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69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69화
42번째 엘리 세리아드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밀입국 루트를 강탈하기 위하여.
곧 한국에서 활동할 세리아드는 수백이 될 것이고, 복제에 관한 비밀은 세리아드만 아는 게 좋았다.
다시 말해 박신혁이 세리아드가 되기 전까진 안정적인 밀입국 루트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건 눈앞에 리철만이라는 돼지 새끼와는 머지않아 척을 질 것이라는 의미로 연결된다.
“아~ 그러시구나. 하하하.”
Coin이야 감사히 잘 쓰겠다만, 어차피 자신이 한국에 도착하면, 이곳엔 전투조가 도착할 터.
저치와 관련된 사람들은 싹 다 죽으리라.
곧 죽을 사람에겐 솔직한 감상평을 내어도 좋았다.
엘리는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음. 솔직히 말하면, 택도 없을 것 같은데요?”
타인에게 Coin을 권하면서까지 밀입국을 하려는 이가 세계 랭킹 1위를 넘본다라…… 글쎄.
“박신혁 클랜장이 압승하겠죠.”
진정한 실력자라면 본인이 썼겠지. 자기가 Coin을 써봤자 밀입국할 각이 안 보이니까, 나를 키워 빌붙으려는 거겠지.
장군이라더니, 과연 탈북의 스케일이 남다르지 않나.
“박신혁이 세계 랭킹 1위를 딱지치기로 딴 게 아닐 테니까요.”
“오. 딱지치기라. 좋은 표현 하나 배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지요?”
“밀입국을 하려면 혁예 클랜을 조심해야죠. 사전 조사야 필수 아니겠어요?”
실제로 잘 알고 있다. 아주 비싼 값을 주고 그의 정보를 사들였으니까.
위치(Witch)와 1대1 승부에서 이겼다는 최신 정보까지 마련해 두었다.
새로운 판매자 이름이 유민성이랬나?
“오. 그게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Coin도 공유한 동무끼리 말이죠.”
“……이봐요. 리철만 씨.”
엘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내는 리철만을 불렀다.
“네?”
리철만의 비대한 몸뚱어리를 주목한다. 탐욕이 많아 보이는 외관 그대로, 너무 많은 걸 바란다. Coin을 준 이유가 이것이라면 참으로 가당치 않았다.
“당신 일이나 신경 쓰세요.”
“허허허.”
“보아하니, 밀입국 때 박신혁과 마주칠까 두려워하는 거 같은데…… 밀입국을 하려는 거면 마주쳐서 싸울 생각하지 말고, 미리 피할 생각을 하세요.”
“…….”
“쓸데없는 데 관심 두지 말고, 본인 일이나 잘하란 얘기입니다.”
너무 밀어붙여서 당황했을까, 리철만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런데 뭔가 요상하다.
침을 뚝뚝 흘리는 리철만의 기색이, 흡사 간식을 두고 기다리는 개새끼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였다.
“……근데 말입니다.”
곧 말을 늘이는 리철만.
“고작 밀입국하려는 사람이, 박신혁을 직접 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지껄입니까?”
갑작스레 그가 웃자, 공기가 차갑게 식는다.
쭉 찢어지는 입에서 드러난 송곳니가 몬스터의 것처럼 날카로웠다.
“저도 한국말 표현 하나 알려 드릴까요? 알아서 무덤을 팠다. 혹 이 말을 아시려나?”
머리끝이 쭈뼛 선다.
그가 [가속] 각성자처럼 눈앞에서 사라지자, 경각심은 배로 늘어났고.
“와!”
그는 저딴 귓속말을 뱉으며, 등 뒤에서 나타난다.
자신의 팔을 뒤에서 붙잡으며.
아니, 잡힌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라-
찌이이이이이익.
잡아 뜯겼다.
[내구]에 많은 투자를 한 S급 헌터의 팔이 아주 쉬이도.“아아아아아아악.”
“잘~ 먹겠습니다~”
마치 [괴력] 각성자처럼 자신의 팔을 뜯어버린 리철만은.
우걱우걱.
자신이 보는 앞에서 뜯어진 팔을 씹어 먹는다…….
* * *
SR 빌딩.
첫 번째 엘리 세리아드는 세 번째, [시간 가속] 각성자가 보내온 문자가 반갑다.
[곧 갈 거야.]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금발의 미녀.
자신과 유전적으로 완벽히 일치하는 109번째 세리아드의 등장은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이뤄졌다.
“신이 정말 있나 봐?”
태어난 지 5분도 채 안 된 세리아드가 시계를 슬쩍 본다.
완벽하게 동일한 외모를 가진 첫 번째도 시계를 보았다.
“그러게. 세 번째부터 들인 게 이렇게 될 줄이야.”
109번째는 세 번째가 육체의 시간을 빚어낸 지, 고작 5시간 만에 태어났다.
세 번째가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시간은, 투자한 Coin으로 [보유 마력]이 증가함에 따라,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운이 좋았지.”
첫 번째는 히죽 웃으며 동의했다.
“그러게. 신이 정말 우릴 돕나 봐.”
우리는 동일한 생각을 하며, 동일한 과거를 떠올리며-
-그래. 그 박신혁이란 사내는 쓸 만하디?
-네. 쓸 만하다는 말로 부족할 만큼.
동일한 말을 나눠 한다.
“두 번째를 포기하고 박신혁을 택한 게 주요했어.”
“멀리 보고 택한, 그 우연한 길이 오히려 가장 빠른 길이었을 줄이야.”
“덕분에 보상으로 찢어진 몽마의 저주를 택했으니까.”
“아르만 공작이 일 년 만에 죽어버린 게 아쉽긴 한데, 그럴 줄 알았으면-”
“덕분에 원죄가 전이된다는 걸 금방 알게 됐잖아?”
“자, 이번 기억이야.”
첫 번째는 109번째가 건넨 [기억의 금고]를 확인한다.
“…….”
찰나의 회상이 있었다.
109번째가 [원죄] 퀘스트의 보상으로 택한, [129번째 기억]을 받아들인 후엔, 곧바로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다.
[클리어 조건] : S급 마석 200개, 위치(Witch)의 심장. [실패 시] : 사망. 게이트 침식 가속. [보상을 선택하세요. (총 5회, 일부 보상 중복 가능)]1. 찢어진 몽마의 저주.
……
20. 130번째 기억.
…….
되었다.
기존의 ‘기억’에 관한 보상은 이제 다음 보상으로 바뀌었다.
[129번째 기억]에서 [130번째 기억]으로.“이번 건 꽤 쓸 만하지?”
“그러네.”
요새 가장 기대되는 보상은 다름 아닌 [기억]이었다.
[원죄]로 잊혀졌던 자신의 기억은 [54번째 기억]에서 되찾았고, 그 이후엔 게이트에 관련된 어느 지성체들의 기억이 보상에서 보였다. [변신]의 이능을 가진 어느 지성체가 도플갱어가 됐다든가.“이번 기억이 완성되면, S10급 게이트도 만들 수 있겠는데.”
그게 유용하다.
이를테면 게이트를 추가적으로 생성하는 방법 같은 게 그 안에 담겨 있었으니까.
“위치(Witch)를 불러내면 꽤 도움이 될 것 같아.”
“제주도에서 이미 고생하는 걸 봤잖아. 진작에 알았더라면, 제주도에서 끝났을 수도.”
“아직 늦지 않았어. 진행하는 계획이 실패하면, 그 다음 수단으로 남기면 돼.”
“서울에 위치(Witch)가 몇 개체 씩이나 뜨면 박신혁도 무너지지 않을까.”
동일한 생각을 가진 109번째가 손에 들고 있던 걸 앞으로 내밀었다.
“그래서야.”
[유리벽], [아닐린의 의지]……그리고 S급 마석 100개.전부 S10급 게이트를 생성할 때 필요한 [아이템]들이었다.
첫 번째는 그게 아쉬웠다.
“이번엔 뽑기 운이 별로였나 보네.”
“항상 좋을 수는 없지.”
“이능이 뭔데?”
109번째가 스텟과 스킬을 올리지 않고 다른 보상을 택했다는 것은 전투 관련 이능이 아니란 표시였으므로.
“인벤토리.”
예를 들어, 이능이 [인벤토리]이면 앞으로 보급조에 속하게 될 거고, 보급조가 굳이 스텟을 올릴 필요는 없었다, 공리적으로.
“그래서 그냥 아이템을 택했어.”
109번째 역시 스스로 그런 판단을 한 거다. 모두를 위해서. 어차피 우린 다 같은 세리아드니까.
아쉬운 것도 각성자 군단을 꾸려 나가는, 첫 번째의 입장에서일 뿐.
“그럼 난 임솔이 세리아드가 될 때까진 좀 쉴게.”
곧 혁예 자치구를 차지하면 웜홀의 물자 관리로 바쁠 테지만, 그전까진 널널할 거다.
첫 번째는 방을 나서는 109번째를 붙잡지 않았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닫힌다.
끼이이익.
한 번 더.
“?”
110번째가 방문하기엔 아직 시간이 너무 이르다. 첫 번째는 곧바로 문을 주시한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금발의 미녀가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
예상치 못한 방문에 물었다.
동시에 새로 들어온 세리아드는 어깨에 그려진 표식을 보여준다.
숫자 77.
77번째 세리아드.
통제조의 사실상의 수장.
귀하디귀하다는 [텔레파시] 각성자.
“무슨 일이야?”
77번째가 답한다.
“48번째와의 사념 연결이 끊겼어.”
“끊겼어? 죽은 거야?”
“그런 것 같, 아니, 죽었어. 재생 각성자라고 해도 살아남긴 힘들 거야.”
첫 번째는 고개를 갸웃한다. 죽었다고?
“48번째면 밀입국 순서 기다리던 재생 각성자 아니었어? 왜? 몰래 월북한 박신혁이라도 만난 거야?”
77번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잡아먹혀서.”
“아……? 몬스터 습격이라도 있었나 봐?”
재수도 없지. 첫 번째는 탄식을 뱉었다. 북한은 한국이나 영국과는 다르게, 치안이 엉망이니까.
S급 각성자여도 위험할 때가 있다.
괜히 한국을 향한 밀입국이 성행하는 게 아니다. 다른 곳에선 언제든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
“아니, 사람한테. 문자 그대로의 식인.”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식인?”
“48번째의 마지막 사념은 그 장군이라던 리철만이란 사람한테 이미 사지가 다 먹혔다는 거였어.”
* * *
전라남도 월출산.
S05-098 게이트 앞.
[차져의 영혼석]을 보상으로 택하기 위해 이곳에 온 나는, 지금 엠버를 기다리는 중이다.대략 1시간 정도는 일찍 나왔기에 시간은 널널하다.
일찍 온 이유는 망중한을 위함이었다.
“스으으으읍.”
나는 산속 깊은 곳에서 피톤치드 내음을 깊게 들이마신다.
자연이 가져다주는 기분 좋은 소음을 만끽하며 이곳으로 가져온 고민을 이어가 본다.
“작은 건 일단락되었는데…….”
이제 자잘한 일은 모두 끝냈다.
김우주를 혁예 클랜으로 끌어왔고, 게이트 안정화와 몬스터 남하와 관련해 정부와 10대 길드에게 필요한 사항들은 모두 전달했다.
“이제 슬슬 결정해야 할 텐데…….”
그러면 큼지막한 것이 남는다.
“칠악. 어떤 식으로 올까.”
먼저 리철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신혁 씨의 미래에서 리철만은 어땠어요?
-일단 제 미래에서 그가 흡수한 이능은 화염, 물, 식물조작, 염력…… 등 자연 계열의 이능 위주로 흡수했습니다.
-이상하네요? 제 미래에선 가속, 괴력, 재생, 철갑…… 등 밀리 계열 위주였는데요.
그는 어떤 이능을 [포식]했을까.
나의 미래? 강예빈의 미래? 아니면 그 중간?
언제 올까.
몬스터가 남하할 때? 아니면 그 직후? 아니면 밀입국을 하여?
“…….”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으니,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린다.
“다만 확실한 건…….”
칠악과 관련해서 확실한 건 하나뿐이다.
엘리 세리아드.
제주도에서 그러했듯, 복제 인간을 공장처럼 찍어낼 원죄자.
그 복사체 하나하나는 엠버와 비슷할 만치 재능이 찬란하리라. 폭발적으로 치고 올라와, 결국 세계 20위의 랭킹을 차지한 엠버와 유전자가 동일하므로.
‘내가 엘리라면…….’
같은 유전자이니 모든 복제 인간은 엠버와 동일한 외모를 할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안도할 만한 점을 굳이 찾는다면, 그녀가 내게 접근할 가장 쉬운 방법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엠버로 위장해서 접근하겠지.’
바스락.
그때 저 멀리서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마력]을 활성한, 예민한 귀로 가까워져 오는 발걸음 소리에 집중한다.“? 벌써부터 여기 계실 줄 몰랐습니다.”
엠버였다.
아니, 일단 엠버로 보였다.
“…….”
나는 대답하지 않고서 그녀를 살핀다.
엠버가 입을 법한 복장. 착용한 아티팩트. 어눌한 한국어 억양. 깊고 잔잔한 숨소리. 코를 긁적이는 습관 등등.
관측 가능한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그녀가 엘리가 아닌 엠버라는 판단을 내린다.
“일찍 오셨군요.”
대답은 그러고 나서였다.
목소리는 낮았다.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판단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2초. 각성자에겐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2초면 나와 엠버가 몇 번의 공수를 나눌 수 있다. 사달이 나려면 벌써 났겠지.
“네. 박신혁 클랜장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뭐 좋습니다. 일찍 들어갔다가, 일찍 나오는 걸로 하죠.”
나는 고민을 넣고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말했잖습니까. 앞으로 다가올 일에 앞서서, 저는 절실히 당신이 강해지길 바란다고.
이것은 엠버를 위한 말이다.
다시 말해, 엠버가 이 게이트에 들어가야 하는 목적이다.
‘더 빨리.’
반면 내 목적은 다르다.
주진헌이 아닌, 엠버를 데려가는 이유는 내게 따로 있었다.
‘0.5초 내에.’
늦어도 0.5초.
엠버와 엘리를 구분하는 시간을 그 안으로 단축시키는 것.
그러려면 그녀에 대한 관측이 필요하고, 그러니까 동행인은 엠버여야 한다.
“둘이서 게이트 공략을 하니, 일정을 편하게 변경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리 말하는 엠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아도, 둘만 있는 지금에선 하등 이상할 게 없으니까.
“둘이니 조심해야 할 것도 있죠.”
이어진 말은 그런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언제든 제 곁에 붙어 있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