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26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26화
세리아드 저택.
엠버의 침실.
톡톡.
침대에 걸터앉은 박신혁이 자신의 뒤에서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 주는 게, 엠버는 좋았다.
톡톡.
어떠한 거절의 의사도 내비치지 않는다.
그 무의미한 행위에도.
사실 S급 각성자의 육체론 젖은 채로 찬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잠을 자도 괜찮다. B급 헌터라 해도 배탈은 물론 감기도 나지 않을 것이다.
툭툭.
그토록 아무런 목적이 없는 행위였기에, 오히려 진심만이 전달된다. 비유하자면 시들기에 지금이 더욱 소중한 꽃처럼.
엠버는 이 시간이 좋았다.
“보고 싶었습니다.”
아직 보고 싶다는 말에 어떠한 대답도 꺼내지 않은 박신혁에게, 이다음의 말을 하고 싶어 한 번 더 꺼내본 말.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대답으론 기분 좋은 울림이 전해진다.
보고 싶다는 말에 대한 답변으론 핀트가 어긋나나, 가슴에서 이는 욱신거림과 함께 한편에 온기마저 번진다.
“당신은 누군가, 아니, 누구나의 우상이었습니다.”
“그, 그렇진 않습니다.”
“당신은 어느 영화배우보다 아름다웠고, 영국을 대표하는 자연계 헌터이자, 가히 귀족의 명예라는 걸 의인화한 존재였죠.”
달가운 과한 칭찬에, 얼굴로 올라오는 기분 좋은 열기가 뒤늦게서야 옅어질 때쯤.
“그리고 조금 더 개인적인 감상을 전하고자 하면, 제게 처음으로 개인적인 인상을 남긴 건 WAC 경기였습니다. 엠버 당신은 A급 4강에서 그쳤지만, 하대호 길드장은 A급 체전에서 우승을 했었던 대회였죠.”
이때 그의 말이 뭔가 요상하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한예리에게 패해 4강에 머물렀던 건 사실이나, 우승자가 달랐다.
“A급 체급전의 우승자는 주진헌 클랜원이 아닙니까? 게다가 하대호 길드장은 무제한급으로 출전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하대호는 S급 헌터가 참가하는 무제한급으로 출전했었지 않았나.
“아니었습니다. 그땐 둘 다 A급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여 비공식적으로 하대호 길드장에게 대련을 요청했었죠.”
“네?”
의문은 깊어진다. 박신혁을 만나기 전에 자존감만으로 살아왔던 자신이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건 그렇다 쳐도, 그땐 둘 다 A급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나중에 수호 길드의 선배에게 당신이 패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
모든 게 이상하다. 선배? 혁예 클랜장인 그에게 수호 길드의 선배? 한국말에서 선배란 단어는 보통 같은 소속일 때나 쓰이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선배라니.
“선배 말씀입니까?”
“네. 제가 수호 길드에 몸을 담은 적 있다는 얘기입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그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다. 농담은 아닌 듯하다.
-당신은 6개월 뒤에 잠깐 한국에 들어와서 하대호에게 대련을 신청합니다.
혹여나 처음 만난 날 그가 했던, 이 얘기의 연장선인지.
“선배에게서 당신이 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게, 대중으로서가 아닌 개인으로서 엠버 클랜원을 접한 첫 사건이었습니다.”
“…….”
“그리고 그다음 당신을 보기까진 오래 걸렸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이 WAC지만, 그걸 말하는 건 아닐 거다. 지금 그가 하는 말의 흐름을 따른다면.
“십 년도 넘게 시간이 지나, 영국이 망하고 한국으로 왔을 때였습니다.”
“영국이…… 망했습니까?”
“네.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때 남아 있던 국가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니까요.”
깨닫는다.
이제껏처럼 강예빈의 미래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그는 본인이 본 미래를 본인의 색깔을 입혀서 말하고 있음을.
“네. 맞습니다. 저에겐 강예빈이 전해준 미래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가 추측이 옳다는 것을 시인한다.
“너무 갑작스러우면서도…… 들으니 모든 게 이해됩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손에 굳은살 하나 없는 그가 어찌 그리 검술을 잘 다루는지. 왜 예언자인 강예빈이 그를 클랜장으로 내세웠는지.
“그래서였군요. 저를 그토록 잘 아는 게.”
“네. 당신의 연인으로서, 가장 가까이 머물며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니까요.”
“연인……?”
욱신, 심장이 순간 옥죄었다.
미래의 자신을 사랑했었단 말이 시렸다. 그가 대하는 자신이, 고작 미래의 자신에게서 투영한 결과에 그칠까 봐.
“한예리가 클랜의 합류한 이후, 제겐 습관이 생겼습니다. 강예빈을 제외한 모든 이를 구분해야 했죠.”
그 걱정을 연장해 보면, 그의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미래의 이가을과 현재의 이가을.”
사람은 변하고 성장하고 늙는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다른, 그 시간적 간극을 박신혁은 늘 체감한다는 거겠지.
“오늘의 강혁과 내일의 강혁. 오늘의 하대호와 내일의 하대호. 오늘의 한예리와 내일의 한예리.”
박신혁이 말을 받았다.
“그리고 미래의 엠버와 오늘의 엠버. 그런데 그 구분의 경계가 당신한테는 흐릿합니다.”
“어째서입니까?”
“미래의 엠버에 대한 기억이 짙어, 현재의 엠버 클랜원에 대한 제 감정과 판단을 어렵게 합니다.”
툭툭. 그가 다시 머리의 물기를 닦았다.
“예를 들면 제가 머리를 닦아주는 게 미래에서 가져온 습관인지, 아니면 지금의 엠버 클랜원의 머리를 말려주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그의 손길은 지나치게 자연스럽다. 다른 시간대의 어딘가에서 수천 번 연습하고 온 것처럼.
“심지어 저는 당신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직접 대면한 엠버는 완성형의 엠버지만, 현재의 엠버 클랜원은 아직 성장 중이라는 걸 이따금씩 잊게 됩니다.”
“…….”
“오늘 일은 거기서 오는 제 실수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당신을 제가 알던 미래의 엠버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신경했던 것을 인정합니다.”
아픈 말이었다.
당신을 과대평가했다는 말로 들렸다. 비약하면, 기대 이하라는 말로도 들렸다.
“다만 지금부턴 오늘의 엠버로만 바라볼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내일부터라도 저와 함께하겠습니까?”
“……함께하면 어떤 걸 하게 됩니까?”
“늘 옆에 있을 엠버 클랜원의 검술을 틈틈이 봐줄 것이며, 대련도 제한적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엠버 클랜원이 원한다면.”
그래서 철저하게 자신을 지도해 주겠다는 얘기.
다른 사람도 아닌 박신혁의 케어해 주겠다는 말인데도, 마냥 달가울 순 없었다.
-들으면 뭐 어때, 엠버가 예전의 그 엠버냐?
지난 말을 회상한 후, 엠버는 힘들게 인정한다. 현재 자신은 모자란 사람이 맞다고.
“네. 하고 싶습니다. 다만 의문이 있습니다.”
다만 수락하기 전에 한 가지는 묻고 싶었다.
“왜 제게 그렇게 해줍니까?”
보고 싶었다는 고백에 대한 답변이 너무 뾰족하기에,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미래와의 인연 때문입니까?”
“아예 없을 수는 없더군요.”
엠버는 뒤를 돌아 그의 눈을 마주했다.
미안하다는 눈길이었다. 눈빛만으로 사과를 한다면 정확히 저럴 것이다.
“……그렇군요. 어쩌면 저는 미래의 엠버가 투영된 결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
그의 침묵이, 그에게서 미래의 자신이 남긴 흔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엠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여전히 침대에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에게 허리를 곧게 편 채로 말했다.
“그럼 말입니다. 박신혁 클랜장님이 헷갈리신다면…….”
그리고 다시 이때부터였다.
“제가 빠른 시일 내에 미래의 엠버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바닥까지 떨어졌던 엠버가, 미친 듯이 다시 올라가고 싶은 건.
“제가 당신이 알던 ‘미래의 엠버’가 되기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 *
다음 날.
마침 김아람 클랜원이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박신혁의 입회하에, 동 소속의 선배인 엠버는 후배인 김아람에게 대련을 신청했고, 응낙은 바로 떨어졌다.
“김아람 클랜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셋은 대련을 위한 장소로 어느 F급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쾅쾅쾅!
열사석 탄환이 마구 날아오고, 마력과 빙결이 휘몰아치는 대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만.”
박신혁이 날아드는 모든 탄환을 인벤토리에 넣고, [빙결]을 취소함으로써 대련은 끝이 났다.
[보유 마력 : 15.2/86.2]무승부를 가장한 패배였다.
김아람 클랜원은 바닥까지 드러내도 되는데, 엠버는 그럴 수 없었으니까.
“김아람 클랜원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김아람을 돌려보낸 박신혁이 물었다.
“저라면 어떻게 김아람 클랜원을 상대했겠습니까?”
엠버는 이가을의 말을 인용했다.
“원기를 두른 채로, 김아람에게 돌격하셨을 것 같습니다.”
“네.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죠. 그러나 제가 묻고자 하는 건, 엠버 클랜원이 제한된 보유마력량 내에 김아람 클랜원을 이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또다시 인용했다.
“마력을 방출해 열사석을 멀리서 태우는 것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방금 엠버 클랜원의 방출 방법은 너무 비효율적이었죠.”
박신혁이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위 위엔 어느새, 그의 [인벤토리]에서 꺼내진 열사석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최소한의 마력 방출로도, 열사석을 태울 수 있습니다.”
곧 그의 손에서 유형화된 청색의 빛살이 공간을 꿰뚫는다.
화르륵. 광선처럼 방출된 마력에 닿은 열사석이 바로 타오른다.
자신의 마력처럼 마구 방사되지 않았다.
절정의 마력 사용을 선보인 박신혁은 말했다.
“수련의 강도를 위해 공간의 팔찌는 빼세요. 지금부터 엠버 클랜원은 마력이 보충될 때마다, 세밀하게 마력을 방출하는 훈련을 합니다.”
다시 3개월 뒤.
[103위. 김아람] [3,877위. Amber Von Seriad]엠버는 더 이상 순위에 연연하지 않았다.
랭킹이 다시 격상한 김아람과의 대련에서-
“져, 졌습니다.”
“시간을 내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김아람을 압도한 엠버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 후, 담담히 시스템 메시지를 켜볼 뿐이다.
그간의 성과는 시스템에 수치화되었고.
“클랜장님. 마력이 92.3까지 올랐습니다.”
“저와 강예빈 부클랜장 다음으로 높은 수치일 겁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엠버는 자신의 인도자에게 다음을 묻는다.
“이다음은 뭘 하면 되겠습니까?”
* * *
핏!
전방에서 달려오던 김우주가 사라진다.
시야에 없다. 엠버는 곧바로 후방으로 검을 휘두른다.
쩌저적.
[빙결]을 담은 검은 허공을 가른다. 손에 걸리는 감각은 없다.늦은 것이다.
곧바로 전방으로 몸을 던진다.
쾅!
동시에 방금 있던 위치로, 폭(爆)을 담은 김우주의 검이 낙뢰처럼 떨어졌고.
‘지금!’
몸을 수습한 엠버가 다시 그 자리를 봤을 땐.
핏!
김우주는 다시 사라져 있었다.
“…….”
이후 [조용한 발걸음]을 착용했을 김우주의 기척은 어디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
이번에도 박신혁은 대련을 중지시켰다. 김아람 때처럼, 그에게서 바로 피드백이 들어온다.
“보통의 경우, 텔레포터를 선공해서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네.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김우주는 예전의 김우주가 아니다.
어느새 가장 완벽한 암살자로 변모한 그였다.
“텔레포터 상대로 기회는 적이 나를 노릴 때뿐이죠. 그런데 엠버 클랜원은 계속 그 기회를 놓칩니다.”
그가 안대를 건넸다.
“앞으로 24시간 내내 눈을 가립니다.”
재질이 두껍다. 아마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소리마저 차단합니다.”
이어서 귀 덮개를 주었다. 이어플러그보다 몇 배나 높은 차음률을 자랑하게 생긴 그것은 무려 아티팩트였다.
“이후 제가 드문드문 엠버 클랜원에게 부유석을 떨어뜨릴 겁니다. 부유석이 [인벤토리]에서 나오는 순간, 그 찰나의 마력 현상을 포착하고, 떨어지는 암석을 피하시면 됩니다.”
“이해했습니다.”
이 훈련의 의도는 명확했다. 찰나의 마력 현상에 대응하라는 것이다.
지금은 [인벤토리]겠지만, 다음 대련 때엔 [텔레포트]가 되겠지.
“안대와 귀 덮개를 착용하세요.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수련의 첫날.
쾅!
엠버는 부유석을 머리에 맞고 기절했고.
그리고 다시 삼 개월 후.
“김우주 클랜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우주, 박신혁과 함께 F급 게이트 안으로 다시 들어와, 대련에 앞서 그간의 성과를 확인해 본다.
[마력 : 93.1]가파른 성장세는 만족스럽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가볍게 목을 꺾으며, 엠버는 김우주에게 검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