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90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90화
식인의 현장을 목전에 두고 몸을 떨지 않기 위해 엠버는 안간힘을 썼다.
기억을 받기 전까지 아무 생체 신호도 없어야 할 실험체가 구역질을 할 수는 없는 법, 다시 눈을 감는다.
안 보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감으니, 시각은 사라지고 청각만 남으니, 도리어 그 소리는 선명해진다.
우걱우걱, 사람이 사람을 먹는 소리.
우걱우걱, 마음 같아선 귀를 막고 싶지만, 실험체로 위장한 엠버가 그럴 수는 없었다. 자살행위일 거다.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자신이 실험체가 아니라 홍보하는 격일 테지.
애써 다른 생각을 떠올려 본다.
‘지금입니까?’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박신혁 클랜장에게 알리는 게 나을 것인가.
정보의 수집은 여기까지 하고, 박신혁 클랜장을 이리로 불러 저 식인을 하는 엘리를 죽이는 것이 최선인가.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걱우걱.
식인을 할수록 어째 엘리는 강해진다.
평범한 S급 헌터로 보였던 그녀가, 식인을 할수록 존재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더니, 지금은 그 강렬한 기세가 유리관 속 액체를 뚫고 들어와 전율마저 일으킨다.
‘강해.’
박신혁 클랜장이 떠오른다. 엘리가 계속해 강해지면 언젠가 그처럼 될 것 같아 불안하다.
‘더 강해지기 전에 죽여야 할 것이나, 그런데…….’
만약 엘리에 대해 몰랐다면 이게 옳은 선택이라 단정 짓겠으나.
‘여기서 잠입을 그만둔다면?’
그러나 눈을 감은 채로 물속에 있는 상황이 동시에 이성을 유지하게끔 한다.
‘그다음’을 생각하게 한다. 만약 박신혁이 저 식인하는 엘리를 죽인 이후엔? 다른 엘리까지 박멸할 수 있을는지.
‘과연 엘리가 박멸당해 줄지.’
만약에 단 하나의 엘리라도 살아남게 될 경우, 다시 복제 인간이 번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처음의 엘리는 하나였겠지만 지금은 600명에 달하듯, 언제든 다시 엘리라는 역병이 재차 창궐할 수 있다는 게 마음을 짓누른다.
또한, 본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면서도-
-두 번째 세리아드는 어딨어? 위치 확인했어?
-글쎄. 엠버가 보이질 않네?
자신 역시 복제 인간 중 하나라는 사실이, 원인 없는 죄책감을 들게 한다.
죄악의 유전자가 온몸 구석구석 새겨진 듯, 온갖 오물들이 피부에 들러붙어 진득거리는 것 마냥.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해결해야 해.’
어떠한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위장은 복제 인간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어떠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자신뿐일지도 모른다.
‘기다리자.’
더불어 그 기회가 지금뿐일지도 모른다. 신중해야 한다.
속죄하는 심정으로, 억지로 조급함을 달랬다.
‘모든 엘리를 박멸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해.’
우걱우걱.
귀를 파고드는 불길한 소리를 인내한다.
스으으읍.
유리관 속, 입으로 들어오는 영양분과 수면제를 깊게 들이켰다.
이전과 같이, 미동도 없는 다른 실험체처럼.
“…….”
엠버는 때를 기다렸다.
* * *
“그 포식 각성자가, 가장 이상적인 이능을 택하기 위하여.”
리철만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년은 포식 각성자인 내가 너와 싸우길 바라는 거야. 나를 표본 삼아 나처럼 이능을 조합을 하면, 널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또 널 이기려면 거기서 어떤 이능을 빼고, 그 자리에 어떤 이능을 넣어야 할지.”
놈이 고개를 숙여 아직도 [재생] 중인 제 몸 위로 시선을 내렸다.
“예를 들면 엘리도 ‘철갑’과 ‘재생’은 ‘포식’하겠지. 이래야 네 폭발에 버틸 수 있는 최소 요건이 마련되니까.”
놈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저 이능이 없었다면, 리철만은 몬스터 배에서 이미 타죽었을 거다.
“원래의 엘리의 계획은 그랬어. 나를 통해 얻은 정보로, 너를 상대할 가장 완벽한 포식 각성자가 되는 것.”
퍽!
난 놈의 복부를 걷어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원기]를 담은 나의 발길질에, 아직 [재생]을 온전히 마치지 못한 놈은 충격을 해소치 못하고 결국 뒤로 자빠진다.“말에 어폐가 있군.”
나는 넘어진 놈에게서 시선을 떼고서 차분히 주변을 둘러본다.
[레비아탄의 눈]으로 모든 에너지를 살핀다.“여기에 엘리가 어딨지?”
이곳에 엘리는 없다.
나와 리철만을 제외하면, 마력을 띄는 그 어떤 존재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말이 되지 않는다.
“너를 표본 삼아서, 나와 포식 각성자의 전투에 대한 정보를 뺴내려 했다면, 적어도 지금의 상황을 관찰하고 있어야 할 엘리가 근처에 하나쯤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난 네가 어떻게 엘리에게 정보를 전달할 거냐고 묻는 거다.
여기서 넌 죽을 텐데.
“아니면 네가 나를 이기고 생환해 정보를 줄 것이라 생각했나?”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아예 않으나, 놈의 딴에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나 그 전제는 놈의 주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네가 날 이길 거라 판단했다면, 지금까지의 너의 주장이 결국 궤변이 될 뿐이야. 엘리가 나를 이기기 위한 포식 각성자를 배양한다면서?”
내가 여기서 죽을 거라면, 박신혁의 대항마가 아닌 리철만의 대항마를 만들었어야지. 안 그래?
“박신혁.”
놈이 잔뜩 얼굴을 찌푸리며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엘리는 이곳에 있을 수 있어.”
내 의심에 항변하며, 리철만은 제 머리를 검지로 짚었다.
“왜냐하면 지금 내 머릿속엔 텔레파시 각성자가 있거든.”
톡톡.
이어서 보란 듯이 제 머리를 두드린다.
“지금의 대화와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념까지 전부 엘리한테 전달할 수 있다는 거야.”
시체와 같은 모습에서 짙은 화상을 당한 인간의 모습이 되기까지 계속해 [재생]한 그는, 어느새 전투를 미루자 하며 내게 보였던 비굴한 기색을 감춘 채였다.
“내가 재생할 시간을 위해 고분고분 실토하니까 우스워 보이나 본데.”
지금 놈의 눈엔 선명한 적의만이 가득하다.
이제 와 발에 차였다고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도껏 해 이 새끼야.”
나는 슬슬 다시 전투의 시간이 당도했음을 직감한다.
“내가 왜 엘리랑 손잡았을 것 같아? 내가 왜 실험용 쥐새끼처럼 이용당하고, 그 정보를 엘리에게 넘길 것 같아?”
더불어 [재생]의 시간을 주는 대가로 놈이 내게 던져주는 진실에 가까울 정보의 제공 역시 곧 끝이 날 것임을.
“물론 근본적으로 엘리가 내게 던져준 먹이가 탐스러워 보인 것도 있지만.”
놈은 이재근이 사용하던 거검을 들었다.
“난 단순하게 그냥 승자의 편에 섰을 뿐이야. 왜냐하면, 결국에 엘리가 널 이길 것 같아서.”
나 역시 검을 꺼내어 놈을 겨눴다.
마지막까지 놈의 뱉어내는 정보를 들으며 [원기]를 검에 두른다.
“엘리가 게이트의 생성으로 차져와 위치를 불러냈다는 것은 알 거야. 차져 다음엔 위치였지. 그럼 위치 다음엔? 위치가 끝일 것 같아?”
놈이 엘리가 불러낼 수 있다는 몬스터가 위치가 끝이 아닐 거란 말.
“고작 위치 정도가 엘리가 불러낼 수 있는 몬스터의 마지막 단계 같아?”
그 말을 뱉으며 놈은 비뚜름하게 웃는다.
“그게 아니더라도 넌 전쟁에서 엘리를 이길 순 없어.”
“…….”
난 대답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엘리라도 살아 있다면, 엘리는 다시 증식해 이전보다 더 완벽해진 군세와 능력으로 널 찾아올 테니까. 넌 엘리한테 질 수밖에 없는 구조야.”
전투 직전, 내 심기를 어지럽히려는 뻔한 경고에 신경 쓰지 않았다.
놈의 [재생]은 슬슬 마무리가 되어간다. 지금은 전투에 몰입해야 할 때였다.
“더 지껄일 정보가 또 있나? 있으면 죽기 전에 전부 털어놨으면 하는데?”
“없어. 이 새끼야.”
펑!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흡수한 [원기]를 폭(爆)을 터뜨리며 리철만에게 달려들었다.
* * *
엘리의 목소리가 가깝다.
“어쩐 일이야? 우리 텔레파시 각성자께선 게이트 밖에 있어야 하지 않아?”
“해야 할 게 있어서.”
저벅. 저벅.
처음 보는 엘리가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처음 보는 엘리란 것은 굳이 눈을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엘리 사이의 인간관계에선 상하의 구분이 없다. 서로에게 존대를 하지 않고 서로 무시하지 않으며 서로 공경하지도 않는다.
-그냥 수면제를 들이켠 듯 스르륵 잠이 들 거야. 누군가에게 먹히는 기분 나쁜 기억도, 그때의 고통도 없게 될 거고.
엘리를 위해 본인의 육체마저 내어주며 그걸 당연하게 받아먹는, 오롯이 기이하도록 공리적인 관계.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저벅. 저벅. 저벅.
마치 선두의 선 이를 호위하듯 그녀를 뒤따르는 발걸음 소리가, 지금 등장한 이가 특별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떤 엘리길래?’
엘리가 엘리의 호위를 받는 것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다.
특히나 그들이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그들의 주둔지에서 이뤄지는 일이기에, 이전 엘리가 공항에 방문했을 때와는 완전히 경우가 다르다.
엠버는 아까의 특별한 단어를 곱씹는다.
‘텔레파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능이라 정보는 희박하지만, 각각의 엘리의 다른 점이 이능을 제외하고 없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해당 엘리가 특별 취급을 받는 이유는 그 이능 때문일 확률이 다분하다.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해야 할 거?”
띡띡, 이미 들어봤던 조작음 뒤엔, 꾸루루루룩, 대량의 액체가 어떤 흡입구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저런 대량의 액체는 유리관 속 완충용액밖에 없다.
아마도 실험체가 엘리로 복제되는 소리일 터.
“어제 포식 때문에 우리 숫자가 좀 줄었잖아?”
“아. 바로 기억 주입하게?”
“그래야지. 박신혁과 곧 조우할 텐데 우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유리하겠지.”
이내 액체가 빠져나갔던 유리관에서 또 다른 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어?”
“얼마 안 됐어. 바로 기억을 주입한 거야.”
저기 있던 실험관에서, 식인을 당했던 엘리가 새로운 육체에서 다시 살아나는 모양.
“포식은 잘됐고?”
“잘됐어, 전부 다 SS급으로. 덕분에.”
“수면제 한번 먹은 대가치고는 과분한데? 하하.”
이후 어느 엘리가 어느 엘리에게 묻는다.
“텔레파시는 잘됐어?”
“할 것도 없이 확인만 하면 끝이야, 이번에도. 기억을 주입하니까 바로 정신이 연결됐어.”
정신 연결.
그 단어가 귀에 들어온 순간, 엠버는 눈을 떴다.
“자아가 동일해서 그런가? 아니면 원죄 퀘스트를 공유해서 그런가?”
“뭐가 중요해? 우리가 하나가 됐으면 됐지.”
그 대사를 한 이를 정확히 목도한다.
[텔레파시] 각성자가 어디 서 있는지 눈에 단단히 박는다.‘정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그리고 깨닫는다.
모든 수면욕, 배설욕, 식욕 등등을 억눌러가며 기다린 순간이 지금임을.
-과연 엘리가 박멸당해 줄지.
모든 엘리를 박멸하려면, 모든 엘리와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저 [텔레파시] 각성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납치해서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야 해.’
쨍그랑.
결심의 순간, 몸은 이미 움직였다.
유리관 속에서 엠버는 주먹을 휘둘러 단번에 유리관을 박살 낸다.
“뭐야? 얘한테 누가 기억 넣어줬었어? 실험체가 왜 움직여?”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엘리들을 눈에 담으며.
깨진 유리 조각과 완충용액과 함께 밖으로 터져 나가는 동시에.
“죽어!”
미리 눈에 담아뒀던 [텔레파시] 각성자에게 [빙결]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