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turner who brought memories of a destroyed world RAW novel - Chapter 229
멸망한 세계의 기억을 담아온 회귀자 229화
웅웅.
뭉개진 소리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이미 죽은 거 아니야?”
“뭔 소리야? 상처가 없잖아?”
“영혼이 뽑힌 게 아닐까?”
“이번 세계에 소울이터가 있단 얘기는 없었어. 일단은 지켜보자. 숨은 쉬는 것 같은데?”
뭉개진 소음은 곧 어느 남녀의 대화 소리가 되었고.
“주변에 몬스터는?”
“방금 지나간 게 전부야.”
“못 보고 지나쳤을 리는 없어. 그렇다면 이 여자도 낙원인이야.”
그 둘 말고도 세 사람의 목소리도 추가로 들렸다.
꿈뻑.
엠버는 눈을 떴다.
“오오오. 뜬다. 뜬다. 뜬다. 요오-오스!”
지척에서 이는 뭉개진 소리가 가깝다.
냅다 소리를 지르는 이가 누군지 보고 싶은데, 여긴 밝다.
너무 밝다.
아주 오랜 시간 눈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S급 각성자인 엠버는 눈이 부셔 손바닥으로 광원을 가렸고, 길었던 명순응이 끝나서야 조심스레 손가락을 벌렸다.
뻐끔.
“물?”
저 멀리에서 해가 내리쬐는 수면에서 일렁거린다.
표면 아래로도 전부 시야가 울렁거리는 게, 여긴 해면 위가 아니라 해면 아래였다.
웅웅.
“맞아. 여긴 바다 안이야.”
아까부터 주변에서 소리를 내던 이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뻐끔.
“해마?”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해마(海馬)였다. 정확힌 해마와 인간의 형태가 반씩 섞인 반인반수. 해마인데 팔다리도 있고 머리카락도 있었다.
“안녕?”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붉은 해마가 입을 열었다. 머리칼과 같은 색인 붉은 입술이 물을 지나온 햇살에 반짝인다.
“난 에일리인데, 넌 이름이 뭐니?”
물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곱다.
엠버는 머리를 흔들었다. 팔다리가 달린 해마다. 따지자면 괴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목소리부터 생김새까지 전부 신비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몬스터?’
경계가 늦었다.
의심이 든 순간, 엠버는 급히 뒤로 물러난다.
‘말을 하는 몬스터?’
그런 걸 들어본 적이 없지만, 주변을 둘러본다.
물. 물. 물. 물.
온통 물밖에 없다.
하대호와 대련을 했었던 게이트는 초원이었는데, 여긴 왜?
“신입이 겁먹었잖아. 너넨 앞으로 나오지 마.”
의문이 겉으로 드러났을까, 에일리라 저를 밝힌 붉은 해마가 주변에 있는 네 명의 해마를 밀친다.
“알았어. 간다 가!”
“네가 우리의 대표는 아니다, 에일리. 명령하지 마라.”
“일단 와. 이럴 땐 에일리가 제일 잘할 거 아냐.”
“그건 그렇다.”
엠버는 물러나는 이들의 면면을 살핀다.
에일리라는 해마와는 다르게 차가워 보이는 해마도 있었고, 해마보다는 상어나 고래를 연상케 할 만치 우람한 해마도 있었다.
나머지들도 모두 각양각색.
분명 반인반수인데, 그런데도 인간처럼 표정과 생김새에서 분위기가 묻어 나왔다. 표정을 입힌 동물이 주연이 되는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모두가 뒤로 한껏 물러나자, 붉은 해마가 적의가 없다는 듯 갈퀴가 달린 손바닥을 보이며 멋쩍게 웃는다.
그녀의 입에서 공기 방울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십 년 만에 보는 신입이라…… 나도 좀 당황스럽네. 일단 말했듯, 난 에일리인데 넌 이름이 뭐니?”
“…….”
모든 게 생소한 엠버는 일단 눈치를 살폈다.
도륵도륵 굴린 눈동자가 에일리를 넘어 다섯 해마에게 닿자, 우람한 해마가 멀리서 외쳤다.
“에일리! 그냥 거울부터 보여줘!”
“닥쳐! 크산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차피 할 거였어, 중얼거린 붉은 해마가 웬 해초로 만들어진 소지품에서 뭔가를 꺼낸다.
“그래. 한번 봐볼래?”
거울이었다.
거대한 조개껍질 안에는 빛을 반사하는 금속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거울 같은 것 안에는-
“뭐, 뭐, 뭐야?”
해마가 있다.
에일리처럼 아름다운 해마가. 푸른 눈과 금발을 가진 해마가.
‘이게, 나?’
오른손을 들려 올리니 금발의 해마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고,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니, 금발의 해마가 멋쩍게 인사를 건넨다.
홀로그램이나, 컴퓨터 그래픽이나, 저 금속판의 뒤에만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진 게 아니라면…… 저 거울 속에 있는 해마는 자신일 것이다.
“일단은 결론부터 말할게. 그래야 나머지를 이해하기 쉬우니까.”
당혹 속에서 에일리라는 해마의 울림이 귀를 파고든다.
“여기는 몽마가 누군가의 기억으로 만든 세상이야.”
몽마?
“기억을 관장하는 몬스터. 아니, 몬스터…… 라기엔 신에 가깝지. 아무튼 우리는 지금 몽마가 만든 세상에 사는 거고.”
몬스터인 몽마가 만든 세상?
“여기서 네가 누구였든, 너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리고 네가 가져온 전부는, 그 본질만 간직하고선 특정인의 기억으로 표현이 돼.”
에일리가 힐끗 눈짓으로 자신의 손을 가리킨다.
“어렵지? 예를 들어볼까? 그거 원래 검이지? 어디 보자, 한철검?”
손에 쥔 삼지창을 본다.
들어올 때부터 손에 쥐어져 있던 이 대형 포크는……
[등급] : 에픽, S급 [분류] : 장검분명히 검인데?
시스템 메시지로도 검이라 기재되어 있는데…… 손에 쥐고 있는 건 분명히 삼지창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엔 ‘검’이란 개념이 없기 때문이야. 여기서 무기는 오로지 삼지창뿐이지.”
엠버는 멀리 떨어진 이들의 무장을 확인한다. 생긴 건 각양각색이더라도 허리춤에 매어진 건 전부 삼지창이었다.
“본질이 ‘검’이어도 이 세계에서의 표현은 삼지창으로 된다?”
“맞아. 모든 지성인이 같은 문명을 향유하는 게 아니니까. 다른 개념이 있을 수밖에 없고, 여기선 그게 누군가의 기억에서 가장 흡사한 형태로 표현되는 거지.”
“내가…… 해마인 것처럼?”
“맞아. 덮어씌워지는 느낌이랄까.”
엠버는 확인차 중얼거린다.
“모든 본질이 어느 특정인의 기억으로 표현되는, 몽마가 만든 세상…….”
일단 그렇게 암기해 보니, 예쁜 붉은 해마가 웃는다.
“똑똑도 해라. 난 이쁘고 똑똑한 애들을 좋아하는데, 우린 금방 친해지겠다.”
놀랍게도, 해마의 웃음은 고혹적이었다.
“대충 상황 파악했으면 우리 애들 좀 불러도 될까?”
“…….”
엠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적의는 없어 보였다. 만약 적이라면 이렇게 자신을 이해시키려 노력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다들 이제 와.”
에일리의 입에서 다시 공기 방울이 터져 나온다.
일행을 주변에 모은 에일리가 물었다.
“넌 종족이 뭐야?”
종족이라. 엠버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 당혹스럽다.
“이, 인간? 인간입니다.”
“아, 알지 인간. 게이트 브레이크를 통해 이 세상으로 빨려 들어오는 지성체 중 대략 2% 정도가 인간이야.”
“여기가…… 게이트 안입니까?”
“맞아. 우리는 게이트 브레이크를 통해 각각의 현실에서 끌려온 거야. 너처럼.”
너처럼. 그 말을 곱씹을 새도 없이, 에일리가 옆에서 뻘쭘히 서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해마를 가리켰다.
“여긴 아키드. 종족은 휴머노이드 AI. 예상하다시피 감정이 없는 놈이야.”
휴머노이드?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반갑다. 여기선 이렇게 말해야겠지?”
“……반갑습니다.”
날카로운 인상을 보이던 해마가 내민 손을 잡는 데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은 그 우람한 해마가 소개되었다.
“여긴 크산툴. 종족은 라고나. 응큼한 놈인데, 원래 태생이 그런 거라 이해 좀 해줘.”
“야아아아아아스!”
우람한 해마가 몸을 꿈틀거렸다. 웨이브가 무척 외설스럽다. 빡! 에일리가 그의 뒤통수를 갈긴다.
“태생이 그런 거지, 나쁜 놈은 아니야. 선을 그으면, 그 이상은 안 넘으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요오오오오오오스!”
공상 과학이나, 만화나, 소설에서나 보던 종족들의 소개가 한동안 이어졌다.
에일리는 꽃에서 진화한 퓨가족, 아키드는 휴머노이드 AI, 크산툴은 감정대로 움직이는 라고나족 등등.
대충 암기한 엠버는 근본적인 물음을 내었다.
“그럼 당신들은 뭡니까? 다 헌터인 겁니까?”
에일리가 손뼉을 치며 답했다.
“우리는 낙원인.”
그러고 보니 처음 의식이 돌아왔을 때도 자꾸 저 낙원인이란 게 저들의 입에서 언급되었었다.
“낙원인이 무엇입니까?”
“각자가 각자 세상에서 게이트 브레이크를 통해 이곳으로 끌려 들어왔지만, 결국 누군가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지성체.”
에일리가 우아하게 팔을 뻗어 양쪽에 해마의 어깨를 걸쳤다.
“그리고 낙원인들에겐 공통점이 있어.”
엠버는 귀를 쫑긋했다.
“모두 다 게이트 밖에서 이미 기억을 잃은 지성체라는 것. 너처럼.”
본질이 휴머노이드라는 해마가 말을 툭 던졌다.
“예를 들면, 나는 공장 초기화 당했어.”
* * *
세 시간 후.
크산툴이 주식이라며 해초를 건넨다.
“넌 정말 예뻐. 너처럼 예쁜 사람은 처음 봐.”
느끼한 말과 함께였다. 받을 때 손끝이 살짝 닿은 것도 왠지 고의 같았다.
“…….”
그래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조금은, 이해도 한다.
“라고나족은 다 당신 같습니까?”
“응. 내 혈족들은 전부.”
라고나족.
최고위 생명체라는 유리나족의 감정을 관장하는 지성체.
유리나족의 뇌 안에 서식하는 라고나족은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역할에 따라 기쁨, 슬픔, 분노, 탐욕 등을 담당했고, 그중 여기 크산툴은 사랑과 탐미(耽美)라는 감정을 주관했다고.
그러니까 그의 호감은 그의 본질에서 비롯된 본능이라고.
“아마 넌 원래 세상에서도 네가 제일 이뻤을 거야. 그렇지?”
“…….”
문득 한예리와 강예빈과 이가을과 이자벨라가 떠올랐지만, 굳이 그 이름들을 대진 않았다. 말해도 모를 테니.
“넌 본질 자체가 이쁠 거야. 그게 여기서 엄청 좋다?”
“어떤 점이 말입니까?”
크산툴이 과장스러운 윙크를 한다.
“아까 에일리가 말했듯, 본질이 누군가의 기억으로 표현된댔잖아.”
이제는 저 말을 조금 안다.
지금 먹고 있는 해초는 사실 돼지고기일 수도 있다.
다만 누군가의 기억엔 돼지가 없으니, 이게 단지 해초로 표현된 것이라나.
“다시 말하자면, 본질은 변하지 않아. 즉, 세계의 데이터베이스가 되는 기억은 달라져도, 이쁘다는 너의 본질은 영구적이라는 거야.”
이들의 말에 따르자면, 본질은 유지된다고 한다.
“지금은 우라노스라는 어인(漁人)의 기억이 바탕이 되지만, 다음엔 어느 휴머노이드의 기억이 세계의 바탕이 될 수도 있어.”
지성체라면 외모, 능력, 성격 등이.
물건이라면 성능과 쓰임새가.
“결론을 말하자면, 세상의 근원이 되는 기억에 따라, 넌 언제는 최고의 미인 해마가, 또 언제는 최고의 미인 휴머노이드가 된다는 거지!”
엄청나지 않니?
엠버는 어깨를 으쓱했다. 외모로 인생의 행복이 좌우된다는 말을 믿을 나이는 이미 지났다.
“그리고 나는 그런 네가 좋아.”
그러던 중 크산툴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뜬금없는 전개에 엠버는 당황했다. 크산툴에게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뭐 하십니까?”
“너라면 영원히 질리지 않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
엠버는 표정을 굳혔다.
“당신은 저를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만?”
“이해하려고 하지 마.”
거리를 두겠다는 표현도 해본다.
“외모만 보고 저를 사랑한다니, 당신 가벼워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자 우람한 해마는 깊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우리가 비슷하게 생겼어도, 사실 다른 종족이니까.”
“…….”
“나에겐 넌 운명 같은 거야. 그냥 나는, 너를 사랑하기 위해 설계된 생명체라고 보면 돼.”
감정을 담당한다는 종족 중에서도 탐미와 사랑을 맡았다더니.
설핏 이해는 가지만, 저렇게 순수하게 표현되는 감정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
펑!
폭죽 소리가 들렸다.
“연극 시작한다. 가자!”
제 손목을 잡아끌려는 크산툴의 손길을 피했다.
“분명 너도 좋아할 거야! 가자!”
그런데도 크산툴은 여전히 밝게 웃는다.
“다들 모여 있을 텐데, 엠버만 여기 있게?”
“알아서…… 뒤따라 가겠습니다.”
“알았어. 아름다운 꽃에는 가시가 많은 법이니까!”
“…….”
일단은 뒤따라 수면으로 오른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더 살필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펼쳐지는 연극이라는 데엔 아주 조그만 호기심도 생겼고.
다들 모인다더니, 과연 수면 위로 향하는 길에 다른 낙원인들이 하나둘 합류한다.
“연극은 보는 게 좋아.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거든. 내가 가진 지식의 대부분도 연극에서 배웠어.”
아름다운 유영을 펼치는 에일리가 손을 잡았다.
“기대해도 좋아.”
파아악!
저를 이끄는 그녀를 따라 수면 위로 나오니, 밖에는 어느새 밤하늘이 보였다.
“…….”
엠버는 멍하니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때, 이쁘지? 그 지구라는 곳의 밤하늘도 이렇게 이뻤어?”
“……아닙니다.”
여기가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공해가 없어, 깨끗해서가 아니다.
밤하늘을 가리는 고층 빌딩이 없어, 광활해서가 아니다.
별.
달이 뜨지 않은 대신, 무수히 많이 떠 있는 별.
빨간색 별, 파란색 별, 초록색 별.
“빛의 삼원색 알지?”
밤하늘을 가득 채운 그 세 가지의 별이 제각각 이동한다.
파란 별과 빨간 별이 만나 자색의 별이 되었고, 빨간 별과 녹색의 별이 만나 노란 별이 되었다.
곧 밤하늘엔 가시광선이 표현하는 모든 색이 수놓아진다.
“아름답습니다…….”
해가 졌는데도, 왜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이해한다. 밤하늘 별빛의 군집이 발하는 조도는 태양 못지않았다. 해가 져도 이곳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빛이 존재하는 한, 그 본질은 어디서든 안 변해. 그러니 밤하늘에 보이는 별의 연극은 어느 세상에서도 볼 수 있지.”
마치 TV 같았다.
광활한 밤하늘이 한눈에 들어오는 점과 그 별의 촘촘함까지 고려한다면, 1조 화소라 칭해도 될 것 같은 하이엔드급의 TV.
“매일 일어나는 현상입니까?”
“응. 낙원에 밤이 찾아오면, 늘 몽마가 만드는 연극이 시작돼.”
곧 밤하늘 속 별의 색으로, 어느 해마가 표현된다.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저 먼 하늘에선 소리까지 들려왔다.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음향은 3D였다.
“정말 연극 같습니다.”
영화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왜 낙원인들이 이 밤하늘을 연극이라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연극이란 건 어느 세상에서든 즐겨질 유흥이므로, 그 표현이 더 범용성이 있을 테니.
“내가 여긴 누군가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랬잖아. 이제 알겠지?”
“알겠습니다.”
에일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연극 속 배경은 바다였다.
다시 말해, 엠버가 눈을 뜬 이후 3시간 동안 보고 들은 모든 것이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엠버는 아까보다 편안한 눈길로 에일리를 본다.
“괜찮아. 무턱대고 믿는 게 더 이상한 거지.”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에일리의 붉은 눈동자 위로, 색색의 별빛이 맺히고 있었다.
“여하간 우리가 ‘근원’이라 부르는, 지금의 세계를 이루는 기억의 주인이 있다고 했잖아? 그게 누구냐? 쟤야.”
그녀가 밤하늘의 중심에 놓인 어느 해마를 가리켰다.
“SS급 헌터 우라노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습의 원조 격이 되는 어인.”
밤하늘에 수놓인 우라노스라는 어인이 별자리처럼 움직인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른 어인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겁먹지 마십시오!
그게 꼭 영화처럼 보였다.
또 누군가의 인생으로도 보였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엠버는 물었다.
“그럼 지금 보고 있는 게 우라노스라는 헌터의 기억입니까?”
“맞는데, 정확히는 그의 기억이 조작되고 있는 걸 보고 있는 거지.”
“기억 조작?”
“응. 원래의 기억을 변형시키는 것. 원래의 기억이 전혀 다른 분위기로 기억되도록.”
저 아름다운 연극에 순수한 의도는 없다는 말.
그 말에 밤하늘의 불빛이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는 순간.
“……몽마가 기억을 조작한다는 말입니까?”
엠버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지. 역시 넌 똑똑해.”
에일리의 시선도 밤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의 눈에 닿았다.
“왜입니까?”
“지금의 연극은 희극이지만, 결국 모든 연극은 비극으로 끝나거든.”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 연극의 목적 자체가 저 연극의 주인공에게 살의를 심어주기 위해서야. 지성인이 지성인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말살하게끔.”
엠버는 재차 물었다.
“왜입니까?”
“기억 조작.”
저를 보는 에일리가 싱긋 웃었다.
“그게 헌터가 몬스터로 변이하는 첫 번째 과정이니까.”
그리고 그녀의 말은, 아까 보았던 시스템 메시지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실패 시] : 몬스터 변이“그게 몽마가 이 세상을 유지하는 이유일 거야. 조금만 기다려.”
에일리가 다시 하늘을 보며 말했다.
“이 연극이 끝나갈 즈음엔 너도 알게 될 테니까.”