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88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88화
“좀만 생각해 보자.”
당장에 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강예빈은 관자놀이를 질끈 눌렀다.
“엘리 세리아드 중에 아마 인벤토리 각성자가 있을 거야. 한둘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럴 거 같아요. 클랜장님의 캠핑카처럼 게이트 안으로 아무거나 넣다 뺄 수 할 수 있으니, 게이트 안에서 머무를 수 있겠죠? 아무리 각성자라고 해도 생필품 조달은 필요할 테니까요.”
김우주의 말이 타당하다. 그래서 문제다.
“그래. 그 말은 언제고 게이트를 옮길 수 있다는 얘기도 돼.”
“매 게이트마다 캠핑카를 옮겨 다니는 박신혁 클랜장님처럼요.”
“언제까지 이 게이트 안에 있을 거라 장담할 순 없다는 거지.”
그렇다고 이 바깥에서 계속 동향을 주시하자니 몬스터가 지천이다. 정찰을 계속하기엔 분명한 애로 사항이 될 것이다.
“아무래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차라리 안으로 들어가 더 정밀한 조사를 하는 게 낫겠지만, 그것 역시…….
“그게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야.”
고려할 것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 역시 일장일단이 있다.
“일단 게이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지 않는 건 좋아.”
게이트에서 마력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이미 해당 게이트가 클리어됐음을 뜻했다.
“각성자 3인이 게이트에 들어섭니다. 뭐 그런 시스템 메시지가 내부인에게 전달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원하면 언제든지 게이트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거죠?”
고개를 끄덕였다.
클리어된 게이트에서 나오는 건 ‘게이트에서 퇴장하시겠습니까?’라는 시스템 메시지에서 비롯되는 본인의 선택이다.
“그래. 그래야 엘리 세리아드 역시 원하는 타이밍에 게이트 밖으로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몰래 들어갔다가, 몰래 나오는 게 가능하긴 해.”
여기까진 잠입을 하려는 우리에게도 이로운 점이나, 다만 결정적인 단점도 있다.
“그러나, 게이트 안에서 전자기기가 통하지 않는 건 분명 치명적이야.”
게이트 안이라면 초소형 이어셋, 렌즈 카메라 등의 준비해 둔 최첨단 전자기기가 모두 쓸모없게 된다.
먹통이 되기도 전에, [인벤토리] 각성자가 없으면 전자기기는 아예 출입조차 되질 않는다.
“엠버 씨가 우리와의 의사소통이 필요하게 되더라도, 그 신호를 전달할 방법이 없어.”
강예빈은 결국 선택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엠버 씨?”
복잡한 얼굴의 엠버를 본다.
“물론 게이트 안이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엠버 씨가 위험할 경우에 대비해서 안에서 상시 대기할 거지만…… 리스크는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높을 거예요.”
이건 본인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판단했다.
“판단은 당사자인 엠버 씨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아요. 잘 생각해 보세요. 얼마만큼 엘리를 흉내 낼 수 있을지, 엘리의 틈 속에서 과연 본인이 다르다는 것을 걸리지 않을 수 있을지.”
이런 건 아무래도 당사자가 가장 잘 알 테니까.
“모든 리스크를 감안해 신중히 고민하신 후, 말씀하세요.”
“…… 알겠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뒤, 엠버는 힘겹게 다시 입을 떼었다.
“몬스터 남하가 며칠 내로 끝납니까?”
“아니에요. 짧게 잡아도 열흘은 걸릴 거예요.”
그 사실이 그녀에게 어떠한 판단 기준이 됐나 보다.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사이 엘리가 무슨 일을 꾸밀지 알 수 없는 게 불안합니다. 혹시나 너무 늦게 알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싶은 우려랄까.”
게이트 앞으로 비장하게 걸어가, 그녀가 말했다.
“들어가겠습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그게 뭔지 알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 * *
1차 웨이브의 두 배 규모라는 말은 틀렸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실감한다.
[보유 마력 : 0/89.2]분명히 [보유 마력]이 동날 때까지 터뜨렸다.
그 폭발의 현장을 확인해 보면 대다수의 몬스터가 흔적도 없이 타올랐으나, 쿠워어어어어, 그 뒤로는 아직도 몬스터가 몰려드는 중이었다.
다시 마석을 깨야 했다.
[보유 마력 : 89.2/89.2]다시 전방에 거대한 폭발을 야기한다.
[스킬 ‘분진폭발’이 활성화됩니다.]그렇게 마석을 깨고, 모든 [보유 마력]을 소진하며 [분진폭발]을 일으키고, 그러길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울컥.
깊은 내상에 나는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혼자서 최악의 몬스터 웨이브를 감당하려면 나 역시 적지 않은 대가를 내놓아야 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치켜뜬다.
눈을 부릅뜨고서 그 결과를 살펴보았다.
먼저 탄화된 채로 죽어 있는 위치(Witch).
계속해 지켜보았는데도 작은 미동 하나 없다. 저번엔 기어코 살아서 땅을 기더니, 이번엔 후속타를 날릴 필요 없이 바로 타 죽어주었다.
“…….”
반면 거인족 스루토스(Srutoss)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진피와 내피는 전부 타버리고, 검게 그을린 근육만 남아서 바닥을 긴다. 이전의 위치처럼.
아쉽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화상으로 치면 4도 정도 되리라. 뼛속까지 스며든 열기는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일 터.
보통의 인간이라면 절단 말고는 살 방도가 없을 만큼의 중상이었다.
‘물론 S10급 몬스터답게 언젠가는 재생을 하겠지만.’
나는 마무리를 위해 움직였다.
[보유 마력 : 1.02/89.2]회로의 가열로 마력 운용은 더 이상 불가능했고, 원기로 폭(爆)을 운용해 스루토스에게 다가간다.
키이이이이잉.
집채만 한 거인의 머리통을 밟고서, 회(廻)로 극열에 폭삭 익은 거인의 머리를 연신 가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전기톱처럼 회전하는 원기를 두른 검으로 뒤통수를 파고 들어가, 결국 두개골까지 다다른 순간.
퍽!
그런데 어째 머리보다 거인의 배가 먼저 갈라진다.
“쿨럭.”
그곳으로 나와, 뜨거운 기침을 뱉는 각성자 하나.
“세상 사람들이 박신혁, 박신혁 하더니. 그럴 만하긴 하네.”
리철만이었다.
위치마저 타 죽은 와중에, 빌어먹을 칠악은 몬스터 배 속에 들어가 살길을 찾은 모양이었다.
‘조금 더 오래 살 뿐이야.’
내게 머뭇거림은 없었다.
놈이 살아 있는 것을 인지한 즉시, 스루토스에게서 나오는 [원기]를 흡수해, 그대로 리철만에게 달려들었다.
쾅!
몬스터 웨이브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내 검과, [분진폭발]에 노출되었던 리철만의 거검이 충돌한다.
터져 나가는 충격파.
울컥.
그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난 다시 피를 토했고.
“으아아악!”
이미 뼛속까지 탄화되었는지, 근접 밀리의 이능을 택한 리철만은 그 충격만으로 팔이 덜렁거렸다.
“잠깐. 잠깐.”
놈과 나는 잠시 멈춘다.
놈의 말 때문이 아니라, 나는 [원기]를 흡수해 내상을 달래느라.
리철만은 팔을 끼워 맞춘 채 [재생]을 기다리느라.
“여기서 둘 다 죽을 필요 있어?”
놈이 힐끗 눈짓으로 바닥을 기는 거인족을 가리킨다.
“아직 처리하지 몬스터도 있는데, 여기서 이럴 필요까지 없잖아? 적당히 서로 물러나면 어때?”
“죽는 건 너 하나야.”
놈과는 다르게 난 여유로웠다.
부상의 정도는 비슷하다 할 수 있어도, 상황은 내가 단연 우위에 있다.
놈의 한계에 다다른 [재생]과 달리, 애초에 흡수할 원기가 지천에 널려 있을뿐더러-
“그래. 한국군이 먼저 오기야 하겠지.”
놈의 말처럼 지원군은 내 쪽이 먼저 도착한다. 반드시라 해도 좋다. 임솔의 웜홀이 있으므로.
“그래도 잠깐만 숨 좀 고르자고. 그게 너한테 도움이 될 거라 장담하지.”
그러니 저건 딱 봐도 시간을 벌어보려는 개수작.
“엘리 세리아드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
물론 솔직히,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칠악이 연합했는지, 어떻게 엘리 세리아드가 위치를 문경으로 유인하는 타이밍에 맞춰 네가 남하할 수 있었는지, 그리했다면 그 대가로 서로 무엇을 주고받았는지.
여태껏 품어왔던 의문들.
그러나.
‘기억을 뽑아내면 그뿐이야.’
무시하고 나는 다시 달려들었다.
쾅!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방금 회복된 놈의 팔은 다시 덜렁거리게 되었고, 나는 다시 피를 토했다.
상관없다.
다시 달려든다.
내상이야 얼마든지 깊어져도 된다. 죽지만 않으면. 언젠가 도착할 이가을에게 [치유]를 받으면 그뿐.
아직 처리 못 한 몬스터가 주변에 있든, 그러다 거인이 몸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나든.
그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나는 놈과 연이어 충돌한다.
쾅!
피를 토하며 놈의 왼팔을 부러뜨렸고.
쾅!
피를 토하며 놈의 오른팔 역시 부러뜨렸다.
쿨럭.
창자가 제멋대로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나는 물었다.
“엘리 세리아드에 대한 모든 걸 떠올려.”
동시에 [기억의 금고]를 꺼내어 놈의 얼굴에 박아 넣는다.
놈이 고개를 틀었으나, 이미 예측하고 방향을 튼 뒤였다.
퍽!
그대로 둔기처럼 휘두른 소모성 아티팩트가 놈의 얼굴을 강타했다.
[기억을 담을 수 없습니다.]그리고 난, 두 번째로 보는 시스템에 얼굴을 깊게 찌푸렸다.
빌어먹을, 확실히 놈과 엘리는 연관성이 있긴 했다.
한 대 얻어맞은 칠악이 비릿하게 웃는다.
“어때? 이제 대화할 생각이 생겼나?”
난 대답하지 않고서, 검의 손잡이 부분으로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놈은 이빨이 입 밖으로 우수수 배출된다.
놈은 잇몸만 남은 채로 여전히 입을 놀린다.
퍽.
“엘리가 총 몇 명인 거 같아? 왜 그년들은 한 번에 전력을 드러내지 않을까?”
퍽.
“몬스터 남하에, 나까지. 지금이 엘리가 전력을 쏟을 기회 아닐까? 근데 왜 지금에도 그년들이 나타나지 않지?”
퍽.
“주진헌이나 강예빈에게 데려다준다는 대가로 내가 엘리에게 내준 건 뭐일 거 같아? 왜 엘리가 내게 접근했을까? 단순히 적의 적이라서? 그게 다일까?”
이어 검을 역수로 잡았다.
정확히 놈의 눈을 향해 조준한 뒤, 힘껏 내려친다.
아니, 내려치려 했다.
“포식에 대한 정보를 줬어.”
놈이 이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챙!
경로를 비튼 검이 놈의 귀를 찢으며 땅에 박혔다.
나는 분노를 삼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입을 뗐다.
“엘리가 그걸 왜 필요로 하지?”
놈이 빗겨간 검날에 시선을 두며 답한다.
“엘리의 복제 인간 중에도 포식 각성자가 있으니까.”
* * *
6일 전.
엠버는 은거지의 핵심부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오늘 몬스터 유인은 우리가 할 거야.
오늘이어야 했다. 기회가 언제 또 있을지 모른다.
먼저 마력 회로를 극도로 운영해 모든 오감을 일깨운다.
귀를 활짝 열고, 칠흑같이 어두운 복도를 살펴, 최적의 기회를 잡아본다.
‘지금이야.’
제1 실험체 보관실까지 연결되는 복도에 아무런 인기척이 잡히지 않은 시간.
즉시 옷을 홀딱 벗는다.
속옷까지 전부 쓰레기통에 넣고선 나채로 복도를 미끄러져 나간다.
제1 실험체 보관실의 문을 열고서, 즐비하게 나열된 유리관 중에서도, 저와 똑같이 생긴 실험체가 없는 빈 곳으로 들어간다.
띡. 띡.
유리관 앞의 버튼은 누른 뒤였다.
조작에 따라 유리관 안 쪽에 모종의 액체가 차오른다.
차가운 액체가 무릎까지 차오를 즈음, 엠버는 스스로 호흡기를 껴 입으로 들어오는 산소와 영양분과 수면제를 들이켠다.
정신이 몽롱해져 가지만 그래도 괜찮다. S급 헌터의 항상성은 탁월하다. 적어도 수면제 따위에 의식을 잃진 않았다.
“…….”
몽롱한 와중에도 눈을 감았다.
왜냐하면, 복제 인간이 될 실험체가 눈을 뜨고 있으면 안 되니까.
‘말이 길면 결국 잡히게 마련이야.’
놈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다 자란 실험체가 되어서, 핵심부인 이곳에 머물러야 하니까.
‘그러니 여기 있어야 해.’
이곳에서 핵심 정보를 빼돌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