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59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59화
나는 칼춤을 춘다.
양손에 쥔 칼을 휘두르는 데엔 어떠한 검형도 검식도 검초도 없다.
따다다다닥.
내게 이빨을 들이미는 좀비에게 등, 허리, 팔, 허벅지 등을 내준 채로-
그저 가장 많은 좀비를 베어낼 수 있는 이상적인 검로를 택해 계산적으로 검을 휘두를 뿐이다.
촤아아아악-!
검로에 닿은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좀비의 피육은 물론, 각성자 좀비가 차고 있던 아티팩트마저 양단되어 바닥에 고꾸라진다.
콰득.
그것을 또 다른 좀비가 거칠게 밟으며 내게 달려든다. 결코 빈자리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이성도 없는 것들이 쌓이고 쌓인 시체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게 신통할 따름이었다.
내 걸음에 목적은 없다.
이미 S급 각성자 좀비 하나를 놓쳤지만 그리로 향하지 않는다.
그럴 여유가 없다.
뒷걸음질 치면 전선이 밀린다. 전선이 밀리면 이토록 많은 좀비들 중 일부는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볼 터.
차라리 놓쳐 버린 것들은 혁예 클랜원과 지원팀을 믿고 맡기는 게 나으리라. 나는 다시 좀비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한 걸음 옮긴다.
계속해 같은 자리를 맴도는 이유였다.
콰아아아앙-!
성벽에 몰려 있는 좀비 떼 위로 부유석을 떨군다.
그 타격이 처음만큼 신통치는 않다.
큼직한 것들은 이미 차져에 뚫려 버린 성벽을 메꾸는 데에 썼고, 잦은 낙하에 쪼개진 작은 것들만이 낙하 중이었기에.
퍼버버버벅.
우박처럼 떨어진 괴석(塊石)이라지만, 그것에 죽은 건 일반 좀비뿐.
그저 성벽 근처에 반복적으로 낙석을 떨어뜨림으로써 클랜원과 지원팀의 부담을 덜었다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촤르르르륵.
나는 다시 검을 휘두른다.
[멀티 태스킹]으로 낙석을 제어하는 것에도, 하나의 검로에도 효율적인 계산을 마친다.조그만 원기를 쓰는 데에도, 조그만 마력을 쓰는 데에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힘을 아껴두는 이유는 단 하나.
“히히히히히히.”
몇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나무 기둥 뒤.
얼굴만 빼꼼 옆으로 내밀고서 나를 주시하는,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위치(Witch) 때문에.
그래서 나는 쉬이 무언가를 할 수 없다.
검을 휘두를 때에도, 걸음을 내딛는 때에도, 내 신경은 언제나 위치에게 닿아 있다.
마침 한 번에 마무리되지 않은 A급 각성자 좀비에게 이격(二擊)을 가한 순간이었다.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분명 웃음소리는 아직도 먼데, 검을 찌르는 그 짧은 사이, 위치는 이미 내 코앞까지 와 있다.
자세를 아직 수습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쾅!
의식만으로 꺼낸 [언옵테늄 보어텍스 실드]로, 겨우 위치의 도약을 저지한다.
대형 실드가 대신 전한 충돌의 충격량에 본능적인 신음을 뱉었다.
읍!
아마 [레비아탄의 피부]만 믿고 있었다면 사달이 났을지도. 아찔했다. 감염의 순간은 제주도 토벌의 실패를 뜻한다.
핏!
충격의 굳은 몸을 의식적으로 풀어낸 뒤, 대형 실드를 다시 [인벤토리]에 넣는 즉시.
풍!
나는 찌르던 검을 그대로 옆으로 휘둘러 공간을 베었다.
미약한 기대와 함께였다.
이제 위치와 나 사이에 걸릴 것은 없었다.
“죽어!”
암습에 특화되어 있는 몬스터 혹은 각성자가 무릇 그렇듯, 그들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낸 뒤엔 제법 상대할 만하니까.
‘상처만 내면 돼.’
여태껏 그랬듯 어떻게든 상처만 낸다면, 이후 상처 안으로 검을 쑤셔 넣고 마력적 공명(共鳴)을 확산시키면 그만.
그러나 그러한 내 생각과 바람과는 달리-
꽝!
방패를 드러낸 후에 위치가 있어야 할 자리엔-
“낸시……. 김아진……. 이준낙…….”
웬 S급 각성자 좀비 세 개체가 서 있다.
테일러와 더불어 이가을에게 위치의 심장을 팔았던 전향자들.
검에서 느껴진, 무언가를 가른 묵직한 감각이 위치의 피륙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베리어] 좀비 하나.
팔을 자르고 옆구리까지 파고든 검에서 몸을 빼내는 [재생] 각성자 좀비 하나.
제 몸으로 불을 피우며 내게 몸을 던지는 [화염] 각성자 좀비 하나.
“빌어먹을!”
크르르르르르륵, 머지않은 미래에서 위치에게 향했어야 할 전향자들의 연합 공격이 지금 내게 향한다.
찰나의 순간 힐끗 보니, 그사이에 위치는 다시 멀어져 있었고.
“히히히히히히히.”
비웃음과 함께 다시 나를 지켜보는 위치를 보며 난 다시금 깨닫는다.
아무래도 위치를 죽이는 건 좀비를 모두 토벌한 이후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고.
* * *
핏!
텔레포터와 함께 허공으로 이동한 김아람이 처음 본 것은 몬스터였다.
떼 지은 몬스터는 저들끼리 뭉쳐 거대한 반구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김아람은 그 한가운데로 떨어지며 소리를 질렀고-
“여기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아래에 몬스터가 한가득입니다!”
차분한 김우주의 대답에 의문을 느낄 즈음엔 어느 몬스터 위로 떨어졌다.
퍽!
낙하하던 속도 그대로 사나운 몬스터의 등 위를 거칠게 밟았다.
“……!”
거친 반항을 예상했다.
지금 밟은 몬스터는 A급 몬스터다. E급 헌터의 착지 지점으로서는 장담컨대 결코 적절치 못하다.
포효와 함께 등 뒤를 돌아본 몬스터에게 삼켜질 것을 예상하던 중.
“뭐 해요? 내려와요.”
김우주가 A급 몬스터 사이로 몸을 넣는다.
지금 밟고 있는 몬스터와 함께 반구 사이로 쏙.
“뭐, 뭡니까?”
이제 와 김우주가 함정으로 안내할 것 같진 않았다.
그때까지 몬스터는 잠잠했고, 일단 의심을 뒤로한 채 김우주를 따라 반구 안으로 들어갔다.
결코 짧지 않은 자유낙하의 끝에서, 풍덩, 바닥에 깔린 쿠션이 충격을 대폭 감소시켰다.
의도치 않게 쿠션에 몸을 누인 채 의아한 눈으로 위를 살핀다.
아래에서 본 반구의 천장.
그곳엔 몬스터들이 빼곡히 박제되어 있다.
그 어떠한 미동도 없이. 눈동자마저 고정된 걸 보니 아마도…….
“타임 슬립?”
“맞습니다.”
고개를 트니, 반구의 중심에서 [타임 슬립]을 유지하기 위해선지 꼼짝도 않는 강예빈이 보였고-
조금 더 멀리서 들려온 방금의 대답은, 이능에 집중하는 그녀가 아닌,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는 이 총괄팀장에서부터였다.
그가 말했다.
“갑자기 통신이 끊겨 걱정했습니다.”
“아……. 베리어 각성자 좀비를 순간 놓쳤고, 베리어에 무방비로 노출됐습니다.”
“역시나 그랬군요.”
대답 중에도 이 총괄팀장의 눈은 모니터를 주시하던 채였다.
몸을 일으킨 김아람은 자연스레 그의 눈을 좇는다.
“이 총괄팀장님?”
리조트의 동, 서, 남, 북에서 성벽을 넘어 중앙으로 달리고 있는 좀비들이 보였다.
모니터로 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방금까지 자신이 겪은 지옥이 사방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 이리로 오고 있는 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리조트가 무너진 중앙이 이곳입니다.”
“그, 그럼 빨리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와중에도 침착한 그의 어조가 참으로 놀랍다. 죽음에 초연한 것인지. 김아람은 그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더욱 큰 소리를 내었다.
“저들이 몰리면 모두 죽습니다! 일반 좀비가 전부가 아니며, 일반 좀비 또한 우습게 볼 숫자가 아닙니다!”
이 총괄팀장이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당장 피해야 합니다! 여깄…… 다간-”
“네. 그러니까 나가서 얘기하죠.”
차분한 그의 목소리에 욱한 것도 잠깐.
“대피는 거의 끝났습니다.”
이어서 이 총괄팀장이 반구의 한쪽 끝에서 웜홀을 유지하고 있는 임솔을 가리키자, 뒤늦은 상황 판단이 이뤄졌다.
“…….”
웜홀 너머로 대피를 마친 연합군들이 보였다.
지금 그들은 전투를 하고 있지 않다. 해안의 정리가 끝난 것이다.
아마 자신이 아직 대피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연합군 중 하나인 모양.
“그럼 김우주 헌터님. 먼저 대피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이들만 해안으로 모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이 총괄팀장이 마지막 대피를 명했고-
핏! 김우주는 아까 나타났던 모습 그대로 다시 사라진다. 아마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남은 이들도 이동시키는 것일 터.
“그럼 가시죠. 김아람 헌터님.”
김아람은 이 총괄팀장을 따른다. 얼떨떨한 심정으로 내뱉은 의문과 함께였다.
“어떻게 벌써?”
“김우주 클랜원이 아주 협조적인 것이 주요했고, 또 생각보다 동쪽에서 잘 버텨준 덕입니다.”
동쪽?
“동쪽이면 주진헌 헌터가 홀로서 맡은 구역 아닙니까?”
아무리 안전한 동쪽이라고 해도 혼자서 버텼다고?
“이상 부길드장까지 둘이죠. 나중엔 해안 정리를 마친 강혁 부길드장까지 합류했고요.”
“……그랬습니까……?”
예기치 못한 일들을 어렵게 받아들이며, 웜홀을 통해 해안으로 장소를 옮기자, 곧 임솔과 강예빈도 따라 나온다.
“이제 전부 나왔으니, 웜홀은 닫겠습니다.”
곧 서서히 닫히는 웜홀에서 하나 남은 의문을 내었다.
“C4도 가져왔는데, 웜홀을 닫을 거면 몬스터를 처리하고 나오는 게 낫지 않습니까?”
왜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지.
“몬스터도 어차피 처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이 총괄팀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혹 제주도에서 좀비 말고 다른 몬스터를 보신 적 있습니까?”
아…… 이 말 들어본 적 있었다. 박신혁 클랜장이 회의에서 했던 말과 동일했다.
-혹시 여태껏 제주도에서 좀비 말고 다른 몬스터를 보신 분 혹시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럼 제주도의 게이트가 S10급 게이트 하나였겠습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몇백 개는 있었을 텐데.”
“그럼 브레이크에서 나온 몬스터는 어딨겠습니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걸 이 총괄팀장이 짚었다.
“좀비 배 속에 있겠죠.”
이후 이 총괄팀장은 간단히 상황을 정리했다.
“현재 몬스터는 좀비 토벌에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인간인 우리와 다르게-”
그건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몬스터는 좀비와 싸우다 죽어도 감염되지 않을 거니까.”
* * *
핏!
허공에서 나타난 김우주가 외쳤다.
“박신혁 클랜장님! 대피 끝났습니다!”
난 자연스레 그의 발밑에 [차폐막]을 두어 좀비 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이후 나 역시 주시하던 위치를 그대로 둔 채 허공으로 올랐다.
크르르르르륵.
일대의 좀비들이 전부 내 발목을 붙잡으려 메뚜기처럼 뛰어올랐으나-
[등급] : 고유, S [분류] : 장창. [속성] : 내구 대폭 증가. 관통력 대폭 증가. 마력 전도율 대폭 증가.사거리가 긴 장창에 얼굴이 꿰뚫린 이후에는 다시 뛰어오르지 못했다.
“바로 이동.”
김우주가 머무는 상공까지 도달한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바로 그가 내 손을 맞잡은 순간.
“그럼 해안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핏!
빛의 번쩍임과 동시에 시야가 바뀐다. 리조트의 동쪽 상공이 아니라 해안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고생 많았다.”
제주도를 떠나기 위해 함선에 오르는 연합들의 승선이 대피가 안전하게 끝났음을 말했고.
내게 달려오는 이 총괄팀장의 옷이 피가 아닌 땀으로만 젖어 있는 게, 출구 전략이 선전했음을 뜻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클랜장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나는 슬쩍 팔을 올려 무사함을 표했다.
마력적 통도는 너덜너덜하지만, 외상은 없었다. 조금만 그곳에 더 있었다면 필히 생겼겠지만.
“일단 함선으로 오르시죠. 바로 상황 보고 올리겠습니다.”
다시 팔을 내릴 때는 과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상황 보고는 10분 뒤로 미루죠. 그전에 이가을 클랜원과 할 말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방으로 오라는 말을 그녀에게 전해줄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전투의 피로를 뒤로한 채 나는 함선으로 향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내 기억이 아닌, 불시에 S05급 게이트 브레이크를 만들어낸 이상 길드장의 마지막 기억을.
“페리튼의 심장, 아리수의 씨앗, 핏빛 날개…… S급 마석 100개.”
S05 게이트 브레이크를 일으킨 [원죄 퀘스트]의 요구 [아이템]들을.
“이건 돈으로 구할 수 있어.”
이것들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다.
일례로 페리튼의 심장은 한국에서만 나오는 아이템이 아니었으며, 사용처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소량이나마 마켓에 판매 중이다.
S급 마석은 원래 Coin과 함께 기축통화로 치는 것이었고.
‘바로 구할 수 없는 건…….’
똑똑.
“들어간다.”
난 함선의 방으로 들어오는 이가을을 보자마자 물었다.
“혹시 원죄 퀘스트의 보상에 ‘차져의 영혼석’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