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1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1화
침대 위, 강예빈은 쭉 뻗은 하얀 다리를 벽에 기댄 채 옆으로 누워 있다.
피곤이 묻은 멍한 얼굴로 머리만 침대 밖에 두다가-
휙.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걸음 거리에 있는 벽이 보였다.
휙. 반대쪽으로 돌렸다. 마찬가지로 한 걸음 거리엔 문이 있었다.
“세 평은 되려나……?”
그 사이에 놓인 건 작은 티 테이블 하나.
그게 끝이었다. 대관절, 한 평이 되는 공간에 있는 건 침대와 테이블이 전부였다.
안전가옥은 말 그대로 안전가옥이었다. 아무런 편의 시설도 구비돼 있지 않은.
그곳에서 강예빈은 그저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월요일까지 있어야 한댔지?”
그 수호길드의 강혁이라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증명된 예언자에게 너무 많은 관심이 쏠려 경호 병력을 증원할 때까진 이곳에 있어야 한단다.
브레이크에 들어갈 때 폰까지 잃어버린 상황에서, TV와 PC도 없는 이곳에서 주말 내내 있어야 한단다.
“휴가 내내 게이트에서 노숙했는데.”
게이트 안에서 내내 찬바람 맞으며 이슬 위에서 잔 뒤, 그러고는 죄수처럼 이곳에 갇혀 있는 셈인데……
“흐흐흐흐흐흐.”
근데 자꾸 웃음만 나온다.
강예빈은 습관처럼 제 손에 낀 반지를 보았다. 어두운 방 안을 환히 비추는 영롱한 푸른 광채. 물론 실제로 빛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느낌이 그랬다 느낌이.
“안 먹어도 배부르다더니. 그거 순 뻥인 줄 알았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아무렴 이런 건 그 이가을한테도 몇 개 없을 텐데 말이지.
B급이나 되는 이런 장신구 아티팩트는 그 존재 자체가 귀하여 매물이 없어 사질 못하는 물건이니까.
과하게 표현하자면 부르는 게 값.
더구나 [속성]도 자신에게 딱 필요한 것만 알차게 들어 있으니 아주 효자가 따로 없었다.
“흐흐흐흐흐흐.”
그리 히죽이고 있던 중,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큰 소리로 대답하며 침대서 벌떡 일어났다. 박신혁, 반지를 가져다준 복덩이가 이제 일어났나 보다. 어제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으려나?
하여 박신혁인 줄 알고 문을 열어보니, 웬걸.
“크흠. 기침하셨습니까?”
웬 양아치처럼 생긴 남자가 문 앞에 있었다.
널리 알려진 신용과는 전혀 다른 외견을 한 남자, 강혁이었다.
“아. 네. 덕분에 안심하고 잤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혹 불편한 점이라도 있을까 해서요.”
경호까지 해주더니 편의까지 봐준다라. 그 호의적인 방문에 친절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없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더 필요한 건 없습니까?”
“안전가옥인데 편의를 바랄 수 있나요. 괜찮습니다.”
“있다면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해도, 수호 길드의 대접이 부족하면 안 되니까요.”
“정말 없어서 그래요. 하하…….”
근데 그 친절이 좀 과했다.
“다행이군요.”
한사코 거절함에도 자리를 뜨지 않으려 하니 다소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그가 힐끗힐끗 방안을 살피는 것을 보아하니 더욱이.
왠지 뭘 했나 살피는 듯한 눈치였다. 확실히 단순한 편의만을 살피러 온 것은 아닌 성싶었다.
“흐음……. 그렇군요”
그는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방문 앞에서. 문 닫기 민망하게시리.
‘왜 이러는 걸까 이 인간은?’
그래도 대한민국 2위 길드의 부길드장인데 장단 좀 맞춰줘야 하나? 강예빈은 침묵을 고수하다 적당한 시점에 입을 열었다.
“그럼 잠시 얘기라도 나눌-”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럴까요?”
강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즉답한다.
픽-
잇따라 [가속] 각성자, 강혁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뭐야?”
잔상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문 앞에 나타난다.
어느새 그의 양손엔 웬 의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하하하. 제가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그럼 앉아서 얘기할까요?”
그리 말을 잇고는…… 다시 사라진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번에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등 뒤였다.
뒤를 돌아보니 강혁이 어느새 제가 가져온 의자 두 개를 테이블 양옆에 놓고서 손을 뻗은 채로 여기 앉으라 자리를 권하고 있다.
“……빠르시네요.”
정신이 몹시 사납다.
내가 아는 그 강혁 맞나? 아니, 이래서 강혁의 인터뷰는 길드 차원에서 거절하는 건가? 충분히 그럴 만해 보이긴 해……. 첫인상과는 달리 너무 가벼워 보이니까.
“하하하하하. 보다시피 제가 가속 각성자라.”
“네. 누가 봐도 그리 보이겠네요.”
가볍게 눈을 흘긴 뒤에야 강예빈은 의자에 앉았다.
동시에 강혁이 말을 늘어놓았다.
“크흠. 어제 말씀드렸다시피 뭐 캐물어보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근데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이죠. 몇 가지 질문 좀 해도 될까요? 물론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려운 질문만 아니라면야.”
이어진 질문은 그의 말대로였다.
“그렇군요. 혹 미래에 전 죽습니까?”
예언자 앞에서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그리 물을 법한 질문이었다.
목숨 걸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헌터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아…….”
강예빈은 희미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이 예언자라 방송했다는 게, 또 사람들이 이제는 그리 믿어주는 게 확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글쎄요?”
“흠……. 예빈 씨도 모르게 조용히, 그러니까 별 이슈도 안 되고 죽었을까요?”
“글쎄요…….”
“하하하하하. 아니면 미래엔 제가 별로 활약하지 못했나 봅니다. 지금은 그래도 꽤 유명한데 미래의 예빈 씨가 제 소식을 모르는 걸 보니 아마 슬럼프라도 오나 봐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수호 길드는 멀쩡합니까? 아. 이건 대답하기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대답을 전부 회피하기만 했다.
“…….”
예언자라 했지만, 사실 예언자는 아니었으니.
방송은 그냥 박신혁이 준 대본대로 읊은 것일 뿐이니…….
새삼 지난주 방송에서 했던 발언의 무게감을 느끼자, 문득 박신혁이 어제 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아니었다면…….’
사실 일주일 전의 강예빈,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다를 게 없을지도 모른다.
예언자로 증명이 됐음에 이렇게 국가의 요청으로 대형 길드의 경호까지 받는 사람이 되었지만, 기실 박신혁이 없다면 그냥 평범한 연구원일지도 모른다.
C급 헌터로 승격한 것도, 마력회로서 기반한 이능의 성장도, 그가 제시해 준 방향을 그대로 따랐던 결과물에 불과하니.
‘뭐에 들떴던 걸까.’
강예빈은 설핏 웃었다.
“어제 무리를 해서 그런지 머리가 좀 아프네요.”
“아. 제가 괜한 질문을 해서 그런 걸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가벼운 축객령이었다. 눈치 없는 강혁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강혁이 방에 나가자, 강예빈은 그대로 침대에 풀썩 몸을 뉘었다. 갑작스레 몸이 무거워진 듯하다.
“예언자.”
그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계속 그런 척을 할 수 있을까?
방송을 찍을 때와는 격이 다른 중압감이 몸을 짓누른다.
똑똑.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않으려 했다. 혹시나 또 누가 예언자를 찾을까 봐.
“박신혁입니다.”
그런데 박신혁이었다. 이곳까지 이끌어준 사람. 문을 여니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네.”
그는 들어오자마자 티 테이블 위로 꽤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놓는다.
“이번에 찍을 방송에 관한 내용입니다. 앞부분은 내용 요약이고, 뒷부분은 대본입니다. 저번처럼 적당히 각색하셔도 좋습니다.”
“아…….”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는, 또 누군가 앞에서 거짓된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저 종이를 확인하기 꺼려진다.
“내용이 많네요…….”
강예빈은 무기력하게 그것들을 들어서 멍한 눈으로 짧게 훑었다.
슬쩍 첫 번째 장만 봤는데도, 스케일이 아주 어마무시했다.
[내주 월요일, 새로이 생성되는 게이트 2,000개.]게이트가 새로 추가된단다. 2,000개씩이나.
[차후 지속적인 브레이크 발발. 2차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 4개월.]4개월 뒤에 브레이크가 또 일어난단다. 그 이후로도 계속.
[기존의 게이트와 추가될 게이트 포함, 총 미공략 게이트 2,391개. 2차 브레이크 예상 사상자, 10만 명.]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라 한다.
‘사상자 10만 명…….’
그런데 무덤덤하다. 솔직히, 아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예언자라 믿는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야 한다는 압박감만이 가슴을 먹먹히 채우고 있다.
곧 그 심정이 혼잣말처럼 입 밖으로 나왔다.
“잘할 수 있을까요?”
“네? 갑자기 무엇을?”
“예언자 노릇이요.”
이 A4 한 장마저 무겁다.
자신이 벌인 일의 스케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실감했다.
“전 예언자가 아니잖아요. 그냥 당신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을 뿐이니.”
“…….”
대답은 없었다. 잠시간 침묵을 지키는 박신혁. 다만 그를 이해한다. 이런 약한 모습에 실망하고 있진 않을런지…….
“…….”
그러나, 꽤 오랜 침묵 뒤에야 입을 떼는 그의 말은 예상외였다.
“예빈 씨가 지금 어떤 심정인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예빈 씨가 조금 곡해하는 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애초에 우리는 예언자가 되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 말처럼 예언자 노릇을 하려는 거지.”
그의 눈이 올곧다.
어떠한 확신을 담은 듯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하려는 건 미래를 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10만 명이 죽을 것을 맞히는 게 우리의 목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10만 명이 죽지 않게 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지.”
“아…….”
“물론 우리가 공표한 내용이 언젠가 틀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틀린다 하더라도, 몇 번 넘어진다 하더라도, 그 의도조차 폄하되진 않을 겁니다.”
그가 가볍게 웃었다.
“게다가 꽤 그럴듯한 변명도 있지 않습니까? 애초에 말을 꺼낸 순간 미래를 바뀔 수가 있다는.”
그러곤 다시 표정을 굳힌다.
“더구나 예언자라는 역할에 매몰되지 마세요. 당신은 예언자가 아니더라도 당신이 생각하는 당신의 가치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입니다. 저는 압니다.”
신기한 일이었다.
‘…….’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 따라 자신의 마음도 같이 요동친다.
방금까지의 현타가 그의 몇 마디 말로 쉬이 일단락된다. 무엇을 고민했었나 무색하게.
“됐어요. 비행기를 뭐 이렇게 대놓고 띄워주나.”
여전히 A4 용지는 무거웠다. 그러나 분명 아까처럼 무겁지는 않았다.
[협력할 만한 단체 : 수호길드, 바람살 길드……]글씨가 눈에 들어오니, 그제야 수기로 쓰인 게 눈에 들어왔다. 첫 장도. 두 번째 장도. 마지막 장까지. 모두 수기다. 타이핑하고 인쇄하는 게 마땅치 않았던 것인지?
“언제 쓴 거예요?”
“쓰자마자 온 겁니다.”
고개를 돌리니 그제야 그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시체가 따로 없는, 거의 죽어가다시피 하는 안색.
저이는 저런 상태로도 이걸 준비했단 뜻이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정말.
“그 상태로? 어제 각혈했다더니.”
그런 그가 어깨를 으쓱한다.
“이제 치료받으러 갈 거니까 조금 무리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그렇게 무리를 하면 회복이 더 더디잖아요. 아는 치유사가 운영하는 병원이 있으니까 지금 바로 거기부터 가보세요.”
“괜찮습니다. 찾아가려는 곳은 정해놨으니.”
이어진 그의 말을 들었을 땐 가히 말리고 싶었다.
“이가을. 그녀에게 가면 완치에 1분도 안 걸릴 겁니다.”
저런 상태론 이가을한테 안 가는 게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