 텔레포터에 관한 얘기가 있었던 거 기억나나?”
“네. 밀항을 돕는 천재 텔레포트 각성자 말씀이시죠?”
“그래. 그 텔레포터가 김우주일 확률이 꽤 높다.”
그다음은 ‘경악’이었다.
“네?!”
한예리가 크게 소리 질렀다.
난 놀라지 않았다. 이젠 우리 사이에 가끔 있는 일이었다.
반면 내 첨언은 차분했다.
“텔레포터와 꽤 근접한 밀입국자가 있었어. 그의 말로는 텔레포터의 태블릿 배경화면과 폰 배경화면엔 공통적으로 두 장의 사진이 있다고 하더군.”
“…….”
“하나는 가족사진으로 추정되는 것이고.”
“나머지는요?”
“하나는 교복으로 추정하건대, 유성고 졸업 사진이었다.”
“유성고요?”
“그래 네가 졸업한 유성고. 목격자가 그 사진에 있는 너를 알아보더군.”
한예리는 유명하다.
WAC 우승자에다가, 혁예클랜원인데다가, 명문대에 재학 중인 데다가, 엄청난 미인이니까.
특히나 한국에서 살려고 밀입국하려는 사람이, 혁예클랜원을 모르긴 힘들기도 하고.
“텔레포터가 너의 팬으로서 그 사진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 이건 아니다.
혹시나 해서, 이미 확인해 보았다.
“김우주의 졸업 독사진을 본 목격자의 진술로는 김우주와 텔레포터가 매우 닮았다고 했으니, 김우주일 확률이 높아.”
“네? 그럴 리가 없는데……. 걔가 그 사진을 갖고 있을 리가 없거든요.”
“왜?”
“김우주랑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저도 엄청 차갑게 말했었어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그리고 그 이후로도 연락 한번 안 했고, 게다가 김우주는 그날 이후 친구들과 모든 연락을 끊기까지 했어요.”
“그래?”
그러면 나도 의문이다.
그렇게 헤어진 사이인데, 왜 굳이 사진까지?
* * *
“그 사진이 뭔지 알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김우주는 그리 대답하며, 태블릿을 감췄다.
제게 다가온 프랑스인, 베로니크가 꽤 이성적인 밀항자임에도.
“궁금하네요. 밀항업자가 계속해 들여다보는 사진이라.”
그녀는 밀항자지만,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밀항한다는 이유도 오롯이 가족 때문이었고, 보통 제주도에 도착한 밀항자들과는 다르게 계약 조건으로 장난을 치지도 않았다.
“그게 이상한가요?”
그러나 그뿐이다. 밀항이 끝나면 다시 안 볼 사람. 김우주는 가일층 경계심을 높였다.
“밀항업자도 인간인데 사진을 보면 어떱니까?”
베로니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불법 사업을 하는 사람치곤 어리고, 거친 일을 하기엔 바르게 자란 티가 나고, 또 사람과의 선도 잘 지키는 편이니 호기심이 일어서?”
“좋게 봐줘서 고맙지만, 몬스터가 그런다고 해서 봐주진 않죠. 그리고 제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다른 사람의 사진을 아련히 볼까?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베로니카가 왼손에 Coin을 꺼내 들었다.
“사겠습니다. 정보.”
잠시 Coin에 시선을 두던 김우주는, 밀항자의 조금 짓궂은 장난으로 넘겼다.
“제 정보를? 굳이? 앞으로 우리, 안 보지 않을까요?”
“곧 불법 체류자가 될 제가 한국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꽤 유능해 보이는 각성자를 알아두면 좋겠죠?”
보란 듯이 그녀가 다른 손 가득히 Coin을 꺼내 들기 전까진 그랬다.
“이 정도면 되나요?”
그러나 그녀의 주먹에 가득 찬 그 개수는 장난으로 여길 양이 아니었다. 이건 일이었다. 김우주는 표정을 고쳤다.
“사진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면 됩니까?”
“일단은?”
그녀가 한쪽 손에 든 Coin 1개를 낚아채며 답했다.
“하나는 딱 봐도 아시겠지만, 가족사진입니다. 제가 책임져야 하는 우리 가족.”
“그럼 나머지는요?”
“나머지는……”
애써 담담히 말했다.
“가족들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제가 놓쳐 버린 것들이죠.”
“딱 봐도 또래로 보이는데. 친구들?”
“예전엔.”
“지금은 다르나요?”
“남보다도 못하죠.”
아쉽네. 그리 뇌까린 베로니카가 다시 Coin을 꺼냈다.
“그럼 이 사람에 대해서 잘 모르겠네요?”
그녀의 손가락이 단체 졸업 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한예리에게 닿았다.
그제야 그녀가 자신에게 접근한 목적이 이해가 갔다.
속으로 쓰게 웃으며 답했다.
“연락 안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다시 하실 생각은 없으시고?”
“네. 없습니다. 왜 그러시죠?”
“왜긴 왜겠어요. 돈이 돼서죠.”
베로니카는 냉철한 헌터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누가 혁예 클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요.”
“어떤 걸?”
“정보의 대상은 혁예 클랜원 전부 다. 그들의 습관 하나, 특징 하나까지.”
“누가요?”
“그건 알려줄 수 없죠. 나 대신 정보를 그쪽에 직접 팔면, 내 손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
“다만, 그들이 혁예 클랜에 관한 정보를 전부 사들이고 있는 건 확실해요. 그것도 꽤나 후한 값으로.”
베로니카는 다시 손에 Coin을 올려놓았다.
“그러니 팔아요. 어차피 혼자서 알고 있을 바에야, Coin이라도 챙기는 게 낫지 않겠어요?”
김우주는 새로운 Coin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한예리. 현재 나이 22살. 고려 헌터 대학 생물학과 재학 중.”
“끝?”
“끝.”
베로니카는 자신의 손길을 가볍게 피했다.
아무리 자연계열의 헌터라 해도, A급과 B급의 기본적인 스텟의 차이는 유의미했다.
Coin을 향하던 손은 허무히 허공을 갈랐다.
김우주는 눈을 좁게 뜨며 으르렁거렸다.
“정보를 주면 Coin을 주겠다는 말 아니었습니까?”
“장난하는 거 아니죠?”
“정보라면서, 그럼 뭘 원하시는 겁니까?”
“그런 인터넷 검색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보 말고. 사소한 거라도, 사적인 거라도 좋으니까 남들이 모르는 거.”
김우주는 닿을 수 없는 Coin을 노려보며 답했다.
“…… 클랜 사옥에 들어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오? 생각보다 과거가 화려하시네? 좋아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나 보다. 베로니카가 진하게 웃자, 그제야 Coin은 김우주의 손에 닿았다.
김우주는 주머니에 넣을 것도 없이, 바로 스텟 하나를 올리며 말했다.
“더 이상 한예리에 관한 정보는 없습니다. 대신 사소한 거라도 상관없다면, 박신혁에 대한 정보를 내어드리죠.”
“콜.”
* * *
S01-097게이트.
몬스터를 정리한 후, 이상 길드장 조한성은 길드 수뇌부에게 단단히 못을 박았다.
“다들 괜히 좀비 잡는다고 나대지 마. 알았어? 어차피 우리만 가는 거 아니잖아? 다른 길드원이 달라붙을 때까지 슬쩍 몸을 반쯤은 빼고 있어. 원거리 타격자만 멀리서 깔짝깔짝하고. 알았어?”
길드원 중 하나가 답했다.
“그럼 나머지는 어떤 걸 해야 합니까?”
“혁예 클랜원들을 관찰해.”
“어, 어떤 걸요? 전투 방식이요?”
“그래. 그걸 포함해 그들의 전부를 다. 특히 박신혁에 관해서면 더욱 좋고.”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얼굴에 의문을 띤 정예 길드원에게, 조한수는 낮게 읊조렸다.
“그게 이번 연합 작전에서 우리가 얻을 수익이다. 박신혁의 약점만 찾아 오면, SS급 마석까지 떨어질 수도 있어.”
“SS급 마석이요?”
“그래.”
“그런 게 실존합니까? SS급 게이트는 어디서도 클리어되지 않았잖습니까?”
“그거야 우리가 알 바 아니지. SS급 마석은 실존해. 내가 직접 확인했다.”
SS급 마석과 더불어, 처음 보는 희귀한 아티팩트까지도.
물론 제주도 토벌에 합류하는 이유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재근 부길드장.”
“……네.”
“이번 제주도 토벌에서 부길드장의 목표는 주진헌의 영입입니다. 예전에 친했으니까 할 수 있겠죠? 곧 얼굴도 맞댈 테니까, 예전 분위기 한번 내봐요. 추억 팔이도 좀 하고.”
그 말에 이민성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미 WAC의 4강 전에서 둘의 실력 차이는 입증되었지 않았나. 뒤처졌으면 빠져야지. 주진헌처럼.
그러니 주진헌을 영입해야 한다.
그리고 그 영입엔 당연히 주진헌과 절친이었던 이재근이 적임자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래서 재차 권했는데, 그런데 열받게도 이번에도다.
조한성은 수뇌부들 앞에서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왜요?”
“어차피 안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이재근 부길드장.”
이를 갈며 그를 불렀다.
“언제까지 그렇게 뻣뻣하게 굴 겁니까? 길드원 전부가 강해지기 위해서 이토록 노력하는데, 부길드장이나 되는 양반이 스카우트 하나 못 하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쾅! 거칠게 땅을 구르며 고함을 지른다.
“거참! 말 좀 해봐요! 이유라도 좀 알게! 맨날 벙어리처럼 입 닫고 있으면 해결됩니까!”
이상 길드장, 조한성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지난 일은 다 잊겠다! 다 용서해 줄 테니 돌아와라! 그 말이 그렇게 어렵냐고요!”
“…….”
이 얘기만 나오면 꼭 저리 입을 꾹 닫는, 부길드장이 너무도 답답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