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192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192화
몬스터가 남하가 지속된 시간은 장장 12일이었다.
물론 116년간 이어진 백년전쟁에 비하면 12일의 전쟁은 지극히 짧은 편에 속하긴 하나, 개인의 입장에선 달랐다.
허드만이 지원 왔던 3일을 제외하면 매 순간이 죽음에 닿아 있던 12일이었다.
몬스터를 베어내면 다시 다른 몬스터가 그 자리를 채운다.
인간의 시체와 몬스터의 시체가 버무려진 시체의 더미가 지천이었다.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거기서 발이라도 헛디디면 그대로 사망이었다. 몬스터는 넘어진 인간을 가장 우선적인 타깃으로 삼았다. 이미 모든 체력을 소진한 이는 다시 일어나지도 못했고, 그대로 몬스터에게 잡아먹혔다.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쉴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실려 나갔다가 [치유]를 받고 다시 투입되기 전까지가 전부. 부상을 입고 나서야, 긴장에 빳빳해진 뒷목이 잠시 느슨해진다.
각성자라고 하나 제대로 자지도 씻지도 먹지도 못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피(Blood)였고, 귀에 들리는 건 온통 괴물의 포효와 비명이었다.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버텨!”
그랬던 전쟁이 지금 끝을 보이고 있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S급 몬스터들만을 암살하던 강혁의 크나큰 외침이 전장의 인류를 독려한다.
“지금 오는 것들만 처리하면 끝이다!”
저 멀리 지평선에선 일출이 보였다. 밝았다. 하늘을 가리는 비행형 몬스터도 없었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 빛에도 가려지지 않는 초대형 몬스터들의 그림자도 없었다.
몬스터 없이 맞이하는 일출이 정말로 머지않았다.
미래 역시 밝아질 것만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죽어-!”
죽으면 차라리 편해질까 하는 생각들이 스러진다.
마지막까지 쥐어짠다.
이미 다 찢어져 너덜너덜한 근육을 한 번 더 당겨본다.
전력을 쏟아부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여기 있는 몬스터만 정리하면, 이제 기나긴 몬스터 남하도 끝일 것이다. 이 뒤의 전투는 없으리라.
연합군은 마지막 힘을 뽑아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간다.
동쪽의 강혁이 높게 [점프]했다. 그 도약력은 와이번을 양단한 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직선의 경로에 있는 모든 와이번을 베어낸 뒤엔, 다시 공중에 떠 있는 시체를 딛고 다시 [점프]했다.
서쪽의 주진헌이 차져 다섯의 돌격을 홀로 막아내었다. 돌격이 저지된 복부는 터져 나갔고, 화산이 폭발하듯 몬스터가 그곳에서 쏟아져 나와 주진헌을 반구 형태로 덮쳤으나.
쾅!
주진헌의 검에서 연신 폭(爆)이 터져 나오니, 몬스터는 달려드는 족족 사그라진다.
그리고 수호길드의 모든 정예가 모인 중앙의 격전.
그 말미에서 하대호에게 거인족이 타죽는다.
몸의 절반이 이미 타버려 전소했고, 나머지는 남은 몸의 절반도 불타는 채 거인은 쓰러진다.
쿵.
큰 충격음과 함께 거인이 쓰러지자, 더 이상 전장에 남은 몬스터는 없었다.
몬스터 남하가 끝났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진헌의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
주진헌은 그걸 이해한다.
여느 일이 그러하듯, 고된 노력 뒤에 오는 보상이 유독 달기 마련이니.
“주진헌 클랜원. 드디어, 드디어 끝났습니다-!”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근처에 있던 수호 길드원 중 하나의 얼굴에도 온통 기쁨이 묻어 있었다.
“여기 완전 Coin밭이 아니겠습니까? 이 많은 사체에서 Coin을 추출한다고 생각해 보시죠. 아마 F급 헌터도 단숨에 S급 헌터도 만들지 않겠습니까? 이 양이면 아마 열 명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하하하하.”
“……그렇겠지요.”
낮은 음색으로 답했다.
정확히는, 고양된 어조를 연기하려 했으나,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미 갈라진 목 때문만은 아니리라.
“아. 제가 너무 속물적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 우울한 기색을 눈치챘는지, 저를 보던 수호 길드원이 시체가 범벅인 전장에 시선을 두었다.
“물론 사망자를 앞두고, 바로 이익을 셈을 하는 게 다소 비인간적이겠으나……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주진헌에겐 멀리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야 다음에 몬스터 남하가 있을 땐 이와 같이 많은 이들이 죽지 않을 수 있겠지요.”
맞는 말이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이 말 역시 멀게 느껴졌다.
주진헌은 기쁨이 묻어 있는 승전의 현장에서 마치 외딴 섬에 홀로 있는 기분이었다.
“야야야야. 사체 처리 잘해!”
각성자는 전부 피가 흐르는 흙바닥 위로 눕거나 주저앉았다.
전투에서 열외됐던 지원팀들은 보상의 수거를 위해 전장으로 나왔다.
“그거 좀비가 아니라 위치(Witch)야! S10급 몬스터라고!”
“Witch의 가죽으로 방어구를 만들면 당연히 S급 아티팩트가 나오겠지요?”
모두가 웃는 얼굴이었다.
“보상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배분이 문제겠어. 뭐 다들 여기서 한몫이라도 더 챙기면 연봉이 생기는 것일 텐데, 욕심 안 부리겠어?”
“그게 뭔 문제입니까, 행복한 고민이지. 하하하하하하.”
Coin을 흩뿌리며 환호하는 사람들.
“이게 다 Coin입니다. 여러분들!”
이재근의 희생을 모르는 사람들.
“…….”
주진헌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공허했다.
저 모든 기쁨들이 다 공허해 보였다.
“…….”
걸음을 옮긴다. 마음을 따라 몸도 전장과 멀리했다. 이 환호의 현장은 지금 자신과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승전의 기쁨이 닿지 않은 곳에서 이어셋을 꼈다.
착잡한 심정으로 이 총괄팀장에게 물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네. 전투가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양구는 어떻게 됐습니까?”
-막 이가을 클랜원의 치료가 끝났습니다. 박신혁 클랜장님이 지금 그곳에 간다고 하시니, 직접 얘기를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박신혁 클랜장이 복귀한 모양이었다.
일단은 그곳의 이철만도, 몬스터 웨이브도 모두 승전으로 이어졌나 보다.
희소식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 박신혁 클랜장님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도망쳐. 희생이 헛되지 않게! 둘 다 죽기 전에!
재근인 어떻게 됐을까.
살아 있을까. 아니, 살아 있겠지?
“그럴 수도 있어. 분명히 그럴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인질로 쓰기 위해 이철만이 포식하다 말고 살려두었을 수도.
“그렇다면, 살아만 있다면…….”
혹 박신혁 클랜장님이 이재근을 구해서 이가을에게만 데려왔다면.
방금 치료가 끝냈다는 말에는…… 어쩌면 이재근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그랬을 거야.’
다만 이가을 클랜원의 [치유]도 이제 한계에 다다라서, 세계 랭킹 1위인 박신혁 클랜장부터 치료했을 거야.
그다음 [치유]를 받을 사람은 분명 재근일 거야.
‘천만다행입니다.’
아마 곧 박신혁 클랜장님은 그렇게 말할 테지.
‘이재근 길드장도 곧 올 겁니다.’
그런 말을 선물처럼 기다리던 중.
“주진헌 클랜원.”
주진헌은 뒤를 돌았다.
어느새 박신혁이 노란 눈을 빛내며 제게로 걸어온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그가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핏! 어느새 그의 손 위엔 [인벤토리]에서 나온 피 묻은 펜던트가 올려져 있었다.
“갑자기 펜던트를 왜……?”
“보시면 알 겁니다.”
펜던트에 묻는 피가 불길해 보였지만, 그래도 일단 열어본다. 박신혁이 이 시기에 장난을 칠 위인이 절대로 아니므로.
펜던트 뚜껑을 열자, 오래된 사진이 보였다.
아는 사진이었다.
-이상 길드.
이상 길드가 아직 길드가 아닌 클랜이던 시절, 아니, 이상 길드라는 이름도 아직 지어지지 않은 시절.
그러다 클랜을 탈피해 길드로 나아가던 어느 날.
-방금 생각났는데, 이상 길드 어때요? 어감도 좋지 않아요?
자신의 요구에 어울리는 사람끼리 같이 술을 마시던 날.
“……재근이의 펜던트군요.”
이 사진은 그날, 셋이 찍은 사진이었다.
-오…… 검색해 보니 의미도 괜찮아요. 이상(理想).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
사진의 가운데에 최진솔과.
-이 명칭 미리 선점 안 하면 누가 채가지 않을까요? 뭐 다른 곳은 수호 길드, 아라한 길드, 이렇게 유치한 이름을 쓰는데, 걔네들보단 이 이름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 넌 어때 진헌아?
아직 최진솔과 어색함이 남아 있을 때의 이재근과.
-좋아. 아니, 난 사실 뭐가 됐든 상관없어.
그리고 본인.
주진헌.
-길드 이름이 뭐가 중요해. 우리가 같이 있다는 게 중요하지.
그날, 술에 취할 수 없는 [재생 각성자]는 만취한 척을 하며 진심을 전했었다.
-난 너희들만 있으면, 아무개 길드라 불려도 상관없어.
-……그건 좀…….
-……뭐래.
-……진짜야…….
과장되게 고개를 저으며 폰을 꺼내던 이재근이 환하게 웃었었다.
-야! 됐고! 사진이나 찍자.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저도 좋아요.
최진솔도 환한 웃음으로 답했었다.
-야야야. 찍는다. 진솔 씨 옆으로 붙어. 야. 주진헌!
찰칵.
-같이 전투한 지가 3년인데, 아직도 내외하냐! 더 바짝! 주진헌! 뭐 아까는 그렇게 말하더니 뭘 그리 멀찍이 떨어져 있어!
찰칵.
-주진헌 씨. 아깐 막 절 안고서 몬스터에게 벗어나더니 지금은 또 왜이렇게…….
찰칵.
-오! 지금 좋아! 웃어!
찰칵.
-한 이십 장 찍으면 잘 나온 거 하나는 건질 거야.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그때 찍은 사진 중 하나.
잔뜩 피가 묻어 있어서. 누군가에겐 식별이 어려울 수도 있으나, 주진헌에겐 아니었다.
주진헌은 그때의 그들의 목소리와 겨울이 다가오는 서늘한 온도와 그래도 따뜻했던 분위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사진에 있는 사람은 분명 우리 셋이다.
그리고 지금.
그 사진이 피가 묻은 채로 돌아왔다.
“이게 왜.”
인정하기 싫은 말이 잇새로 새어 나온다.
“이 펜던트가 왜 클랜장님에게 있습니까?”
“그게 전부입니다.”
“…….”
“이재근 길드장이 남긴 것은…… 그리고 그…….”
박신혁답지 않았다.
그가 말을 늘이며, 말을 주저한다.
“괜찮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이재근 길드장이 입고 있던 옷에서 그 펜던트를 챙겼고, 제가 이재근 길드장에게 준 아티팩트는 리철만이 들고 있었습니다.”
“…….”
“아마…… 사망했을 거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뚝.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심장 안에 심장보다 큰 돌덩이라도 생긴 것 같다. 먹먹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진다. 세계 6위의 헌터가, [재생] 각성자가 전투가 끝났는데 지금 숨이 가빴다.
“끅끅.”
어쩌면 예상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됐을 때의 충격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아렸다.
“그리고…….”
박신혁의 손 위에 다시 무언가가 나타난다.
이번에 그의 [인벤토리]에서 나온 건 수급이었다.
수급.
사람의 머리.
“제가 죽였습니다.”
이재근의 희생으로나마 겨우 도망칠 수 있었던 이철만이라는 자의 머리.
그 머리를 건네며 박신혁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미안하다고.
“위치(Witch)를 정리하느라 한발 늦게 도착했습니다.”
늦었다고.
“예언자를 옆에 두고서도, 예상치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했다고.
“복수를 위해 기다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복수를 끝냈다고.
“아, 아닙니다…….”
주진헌은 젖은 목소리로 부정했다.
피 묻은 소매로, 또 보이기 싫은 눈물을 또 한 번 그의 앞에서 거칠게 닦았다.
“끅. 끅.”
안다.
이 일에 박신혁의 잘못은 진심으로 눈꼽 만치도 없는 것을 안다.
이가을의 [치유] 뒤에도 그의 얼굴에 선명하게 묻은 피로와 축 처진 다크서클이 그것을 증명한다.
“클랜장님의 잘못이 아니란 것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