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76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76화
혁예 자치구 외곽.
강예빈은 지금 게이트가 아닌 현실이었다.
-지금 즉시 강예빈 클랜원과 엠버 클랜원은 예정된 게이트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박신혁과의 말과는 전혀 반대로.
옆에선 김우주가 덜덜 다리를 떨고 있었다.
“지금 이거…… 일종의 항명인데 괜찮을까요? 제주도에서 겪어봐서 아는데, 박신혁 클랜장님 정색하면 지릴 만큼 무서우시던데…….”
김우주는 평소에도 문뜩 생각난다.
-내게 협조해 제주도 안내를 하든가, 아니면 여기서 죽든가.
3년 만에 그를 다시 봤을 땐 이제 죽겠구나 싶었고, 그가 전(前) 이상 길드장을 철퇴로 내려칠 땐 실수 한번이면 저렇게 죽는구나 싶었다.
요새 부쩍 관계가 개선됐다지만, 걱정이 안 될 순 없지 않나. 화나면 지옥의 야차와도 같은 박신혁을 상대로, 지금 일종의 선을 넘은 건 아닌지……?
“클랜원한텐 그래도 다르겠죠?”
강예빈은 애써 가벼운 어조로 김우주를 달래본다.
“응. 그리고 이것도 항명이라 하면, 난 벌써 세 번째야.”
자랑 삼아 말할 건 아니지만, 실제로 세 번이 맞긴 하다.
첫 번째는 첫 번째 방송을 찍은 직후, 집에 있으란 말을 씹었을 때.
두 번째는 한예리를 살려달라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때.
그리고 이번에.
과장스레 목까지 치켜 들었다.
“그리고 내 목을 봐. 어때?”
“지금 피부 자랑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요…….”
“뭔 소리야. 목이 아주 잘 붙어 있다는 건데.”
“……설마 농담이세요?”
“……긴장 풀라고 하는 말이지.”
강예빈은 김우주의 등을 팡팡 쳤다.
“나도 사고 좀 쳐봤는데, 이번엔 달라.”
진심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결코 아니었다.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자신은 예전의 풋내기가 아닌, 그와 모든 상황을 공유하는 예언자다.
“우리는 지금 그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거야.”
그의 의도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고, 박신혁이 차마 엠버에게 내리지 못하는 그 명령을 대신 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우리 작전 나쁘지 않잖아?”
옆에서 잠자코 있는 엠버를 본다.
박신혁이 김우주에게 선물한 망원경, [케이지의 눈]으로 엘리의 수행원을 살피는 모습은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혹시 어머니, 엘리 세리아드를 흉내 낼 수 있겠습니까?
잠입은 결코 쉬이 들키지 않으리라.
방금 봤지 않나. 예상한 대로 엘리 세리아드는 정말 엠버 세리아드랑 똑같이 생겼었으니까.
“잘될 거야. 걱정 마.”
언뜻 항명으로 보일 수는 있겠다만, 결국 좋은 결과를 안고 박신혁에게 돌아갈 자신이 있었다.
“이상합니다.”
그때 엘리의 수행원들을 살피던 엠버가 말했다.
“…….”
자연스레 엠버가 넘기는 [케이지의 눈]을 받아, 그녀가 여태껏 주시하던 가게를 살펴본다.
상업지구 외곽에 위치한, 아티팩트 숍.
가게는 무탈해 보였다. 몇몇 사람이 들락날락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별다른 이상도 없을 듯싶었다.
“왜요? 딱히 거슬리는 건 없는데요?”
“도로를 보십시오.”
“네.”
“지금 막 출발하는 검은색 밴 두 대는 어머니의 수행원을 태웠던 차량입니다.”
과연 도로를 훑으니 검은색 밴이 빠르게 아티팩트 숍을 벗어나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건 특이점이라 하긴 힘들었다.
“그저 다른 장소로 빨리 이동하려는 게 아닐까요?”
“밴에서 나온 건 8명이고, 이후 4명만 탑승했는데 출발하는 겁니다.”
“아…….”
뒤늦은 이해가 있었다.
4명은 여전히 저 장소에 있다는 말이었다.
“타국에 와서 일행을 두고 출발한다?”
만약에 그들이 관광객이라면 이해할 만한 부분이나, 한국으로 들어온 칠악의 일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확인할 필요가 있겠네요.”
움직여야 할 때였다.
“김우주.”
강예빈은 김우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먼저 가서 붙잡고 있을게요.”
엠버에게 한 마리를 남긴 그 순간, 번쩍, 목전에서 빛이 명멸한다.
[텔레포트]였다. 멀리서 보았던 아티팩트 숍의 문이 이제는 가까이서 보였다.‘바로.’
그 직후, 주변 모든 것에 마력을 부여한다.
최태수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마력은 그때보다 여유롭게, 더 멀리, 더 빨리, 더 촘촘하게 뻗어 나간다.
거리에 사람이 얼마나 있든, 그 모두에게 쉽게 파고든다.
누구에게나 쉬이 [타임 슬립]이 작용한다.
거리를 걷는 아이의 풍선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어머니가 들어 올린 발은 다시 땅을 딛지 않는다.
각성자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아아아악!
아마도 박신혁이 붙였을 혁예 지원팀원이 폰을 꺼내던 자세 그대로 멈춘다.
그 옆에 수호 길드의 정예들도 매한가지. 이전에 호위를 맡았던 이는 아티팩트를 빼 드는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마력은 아티팩트 숍까지 관통할 때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너무 쉬운데?”
강예빈 역시 그게 이상했다. 막힘이 없다는 것. 그 방향에서의 각성자의 [마력 저항]이 예상보다 미약하니-
핏-!
“들어가서 살펴봐도 됩니까?”
곧 뒤따라 김우주와 함께 도착한 엠버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엠버 씨. 마력 몇이에요?”
“91입니다.”
과연 박신혁의 영입 대상이 될 만치 높다.
“엘리 세리아드 헌터도 그쯤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어머니도 S급 헌터입니다.”
같은 유전자라 엘리 역시 선천적으론 같은 재능을 보유했을 것이다. 엠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할 만큼의 [마력]을 보유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력 저항]이 시원찮다니. 비하자면 콩 심은 데 팥 난 격인데…….
“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건물 안의 시간은 멈췄습니다.”
직접 봐야 알 듯하다.
서두르는 엠버를 막지 않았다.
강예빈도 [타임 슬립]을 유지하며 걸음을 옮겼다.
과연 저 안에 엘리의 복제 인간이 있을지.
엠버가 진실을 조우할 순간이 지금인지.
초조한 심정으로 그녀를 뒤따라 가는 중.
“안 보입니다.”
아티팩트 숍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엠버가 3층 창문에서 크게 외쳤다.
되물음은 당연했다.
“8명이 들어가서 4명이 안 나왔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확실합니다. 수행인들은 전부 세리아드 가문 소속으로, 함께 지냈던 터라 제가 놓칠 리가 없습니다만…….”
옆에선 김우주가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다.
“안에서 사라진 게 아닐까요?”
타당했다. 강예빈은 [텔레포트] 각성자에게 시선을 두었다.
“텔레포트?”
“네. 저만 해도 4명 옮기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까, 상대도 텔레포터가 있다면 그사이에 충분히 이동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우주의 의견은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다.
이미 제주도에서 본인이 증명했기도 하고.
“말이 되긴 한데…….”
다만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텔레포트로 사라질 거라면, 왜 여기까지 와서 사라졌지?”
왜 굳이 여기서?
“사라질 거면, 애초에 비행기에서나, 저들끼리 있는 밴 안에서 사라지는 게 편했을 텐데.”
“그, 그건 또 그러네요?”
강예빈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들어가 보자. 어차피 이유는 안에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어.”
멈춰 버린 시간 속, 강예빈은 칠악의 수행인이 들어간 아티팩트 숍 안으로 진입했다.
* * *
혁예 자치구, 상업지구.
레스토랑, VIP룸.
엘리 세리아드는 맞은편에 앉은 박신혁의 의중을 떠본다.
“급한 일이 있으신가 봐요?”
“없습니다.”
“혁예 클랜 사옥 구경 좀 하고 싶었는데…….”
시간을 아낀 건 좋다만, 그래도 아쉽다. 베일에 싸인 부유 도시 내부 좀 살피고 싶었건만.
나중에 어떻게 침입하면 좋을까, 미리 알고 싶었다.
“이리로 바로 온 걸 보니, 뭐라도 숨기시나 봐요?”
“아닙니다.”
엘리는 의심한다.
그의 손짓 하나 눈짓 하나 유심히 살핀다. 또 뭔 짓을 할까.
1분 전의 감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디서 출발해, 어떻게 오신 겁니까?
그리 말하며, 악수를 하는 손에 찰나의 시간 존재했던 이물감을 기억한다.
손을 뗀 동시 그의 손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는 [인벤토리] 각성자였다. 인벤토리에 넣었겠지. 뭘 숨겼을까? [기억의 금고]가 아닐까.
“아쉬워라. 웜홀을 넘으니 바로 레스토랑이네요.”
왜 공항에서 바로 이곳으로 왔을까?
“마치 여기에 감금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지만.
“가당치도 않습니다. 감금이라니.”
“가당치도 않다라…….”
그런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 텐데.
“혁예 클랜장 박신혁 헌터.”
“네.”
“고마워요.”
엘리는 이름을 나열한다.
“혁예 클랜원 주진헌, 임솔, 한예리, 이가을. 수호 길드원 강혁, 이철민, 강태호…… 바람살 길드원 임솔, 권종길, 김준우…… 여기까진 얼굴을 알겠더군요.”
공항으로 마중 나온 300명가량의 헌터 중 절반의 얼굴을 안다. 전부 최정예. 나머지도 비슷한 수준이라 치면, 혁예 클랜이 자랑하는 연합의 1군은 모두 끌고 나온 격이리라.
“제 호위를 위해서 그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했겠죠?”
“네. 맞습니다.”
“절 지키기 위해서?”
“네.”
“무엇으로부터?”
“혹시 모를 미연을 방지해-”
엘리는 대놓고 비웃었다.
“가당치도 않네요.”
“…….”
“불과 두 달 전에 몬스터 안정화 100%를 달성했다고 자랑하지 않았나요?”
힐끗.
이어서 그의 옆자리를 가리킨다.
“엠버는 어딨어요?”
“일이 좀 늦는다고 합니다.”
“상견례 날까지 일을 시키는 혼약자라, 우리 딸 불쌍하기도 하지.”
“…….”
박신혁이 식기를 내려놓으며 차가운 안광을 내었다.
“시비 걸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혼인에 대해 말하러 오셨습니까?”
엘리는 히죽 웃었다. 그게 꼭 궁지에 몰린 쥐새끼처럼 보였다.
“이해해 주세요. 와보니까, 이상한 게 많아서요.”
“…….”
그는 입을 닫는다.
“예언자가 미래에서 어떠하다고 하던가요? 우리가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고 하던가요?”
그다음 질문에도.
“혁예 클랜장. 우리 예비 사위. 장모님 왔는데 그러고 있을 거예요?”
대놓고 성질을 긁어도.
“우리 오늘 만남이 좀 별로다. 그렇죠? 나는 우리 사위 보러 왔는데, 사위는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같아.”
“…….”
그는 침묵한다.
“좋아요. 이제 우리 솔직해져 봐요.”
어느 정도의 예열은 된 듯싶다.
엘리는 말하며 시간을 살폈다.
오후 5시 17분.
수행원들이 [도플갱어의 가면]을 사용한 지 17분이 지났고, 동시에 1차 작전 종료까지 13분이 남은 시각.
시간은 아직 넉넉하다.
그에게 를 먹이는 데까지 13분이면, 족히 데드라인 안쪽이다.
본론을 꺼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우리 사위가 될 박신혁 클랜장이 좀 흥미가 당길 만한 얘기를 해볼까요?”
그의 흥미를 끌고자, 오래된 진실을 전한다.
“상견례 자리인데, 아무래도 우리 딸아이 얘기가 좋겠죠?”
엠버를 제외한 세리아드만 아는 얘기.
“엠버는 쌍둥이예요.”
최초의 복제 인간에 관하여.
“쌍둥이는 다른 곳에서 자랐죠. 한 명은 어느 유리관 안에서, 한 명은 집 안에서.”
“유리관 말씀이십니까?”
“네.”
“굳이 왜……?”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일종의 대조군이랄까? 식물이 온실 안에서 더 잘 자라나 아니면 야생에서 더 잘 자라나. 그런 거?”
어렸을 때 흙 먹고 자란 애들이 면역력이 더 좋다는 말을 들어보셨을까?
“저는 둘 다 열심히 키웠어요.”
엘리는 상견례 자리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하고 말한다.
“터럭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피부 하나, 콩팥 하나, 각막 하나, 심장 하나 모든 게 온전히 유지되길 바랐죠.”
그렇게 애지중지 힘겹게 엠버를 키웠다고.
“그러다 게이트가 터졌죠.”
그러다 게이트에서 현실로, 별 희한한 물건들이 터져 나왔다.
“우리 사위가 방금 내게 쓰려고 했던, 기억의 금고란 것도 알게 되었어요.”
호기심에 [기억의 금고]의 기억을, 유리관 속 아이에게 심어줘 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유리관 속 엠버의 쌍둥이는 모종의 사고로 죽었죠.”
장기 대용품, 아니, 복제 인간은 그렇게 진정한 세리아드가 되어 다시 태어났다.
수면제를 먹고 자란 엠버의 쌍둥이 언니는, 모체한테 싱싱한 육체를 내주며, 첫 번째 세리아드가 되었다.
“…….”
엘리는 여기서 뜸을 들였다.
“다음 얘기가 궁금해요?”
박신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도권이 넘어오는 방증이리라. 이쯤 되면 슬슬 목적을 밝혀도 될 듯하다.
“그럼 조건이 있어요.”
600번째 엘리가 옆에 두었던 백에서 [찢어진 몽마의 저주]를 꺼낸 건, 그 말과 동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