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0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0화
17년 전, 난 하대호에게 무릎을 꿇었다.
-부탁드립니다. 검을 배우고 싶습니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당시 하대호의 눈에는 내가 매우 절박해 보였다고 한다.
경력을 보면 분명 짐꾼으로 활동한 게 전부인데, 눈빛은 무슨 몬스터를 보는 것 같았다고.
-일단은 지켜보지.
하대호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이후 그가 운영하는 수호 길드에서 난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이자, 대형 길드의 길드장인 하대호에게 기초부터 배웠던 건 당연히 아니었고.
시작은 웬 양아치같이 생긴 놈이었다.
-박신혁이라 했지? 난 강혁이라 한다.
외견과는 딴판인 평을 받는 강혁. 솔직히 조금 놀라긴 했다. 길드로 출근한 첫날 검술을 봐준다는 사람이 강혁이었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강혁은 당시에도 유명한 인사였다. 한국 내에서 [가속] 각성자로선 그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던.
단순히 그 빠르기만을 고려한 평가가 아니라 검술, 속도에서 기인한 파괴력, 반응속도 등등 모든 면에서 동류의 각성자들을 압살한다고 모두가 인정한.
그런 강혁이 기초를 봐준다고 하니 불만은 없었다.
-잘하긴 하는데 이제 와 검술을 시작하긴 많이 늦은 거 같은데? 이미 근육이 다 굳어버렸잖아?
다만 점잖은 첫인상과는 달리, 그의 본색이 드러날 때면 가끔 그가 밉기도 했고.
-아니, 그렇게 느려 터져서 누가 맞아줘? 몬스터가 과연 목이라도 빼놓고 기다려 줄까?
또 어쩔 땐 얄미워 한 대 때려주고도 싶었지만.
그런 가시 돋친 말들이 나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중엔 알았다.
그가 날 길드장인 하대호 앞으로 데려갔을 즈음에 말이다.
-대호 형. 박신혁, 재능 있는 친구입니다. 이능이 인벤토리인 게 아쉬울 정도로 밑바탕은 훌륭합니다. 저와 결이 같다면 계속 봐줄 텐데……. 그게 아니니 제가 봐주는 건 여기까지가 좋을 듯합니다.
-고생했어. 이 친구 실전엔 데려갈 만하나?
-사실 1군에 들어가긴 아직 이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 써주면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때의 내 실력으로 초대형 길드의 1군으로 들어간 것은 말이 되질 않는 인사 조치였으니, 이후에 내가 하대호에게 직접 사사받을 수 있었던 건 오롯이 강혁이 나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덕분이겠다.
여하간 그날 이후로 하대호는 날 데리고 다니며 무수히 많은 실전을 치르게 했다.
-검로에 허수를 섞으려 하지 마. 몬스터에게 일부러 약점을 노출하지 마. 지가 죽더라도 상대를 상처 입히려 하는 게 몬스터다.
꽤 우수한 치유사를 데리고 있던 수호 길드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사지 중 하나를 잃었을 정도로.
-마력은 중요한 순간에만 사용해! 더 빨리! 눈으로 보고 피하려면 늦어! 그다음 동작을 예상하고 미리 움직이라고!
난 베이고 물어뜯겼다.
-으아아아악!
치료를 받은 뒤엔 게이트로 나가 다시 상처를 입었다.
-오늘도 부탁드립니다…….
-아니. 길드장님께 말할 테니 다음 공략에서는 쉬세요.
-괜찮습니다. 제 몸은 제가 알아요. 피는 멎었으니 자고 일어나면 나을 겁니다.
그렇게 난 조금씩 나아갔다.
-박신혁. 이번엔 네가 직접 상대해 봐라.
-네.
상처가 새겨질 때마다 조금씩 앞으로.
후위에서 중견으로 중견에서 전위로.
-박신혁은 이제 강혁의 뒤에 선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최전방에 위치했다. 하대호의 뒤는 강혁이 그리고 강혁의 뒤는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네.
그러나 그 자리에선 꽤 오래도록 멈춰 있었다.
결국 15년 전, 나는 길드를 나왔다.
멈춰 버린 성장을 자극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대호 형. 오래 고민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긴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인벤토리를 활용하려면 검 하나를 다루는 것보단 여러 무기를…….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마력. 각성자가 사용하는 가장 지고(至高)한 에너지.
강예빈은 회로를 통해 내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승승장구를 하던 나는 하대호와 어깨를 견줄 위치까지 성장했다.
그렇게 서로가 각자의 시간을 보낸 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8년 전이었다.
-신혁. 오랜만이야. 이젠 뭐라고 불어야 하나? 이제 나도 부사령관이라 불러야 하나?
-예전처럼 편하게 부르세요. 급박한 순간에 호명을 헷갈리면 안 되니까요.
세뇌된 비각성자가 세뇌되지 않은 비각성자보다 많은 그때에, 최태수를 죽이기 위해서.
-죽어어어어-!
우리는 많은 희생을 치른 뒤에서야 최태수를 처단했고.
남아 있는 각성자가 소수인지라 길드나 클랜 같은 단체의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음에 우리는 다시 함께하기로 했다.
-대호 형! 피해!
함께 몬스터를 피해 도망을 다녔으며 함께 약탈자와 전향자를 죽였다. 고작 몇 사람만이 살아남아 은신처에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을 때까지 계속.
그리고 1년 전.
지금으로부터 19년 후.
난 은신처에서 죽어 있는 하대호를 발견한다.
-대호 형…….
눈, 코, 입, 귀, 얼굴에 있는 칠공에서 식물이 돋아난 채였다.
흉수는 명확했다.
[식물 조작] 각성자, 칠악 중 일인 한예리.칠악 중에서도 최악을 뽑을 때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인.
숙주의 피를 먹고 자란 가시나무와 더불어.
하대호의 시체 위에 문신처럼 피어난 꽃들로 전한 메시지는.
-박신혁. 다음은 너야.
다시 말해 글자를 이룰 정도로 정교한 그 [식물 조작]은 그녀의 시그니쳐와 다름이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난 안구에 들어차 있는 식물을 제거한 뒤 하대호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게 하대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
그리고 지금의 난 눈을 뜬다. [기억의 금고] 덕분에 한순간도 망각되지 않는 꿈에서 깨어난다.
하대호가 운영하는 수호 길드의 안전가옥에서 깨어나, 어제 최태수가 남긴 팔찌를 인벤토리서 꺼내어 보았다.
[등급] : 에픽, A급. [분류] : 성장형. [속성] : 원거리 마력 간섭 페널티 감소.칠악 한예리가 늘 차고 다녔던 사기급 아티팩트.
-진짜 몬스터는 니들이야. 서로를 갉아먹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벌레보다 역겹고 진창보다도 더러운 새끼들.
그녀가 이능을 부릴 때마다 남들과는 격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던, 마력을 상대의 체내에까지 퍼뜨려 하대호의 몸에서 식물을 자라게끔 했던, 자연계열 각성자에게선 희대의 사기라 불리던 아티팩트.
그게 지금 내게 있다. 한예리에게 가야 할 이게 어째 최태수를 통해 지금은 내게로 왔다.
“이게 왜 여깄을까?”
난 손목에 차자 절로 내 살갗에 들러붙으며 그 크기를 줄이는 검은색 메탈 팔찌에 눈을 떼지 못했다.
왜 한예리가 아니라 최태수가 가지고 있을까. 최태수가 한예리에게 뭔가를 받고 팔았던 것일까.
“아니지.”
난 고개를 흔들어 그러한 의문을 흩뜨렸다. 뭐가 되었든 나쁠 건 없지 않나.
결과적으로 한예리에게 갈 전력을 뺏어온 거고, 최태수에겐 이 물건으로 받았을 어떠한 대가가 날아간 거고, 나에겐 보물이 굴러온 것이니 말이다.
단지 지금 내게 있음이 중요할 뿐이다.
“이런 걸 묵혀둘 순 없지.”
비루했던 시절의 난 항상 상상해 왔다.
비록 내 이능이 자연계가 아니지만서도, 이 [공간의 팔찌]가 나한테 있었으면 어쩌면 내 인생이 어쩌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속성] : 원거리 마력 간섭 페널티 감소.그도 그럴 것이 이능은 마력을 통해 이뤄지는 특정한 작용. ‘원거리 마력 간섭’이 자유롭다는 말은 곧 이능의 작용을 멀리서 할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이를 [인벤토리]에 대입해 보자면 신체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도 사물의 수납과 인출을 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래도 이능 자체가 다르니 해봐야 알 터.”
난 눈을 감고 천천히 마력을 허공에 퍼뜨렸다.
단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마력을 멀리까지 퍼뜨려야 했으므로 높은 [마력] 수치가 필요했고, 또 당연히 밖으로 새는 마력이 있으니 소모되는 마력의 양 또한 상당하므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히.’
더구나 최악인 건 지금 내 상태는 각혈한 바로 다음 날이라는 거다.
어떠한 치료도 받지 않아 마력의 통도는 여전히 찢긴 상태라, 이때의 무리한 마력 사용은 필히 영구적인 손상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보통은 미친 짓이겠지만…….”
그러나 난 강행한다.
[속성] : 원거리 마력 간섭 페널티 감소.이 아티팩트의 성능을 믿었다. 다만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단계마다 신경을 곤두세울 뿐이다.
아주 조심스레 마력을 꺼내어, 최대한 소실 없이 허공의 한 점에 보낸 뒤, 그곳에서 응축시켰다.
[인벤토리]를 구사한다.“……!”
아주 극미한 마력 소모량.
성공이었다.
내 의도에 따라 허공에서 튀어나온 철퇴.
천창서 나타나 바닥으로 뚝 떨어진다.
약 3M 높이에서 나무 바닥에 떨어지는 쇳덩이가 바닥을 파고들기 직전, 난 다시 공간을 격하고서 철퇴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
그러니 고요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히 마구잡이로 식물을 뽑아낼 만해. 그게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갔다. 부상인 채로 행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저도 아직 보유 마력이 부족해서, 이렇게 마석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이전처럼 마석을 깨어 부족한 마력량을 보충하고, 모든 신경을 마력통제와 사물에 집중해야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모조리 생략되었는데도-
이제 공간을 격한 [수납]과 [인출]은 그저 숨 쉬듯 자연스레 행해진다.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본다.
“비록 한예리와 식물 조작의 이능도 불을 뿜는 이능도 아니지만은…….”
단순히 어떤 사물의 인출과 수납만이라도 다음의 효과는 기대할 만하다.
마침 최근에 특별한 사물을 얻지 않았나.
분류 : 중립물.
속성 : 일정 이하의 충격 무시. 일정 이하의 이능 작용 무시.
이것과 [공간의 반지]의 조합은 이론상 썩 괜찮다.
“일종의 방어벽 같은 거랄지.”
난 내 주변에 [차폐막] 꺼내어, 나를 에둘러 싼다. 굳이 손을 뻗을 필요도 없었다.
거리와 무관하게 사물의 [인출]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음에, 동서남북을 포함한 팔방(八方)에 각각 차폐막을 세우는 건 단순한 사념으로 충분하였다.
“…….”
물론 결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차폐막을 두었던 위치로 손을 뻗어보면.
퉁퉁.
어느새, 1차 브레이크에서 뭇 헌터들이 뚫지 못했던 장벽이 날 굳건히 지키고 있다.
[속성] : 일정 이하의 충격 무시. 일정 이하의 이능 작용 무시.장벽. 과한 비유가 아니리라.
이미 전생에서 증명됐던바, 일정 이하의 충격 무시라는 건 B급 이하의 헌터는 흠집도 내지 못함을 의미하니.
그리고 또 하나.
단순한 방패와 비교하여 [차폐막]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저 ‘일정 이하의 이능의 작용 무시’라는 문구다.
여기서의 일정 이하란, 어설픈 [마력] 작용으로 발현되는 이능은 무시된다는 뜻.
몇몇 이레귤러를 제외하고서 현재 헌터들의 [마력] 수준이 처참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웬만한 이능이 차폐막에 막힌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이 정도면…….”
난 [차폐막]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었다.
꺼낼 때와 마찬가지로 내게서 떨어진 8개의 [차폐막]을 넣는 것은 단순한 의지의 발로면 충분했고, 소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분류] : 성장형.뿌드득. 기지개를 켜며 나는 또 하나의 기대를 해본다.
어차피 이 아티팩트는 [성장형]이다.
“종국엔 나도 한예리처럼.”
그러니 언젠간 나도 마력저항을 뚫고, 타인의 몸 안에서 차폐막을 꺼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럼 하대호가 죽었듯이 한예리도 죽겠지.”
[식물조작]으로 몸에서 식물이 자라거나, [인벤토리] 때문에 몸에 아주 커다란 이물질이 생기거나, 방법의 차이일 뿐 어차피 죽는 건 매한가지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