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17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17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아?”
“아직.”
동생의 만류에도, 이자벨라는 이능의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 방출된 마력이 모래에 스며들자, 하얗던 모랫바닥은 어느새 언옵테늄의 금속 덩어리로 [변환]되어 하얀 광택을 발한다.
마지막 한 줌의 마력마저 C급 마력 회로에 쏟아부은 후에야 이자벨라는 [변환]을 마쳤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되는 것 같은데 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뜨거워진 회로의 과열을 달래는 일이 달갑다. 오전에 [변환]한 언옵테늄의 작업량은 어제의 세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결과가 극히 만족스러우니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았다.
“차라리 클랜으로 들어가 마력 회로부터 배운 다음, 한국에서 수단으로 언옵테늄을 웜홀로 보낼 걸 후회될 정도야.”
여태껏 수단에서 함께 버텨왔던 동생에게 전하는 말도 농담이 아니다. 그랬다면 적어도 성벽만은 이미 완성했을 테니까.
“그건 나도 동감해. 마력 회로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어제 같이 회로를 겪었던 알버트도 알 테지.
어제는 걱정된다고 혁예 클랜의 캠핑카까지 따라오더니, 오늘 아침엔 박신혁 클랜장이랑 잘해보라고 했었던가?
고작 하루 사이에 바뀐 태도엔 박신혁에 대한 호감이 가득했다.
“그런데 어차피 제주도로 갈 건데 그렇게 변환에 열을 올릴 필요가 있어?”
아마 동생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혁예 클랜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걸 거다.
“속단하지 마.”
그러한 동생의 마음은 알지만, 이자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를 받아줄지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잖아. 그리고 너도 알잖아? 내가 여태껏 얼마나 많이 지원 요청을 했는지.”
국가든, 길드든, 기업이든, 브레이크 이후 감쪽같이 사라진 국제 구호단체든.
수단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었지만, 대다수가 응답하지 않았다.
“혁예 클랜뿐이야.”
도움을 준 건 오직 혁예 클랜뿐.
다시 말하면, 한국의 정부 역시 도와준 적이 없었다는 거다.
게다가-
“이전에야 고위 각성자라면 두 팔 벌려 환영했다만, 이제 엘리 세리아드 때문에 각성자를 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아.”
엘리 세리아드 이후, 국가나 길드는 실력 이외의 것을 보기 시작했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인성’이랄까.
“수단의 이미지가 좋다고 할 수 없잖니?”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해 멸망하기 전에, 인간으로 인해 먼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만연한 시국이었다.
그 일례는 매우 가깝다. 이미 수단은, 순혈주의자를 받은 결과로 내부서부터 썩어가고 있으니.
“한국의 이민자 방벽이 높은 건 그래야만 했던 거였어. 이제 이해가 가.”
“그래도 박신혁 클랜장님이 힘써주신다면-”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야.”
이자벨라는 동생의 말을 끊었다.
제주도 이주에 대한 한국 정부의 거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선행되어야 할 큰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만약 제주도에 가는 걸 선택한다면, 우린 누굴 데려가야 할지 정해야 해. 국가인 한국이 아프리카 대륙인들을 모두 받아줄 수는 없어.”
“……그래야겠지.”
어제 박신혁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수단의 전부를 데려갈 순 없습니다. 데려가서도 안 되겠고요.
-네. 동의해요.
필요악을 데려가지 않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제주도에 간다면, 누굴 데려가야 할지 판단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슬슬 기존의 사람들과 순혈주의자들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마약과 매춘에 빠지면 누구든 벗어나기 힘들었다.
-누구를 데려갈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이성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박신혁 클랜장의 말대로 미리 대비해 둘 필요성이 분명 있다.
그러면 사람을 골라야 할 텐데…….
“그런데 그게 어려워.”
“뭐가?”
“누구를 데려갈지 선택한다는 게.”
웃기잖아.
“사실 제주도로 가면 여기보다 나아질 게 확실한데, 누가 가고 싶지 않겠어.”
그렇다고 모두를 데려갈 순 없고.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마치 특권을 부리는 거 같잖아?”
혁예 클랜과의 인연을 빌미 삼아,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한다는 게.
“괜찮아. 누나는 여태까지 수단을 위해서만 살아왔어. 이제 그 정도 특권은 좀 누려도 돼.”
“……잘해줬다고, 목숨값을 매긴다라. 글쎄. 목숨을 주었다 뺏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약자라고 선한 게 아니니까.
그때 알버트가 가볍게 어깨를 짚었다.
“아니, 누나가 책임질 필요는 없잖아? 여태까지 지켜줬으면 됐지, 이후까지 신경 써줘야 해?”
“그래도 아직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무슨 유기견 돌보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아니면 내가 좀 알아볼까?”
“뭘?”
“어제 박신혁 클랜장님이 그랬잖아. 회로를 알려주면서, 우리에게 견제를 하라고. 견제에 더해, 정보도 좀 알아내자는 거지. 내성의 외곽 쪽에 들어가서.”
“외곽?”
내성의 외곽은 엄연한 적들의 진영이었다.
적진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에, 이자벨라는 알버트의 급한 성미가 우려되었다.
“들어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곧 창설될 수단 길드를 모집하는 척, 입단을 위한 테스트인 척, 그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전투해 보는 거야.”
“그리고?”
“함께 게이트를 공략해 보면 누가 순혈주의자처럼 불리해진 순간 내빼는 새끼인지, 그게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겠지.”
문득 동생의 아티팩트에 잔뜩 묻어 있는 피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 마.”
“왜? 이미 많은 사람이 외곽 쪽으로 갔잖아. 그들 중 제주도 데려갈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그 수밖에 없어.”
“지금 하고 있는 걸로 충분해. 너 어제는 밤새 외곽 순찰 돌고, 방금까진 몬스터 웨이브를 막다가 왔잖아.”
동생은 Coin이 순혈주의자한테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하여, 어젯밤부터 그들의 사업장에 훼방을 놓았다.
몬스터로부터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존재하는 순혈주의자들의 명분을 희석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몬스터와 전투를 하고 이제 막 복귀한 시점이었다.
“견제 이상은 하지 마. 알았어? 박신혁 클랜장님도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잖아?”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회로는 시스템이 주는 특혜가 아닙니다. 마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기술인 건 물론, 회로가 과열되면 도리어 회로를 운영할수록 내상을 입기도 하죠.
과열된 회로를 식히고 있는 이자벨라는 왜 박신혁이 마력 회로라는 힘을 주고 그 한계점부터 말했는지 알 듯했다.
아직도 배 안이 뜨겁다. 회로를 사용하는 데에 대한 대가는 분명 존재했다.
“여기까지만 해.”
그러니 주어진 힘에 취해, 동생이 더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 의미를 눈에 담아 동생을 노려보니-
“알았어. 알았어.”
뒷걸음질 치는 알버트.
“너 괜히 나섰다가, 뭔 일 생기면 다신 안 봐. 알았어?”
“알았다니까?”
“농담으로 듣지 마.”
“네~ 알겠습니다~”
“……가.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늘 밤은 푹 쉬어. 아. 가는 길에 박신혁 클랜장님한테 뭐 필요한 거 있냐만 여쭤보고.”
“알았어. 그럼 수고해.”
알버트의 항복 의사를 확인한 뒤에야, 이자벨라는 눈에 힘을 풀었다.
* * *
이틀 뒤.
짝짝짝.
쿠에시는 멀찍이 떨어진 전투를 보며 박수를 쳤다.
“하…… 진짜 혁예 클랜이 대단하긴 하네.”
박신혁이 빠진 전장이어도 웨이브는 분쇄되었다.
레비아탄.
서쪽 바다엔 레비아탄이 있었다. 늘 연안으로 올라와 뒤통수를 치는 세이렌 같은 몬스터는 혁예 클랜이 도착한 이후 포착되지 않았다.
주진헌.
가장 많은 몬스터가 몰려드는 동쪽에선 주진헌이 지원 하나 없이 홀로서 틀어막고 있다. 순수 무력만 치면 세계 2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되는 위용으로.
강예빈.
북쪽의 몬스터들은 이리로 몰려드는 족족 정지한다. 강예빈이 맡은 방면이었다. 몬스터는 원거리 타격자의 단순한 표적에 불과했다.
이가을.
남쪽에선 최고의 힐러가 검을 들고 몬스터를 베어낸다. 치료만 해주겠다더니, 하도 답답한 나머지 본인이 직접 전장에 뛰어들었던 게 불과 1분 전. 이가을을 중심으로 치고 나간 타격대가 벌써 몬스터 정리까지 끝냈다.
단 세 명만 투입됐을 뿐인데도, 전장은 바뀌었다.
심지어 박신혁은 며칠 전부터 캠핑카에 틀어박혔고, 김우주와 엠버는 아예 뒤에 빠져 있는 데도.
“한예리, 박신혁, 김우주, 엠버는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며칠간 수단의 방위를 도와준다던 혁예 클랜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불만은 없었다. 저들이 없어도 몬스터 웨이브는 속절없이 분쇄되고 있었으니.
그리 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감상만 해도, 어느새 오늘의 몬스터 웨이브도 피해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Coin의 수거는 우리 수단인들이 하면 좋을 텐데…….”
이제 보상의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바라 마지않던 시간이겠지만, 몬스터의 산물이 잔뜩 깔린 전장을 보는 쿠에시의 눈길엔 불만이 가득하다.
“마음대로 가져가지 마세요! 소유권이 있는 물건입니다!”
저 알버트 때문에.
“저 앞잡이 새끼.”
지 누나 믿고 나댈 때부터 거슬렸는데, 지금은 아예 혁예 클랜의 개가 되어 수단인의 성장을 막고 있다.
“혁예 클랜의 지원이 끊기고 나서야 정신 차리겠습니까? 도움을 줬더니, 자신의 것을 탐하는 이를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알버트가 연설하듯 전장의 가운데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쿠에시는 고까웠다.
“후회해 봤자 이미 늦습니다. 혁예 클랜이 도움을 줄 때, 그들에게 최선을 다합시다, 우리.”
전장 깔린 몬스터의 산물들이 전부 혁예 클랜의 소유물이란 얘기에 사람들이 주춤하는 게, 역겹다.
“X같은 매국노.”
수단인이 Coin을 줍는 게, 수단인이 좋아하는 매춘과 마약을 통해서, 전부 우리의 무력으로 치환될 텐데.
왜 서로 이득이 되는 관계를 막으려는 거지?
같이 힘을 합쳐 싸우자고 해놓고, 왜 훼방이나 하고 지랄일까.
“우리도 이제 남들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Coin의 가치는 여러분이 생각한 게 전부가 아닙니다.”
삼 일 전부터 사업을 아주 대놓고 훼방하더니.
“비각성자가 각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Coin인데, 그 Coin을 그렇게 허투루 써서 되겠습니까?”
혁예 클랜이 오기 전까지 입 닥치고 있던 게, 저 혁예 클랜을 등에 업고 나불거리고 있다.
“언제까지 마약에 찌들어 사실 겁니까? 언제까지 하루 벌어 하루를 사실 겁니까? 당장만을 보지 말고 멀리 보세요, 여러분.”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꽤 컸다.
혁예 클랜을 등에 업고서 하는 저 설득은 실제로 꽤 효과가 있었다. 이미 매출은 반 토막 났으니까.
“알버트 저 새끼 죽일까요?”
옆에 있던 애꾸눈, 멕스웰이 자신의 어지러운 심정을 짐작한 듯 낮게 읊조렸다.
“놔둬. 괜히 보고만 있겠어? 이자벨라가 최근 한창 성벽 올리고 있는데, 굳이 문제를 만들 필요야-”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알버트를 죽일 방법?
“우리 애들 중에 겉보기엔 깨끗한 애들이 있잖습니까?”
아아.
떠오르는 부대 이름이 있었다.
BBB단.
혹여나 첩자로 쓸 생각으로, 과거가 깨끗한 이들로 구성한 순혈주의자 집단.
그들은 본대와의 연결점도 없고, 마약과 매춘을 이용한 전적도 없다.
“저 알버트가 걔들한테 접근했다고 합니다.”
“왜?”
“길드 하나를 만들자던데요? 뭐 새로운 수단을 만들어보자나 뭐라나. 애들이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답니다.”
“그래?”
이건 꽤 흥미로운 얘기였다.
쿠에시는 애꾸눈의 멕스웰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진행했어?”
“예. 일단 길드 가입은 해뒀습니다. 이후 애들이 실력이 좋다 보니, 저 알버트가 계속 게이트 하나를 같이 클리어해 보자고 한다는데…….”
멕스웰이 음산하게 말했다.
“그 게이트에서 목을 따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알버트를 감당할 수 있겠어?”
“저 새끼 혼자 움직이는 것 같던데, 놈과 우리 애들이 들어갈 게이트로 정예 조직원들 집어넣으면 끝이겠지요. 놈이라 한들 숫자 앞에 별수 있겠습니까?”
꽤 괜찮은 생각 같았다.
알버트를 게이트에서 죽일 수만 있다면-
“하기야 지 발로 게이트에 들어가 거기서 뒤진 거라면 혁예 클랜과 이자벨라도 책잡을 수 없겠지.”
꽤 괜찮은 함정 같았다.
쿠에시는 여전히 연설 중인 알버트에 시선을 두며, 낮게 말했다.
“한번 해봐. 필요한 게 있으면 미리 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