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11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11화
찌르르르르.
여름의 풀벌레 소리는 낭만적이었다.
저물어가는 석양이 그의 어깨에 걸쳐지는 장면은 근사했다.
테라스.
대저택의 고풍스러운 무드와 정갈히 관리된 정원의 열기가 맞닿은 이곳에서 슈트와 원피스를 착복한 우리의 공간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적당한 바람, 저녁 여름의 온도, 노을의 조명, 엠버는 이 모든 게 좋았다.
“오해하지 마시길. 모두에게 말했듯, 저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딱 방금까진.
“그런데 왜입니까?”
그에게 하는 첫 반문이었다.
“혹, 여왕 폐하께서 저를 영국으로 보내달라 하셨습니까?”
혹 미리 따로 얘기한 게 있었냐고.
“아니면 클랜원으로서 제게 결격사유가 있습니까?”
모르는 사이에 뭘 잘못한 게 있었냐고.
“그런 게 있을 리가요.”
박신혁이 즉시 부정했다.
“맹세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엠버 클랜원이 잘못했다 하더라도, 제가 엠버 클랜원을 내칠 일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럼-”
안심이 드는 만큼 의문도 들었다.
“어째서 헌터 일을 그만두라 권하십니까?”
“지금 엠버 클랜원의 몸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면?”
“이대로라면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는다?
그걸 말하는 그의 어조가 너무 담담해서 덩달아 와닿지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관리만 잘한다면 건강엔 아무 이상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엘리의 말이 맞다면, 완치도 가능하고요.”
“……아.”
엠버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박신혁 클랜장이 자신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경각심을 갖고 좀 철저히 관리하라고. 사실은 조금 독한 감기에 걸린 게 아닐는지.
-마력의 경우 처음 게이트가 생겨난 날 바로 그 존재를 인지했었는데, 원기는 아닙니다. 다루는 것은커녕, 존재조차 모르겠으니 저는 원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 사, 살이…… 찔 줄이야.
안 그래도 요새 무뎌진 것을 자각 중이었다.
착잡한 심정으로 물었다.
“관리라 하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건강을 유지하는 대가치고는 아주 쉽습니다.”
그는 정말 쉽다는 듯 말했다.
“앞으로 훈련 시간을 줄이고, S급 이상 게이트의 출입과 더불어, S급 몬스터가 출현하는 모든 전장의 참여까지 전부 금하면 됩니다.”
“…….”
그러나 엠버에겐 쉽지 않았다. 물론 평범하게 사는 이들에겐 그건 아주 쉬운 일이겠으나.
“지금부터 어떠한 순간에도 엠버 클랜원은 전력을 다하면 안 됩니다.”
게이트가 열린 이후, 오직 강해지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엠버에겐 그럴 수가 없었다.
잠시의 부진마저 위기라고 느끼던 엠버였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겁니까?”
그런 자신에게 그의 말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잠시의 부진도 허용치 않았던 지난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었으니.
-혹 헌터 일을 그만두실 생각은 없습니까?
그건 자신에게 정녕 어려운 일이었다.
“네. 그래주셔야 합니다.”
“…….”
엠버는 박신혁의 강요 아닌 강요에 즉답하지 못했다.
* * *
나는 먼저 테라스를 나섰다.
‘머리가 복잡하겠지.’
엠버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후우우우.
내뱉는 한숨은 깊었다. 엠버에게 경고를 전하는 건 내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떻게 말을 전할까 지난 한 달을 고민했었다.
“더 일찍 말했어야 했나. 아니면 안정이 된 후에?”
그래도 말하긴 말해야 했다.
오늘 말하는 게 시기상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해당 사실을 그녀에게 전해야 했던 것은 맞다.
“엘리의 말을 마냥 부정하다가, 최악을 맞을 수는 없으니.”
지는 노을이 붉게 보였다.
나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떠한 개입으로 레비아탄 안에 아스날인들의 흔적이 지워졌다고 해도, 레비아탄의 원기가 있다면 그곳엔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
나는 내가 진행하는 모든 것들이 최선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엠버만 생각한다면야.”
엠버를 위해서라면, 레비아탄의 심장 안에 정말 문명의 흔적이 있길 바란다.
-내 패배를 인정해. 그렇다고 날 너무 쉽게 보면 곤란하지. 포로 교환에서 수작을 부린 게 너뿐일까? 엠버가 과연 멀쩡할까?
……
-엠버을 구하고 싶다면 최초의 SS급 게이트 브레이크로 가.
죽은 엘리의 말대로.
엠버가 엘리로 인해 최악을 맞게 되더라도, 최초의 SS급 게이트 브레이크에 그 해결책이 있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과연 맞을까?”
원수의 말이 맞길 바라는 어지러운 심정이었다.
오솔길을 걷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박신혁. 네 눈엔 내가 미친년으로 보이겠지.
노을이 머무는 하얀 나무가 사람의 얼굴로 보였다. 나무의 얼룩이 눈코입이 되어 엘리의 표정을 만든다.
-근데 말이야. 세상이 망하기 전에 사람들은 뭐를 할 것 같아?
-입 닫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과연 사과나무를 심을까? 아니면 이루지 못했던 마지막 욕망을 채울까?
엘리는 제 딴에 그리 말했었다.
-내겐 그래. 어차피 망할 세상이야. 아스날인도 게이트를 감당하지 못했는데, 그들보다 열등한 인류가 무슨.
어차피 세상은 망할 것이니.
-나는 그저 미리 멸망을 알고서, 가장 먼저 욕심을 채웠던 것뿐이야.
그냥 마음대로 살아본 거라고.
-개소리하지 마.
악인의 비틀어진 궤변일 뿐이다. 같은 논리라면 시한부 환자들은 전부 본인의 욕심만 채우는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모두가 엘리와 같다면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세상은 그렇게 모나지 않다. 나만 해도 내일 세상이 망한다고 하면, 강예빈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것이고, 한예리가 얼마나 번듯하게 자랐나 자랑할 것이고, 주진헌과 술 한잔을 나눌 것이다.
-네 범죄를 합리화하지 마.
엘리의 변명은 내게 어떤 동정심도 이끌어내지 못했으나.
-박신혁, 너도 편하게 살아. 어차피 다 죽게 되어 있어. 41차 게이트 브레이크도 못 막았으면서, 미래를 바꿔봤자 얼마나 더 살까? 끽해야 20년도 채 못 살고 전부 뒈질 텐데.
-난 너와 달라.
다만.
-96차 게이트 브레이크가 아니라, 96차 게이트 브레이크까지 터진다 해도, 난 계속해 바꿀 거다. 미래에서와 달리, 네가 오늘 죽는 거처럼.
엘리의 말이 진실일 경우에 대비해, 최악을 대비할 필요성은 있었다.
“……이전과 다르게 대비해야겠지.”
이른바, 새로운 종말을 준비해야겠지.
엘리가 본 96차 게이트 브레이크는…… 내가 겪었던 미래의 지옥보다 훨씬 절망스러울 테니.
“SS급 게이트 브레이크 이후로도, SSS급 게이트 브레이크도 정리해야 해.”
걸을수록 어깨가 무거워진다.
미래의 기억들이 내 어깨에 매달려 자꾸만 나를 아래로 잡아끈다.
“마력 회로도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더 높은 등급의 마석도 비축해야 할 것이고, 세트 아티팩트도 전부 모아야 하겠고…….”
강해져야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인류 전체가.
“그러니 엠버도 그래야 할 텐데…….”
입이 텁텁했다. 날갯짓을 하는 나방이라도 입에 담은 기분이다.
나무 그림자는 점점 길어진다. 노을이 저렇게나 붉었던가. 엠버의 저택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다. 처음 밟는 오솔길이 점점 익숙해진다.
그러다 슬슬 해가 완전히 저물 즈음이었다.
“신혁 씨!”
강예빈이 멀리서 달려온다.
파티용 원피스를 차려입고서 구두를 신은 채로 달려오는 그녀는 누가 봐도 뭔가에 들떠 보였다.
“레비아탄의 주름이 뭔지 알 것 같아요!”
한 손엔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격하게 뛰는 중 붕붕거리며 그것을 들고 뛰어오는 게, 웬 만화 캐릭터와 같아서 실소를 자아낸다.
나는 침울한 기색을 털어내고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겁니까?”
“레비아탄의 주름이요. 보시면 알 거예요. 그래서 들고 달려왔어요.”
파티 내에서 계속 들여다보고 있던 게 성과를 맺었나 보다.
그녀는 내 옆으로 와 태블릿의 화면을 공유했다. 혈관에서 나오는 길에 기록한 갈림길의 주름을 도식화한 사진이 보였다.
“주름이 전부 다 달랐잖아요. 깊이와 간격이 전부.”
“그랬었죠.”
“전부를 한 번에 고려하면 너무 복잡할 것 같아서, 일단 주름의 유무만 체크해 봤거든요?”
그녀가 여전히 들뜬 어조로, 도식화한 주름이 단순한 검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을 짚었다.
“지나가던 누군가 슬쩍 그러더군요. 예언자님. 이거 바코드냐고.”
바코드.
하얀색 바탕에 검은 막대로 이뤄진 숫자.
“간격과 깊이는 전부 무시하고, 모든 주름을 이진법으로 치환해 봤어요. 그럼 이건 10000101010이 되고.”
그녀가 태블릿의 화면을 쓸어, 다음 숫자가 적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럼 이건 1101110101010.”
“또 이건 111010111010011.”
…….
마지막 장이에요. 마구 사진을 넘기던 그녀가 이후 본인의 추측을 정리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진수의 가운데에 있는 101001이란 숫자예요.”
다음 사진엔 여러 사진이 하나의 사진으로 병합되어 있었고, 각각의 사진엔 공통적으로 특정 숫자에 빨간색 표시가 되어 있었다.
“여기도 101001이 있고. 여기도 101001이 있어요.”
그 결론은 간단했다.
“정리하자면 각 갈림길에 있던 주름엔 101001이라는 숫자가 정말 자주 보여요.”
“아.”
혈관의 갈림길마다 반복되는 동일한 숫자.
“우리에겐 숫자지만-”
“아스날인에겐 숫자가 문자라면?”
“따다따다다닥. 101001. 따다다다다닥. 100001.”
그리 우는 항체에겐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는 숫자.
“네. 역시, 바로 아시네요. 끼워 맞추기일 확률이 높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가정한다면.
그렇다면 저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어쩌면.
“심장을 의미할 확률이 크겠습니다.”
심장이 될지도 모른다.
레비아탄에게도 피가 나오고 들어오는 곳이 심장이라면, 충분히.
혈관에 쓰인 정보 중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가 심장일 거라는 추측은 그럴싸할 것이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해볼 만합니다.”
나는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무턱대고 아무 갈림길이나 들어서는 것보단, 차라리 어떠한 가정을 하고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리라.
“내일부턴 101001이라는 주름을 찾아서 탐색을 시작해 보죠.”
그리고 며칠 뒤.
“꽉 잡아!”
우린 그 가정이 맞다는 걸 확인한다.
쿵쾅.
어쩌면 레비아탄의 혈액의 순환 속도는 느릴지도 모른다.
쏴아아아아아아-!
그러나 레비아탄의 세포만 한 우리 입장에서는 이제껏 겪었던 가장 격한 해류보다 거셌다.
쏴아아아아아아-!
탐사 중 문득 들어선 혈관의 혈류에 우리는 그대로 휩쓸린다.
뚝.
서로를 묶은 끈이 끊어졌다.
“신혁!”
나는 혈관 벽을 박찬다.
미친 격류에 떠내려가는 이가을을 붙잡는다. 단단히 그녀를 품에 안고서-
“일단 돌아갑시다!”
쏴아아아아아아-!
피가 흐르는 소리에 묻히지 않게, 가장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